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3. 18
역대 우리네 프로야구 감독들 가운데 퇴장을 당해보지 않은 감독은 거의 없다. 그런데 예외적인 인물이 있었다. 고인이 된 김동엽(1938~1997년) 해태 타이거즈 초대 감독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사람들은 그를 ‘빨간 장갑의 마술사’로 불렀다.
김동엽 감독은 해태(코치와의 불화로 불과 13게임에서 지휘봉을 잡고 감독 노릇을 했을 뿐이다)와 MBC 청룡 감독시절 숱한 항의를 했다. 그렇지만 그는 여느 감독들과는 달리 단 한 차례도 퇴장을 당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KBO 상벌위원회에 회부 됐던 1986년 7월 4일, 이른바 ‘부정위 타자’로 인한 항의 때도 두 차례에 걸쳐 모두 28분간이나 경기를 중단시켰지만 경고에 그쳤다. 항의의 품격이랄까, 다른 감독들이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거친 항의를 했던데 비해 그는 나름대로의 항의 수위를 적절히 조절하고 절제를 잃지 않았다.
1986년 7월 4일, MBC 청룡과 OB 베어스의 후반기 2차전이 열렸던 서울 잠실구장. 선린상고 동기생인 김건우(그해 신인왕)와 박노준이 선발과 마무리로 등판해 마운드 힘겨루기가 이루어졌던 그 경기는 팽팽한 투수전 속에 연장 11회까지 가는 혈전이었다. MBC는 김건우가 8⅓이닝을 던져 1자책점으로 호투했고, 뒤이어 그해 마무리로 전환한 김용수가 등장, 2⅔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뒷문을 닫아걸었다.
OB는 선발 계형철과 김진욱이 8이닝을 책임졌고, 9회부터 박노준이 나서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경기는 ·1-1로 좀체 승부를 가리지 못한 가운데 연장 10회 말이 되자 ‘목발을 짚은’ 김동엽 감독이 덕 아웃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OB쪽의 ‘부정위 타자’를 뒤늦게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부정위 타자는 타격 순서 착오(batting out of turn)에 의해 일어나는 것으로 ‘타자가 자기 차례에 타격을 하지 못하고 다른 선수가 타격을 끝냈을 경우 상대팀이 어필하면 아웃이 선언’되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반드시 상대팀이 인지해야만 한다.
상황은 9회 말에 벌어졌다. 누구보다 룰에 정통하다는 OB 김성근 감독이 착오를 일으켰다. OB는 1-1로 계속 흐르고 있던 9회 초 박노준을 구원 등판시켰다. 김성근 감독은 9회 말 1사 1, 2루의 기회에서 느닷없이 8번 포수 김경문의 타석 때 박노준을 타자로 내보냈다. 지명타자 타순에 내보내야 맞지만 엉뚱한 실수를 한 것이다. 이규석 주심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심판원이 그 사실을 인지했더라도 누구에게도 주의를 환기시켜서는 안 된다)
박노준은 4번 지명타자 윤동균의 타석이 아닌 8번 타석에 나가 3루 땅볼로 물러났다. 대타 이승희도 3루 땅볼로 아웃, 9회 말 OB 공격은 그렇게 끝났다. 박노준은 연장 11회 말에는 윤동균 타석에 나가 유격수 뜬공에 그쳤다.
9회 말에 ‘부정위타자’를 눈치 채지 못하고 그냥 잠자코 있었던 김동엽 감독은 10회 말에 가서야 박노준의 부정 타격행위를 문제 삼고 나서 “부정선수의 타격이었으므로 몰수게임이 돼야 한다”고 21분간 따졌다. 그리고 11회 말 박노준이 다시 타석에 들어서자 재차 어필, 7분간 경기가 중단됐다. 경기는 끝내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연장 11회 1-1로 비겼다.
이튿날(7월 5일)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박노준의 타격행위를 부정위 타자로 간주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박노준의 대타 행위가 4번 자리의 부정위 타자로 이뤄진 것으로 MBC의 어필이 없었으므로 4번 타자로 정당화 된 것이다. 박노준 다음 이승희의 타격도 9번 구천서의 대타가 아닌 5번 김형석의 대타로 간주 돼야 한다.’는 것이다.
▲ 목발 짚고 항의하는 고 김동엽 감독의 생전 모습 / 제공=일간스포츠
그래서 OB의 10회 말 공격은 6번 이종도부터 진행돼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1번 김광수가 선두로 나선 것은 이승희가 ‘4번 박노준’에 이어 ‘9번 타순’에 들어선 두 번째 부정위 타자 행위가 발생한 것으로 KBO는 판정했다.
KBO는 그러나 김동엽 감독에게 경기지연 책임을 물어 ‘경고’ 조치를 내렸을 뿐이다. 울화가 치민 김동엽 감독은 ‘이미 출장 중인 투수의 대타 기용은 부정위 타자가 아니라 부정타자’라는 주장을 내세우며 7월 23일에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1-8로 패색이 짙어지자 7회 말에 투수 김태원을 박철영 타석에 대타로 투입, 고의로 ‘부정위 타자’를 만들어 KBO의 해석에 반기를 들었다. 이에 대해 MBC 구단은 50만 원의 벌금과 각서를 받는 자체 징계로 수습했다. 김동엽 감독다운 무언의 항의였다.
김광철 한국야구심판학교장(전 한국야구위원회 심판위원장)은 자신이 그라운드에서 겪은 김동엽 감독의 어필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렇게 들려줬다.
김광철 씨가 주심으로 마스크를 썼던 1986년 어느 경기에서 당시 MBC 김동엽 감독이 목발을 짚고 홈플레이트 근처로 다가왔다. 물론 판정에 대한 항의를 하기 위해서였다. 김동엽 감독은 그 무렵 역기를 들다가 아킬레스건을 다쳐 깁스를 한 상태였다.
김광철 심판은 잔뜩 긴장했다. ‘오늘은 이 양반이 또 무슨 시비를 걸려고 이러나’하는 마음으로 그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했다. 그런데 막상 주심에게 다가온 김동엽 감독은 “야, 광철아, 오늘 TV 중계도 있고 하니 내가 1분만 얘기하고 들어가겠다.”고 말을 건넸다. 김광철 주심은 “형(야구인들은 친한 사이에는 형, 아우 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을 넘기면 퇴장 시킬 거야”라며 못을 박았다. 김동엽 감독은 정작 판정에 대한 어필을 하는 대신 “이따가 경기 끝나고 한 잔 하자우”라는 등 엉뚱한 소리만 잔뜩 늘어놓았다.
시계를 보고 있던 김광철 심판은 이윽고 “형, 이제 그만해. 1분 지났어.”라고 말하자 김동엽 감독이 몇 마디 더 지껄이다가 슬그머니 덕 아웃으로 돌아갔다. 김광철 심판학교장은 “동엽이 형은 TV 중계가 있을 때만 나와서 어필을 하곤 했다.”며 웃었다.
김동엽 감독은 실업팀 롯데 창단 감독 시절부터 빨간 장갑을 끼고 선수들을 지휘, ‘빨간 장갑의 마술사’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는 지도자로서 숱한 기행과 배꼽을 쥐게 만든 행동으로 야구팬들을 울리고 웃겼다.
그는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나 6.25 민족상잔 때 월남했다. 파란만장한 야구인생을 보낸 그의 MBC 감독 시절 등번호는 실향민 신세를 상징하는 38번이었다. 그는 무려 13번이나 감독직에서 해임 당했고 <그래, 짤라라 짤라>(1995년, 한샘출판사)라는 자서전을 내기도 했다. 한양대 감독 시절에 진행한 MBC 라디오의 <홈런출발 김동엽입니다>는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 김동엽 감독의 자서전 <그래, 짤라라 짤라> 표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것은, 그의 독특한 항의 태도 때문이었다. 김광철 전 심판위원장의 회고에서 보듯, 그는 나름대로 그라운드 지휘자로서의 금도(襟度)를 정해놓고 항의에 나섰던 보기 드문 야구인이었다. ‘낭만적인 어필’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고 김동엽 감독의 어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미소 짓게 만들고 흥겹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열세 번 목 잘린 사나이의 오기 한평생’이라는 부제를 붙여놓은 <그래, 짤라라 짤라>의 한 대목을 보자.
“심판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잦은 어필에 맞서 싸우던 내가 막상 감독이 되어서는 거꾸로 심판들을 자주 괴롭히는 악역을 도맡자 후배들은 ‘거, 형님도 올챙이 시절 좀 생각하쇼.’라고 핀잔을 주곤 했다. 사실, 야구 감독 생활을 하면서 나만큼 어필이 많은 감독도 없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심판 시절을 까맣게 잊어서가 아니다. 주어진 위치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 프로야구는 흥행의 스포츠다. 선수의 플레이 못지않게 감독이나 코치의 제스처와 행동, 심판원의 재기 넘치는 판정 동작도 그 같은 흥행요소의 하나이다. 오죽하면 오심도 게임의 일부라고 했겠는가. 야구라는 게임은 그렇게 총체적인 복합성을 갖고 있다.”
▲ 김동엽 감독의 항의 장면 / 일간스포츠
김동엽 감독이 심판에게 항의를 하는 행위는 이를테면, 흥행을 위한 ‘연출’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의 다음 말로 수긍이 간다.
“내가 MBC 청룡 감독 시절, 코치들이 나가기 마련인 3루 작전 코치석에 나가 아마추어 롯데 시절처럼 빨간 장갑을 끼고 직접 사인을 내거나, 부러진 다리에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은 가운데서도 경기에 참가, 목발을 휘두르며 심판원에게 어필을 한 것도 관중들을 의식한 행동이었다.”
그는 어필을 할 때 대개는 후배 심판들과 미리 사인을 주고받았다. 짜여 진 각본에 의한 의도적인 행위였다. “이봐, 오늘은 딱 3분만 떠들다 들어갈 테니까 퇴장 시키지 마.” 그 말을 들은 심판들은 신발 끝으로 바닥에 금을 그어놓고 그 선을 넘지 못하게 막아선 다음 소리를 침을 튀겨가며 고래고래 지르는 김동엽 감독의 항의를 한 귀로 듣고 흘려보냈던 것이다.
1997년 4월 10일, 그는 서울 동부이촌동의 한 원룸에서 돌연사 했다.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사망한지 며칠이 지나 있었다. 자서전 머리글에서 ‘내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자각. 그것은 언제나 호기롭게 큰 목소리를 내온 나로선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현실이었다. 이제는 지나온 길이 가야할 길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아야했다. 그저 야구가 좋았고, 나 자신의 정열이 미더웠지만…더 이상 나를 헤아려주도록 기다릴 시간이 없음을 깨달았다.’고 술회했던 그는 그렇게 이 세상을 떠나갔다.
홍윤표 선임기자
자료출처 : O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