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km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광평삼거리 - 공생염전 - 백미리 - 궁평항 - 화옹방조제 - 매향리 - 석천리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
9월은 일본출장과 벌초, 그리고 추석 명절로 일토장정을 가질 수 없었다.
10월은 바로 첫 날에 하루를 당겨 10월 1일 금요일부터 걷기 시작했다.
잠깐 회사에 출근하여 신체검사를 받고 서둘러 궁평항으로 달려갔다.
금요일이고 보니 고속도로도 한가하여 궁평항까지 잠깐이다.
궁평항에서 집결하여 광평 삼거리에서 다시 오늘의 장정이 시작된다.
광평 삼거리 전 장외 산업단지로 들어가서 길을 따라 계속 바닷가 쪽으로 나가면 바로
붉은 염초들이 논둑을 덮고 있는데 그곳이 바로 서신면 매화리 공생염전이다.
멀리서 보면 구획정리가 잘 된 간척지의 논 같지만 가까이 가보니 바닷물을 담았던 소금밭이다.
걸음을 염전 안쪽으로 옮겨보니 지금은 소금을 생산하지 않는 것 같다.
하기야 중국산 싼 소금에 뒤로 밀려 국내에서 천일염을 생산하는 곳이 이제 몇 곳이야 남았을까 하며
소금밭 둑을 따라 녹슨 장비도 그냥 서있고 막연히 세상이 넓어지며 힘을 잃어 목숨도 다해가는
우리 토종의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인터넷에 나온 기사 한 토막에는
강원도 철원 김화에 살고 있던 같은 마을 사람들이 피란을 내려와
1953년부터 3년간 이곳의 바다 880m를 등짐으로 돌과 흙을 날라서 막고 이 염전 13만평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당시 이곳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들이 이 필사적인 노동에 놀라서 다큐멘터리를 찍었다고 하는데
그 필림의 제목이 “바다를 밀어낸 사람들”이란다.
지금이야 30km가 넘는 방조제가 탄생했고 오늘도 10km 정도의 화옹방조제를 건너겠지만
사람의 힘으로만 그 일을 한다면 쌓고 또 쌓아도 자고 일어나면 밀물과 썰물에 쓸려 내려갔을 것이 뻔한 일인데
같이 살자고 공생염전인 이곳의 이름에 큰 힘이 느껴진다.
염전을 빠져 나올 때 쯤 반가운 소금막이 보인다.
그리고 바다를 밀어내셨던 그분들의 자손들이 아직도 일부 소금을 만들고 계셨다.
붉은 색 타일을 소금밭에 곱게 깔고 바닷물을 맞이하여 햇님의 뜨거운 숨결로 하얀 결정체를 탄생시키고 있었다.
마음씨 좋은 아저씨에게 바닷가 산길도 여쭤보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니
감 나오는 계절이니 감 사가지고 와서 감사하라는 농담도 받는다.
“지켜주시고 계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가슴 속에 넣으니 뿌듯하다.
봄이 오고 소나무 송화가루가 날릴 때 최고의 천일염이 생산된다고 하니 이곳에 봄 날을 기대해 본다.
소금밭의 끝에서 초소를 지나 산 옆으로 조금한 소로길로 꼬불꼬불 거미줄을 헤치고 나오니 바로 바닷가 펜션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계속 걸으면 한맥중공업의 큰 공장이 바닷가를 차지하고 있다.
공장 정문을 지나치면 서신면 백미리로 가는 길이다.
백미리는 신작로 길에서 두 시간에 한 번쯤 이곳을 지나갈 것 같은 시골 버스에서 내려 산허리를 둘러 굽이돌면 나오는
한적한 바닷가 마을이다.
어려서 고향에 내려가면 추운 겨울 어머니의 손을 잡고 택시를 안타고 걷는다며 징징거리던 내 모습과
“이 굽이 돌아가면 다 왔다.” 이 굽이돌면 “저 굽이돌면 진짜 다왔다.” 하시며 내 손을 끌던 어머니가 생각나게 하는 길이다.
물론 지금은 이 좁은 길도 무슨 이유인지 많은 차들이 어렵게 지나가서 걷는 것을 방해하지만....
백미리를 지나 고개를 하나 넘고 다시 바닷가 쪽으로 걷다보니 궁평 유원지 솔밭이 바로 나온다.
오래 전 해풍을 막기 위해 심어 놓은 해송들이 1km정도 이어져 있다.
9월 초에 이쪽으로 상륙한 태풍 곤파스로 많은 나무들이 쓸어져 있는 것을 오전에 궁평항으로 오면서 보았는데
이곳의 소나무는 너무도 굳건하게 그 모습 그대로이다.
오랜 세월 바닷바람을 바로 앞에서 겪어온 전력이 안쪽에 보호되고 있던 나무보다 더 힘차게 만들었나보다.
시련을 겪고 그 시련을 이겨내며 알찬 성장을 해오면 이렇게 사람들을 숲 안에 품고
사람들이 편안한 바닷바람과 솔향기에 감사 할 수 있게 한다.
이 그늘 저 나무 밑에 사람들이 모여앉아 술 한 잔 고기 한 점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넉살 좋은 중하는 얼른 다가가 고기 한 점과 술 한 잔을 걸치고 온다.
나도 배가 고프다. 벌써 시간은 오후 1시가 넘어 간다.
솔발은 아마도 사유지인지 중간 중간 철조망이다.
김포에서부터 바닷가로 쳐있는 군사용 철책도 짜증이지만 이 철조망은 화가 난다.
하지만 길을 막은 것을 어찌 못하고 모래사장 해변을 걸어 천천히 궁평리 궁평항으로 들어선다.
궁평항 수산물 직판장 안쪽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배고픔에 두말없이 첫 집에서 흥정을 한다.
지금 한창 제철인 새우와 전어를 시키고 맥주와 소주를 채근하여 급하게 거품을 쏟아가며 한 잔 말아서 입에다 부어넣는다.
맛있다. 살 것 같다. 바로 이 맛이야.
새우는 하얀 소금을 밑에 깔고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하지만 잠시 후 불이 당겨지자 정중하던 체면은 어디가고 정신없이 튀여 된다.
“미안하다 새우야.” 잠깐 생각을 하고 담백한 향기를 입속에서 느낀다.
껍질은 까지 말자. 키토산이 그득이다. 머리는 벗겨먹자 풍미가 넘친다.
새우 1kg이 잠깐에 뾰족한 투구와 눈과 수염만 남았다.
바로 이어지는 가을 전어 구워먹으면 며느리가 돌아온다지만 회로 먹으면 아들이 집을 나갈 것 같다.
어차피 집 나온 아들들이니 우리는 삼겹살보다 비싼 상추와 깻잎에 초장을 듬뿍 찍어 회로 먹는다.
느끼할 정도의 담백한 맛이 입에서 맴돈다.
술은 한 잔에 또 두 잔, 장정은 안중에도 없다.
마지막으로 칼국수로 입가심을 하며 저녁에 다시 와서 바닷장어와 제철 꽃게까지 없애버리자며 작당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