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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5년 경상도 지리지(慶尙道 地理志)의 문경현
경상도 지리에 관한 필사본 1책으로 1425년(세종7년) 편찬되어 독립된 지리지로 작성된 최초의 것이며 내용이 풍부하고 상세하여 조선 전기(前期) 지방사회에 관한 중요한 자료이다.
세종이 예조(禮曹)에 명령하여 신찬팔도지리지(新撰八道地理誌)를 편찬하기 위해 도지(道誌)를 만들어 춘추관(春秋館)에 보내도록 한 지시에 따라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인 하연(河演), 대구지군사(大丘知郡事) 금유(琴柔), 인동 현감 김빈(金鑌) 등이 펴냈다 각 도의 도지(道誌)가 임진왜란으로 없어지고 이 책은 경상도 감영(監營)에 두었던 부본(副本)으로 끝에 12장이 없다.
경상도의 총설(總說)에 이어 각론(各論)을 기록하고 경주도, 안동도, 상주도, 진주도의 4도(道)로 나누었는데 내용은 예조의 통첩에 따라 도내의 행정구역 단위별로 인물과 자연방면의 계역(界域), 관방(關防), 공물(貢物), 진영(鎭營), 토의경종(土宜耕種), 토지 비척(肥脊), 호구, 성씨, 인물, 봉화(烽火), 기후, 풍혈(風穴) 등 13개 항목을 기준으로 서술했으며 특히 군사관계와 조세(租稅), 공부(貢賦)가 자세히 기록됐다.
현재의 문경지역이 경상도의 안동도 예천군, 상주도 상주목, 문경현에 기록되어 있다.
규장각(奎章閣)에 보존되어 오는데 1938년 조선총독부 중추원에서 경상도 속찬지리지와 합하여 활자본으로 냈고 1983년 아세아문화사에서 전국지리지 총서로 영인 발행했다
번역
경 상 도
▪도 명칭 : 시대별 명칭과 명칭을 고친 연대와 사연
삼국시대는 신라 땅이다.
고려 태조가 삼국을 통합하고 동남해도부서사(東南海都部署使)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뒤에 경상진안동도(慶尙晉安東道 : 경주 상주 진주 안동의 머리글자)라 고치고 또 경상주도(慶尙州道)라 바꾸고 또 경상도로 고쳤으나 연대는 미상이다.
1408년(皇明 永樂 戊子:태종 8년)에 경상도가 땅이 넓고 군사에 관한 일이 몹시 번거롭고도 바빠 수군과 육군으로 장수(將帥)를 나누고 경주안동도(慶州安東道)와 상주진주도(尙州晉州道)로 나누어 불렀다.
1416년(병신년 : 태종 16년)에 낙동강의 왼쪽을 경상좌도(慶尙左道), 강 오른쪽을 경상우도(慶尙右道)라 부르고 감사는 예대로 경상도도관찰출척사(慶尙道都觀察黜陟使)라고 했다.
▪도 및 도내 주(州). 부(府). 군(郡). 현(縣) 연혁: 다른 도와 분리, 통합한 사연
도 : 고려 초에는 경상(慶尙), 양광(楊廣), 전라(全羅) 등 3도가 있었는데 동남해도(東南海道)를 설치하여 도부서사(都部署使)를 두었다. 뒤에 도부서사 한충(韓沖)이 보고하여 동남해도는 넓어 3도로 나누고 경상진안동도안렴사(慶尙晉安東道按廉使)를 두었다.
주. 부. 군. 현 : 고려 때는 평해가 예주목(禮州牧) [지금 영해] 소속 이였는데 강원도로 소속을 옮겼다 운봉(雲峯)이 천령군(天嶺郡)[지금 함양] 소속이었는데 전라도로 소속을 옮겼으나 연대는 미상이다.
조선조 1413년(태종 13년: 계사년)에 서울을 비보하기 위해 5읍을 할양하여 충청도로 했다. 옥천(沃川), 보은(報恩), 영동(永同), 청산(靑山), 황간(黃澗)이 고개[嶺]의 서쪽에 있어 충청도에 소속시켰다. 영의 서쪽은 2개 도가 교차했는데 나라에서 고개의 여러 계곡의 물이 서쪽과 남쪽으로 흘러가니 이로서 경계를 삼았다. 산등성이 서쪽의 물은 화인(化仁)에서 합하여 금강으로 흘러들고, 동쪽의 물은 감천(甘川)에서 합쳐서 낙동강에 흘러든다.
▪도내 부(府). 목(牧). 대도호부(大都護府). 군(郡). 현(縣)의 수와 이름
목 : 3 - 상주
군 : 15 - 예천
현 : 40 - 문경
▪도내 명산(名山), 대천(大川) 및 사방경계(四方境界), 산천 이름과 거리, 험한 곳[險阻], 관방(關防), 요해처(要害處)
명산 : 11
사불산(四佛山) : 산양현에 있다.
대천 : 4
낙동강 : 근원이 5이다. 하나는 문경 곶갑천(串岬遷)에서 시작한다.
사경(四境) : 북쪽으로 충청도 경계인 문경 초점(草岾)까지 251리 106보이다.
험한 곳 : 초점(草岾), 이화현(伊火峴)[문경에 있다]
▪도내 산성(山城), 읍성(邑城)
희양산성(曦陽山城) : 문경현의 겸현(兼縣)인 가은에 있고 함창과 함께 지키며 주위는 464보(步)이고, 안의 넓이는 16결(結) 28복(卜)이고 계곡이 1개 있다.
▪도내 내상(內廂)및 각 진(各鎭)의 위치와 소속 각 관(各官)수
우도내상(右道內廂) : 창원부(昌原府)에 있다. 마산포(馬山浦) 바다까지 4리 317보, 소속은 상주 군관(軍官) 23명, 수성군(守城軍) 87명, 문경 군관 12명, 수성군 12명, 전체 군관 500명, 수성군 438명
진(鎭) 4 :
영해진(寧海鎭) : 고성포(高城浦) 해구(海口)로부터 5리에 있다 소속은 예천 군관 19명, 전체 군관 300명, 수성군 80명
영일진(迎日鎭) : 임곡포(林谷浦) 해구로부터 6리 20보에 있다 소속은 예천 군관 29명, 전체 군관 300명, 수성군 80명
사천진(泗川鎭) : 강주포(江州浦) 해구로부터 8리에 있다 소속은 상주 군관 11명, 전체 군관 300명, 수성군 49명
▪도내 각 고을의 토지 비옥도(肥沃度), 샘의 깊이, 기온, 민속,
상주 : 토지가 비옥하고 척박(脊薄)한 것이 반씩이다. 샘물은 깊고, 기후는 온난하며, 풍속은 간단하고 절약하는것을 숭상하며, 학문을 좋아한다.
예천 : 토지가 비옥하고 척박한 것이 반씩이다. 샘물은 깊고, 기후는 온난하며, 풍속은 평이한 것을 숭상한다.
문경 : 토지는 척박하고, 샘물은 얕고, 기후는 차며, 풍속은 근검하고 솔직한 것을 숭상한다.
▪도내 조세(租稅) 징수 수송 방법 : 배에 실어 조운(漕運)으로 수로(水路)를 이용했으나 차츰 육로(陸路)로 바뀌어 시행했다.
전에는 도내 조세를 수납 운반하는 곳이 3곳 있으니 김해의 불암창(佛巖倉), 창원의 마산창(馬山倉 : 옛 石頭倉), 사천의 통양창(通洋倉)에서 부근의 조세를 수납하여 전라, 충청도 연해(沿海)의 해로(海路)를 따라 조운으로 경창(京倉)에 운반했다.
1404년(태종 4년 : 갑신년)에 해로가 위험하여 조운을 폐지하고 육상 운송으로 방법을 바꾸어 충청도 충주(忠州)의 경원창(慶原倉)에 수납했다.
예천 상주는 4일, 문경은 2일 걸린다.
안동도(安東道)
예 천 군
▪본래 수주군(水酒郡)인데 신라 경덕왕 때 예천군으로 고쳤다.
고려 현종 때 보주(甫州)로 부르고 조선조에도 그대로 따르다가 1413년(태종 13년: 계사년)에 모든 군현 명칭 가운데 주(州)로 부르던 것을 산(山) 이나 천(川) 자로 대체하도록 할 때 주(州)자를 천(川)자로 고치고 1416년(태종 16년 : 병신년)에 예천군으로 바꾸었다.
▪소속 현(縣), 소(所),
소(所) : 1 - 동로
신라 때 영현 4
안인현(安仁縣) : 본래 난산현(蘭山縣)인데 지금은 알려지지 않는다.
가유현(嘉猷縣) : 지금 산양으로 고려 때 있었는데 상주관내에 속한다.
사경 : 서쪽은 상주관내 산양현 경계인 사불산(四佛山)의 소운달(小云達)로 38리 3보이다.
상주도(尙州道)
상주목관(尙州牧官)
▪삼국, 고려, 조선 때의 명칭과 변경 연대 및 사연
본래 사벌국(沙伐國)이었다 신라 탈해왕 때 빼앗아 사벌주(沙伐州)로 하였다 법흥왕 때 상주(上州)로 하여 군주(軍主) 도독(都督)을 두었다. 신라가 9주를 두었는데 8주에 앞섰다. 진흥왕 때 주(州)를 폐지하고 상락군(上洛郡)을 삼았고, 신문왕 때 다시 주를 설치하고 성을 쌓았다 경덕왕 때 상주(尙州)로 고쳤다.
고려 성종 때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고쳤고, 영종 때는 상주목(尙州牧)으로 불렀고 조선조도 그에 따랐다.
1408년(태종 8년:皇明 永樂 戊子)에 관찰사겸판목사사(觀察使兼判牧使事)를 두었다. 1410년(경인년)에 예대로 하고 목사(牧使)를 파견했다.
▪소속 부곡(部曲), 수와 명칭 및 분리 통합 연대와 사연
속현(屬縣) : 7 - 영순, 산양
부곡 : 12 - 무림(茂林)
고려 초 소속현 18 : 1390년(공양왕 2년:경오년) 문경 가은 두 현을 겸한 감무(監務)를 설치했다.
1416년(태종 16년:병신)에 호계를 문경 소속으로 하였다.
▪경내의 명산, 대천 및 사방 경계,
대천 1
낙동강 : 근원이 3이다. 하나는 문경현 땅 곶갑천에서 합류하여 상주의 동쪽을 흐른다.
사경 : 북쪽은 함창현 경계인 송현(松峴)으로 21리인 관내 영순현 경계로 36리342보
이다.
▪본읍 및 속현 성씨
무림 부곡 2 : 김(金)씨, 심(沈)씨
▪계수관(界首官)으로 관할하는 군, 현명과 분리 통합 사항
관할관청[領內官] 12 : 문경현
산양현
▪신라 때부터 있었으며 가유현(嘉猷縣)이라 불렀다 본래 근품현(近品縣)인데 경덕왕이 산양으로 고쳐 예천군 소속으로 했다.
고려 때 상주의 소속이 되었으나 연대는 미상이고 조선조는 그대로 따랐다.
▪소속 부곡1 : 양보(良保)
▪명산1 : 공덕산(功德山)이 현의 북쪽에 있다.
사경 : 동쪽은 용궁현 경계의 조산(造山)으로 9리, 남쪽은 무림부곡으로 6리 336보, 서쪽은 영순현 경계로 6리, 북쪽은 공덕산으로 40리이다.
▪호구(戶口) : 112호이고, 남자 667명, 여자 672명, 합계 1,339명
▪토성(土姓) 4 : 방(芳)씨, 유(庾)씨, 신(申)씨, 채(蔡)씨,
다른 데서 온 성[來姓] 1 : 채(蔡)씨,
양보부곡 성 1 : 진(陳)씨,
▪공부(貢賦) : 무명과 명주[綿紬], 목화[木綿], 닷세베[正五升布], 상면자(常綿子), 갱미(更米), 간중미(間中米), 상중미(常中米), 흰쌀[造米], 전미(田米), 콩[太], 밀[眞麥],
토산 공물(土産貢物) : 꿀[淸蜜], 촉밀(燭蜜), 참기름[眞油], 들기름[法油], 지지 (紙地), 돗자리[席子], 개암[榛子],
토의 경종(土宜耕種) : 벼[稻], 기장[黍], 조(粟], 완초(莞草), 밤[栗]
▪소산봉화(所山烽火) : 현의 동쪽 7리에 있다 동쪽으로 용궁현의 산성(山城)봉화와 15리, 서쪽은 문경현 겸현인 호계현의 선암산(禪岩山)봉화로 12리 350보의 거리이다.
영순현
▪삼국시대부터 있었고 기록이 없어 명칭은 고찰할 수 없다.
고려 때 영순현으로 부르고 상주에 속했으며 조선조에도 그렇게 했다.
▪대천1 : 관천(串川)으로 현의 동쪽에 있다.
사경 : 동쪽은 무림부곡으로 1리 120보, 남쪽은 함창현 경계 서아천(西阿川)으로 4리 240보, 서쪽은 호계현 경계로 22보, 북쪽은 산양현 경계로 2리이다.
▪호구(戶口) : 22호, 남자 132명, 여자 141명, 합계 273명
▪토성(土姓) 1 : 태(太)씨
▪공부(貢賦) : 무명과 명주[綿紬], 닷세베, 상면자, 간중미, 상중미, 흰쌀, 밀[眞麥]
토산공물 : 꿀, 촉밀, 참기름, 들기름, 돗자리, 개암
토의 경종(土宜耕種) : 벼, 조, 완초
문경현
▪본래 관현(冠縣)[또는 관문현(冠文縣)]으로 신라 경덕왕 때 관산현(冠山縣)으로 고쳤다. 고령군(古寧郡)[지금 함창]에 속한 현이었다. 고려 때 문경으로 부르고 1018년(靈宗 大中祥符 戊午)에 문희군(聞喜郡)으로 고쳐 상주에 속했다. 1390년(공양왕 2년:경오)에 감무(監務)를 설치하고 조선조에도 그대로 했으며 호계현을 소속시켰다.
호측현(虎側縣)은 본래 신라 때 고령군(古寧郡)에 소속한 현이었는데 고려 때 상주관내로 옮기고 조선조 1416년(태종16년:병신년)에 문경에 합쳐졌다.
▪겸현(兼縣) 1 : 가은,
역 2 : 요성(聊城), 유곡(幽谷)
▪명산1 : 주흘산으로 현의 북쪽에 있다.
대천 1 : 견탄으로 현의 남쪽에 있다.
사경 : 동쪽은 상주 관내 산양현 경계로 대산(大山)이며 20리, 남쪽은 함창현 경계 당제(唐梯)로 31리 156보, 서쪽은 충청도 연풍현 경계로 이화이현(伊火伊峴)이며 13리 19보, 초점(草岾)은 19리 213보, 북쪽은 연풍현 경계 대원현(大院峴)으로 29리이다.
진(鎭) : 주흘산(主屹山)
▪호구: 161호, 남자 1,065명, 여자 1,499명, 합계 2,564명
▪신령하고 이상한 자취
현의 남쪽 13리의 거리에 소둔산(所屯山) 기슭의 바위사이에서 물이 늘 솟아나는데 근원이 줄[線] 같으며, 매일 아침 저녁에 솟아 넘쳐 3 - 4리를 적시다가 그친다. 이는 밀물과 쓸물이 오가는 것과 같아 물미리[水推]라고 한다.
▪토성5 : 최(崔)씨, 장(蔣)씨, 박(朴)씨, 송(宋)씨, 전(錢)씨,
속현으로 합쳐진 호계현 토성 5 : 백(白)씨, 황(黃)씨, 김(金)씨, 나(羅)씨, 방(方)씨,
잊혀진 벌천소(伐川所) 성 1 : 심(沈)씨
▪공부(貢賦) : 무명과 명주[綿紬], 목화, 닷세베, 간중미, 상중미, 흰쌀[造米], 밀[眞麥], 콩, 상면자(常綿子)
토산공물 : 꿀, 촉밀, 참기름, 들기름, 전칠(全柒), 돼지털(猪毛), 닥종이[紙地], 개암, 삵쾡이 가죽[狸皮]
약재 : 웅담(熊膽), 영양각(羚羊角:산양 뿔), 백복령(白茯苓) 백부자(白附子), 생지황(生地黃), 남칠(藍柒) 당귀(當歸), 천마(天麻)
토의 경종 : 벼, 기장, 조, 피[稷] 율무[皮狄栗]
▪탄항(炭項)봉화: 현 북쪽 25리쯤에 있다. 남쪽으로는 속현인 호계 땅 선암봉화로 30리 217보의 거리, 북쪽은 충청도 연풍현 땅 마골점(麻骨岾)봉화로 7리 114보의 거리이다.
선암(禪岩)봉화 : 현의 동쪽 30리쯤에 있다 동쪽으로는 상주관내 산양 땅 소산(所山)봉화로 12리 350보, 남쪽은 함창현 땅인 남산(南山)봉화로 31리 52보, 북쪽은 탄항봉화로 30리 217보 거리이다.
▪나라에서 제사지내는 곳1
주흘산 호국지신(護國之神) : 현의 북쪽 2리에 있다
겸현인 가은현
▪본래 가해현(加害縣)으로 신라 경덕왕 때 가선현(嘉善縣)으로 개칭하여 고령군(古寧郡) 소속이 되었고 고려 때 가은현으로 고치고 1018년(靈宗 천희(天禧)무오)에 상주 소속이 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때 홍무(洪武)경오)에 문경현의 겸현이 되었다
▪사경
동쪽은 문경현 경계 시전(柴田)으로 5리, 남쪽은 상주 땅 우니곡(亏厼谷)으로 15리, 서쪽은 충청도 청주관내 청청현(靑川縣) 경계로 16리, 북쪽은 연풍현 경계 양산현(陽山峴)으로 19리이다.
진산(鎭山) : 왕산(王山)
▪호구: 105호, 남자 720명, 여자 806명, 계 1,526명
▪토성4 : 김(金)씨, 윤(尹)씨, 변(邊)씨, 연(延)씨
▪공부: 무명과 명주[綿紬], 목화, 상면자, 정오승포, 상중미, 흰쌀, 전미, 밀, 콩,
토산공물 : 꿀, 촉밀, 참기름, 들기름, 전칠, 개암, 돼지털
토의경종 : 벼, 기장, 조, 밤,
▪수령이 제사지내는 곳1
재목산(榟木山) 호국지신(護國之神) : 현의 남쪽 4리쯤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