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의 고개]
천년 발자국이 남아 있는 ‘토끼비리’
윤 원영
천년동안의 발자국이 남아있는 옛길 명승 토끼비리를 방문해주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영남대로 옛 고갯길인 토끼비리는 경북팔경인 진남교반 뒤편 고모산성 아래 강변 따라 솟아오른 층암절벽 벼랑길 따라 1km 남짓 이어지는 아슬아슬한 바윗길입니다. 영남대로 옛길 중 천년이 넘게 가장 오래 된 가장 험한 고갯길이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었다고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2007년 12월 문화재청에서 전국 30여개 옛 고갯길 중 역사성과 예술성, 입지환경, 경관성에 대해 수년 동안 엄격히 심사하였습니다. 그 결과 가장 우수한 4곳을 국가지정 옛길 명승으로 선정하였는데, 구룡령 옛길(29호), 죽령옛길(30호)과 문경지역에서는 옛 고갯길인 토끼비리가 31호, 문경새재가 32호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습니다.
예부터 보부상과 관리나 과거길 선비 등 숱한 길손들이 헐떡거리며 넘나들던 영욕이 어린 옛 고갯길들이 문명발달로 인한 현대화의 물결에 밀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차쯤 잊히어지고 있습니다. 옛길이 지나던 산기슭에 터널을 뚫고, 산을 깎아내려 새로이 도로를 닦고 고속도로까지 달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길을 닦으면서 옛길이 무참하게 잘려나가거나 묻혀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 수많은 옛 고갯길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지만, 다행히 토끼비리는 자연환경이나 위치상 개발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기에 옛 고갯길이 잘 보존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옛길 명승으로 지정되고 보수공사를 통해 옛 모습을 되살려 전국에서 널리 알려진 옛길 탐방 체험교육장으로 거듭나고 있어 참으로 흐뭇하고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이곳 지명이 토천, 관갑천, 곶갑천, 토천, 토잔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어져서 헷갈릴 것 같아 지명에 대한 정의를 먼저 밝혀드리고 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토천兎遷은 순수한 우리말로 토끼비리라고 불리어지고 있는데 ‘비리’는 벼루의 사투리이며 강이나 바다의 위험한 낭떠러지에 만든 돌길을 뜻하며 관갑천串岬遷도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그리고 천도遷道는 절벽을 파내고 만든 벼랑길을 말하고, 잔도棧道는 험한 낭떠러지를 따라서 선반처럼 내매어 만든 나무 사다리 길을 뜻합니다. 관갑천잔도串岬遷棧道란 강가의 벼랑을 이루는 절벽 길에 나무를 이용하여 설치된 길임을 뜻하고 있습니다. 관갑천串岬遷을 토천 또는 토끼비리로 불리어지게 된 이유를 《신증동국여지승람》 29권 문경현편에 ‘관갑천은 용연의 동쪽이고, 토천이라고도 한다. 돌을 파서 사다리 길을 만들었는데 구불구불 거의 6,7리나 된다. 전해오는 얘기에 의하면 고려태조가 남쪽으로 쳐들어와서 이곳에 이르니 길이 없었는데 마침 토끼가 벼랑을 따라 달아나면서 길을 열어주어 갈 수가 있었으므로 토천이라고 불렀다.’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같은 책 역원조를 보면 ‘여러 계곡의 물이 모여 내를 이루어 관갑에 이르러 비로소 커지는데, 이 관갑이 가장 험한 곳이라서 벼랑을 따라 잔도를 열어 인마가 겨우 통행한다. 위에는 험한 절벽이 둘러 있고 아래로는 깊은 내가 있어, 길이 좁고 위험하여 길손들이 모두 두려워한다. 몇 리를 나아간 뒤에야 평탄한 길이 되어 내를 건너는데 이것이 견탄이다. 나라에서 제일가는 요충이며 가장 험한 고갯길이다.’ 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토끼비리는 ’한국의 차마고도茶馬古道‘라고도 불리는 곳이며 옛 고갯길의 백미白眉로 손색이 없는 곳이라 하겠습니다.
조선조 성리학자 양촌 권근이 그의 기행문에서 당시 이곳의 모습을 상세히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 명화가 정선鄭敾의 화폭에도 여러 편에 담길 정도로 예부터 경관이 수려하기로 이름을 떨치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 당시 이곳을 지나던 조선 초기 문장가 윤상과 문인 학자인 서거정은 ‘관갑잔도’라는 시를 남겼는데 이곳이 구절양장을 생각나게 하는 험한 길이었음을 표현하였습니다.
관갑잔도 윤상
험한 산길은 양 창자와도 같고 / 위태로운 봉우리 말귀처럼 기이해
한 뼘 나갔다가 다시 돌아서야 하나 / 조심해서 더딘 것을 탓하지 마소서
관갑잔도 서거정
꼬불꼬불 양 창자 같은 길이여 屈曲羊腸路 굴곡양장로
구불구불 오솔길 기이키도 하여라 逶迤鳥道奇 위이조도기
봉우리마다 그 경치도 빼어나서 峯巒一一勝 봉만일일승
내 가는 길을 막아 더디게 하네 遮莫馬行遲 차막마행지
토천 이행
예전엔 얼음과 눈 시내에 가득하여서 / 여윈 말 벌벌 떨며 걸음마다 넘어졌지
오늘은 가는 길 역관에 편안히 들러서 / 그곳에 잠깐 머물러 향긋한 회를 먹었네
용재 이행도 토천이란 시에서 이곳의 험준함을 노래하였습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고 하지요? 우리 다함께 천년 옛길 토끼비리를 직접 답사하기 위해 올라가 봅시다.
이곳 진남휴게소 주차장을 출발하여 안내게시판 우측 고모산성 방면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10분가량 오르면 고모산성 부속성인 석현성이 보이는데 갈림길에서 석현성을 끼고 우측으로 좁은 산길을 따라 10분가량 걸어가면 토끼비리 안내판이 나타납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천년 묵은 옛 바윗길과 나무사다리 길을 거닐어보기로 해요. 우측 벼랑 쪽으로 나무 난간이 있지만 의지하지 말고 조심하셔야 합니다. 아차! 실수하면 수십 길 낭떠러지 아래 깊은 물속으로 빠질 위험이 있으니까요. 바윗길을 자세히 살펴보세요? 천년동안 이 길을 지나가신 조상님들의 발자국이 바위에 새겨진 모습이 보입니까? 오랫동안 길손들의 짚신발길에 스쳐 반질반질 닳아 바위표면에 반들반들 윤이 나지요? 바위에 새겨진 발자국과 윤이 나는 바위 표면을 한번 만져 보세요. 미끄럽고 경사가 져서 힘들지만 바윗길을 몇 발자국만 걸어 보세요. 그리고 나무사다리 길로도 조심조심 걸어보세요. 자세히 옛길의 자취를 살펴보면서 조상들의 놀라운 솜씨를 느껴봅시다.
현재 토천은 약 500m 구간이 남아 있는데 여기에 나무계단 및 난간 등 시설물을 설치하여 옛길을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옛날 암벽을 깎아내어 정지하여 도로를 개설한 모습을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할까요?
먼저 석현성에서 토천 길이 시작되는 진입로 부근에서 암반을 ㄴ자형으로 절토한 흔적이 확인되었는데 도로의 폭이 3-3,5m정도입니다. 절토하여 도로로 이용된 암반 면은 오랜 세월 행인과 우마차의 통행으로 바닥면이 반들반들합니다. 급경사면에는 암반 측면에 나무로 만든 난간을 설치하여 길을 넓힌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에서 1km가량 지나서 병풍바위와 만나는 지점에는 인공적으로 파여진 ∪자 안부鞍部 바윗길을 발견할 수 있는데, 고려시대 토목기술의 우수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옛 조상들은 관갑천잔도를 지나 어디로 갔을까요? 고모산성 부속성인 석현성을 끼고 7-8분 걷다가 진남문을 들어서면 돌고개마을 주막거리가 나타납니다. 한말 의병전쟁 때 타버린 것을 최근에 복원하였습니다. 잠시 봇짐을 내려놓고 지친 몸을 휴식하고, 꿀떡으로 배를 채우고 한 잔의 술로 피곤을 달래고 나서 돌고개 성황당을 지나 걸음을 재촉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도 조상들이 거닐던 길을 따라 돌고개마을 성황당까지 올라가 볼까요? 주막 옆 공터에 쓰러지듯 누워있는 수백 년 묵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보입니다. 그 앞에는 성황당이 돌무더기와 함께 우뚝 서 있습니다. 1999년에 성황당을 전면적인 개수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때 건립 당시 상량문이 발견되었는데 1790년에 작성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의병전쟁으로 소실된 채 오랫동안 방치되어 왔다고 합니다. 성황당은 예부터 큰길가나 마을 어구에 자리 잡고 도로표지로서 길손들에게 길을 안내하기도 하였고, 선비나 나그네들이 무사안녕과 장원급제와 출세 등의 소원을 기원하는 수호신 역할도 하였다고 합니다. 돌고개 성황당에도 한 때 텔레비전에서 자주 비추던 전형적인 ‘전설의 고향’을 연상케 하는 과거보러가던 선비와 주막집 처녀와의 얽힌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전설속의 선비가 처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성황당을 지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마을에서는 해마다 제사를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하필이면 왜 이렇게 좁고 험준한 토천 옛길을 바위가 닳도록 지나갔을 가요? 이 길은 조선시대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인 영남대로의 요충지이면서 많은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넘어야 했던 과것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관갑천은 하늘재와 새재로 향하는 초입의 최대 관문이고, 영남으로 갈 때에도 이곳을 벗어나야만 사실상 새재의 요새를 다 지나는 셈이 됩니다.
임진왜란 때, 서애 유성룡이 ‘징비록懲毖錄’에서 천혜요새인 관괍천과 고모산성이 군사적으로 전혀 활용하지 못하였음을 한탄하였다고 합니다. 왜군이 이곳을 지나다가 조선군이 보이지 않자 춤을 추며 지나갔다는 소식에 접하자 왜적을 추적하여 이곳을 지나가던 명나라 장수 도독 이여송이 말하길
“이와 같이 험한 요새가 있는데도 지킬 줄 몰랐으니 신립은 실로 꾀가 없는 사람이라”고 비아냥거렸다니 심히 통탄할 일입니다.
신라 때 탄생해 조선시대까지 이용되던 토끼비리는 일제강점기 건설된 신작로인 국도 3호선에 자리를 내어주고 역사의 뒤안길로 숨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토끼비리의 존재가 역사의 그늘 속에서 잊혀져갈 무렵 2004년 5월 문경문화원에서 ‘관갑천잔도’ 구간을 직접 탐방하는 「영남대로 옛길 문화탐방」을 실시하였습니다. 소중한 지역문화유산의 이해도모와 새로운 관광개발을 모색하는 기획 행사여서 당시 문화관광해설사 초년병이었던 나도 적극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문화원에서 개최한 세미나에도 참석하고, 옛길 토끼비리 문화탐방 코스를 순회하고 탐방하면서 고등학생들을 맡아 안내하며 해설하기도 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이후 토끼비리 옛길이 오랫동안 방치되었기에 노면이 노후되고 훼손되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상태였습니다. 이 행사를 계기로 현장 체험행사가 가끔 실시되기는 하였으나 고갯길이 워낙 위험하여 안전상 문제로 주춤하게 되었습니다. 2007년에 토끼비리 옛길이 옛길 명승으로 지정되면서 국가예산지원을 받아 대대적인 재정비사업으로 옛 고갯길이 복원되고 안전시설을 설치하여 고모산성과 더불어 새로운 관광지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전국에서 학생뿐만 아니라 수많은 관광객이 모여들어 옛길 탐방 체험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 타이머신을 타고 천 년 전 옛 고갯길을 걷고 싶으세요? 우리나라에서 단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은 ‘토끼비리’를 찾으세요. 천년 동안 짚신발길에 스쳐 반질반질 닳아 가장 오래 되고, 원형이 잘 보존된 옛 고갯길을 만나보게 될 것입니다.
저의 부족한 해설을 열성껏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변에 천년고성인 고모산성과 경북팔경인 진남교반 등 문화유적과 관광명소가 즐비하게 있으니 꼭 들러보고 가셨으면 합니다.
※필자 윤원영은 2002년부터 2012년까지 문경관광안내원과 경북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였으며, 이 원고는 당시 관광해설을 위한 스토리텔링 원고로서 2023년 6월에 추가, 수정 보완하였음을 밝혀둡니다.
천년옛길 토천(토끼비리) 아슬아슬한 천년 옛길을 지나며
천년고성 – 고모산성 돌고개 성황당
아슬아슬한 천년옛길 토끼비리 진남교반에서 바라다본 토끼비리 벼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