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열략(熱略)
一. 열방(熱方)을 제(制)한 것은 그 한(寒)을 제(除)하려는 것이니라.
한(寒)으로 된 병(病)은 한사(寒邪)가 기표(肌表)를 범(犯)한 경우, 생냉(生冷)이 비위(脾胃)를 상(傷)한 경우, 음한(陰寒)이 장부(臟腑)에 중(中)한 경우가 있느니라.
이는 모두 외(外)에서 들어온 한(寒)이므로, 들어온 곳을 따라 거(去)하면 곧 그 치료(治)가 되느니라. 이는 모두 사람들이 쉽게 아는 것이니라. 본래(本來) 한(寒)은 무형(無形) 무향(無響)에서 생(生)하니, 초(初)에는 감(感)하는 바가 없으므로 그 인(因)을 예측(測)할 수가 없느니라. 사람들이 이를 병(病)하는 것이 가장 많으나, 사람들이 이를 아는 것은 극히 적으니, 과연 뭐라고 말하겠는가?
보건대 단계(丹溪)는 "기(氣)의 유여(有餘)가 바로 화(火)이다."고 말하였지만, 나는 이어서 "기(氣)의 부족(不足)이 바로 한(寒)이다."고 말하느니라.
요즘 사람들 중에서 기(氣)가 유여(有餘)한 자가 십(十) 중에서 얼마이겠는가? 품수(稟受)로 인하거나 상패(喪敗)로 인하여 양기(陽氣)의 부족(不足)에 이르면 대부분 한(寒)이 중(中)에서 생(生)하여 양쇠(陽衰)한 병(病)에 이르지 않음이 없느니라. 다만 그 유래(由來)가 점(漸)하고 그 형견(形見)이 미(微)하여 당연히 느끼지 못하는 것이니, 누가 의미(意)를 두겠는가? 심(甚)하게 되면 비로소 치료(治)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니라.
하물며 용의(庸醫)들은 대부분 이를 알지도 못하고 매번 가열(假熱)을 진화(眞火)로 여기며, 이로 인하여 다시 무형(無形) 무향(無響)한 곳으로 폐(斃)하게 하니, 또한 얼마인지조차도 모르니라.
따라서 오직 고명(高明)하여 도(道)를 견(見)하는 사(士)만이 항상 양쇠(陽衰)한 근본(根本)을 근심(:憂)하니, 이처럼 열방(熱方)을 예비(:豫)하지 않으면 안 되느니라.
열(熱)을 사용하는 법(法)에서 예로 건강(乾薑)은 능히 온중(溫中)하고 또한 능히 발표(發表)하니 구오(嘔惡) 무한(無汗)에 마땅하고, 육계(肉桂)는 능히 행혈(行血)하고 사지(四肢)에 선선(善善)하니 혈체(血滯)의 다통(多痛)에 마땅하니라. 오수유(吳茱萸)는 하초(下焦)를 잘 난(煖)하게 하니 복통(腹痛) 설사(泄瀉)에 극(極)히 묘(妙)하고, 육두구(肉荳蔲)는 가히 비신(脾腎)을 온(溫)하니 손설(飱泄) 활리(滑利)에 가장 기(奇)하느니라. 호초(胡椒)는 온중(溫中) 화위(和胃)하여 그 종류(類)가 필발(蓽撥)에 근(近)하고, 정향(丁香)은 지구(止嘔) 행기(行氣)하여 그 난(煖)이 백두구(白荳蔲)의 인(仁)보다 과(過)하느니라. 보골지(補骨脂)는 성(性)이 강(降)하면서 잘 폐(閉)하므로 능히 납기(納氣) 정천(定喘)하고 설사(泄瀉) 대탁(帶濁)을 지(止)하며, 제(製)한 부자(附子)는 성(性)이 주(酒)처럼 행(行)하므로 도달(:到)하지 않는 곳이 없고 능히 구급(拘急) 회양(回陽)하느니라. 반하(半夏) 남성(南星) 세신(細辛) 오약(烏藥) 양강(良薑) 향부(香附) 목향(木香) 회향(茴香) 선모(仙茅) 파극(巴戟)의 속(屬)도 모두 성(性)이 온(溫)하니 당연히 변(辨)하여야 하느니라.
그런데 열(熱)을 사용하는 법(法)에는 요(要)가 있느니라. 산(散)에 온(溫)을 겸하면 한사(寒邪)를 산(散)할 수 있고, 행(行)에 온(溫)을 겸하면 한체(寒滯)를 행(行)할 수 있으며, 보(補)에 온(溫)을 겸하면 허한(虛寒)을 보(補)할 수 있느니라.
다만 다한(多汗)하면 강(薑)을 기(忌)하니 강(薑)은 능히 산(散)하기 때문이고, 실혈(失血)하면 계(桂)를 기(忌)하니 계(桂)는 동혈(動血)하기 때문이며, 기단(氣短) 기겁(氣怯)하면 파고지(破古紙)를 기(忌)하니 파고지(破古紙)는 강기(降氣)하기 때문이니라.
대체로 기(氣)가 향(香)하면 모두 기허(氣虛)의 증(證)에 불리(不利)하고, 미(味)가 신(辛)하면 대부분 견혈(見血)의 증(證)에 불리(不利)하므로 당연히 삼가야 하느니라.
이것이 열(熱)을 사용하는 대개(:槪)이니라.
부자(附子)의 변(辨)에 있어서, 요즘 사용하는 자는 반드시 그 세(勢)가 어쩔 수 없음을 기다렸다가 부득이하게 된 연후에 사용을 하는데, 회양(回陽)하는 공(攻)은 당연히 양기(陽氣)가 거(去)하려 할 때 점(漸)으로 사용하여야 만회(挽回)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니라. 만약 양기(陽氣)가 이미 거(去)한 후에 사용하면 죽어버린 재(:灰)를 회복(復)하려는 것과 같아서 불가(不可)하니, 사(事)에 무슨 익(益)이 되겠는가?
다만 부자(附子)는 성(性)이 한(悍)하여 홀로 임(任)하기가 어려우므로 반드시 대감(大甘)한 품(品)을 얻어야 하느니라. 예로 인삼(人蔘) 숙지황(熟地) 자감초(炙甘草)의 종류(類)는 모두 족히 그 강(剛)을 제(制)하면서 그 용(勇)을 제(濟)하니, 보(補)로 그를 배(培)하면 매번 이(利)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이는 호천(壺天) 중의 대장군(大將軍)인데, 무용(無用)한 곳에 둘 수 있겠는가? 단지 그 진(眞)을 알아서 잘 사용한다면 족히 '장군(:將)을 부리는(:將) 재주(:手)'라 칭(稱)할 수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