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정갈하게 빗어 상투처럼 말아 올린 곽종인 선생은 예리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주름살도 거의 없어 나이보다 휠씬 젊어보였다.
‘정신세계사’를 세운 송순현 사장은 국내 도사들에 대해 광범위한 인맥과 정보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수도한다는 사람 치고 ‘정신세계사’ 책 한 권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웅덩이 파 놓으면 개구리 뛰어든다’는 속담처럼, 그가 80년대 초반에 이 땅에 파 놓은 ‘정신세계사’ 웅덩이는 한국 도사들의 아지트이기도 했다.
그에게서 최근 한 가지 정보를 입수했다. 평생을 신선수업에 매진한 여자도인을 만나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여자도인? 남자도 하기 힘든 공부인데 어떻게 여자가 그렇게 어려운 공부를? 특히 필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부분은 그 도인이 중국의 화산파(華山派) 장문인 자리를 물려받았다는 점이었다. 화산파라면 무협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문파 아닌가.
김용의 ‘영웅문(사조영웅전)’을 보면 무림의 최고수들이 최종 승부를 벌이는 장소가 화산으로 설정돼 있다. 이름하여 ‘화산논검대회’다. 무협지를 애독하던 나는 화산에 대해 궁금했다. 왜 무협지 작가들은 한결같이 화산파 내지는 화산을 단골무대로 설정하는 것일까. 아무리 무협지가 픽션이라고는 하지만, 거기에는 그럴 만한 역사적 근거와 배경이 있지 않겠는가. 어떻게 한국 사람이 유서 깊은 중국 화산파의 장문인 자리를 계승할 수 있었는가. 그것도 남자가 아닌 여자가. 그렇다면 그 내공이 상당하지 않겠는가.
온갖 궁금증을 가지고 화산파 여자 장문인을 만나게 됐다. 그가 머무는 곳은 서울 잠실. 그는 의외로 세속의 한가운데서 살고 있었다.
하늘의 이치에 도전하다
그의 이름은 곽종인(郭宗仁). 1940년생으로 올해 65세다. 위아래 검정색 도사복을 입은 그는 머리를 정갈하게 빗어 상투처럼 말아 올렸다. 전체적으로 예리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나이에 비해 주름살도 거의 없는 편이다. 서가에는 도교 경전들을 집대성한 전집 ‘도장(道藏)’ 수십 권이 꽂혀 있었다. ‘도장’은 불교의 ‘팔만대장경’에 비견되는 도교판 대장경이다. 이 책을 가지고 있을 정도라면 도교 마니아라 할 수 있다.
그와 탁자를 마주하고 앉았다. 앉은 자세를 보니 척추를 곧추세웠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수련가는 척추 아랫부분인 명문혈을 반듯하게 세워서 앉기 마련이다. 그래야만 명문혈이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 명문혈이 밖으로 휘어져 나온 것은 정기를 너무 소모해버렸다는 징표다. 일반인은 명문혈이 대개 밖으로 휘어져 있다. 그러므로 앉은 자세만 보아도 정기가 빠졌는지, 안 빠졌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간결하면서도 빈틈없는 자세. 65세 할머니가 이런 자세로 앉아 있다는 것은 그가 내공을 상당히 축적한 고수라는 증거다. 고수를 만날 때는 곧바로 결론을 치고 들어가야 한다.
-화산파 도사들의 헤어스타일은 머리 위쪽으로 상투를 트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머리를 위로 묶는 이유는 수련이 역행(逆行)이기 때문입니다. 수행이란 거슬러 올라간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이 태어나 자식 낳고 살다가 늙고 병들어 죽는 과정이 순행(順行)이라면, 선도의 수련은 여기에 반기를 들고 불사(不死)의 경지에 도전하는 것이죠. 단전호흡을 하고 보통사람과 달리 여러 가지 까다로운 계율을 지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범인의 삶의 방향과 역행해 하늘을 향해 올라가겠다는 의지의 표상이 바로 상투입니다. 하늘을 향해 머리를 묶는 것이죠. 선조들이 상투를 틀었던 배경도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마 이런 신념과 맥락을 같이할 것입니다.
역행은 인간의 의지와 관계됩니다. 도가 수행자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아명재아불유천(我命在我不由天)’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명은 내게 있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흔히 도를 닦는다고 하면 하늘의 이치에 순응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알고 보면 하늘의 이치에 인간이 도전하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측면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수행자는 성관계 하지 말아야
-수행은 순행이 아닌 역행이라고 했는데, 역행의 예를 설명해 주시죠.
“마음장상(馬陰藏相)이 그것입니다. 부처님의 신체적인 특징을 설명한 대목이 32상80종호라는 표현입니다. 부처님은 32가지 특이한 상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죠. 마찬가지로 도교에서도 마음장상을 중시합니다. 그 말은 ‘말의 성기가 번데기처럼 움츠러든 모양’이란 의미입니다. 도교 수행을 제대로 하면 남자의 성기가 어린아이의 고추처럼 변합니다. 수축되는 거죠. 이는 성적 에너지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몸 안의 임독맥(任督脈)을 타고 순환하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성적 에너지가 머리 위로 올라가 뇌세포를 강화시키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환정보뇌(還精補腦)’라고 하죠. 정액을 되돌려서 뇌를 보강한다는 뜻입니다. 환정보뇌 단계에 이르면 남자의 성기가 줄어들어 어린아이 고추같이 변합니다.
첫댓글 벌써 15년 전에 인터뷰한 기사인데, 우연히 인터넷에 올려져 있어 여기다 다시 올립니다. 이유는,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많은 부분이 이 기사에 담겨져 있습니다. 위의 내용에서는 '역행'이라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성적 에너지가 머리 위로 올라가 여러가지 현상을 일으킨다는 내용입니다. 제가 쓴 책에도 비슷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물론 나중에 대사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국선도 수련만 하던 상황이었는데 수련결과 나타나는 현상은 화산파의 수련과 똑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