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괄사(括沙)에 대한 새로운 의안(按)
예전에 나의 아내(:荊人)가 나이 40세에 이르러, 음력 8월말 한(寒)하기 시작할 시(時)에 우연히 폭우(暴雨)로 인하여 그 후에 음한(陰寒) 사독(沙毒)의 기(氣)에 중(中)하였으니 갑자기 이고(二鼓: 오후9시~11시)의 시(時)에 위로는 구오(嘔惡)하고 아래로는 흉복(胸腹)이 교통(攪痛)하며 그 세(勢)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 시(時)가 모야(暮夜)이었으므로 약물(:藥餌)의 조달이 되지 않아 염탕(鹽湯)으로 탐토(探吐)케 하였으나 통(痛)이 감(減)하지 않았다. 결국 연이어 수차례 토(吐)하였으나 그 기(氣)가 더욱 승(升)하였으므로 그 통(痛)은 더욱 극(劇)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위로는 후익(喉嗌)을 색(塞)하고 심지어 성(聲)이 나오지 않게 되고 수약(水藥)은 조금도 들어가지 못하였으니, 위태(危)함이 경각(頃刻)에 달려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내가 지난해 배운 비전괄사법(秘傳括沙法)을 기억(:憶)하게 되었다. 이에 광활(光滑: 윤이 매끄럽다)하고 세구(細口: 세미한 구멍)가 있는 자완(磁碗: 사기그릇)을 택(擇)하고, 따로 열탕(熱湯) 1종(鍾)에 향유(香油: 침기름) 1~2시(匙)를 준비하였다. 곧 사기그릇 입구(:碗口)를 유탕(油湯: 열탕에 향유를 넣은 것) 속에 담구어 따뜻하고 미끄럽게 하고는 양수(兩手)로 그릇을 뒤집어 잡고 병자(病者)의 배심(背心: 등 가운데)에 아래(:下)로 향(向)하면서 가볍게 문질러 주면서 점차 힘을 가중(加重)시켰느니라. 그 그릇이 마르고 차가워지면 다시 담구었다가(:浸) 다시 문질러주었다.
오래 지나 흉중(胸中)의 창체(脹滯)가 점차 하행(下行)하는 느낌이 있었고 다소 관서(寬舒: 편안하고 시원하다)하게 보이더니 비로소 성(聲)이 나오게 시작하였다. 곧 바로 갑자기 복중(腹中)에 큰 소리(:響)가 있더니 결국 물을 퍼붓듯이 크게 설사(瀉)하였고, 그 통(痛)이 결국 감(減)하면서 다행히 살아나게 되었다.
사(瀉)한 후에는 30분 정도(:一飯) 자더니(:睡), 다시 통신(通身)에 소양(搔癢: 가려움)이 극(極)하고 이어서 동전(:錢) 크기의 흘탑(疙瘩: 부스럼 종기) 풍병(風餠)이 발출(發出)하였으니 그 수(數)를 다 셀 수 없었고, 사고(四鼓)에 이르러서야 퇴(退)하였다.
다 나은 후에 그 의미(:義)를 자세히 궁구(:窮)하여 보니, 오장(五臟)은 모두 배(背)에 부(附)하여 매달리므로(:繫) 아래로 향(向)하여 문질러주니(:刮), 사기(邪氣)도 또한 따라서 강(降)한 것이다. 독기(毒氣)가 상행(上行)하면 역(逆)이지만 하행(下行)하면 순(順)이니, 역(逆)을 순(順)으로 개(改)한 것이었으므로 낫게 된 것이었다.
비록 최근(:近)에는 양비(兩臂)를 괄사(刮沙)하는 법(法)이 있어서 통(痛)을 치료(治)할 수 있지만, 독(毒)이 심(深)하고 병(病)이 급(急)하면 배(背)를 치(治)하지 않으면 안 된다.
풍병(風餠) 흘탑(疙瘩)이 생긴 이유(由)는 바로 한독(寒毒)의 기(氣)가 표리(表裏)를 충색(充塞)하여 경(經)과 장(臟)이 모두 폐색(閉)되므로 위극(危劇)에 이르렀는데, 지금 그 장독(臟毒)이 해(解)한 연후에 경기(經氣)가 행(行)하면서 표리(表裏)가 모두 산(散)하니, 한사(寒邪)에 외감(外感)된 독(毒)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장기(臟氣)가 조(調)하지 못하면 표(表)도 풀리지 않고 표사(表邪)가 산(散)하지 못하면 장(臟)도 반드시 화(和)하지 못한다. 표리(表裏)가 상관(相關)하는 뜻(:義)이 이와 같으니, 따라서 치료(治)에서 완급(緩急)을 구분(分)하는 권형(權衡)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
이어 수일(數日) 후에 어떤 위씨(魏氏)가 또 이고(二鼓: 21~23시)에 갑자기 이 증(證)을 앓았는데, 그가 치료법(治法)을 얻지 못하다가 결국 오고(五鼓: 03~05시)에 통(痛)이 극(極)하면서 죽었다(:斃). 나를 만난 것과 만나지 못한 것은, 그 운명(:命) 때문에 그러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