揖茶 / 이상적(李尙迪)-은송당집(恩誦堂集)
小盌挹茶水。 千漚何蕩發。 圓光散如珠。 一珠一尊佛。 浮生彈指頃。 千億身怳惚。 如是開手眼。 如是分毛髮。 悟處齊點頭。 參時同竪拂。 誰師而誰衆。 無我亦無物。 茫茫恒河沙。 普渡非喚筏。 泡花幻一噓。 空色湛片月。 三生金粟影。 坐忘何兀兀。 萬緣了非眞。 焉喜焉足喝。 經傳陸羽燈。 詩咒玉川鉢。 ----------- 원문출처 :MKSDB / DB / 한국문집총간DB / http://db.mkstudy.com/ko-kr/mksdb/e/korean-literary-collection/book/reader/8827/?sideTab=toc&contentTab=text&articleId=1304097
--원문에 오자가 많아서 다시 확인 했어요--- --------------------------------------------------
참고--- 보충 첨삭 할 해설 자료--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은 역관으로 총12번의 연행 길에 오르며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 자하 신위, 해거도인 홍현주 등과 교유한 인물이다. 중인 출신으로 추사의 문하에 있었으며 총애를 받았다. 추사 김정희가 선물한 「세한도(歲寒圖)」를 지니고 북경에 가서 그가 교유했던 문사들에게 보인 후에 장요손을 비롯하여 청나라의 문사 16명의 제찬(題贊)을 받아온 일로 유명하다.
북경으로 가는 길은 왕복 80일이 걸리며 머무르는 기간 60일까지 총 5~6개월씩 걸린다. 그의 나이 27세 1829년 10월, 첫 연행 길에 올랐다. 이상적은 이미 조선 문인과 교유하고 있던 청 문사들을 우선 만나고 그 이후부터는 북경의 새로운 문사들을 만나면서 교유의 폭을 넓힌다. 이 중에는 화가로 알려진 문사만도 21명이나 됐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새로운 문물을 보고 들으며 많은 이들에게 전하니 얼마나 기뻤을까. 힘든 연행길 이지만 즐거움은 더했을 것이다.
이렇게 이상적은 청과 조선의 지식인들 사이에 교량 역할을 했으며 자신도 예술인으로의 위상을 지니게 된다. 금석학, 서, 화 등 각 부분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는 조선 사회보다 청나라에서 명성이 더 높았으며, 『은송당집』도 중국에서 간행되었다. 『은송당집』은 1848년 북경에서 초간한 본집 12권과 1864년 간행한 속집 12권으로 구성되어있다. 제첨(題簽)과 서문(序文) 발문(跋文)은 모두 중국 당대의 최고 지식인들이 그의 문집 출간을 기려 보내준 것이다.
『은송당집』에는 차와 관련된 시문이 40여 수이며 차와 관련된 제목의 시 14수가 있다. 12번의 연행이 그에게 얼마나 다양한 중국의 차를 맛볼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가 지은 다시는 다양하다.
그는 천하에 이름있는 차를 두루 맛보고 연경의 열두거리에서 차를 파는 풍경까지 소개하며 우리의 차가 최고라고까지 주장했다. 그 시의 내용중에 “… 돌아와 조용히 지내며 그대가 준 차를 마시니 향기가 입속에 머물고, 인삼에 필적할 만하니 뉘라서 알리오. 이 땅에 이런 차가 있었다니 오랑케 땅에 인재가 난 것 같네 …”라는 시이다. 이렇듯 그렇게 많고 좋은 차를 맛보았건만 조선에서 만든 차가 최고임을 자랑하는 내용이다.
이는 당시 중국의 차를 선호하는 사회 풍습을 과감히 질책하는 내용이며 중국에 아무리 다양한 차가 있어도 우리 차 만드는 솜씨가 뛰어나다는 뜻이리라. 조금은 과장이 되어있어도 우리것이 자신이 경험한바 연경의 차 박사들이 파는 차 맛보다 향기와 효능이 뛰어나다고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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