영상공(부친 : 홍언필)이 여름에 낮잠을 자고 있는데 어떤 뱀이 공의 배 위로 올라왔다.
공이 마음 속으로는 그것을 쫓아버리고 싶었지만 뱀이 놀라 자신을 해칠까 두려워서 목석처럼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아들인 퇴지가 바야흐로 여섯 살이었는데 아버지의 처소에 갔다가 그 광경을 보았다.
즉시 풀숲의 연못으로 가서 개구리 서너 마리를 잡아와 그것을 던지니 뱀이 사람을 놔두고 개구리를 쫓아가니 이에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퇴지는 어려서부터 임기응변하는 지혜가 이와 같더니 장성해서 과연 이름난 재상이 되었다.
領相公, 夏日午睡, 有蛇上公腹上. 公心欲逐之, 而恐蛇驚傷人, 木石然不敢動. 子退之, 方六歲, 適父所, 見之. 卽往草澤中, 取三四蛙投之, 蛇, 捨人從蛙而去, 乃得起身. 退之, 自幼, 機智如此, 及長, 果爲名相.
출처 : ≪인물고(人物考)≫(沈晉賢)
≪인물고(人物考)≫ : 조선 정조 때 심진현(沈晉賢)이 왕명에 의해 만든 인물지이다. 26권 26책. 필사본으로 조선 건국 초기부터 숙종 때까지의 중요 인물 1,821인에 대해 그 성명·자·호·생몰·가계·관력·특징·사업·업적 등을 서술체로 수록하였다. 이 책은 총목 1권, 본고 23권, 속고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심진현(沈晉賢) :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희인(羲人)이다. 생원시에 합격했다.
퇴지(홍섬)의 임기응변하는 지혜와 효심
홍섬(洪暹1504-1585)
조선 중기 때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자는 퇴지(退之) , 호는 인재(忍齊)로 영의정 언필(彦弼)의 아들이다. 조광조(趙光祖)의 문인으로 1528년(중종 23) 사마시에 합격하고, 153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정언을 지냈다. 1535년 이조좌랑으로서 김안로(金安老)의 전횡을 탄핵하다가 그 일당인 허항(許沆)의 무고로 흥양에 유배, 1537년 김안로가 사사(賜死)된 뒤 3년만에 석방되었다. 그 뒤 수찬 · 부제학 · 경기도관찰사 · 대사헌을 거쳐, 1552년(명종 7) 청백리(清白吏)에 녹선(錄選)되었다. 1558년 좌찬성으로 이조판서를 겸하고, 이듬해 대제학을 겸하게 되자 삼대임(三大任)을 겸할 수 없다 하여 좌찬성을 사임하였다. 1560년 이량(李樑)의 횡포를 탄핵하다가 사직당하였고 1563년 판의금부사로 복직되어 예문관 · 홍문관의 대제학을 지냈다. 1567년 예조판서가 되고, 이듬해 명종이 승하하고 선조가 즉위하자 원상(院相)으로 서정(庶政)을 처결하고 이어 우의정에 올랐으나 남곤(南袞)의 죄상을 탄핵하다 또다시 파직되었다. 1571년(선조 4) 좌의정이 되어 궤장(几杖)이 하사되고 영의정에 승진되어 세번이나 중임하였다. 문장에 능하고 경서에 밝았으며 검소하였다. 흥양으로 유배당하였을 때 자신의 심경을 노래한 가사 〈원분가(寃憤歌)〉가 있으며, 저서로 《인재집》과 《인재잡록》이 있다. 남양의 안곡사(安谷祠)에 제향되었고, 시호는 경헌(景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