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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히 4:14)
히브리서는 편지같은 설교, 설교같은 편지이다.
본문속에서 설교라고 말씀한다.
유대인들로서 크리스챤이 된 그들이 40년 세월이 흘러가면서 시련, 유혹을 받는 상황에서 그리스도를 섬기고 신앙을 하게 된 것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다시 견고하게 강론하기 위한 편지, 설교이다.
히1장 천사보다 더 위대하신 예수님의 신성
히2장 천사보다 잠시 못하게 되신 예수님의 인성
히3,4장 유대인들이 껌뻑 죽는 사람
모세, 여호수아보다 더 위대하신 예수
모세가 유대인에게 안식을 주었나? 주지 못했다. 너희들이 믿지 않음으로 인해
여호수아가 안식을 주었나?
시편에서 다윗이 안식을 약속한다.
안식 헬) 카타파우시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고
여호수아는 가나안땅에 들어가게는 했지만 안식을 주지 못했다.
시편에 다시 안식에 들어오도록 힘쓰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안식을 주시는 예수님
구원받았나? 아직 못 받았나? 시간의 현주소를 무엇이라고 표현하나?
이미와 아직 사이라고 말한다.
이미 하나님 백성이다. 이미 의인이다. 이미 하나님 나라에 와 있다.
아직 하나님 나라에 이러르지 않았다. 아직 죄 된 세상에 있다.
그리스도인의 시간의 현주소는 이미와 아직 사이이다.
예수를 믿기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와 있지만, 아직 들어가지 않았다.
이미 들어간 우리는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히4장이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여호수아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게 했으나 진정한 안식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안식에 들어왔다.
하나님이 쉬신 것처럼 쉰다. 히 4:9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히 4:9)
안식할 때가 남아 있도다.
성경전권에서 한 번밖에 나와있지 않다.
사바티스모스>- 안식일 안식이다.
다른 모든 안식은 카타파우시스이다. 예수를 믿는 믿음의 안식, 카타파우시스를 누리는 자는 죄없는 나라, 하늘에 들어가기를 힘쓴다.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는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사바티스모스가 우리에게 남아있다. 예수를 믿어서 살아가는 자들은 안식을 누리며 안식일을 지키며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린다.
카타파우시스: 구원의 안식일
사바티스모스: 제칠일 안식일을 말한다.
노력으로 얻는 안식일이 아니다.
창조때 인간이 온전히 경험한 첫날이다. 그저 받은 안식, 창조의 안식,
십자가에서 인류의 구원을 이루시고, 그저 받은 안식, 구원의 안식
이 모든 구원이 예수에게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히 4:14)
대제사장, 큰 대제사장, 대대제사장이다.왜 큰을 또 붙였을까? 인간중에 제사장, 대제사장
매해마다 한명이 있다. 대 제사장 아론보다 더 위대한 제사장 예수님을 소개한다.
출애굽 지도자 보다 더 위대하신 예수님
가나안 지도자 보다 더 위대하신 예수님
대제사장 아론보다 더 위대하신 예수님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히 4:14)
믿는 도리- 히브리서에서만 3번
새번역- 신앙고백, 교리, 모든 고백, 모든 도리, 호몰로기아.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믿는 도리는 히브리서에만 나온다.
믿음의 도리는 누구인가?
모든 교리, 모든 고백의 실체는 예수님이시다.
기독교 사상만 잘 가지고 있으면 기독교 사상가가 될 수 있다.
교리를 철두철미하게 지키면 기독교 이데올로기를 가질 수 있다.
예수를 놓치면 복음은 없다.
엄격한 의미에서 믿는 도리, 모든 교리, 고백의 주인, 내용이고 실체이신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으면 철두철미하게 십계명을 지켜도 기독교 사상가이지 하나님의 백성은 아니다.
창세기-계시록까지 철두철미하게 사는 것같아도 예수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지 ㅇ낳으면 교리 신봉자이지 하나님의 백성은 아닌 것이다.
완벽한 안식일 교인, 건강기별 잘 지키나 믿는 도리의 실체이신 예수님을 놓치면?
모든 것을 의미있게 하는 것은 인격의 실체이신 예수님이시다.
한마디 교리 가르쳐주고, 예수 놓치지마, 계속 얘기한다.
철저하게 성경, 살아가는 것 같은데 살아가기 힘든 분 있어요. 예수님 같으면 그렇게 안하셨을 거예요.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4-15)
우리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소개한다.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동정- 헬)순파테오. sym =with 함께 퍼스-정서, 감정,
동정=함께+감정, 정서를 같이한다.
정서를 같이 하시는 분이시다. 동정(同情)=정서를 같이 하시는 분이시다.
기독교 복음의 첫출발은 사람의 감정과 정서, 이성과 이지로 깨달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만 남아있고, 그것의 실체이신 인격 로고스, 그부분을 놓치면, 믿는 도리를 굳게 잡지 못하는 것이다.
그 근거를 소개한다.
““우리의 연약함을”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신다. 죗됨을 동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유는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2가지 조건
1) 시험을 받으신 이
2) 죄는 없으시다.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히 5:2)
같이 반복되는 중요한 단어.
그- 인간 대제사장을 말한다.
용납 헬) 성경전체에서 여기밖에 안 나온다.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4:15=5:2
4:15-16 크신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설명
5:1-4 인간 대제사장을 소개한다.
공통점과 차이점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
연약함을 용납- 자기도 연약함에 휩싸여있다.
예수님은 연약에 휩싸이지는 않다. 같은 시험을 받으나 죄가 없으시다.
차이를 알 때, 인간 제사장을 넘어서, 그분을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확인된다.
인간을 동정하되, 죄는 없으시다.
인간과 똑 같이 시험을 받으셨다는 의미는?
2000년전과 오늘 같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모든 일에 우리와 같은 시험을 받았다는 말이 되나?
인간이 경험하는 국면 하나 하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시험받는 근본속성, 연약함의 모든 속성을 겪으셨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긍휼=자비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히 2:17)
히2:17 2-4장 대제사장 예수님을 소개해주는 키포인트를 소개한다.
2가지 조건이 나온다. 자비하고+신실한(개역한글, 충성된)
①자비하고 :자비
②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충성
예수님의 2가지 덕목이 자비와 충성이다. 신실, faithful
히 3-4장 모세는 충성된 사환이었다.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히 3:2)
민7장 모세가 충성하였음이라
3-4장 충성스런 대제사장을 소개한다. 모세보다 더 신실하신 예수님
4:14절부터는 자비로운 대제사장을 소개한다. 예수님의 2가지 국면을 소개한다.
4-7장 자비로운 예수님을 소개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자비)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기독교는 자비의 종교이다.
부처님 대자대비하시다고 한다.
극락이라는 말이 성경에 있다. 시편에서 “극락의 하나님”, 극에 달한 즐거움,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시 43:4, 개역)
자비의 하나님이시다.
성경공부할 때 반복되는 단어를 확인하라. 없는 단어도 연구하라.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은혜(헬, 카리스)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라.
그래서 정말 우리가 놀라운 교리와 이치를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을 엄하고 무섭게 만들어놓으면 안된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신, 때를 따라 돕는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자.
예수님을 놓치지 않도록 호소하는 핵심이다.
5장 전체에서 자비로우신 대제사장예수님에 대해 인간 대제사장과 비교한다.
5:1-4 인간 대제사장
5:5-10 메시야 대제사장
5:11-14 설교
다시 모세로 돌아가려고 하는 독자들에게 어떻게 설득력이 되는가?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히 5:1)
인간 대제사장의 7가지 조건
1)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
2)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예물 = 소제,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히 5:2)
인간을 가리켜 무식하고 미혹된 자, 무지하고 라는 것이 인간이 상태에 대하 더 정확한 표현이다.
무지하고가 더 좋은 표현이다.
미혹된 자: 미혹되어 잘못된 빗나간
용납할 수 있는 것은 헬)메트 리우스 파테오.
새번역: 너그럽게 대하다. 인간 대제사장도 사람을 너그럽게 대한다.
왜? 그런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이 같은 유혹을 당하는 사람에게 너그럽게 대한다.
그런데 같은 시험을 당했는데, 시험을 이긴 자는 동정할 수 있고, 이길 수 있다고 격려할 수 있다.
인간 대제사장은 자기도 연약하기에 , 연약에 휩싸여 있기 때문에 자기도 같은 입장의 삶을 살기에 용납, 너그럽게 대할 수 있다. 삶의 현주소이다.
누가 누굴보다 잘못했다 할 수 있어요? 코끝의 호흡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인간은 마찬가지이다.
이유?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히 5:3)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대제사장이 자기를 위하여도 속죄하는 것이 마땅하다.
신약의 레위기가 히브리서이다.
속죄제 규례의 첫 번째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의 허물이 되었으면 그가 범한 죄로 말미암아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레 4:3)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레 4:13)
“만일 족장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는데”(레 4:22)
“만일 평민의 한 사람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는데”(레 4:27)
평민, 족장, 온 회중, 그 첫 번째가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다.
“모세가 또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제단에 나아가 네 속죄제와 네 번제를 드려서 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백성의 예물을 드려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되 여호와의 명령대로 하라”(레 9:7)
제사장이 먼저 자기를 위해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
네 속죄제와 네 번제를 드려서 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레16장 대속죄일 봉사에서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고 자기를 위한 그 속죄제 수송아지를 잡고”(레 16:11)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고”(레 16:6)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레 16:15)
레4:3,9:7,16:5,11 인간 대제사장들은 반드시 자기를 위한 속죄제를 드려야 했다.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히 5:3)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는 것도 대단한 명예이다.
“이 존귀는 아무도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히 5:4)
인간 대제사장도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야 한다. 명예로운 일이다. 자기를 위한 제사를 드려야 한다.
& 공통점과 차이점이 보이지요.
이런데 예수없는 종교로 돌아갈거야? 우리와 같은 시험을 당하고, 죄없는 그분, 저는 제가 분명히 아는 것
남의 종교를 정말 존중한다.
1주일에 2시간씩 공자의 가르침을 배운다. 그런데 절대 공자님을 가르쳐 주님이라고는 안한다. 선생은 될 수 있으나 구주는 될수 없다. 남의 죄를 대속해줄 여유가 없다.
5:1-4 인간 대제사장의 존귀와 한계를 소개한다.
5절 대제사장의 예수를 소개한다.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히 5:5)
다른 첫째: 시2:7 , 히1장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우리에게 전적, 절대적으로 예수를 깊이 생각하고 바라봐야 할 이유, 굳게 잡아야할 이유는 예수님은 근본적으로 하늘이다. 신비이다. 생명의 종교의 핵심이다.
이 땅에서 조금 착해져서 깨닫고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라고 부르는 분, 근본을 알아야 한다.
두 번째 신분: 대제사장이라는 사실을 확인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히 5:6)
다른 데서: 몰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다 잘 아는 것이기에 구태여 언급할 필요가 없을 때의 표현이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시 110:4)
“너”는 누구일까? 서열 order
“[다윗의 시]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시 110:1)
다윗이 내 주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으십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이 주라 부르는 분을 향해,
여호와 옆에 앉아 있으라. 메시야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시 110:2)
메시야가 왕이라고 말한다.
110:4 제사장이라고 한다.
왕 제사장이라고 한다. 2절, 4절을 묶어서 왕, 제사장이라고한다. 그것을 히5:6에서 말한다.
제사장:죄를 용서하시는 분
대제사장: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분
시 110:2,4 왕이신 제사장,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야!
5절 그분은 본래 하나님이다.- 태초부터 있던 신성.
6절 왕 제사장이 되셨어- 구속을 위해 택한 평화의 의논
7절 그분이 이 땅에 계셨어.- 성육신
예수님의 메시야 신성을 소개한다.
인간역사에서 BC와 AD를 나눈 이런 왕이 없어요. 예수님을 끝내 안 믿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연세가 어떻게 되셨나요? 내가 당신보다 나이 더 많은 줄 모르냐? 언제부터 1950년입니까? 1950년전에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 안믿으시고 싶으면 불기, 단기 사용하세요. 생년월일 카운트 다운을 예수님 탄생으로 하셨어요.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안 죽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그 기도가 응답되었다는 말이다. 이해되시나요?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분에게 통곡과 눈물로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들어주셨다. 그래서 안 죽으셨다. 이해되시나요?
히브리서 2장 영지주의 – 그노스티시즘의 주장중에 하나가 가현설, 예수님이 진짜 오신 것이 아니라 온 것처럼 보였어.
히2장은 진짜 주님이 오셨다고하는데 그들은 부정한다. 이런 구절을 가리켜 진짜 죽으신 게 아니라 죽으신 것처럼 보였어.
정말 기도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이다.
주님의 기도: 무엇이라 하셨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눅 22:42)
기도응답: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시 22:1)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시 22:24)
다 서로 상응하는 말씀, 서로 조화되는 말씀이다.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런데 대제사장이 되기로 평화의 의논에서 선택하셨다.
부르심을 받으셨어요. 그리고 이 땅에 오셔서 온전히 인간과 이 같이 되셨다고 하는 사실을 강조하는 기자가 설명하는 거죠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히 5:8)
배웠다는 게 무엇인가?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눅 2:40)
성경은 예수님은 몸뿐 아니라 지혜도 자랐다고 이야기해요.
인간 예수 인성 예수님이죠. 그야말로 동그란 네모예요.
이거 한쪽을 놔버리고 나면 기독교가 아닌 거지 성경은 선명하게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거죠.
히브리서 기장 그죠 그래서 그전에 온전하게 되셨어요.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 5:9)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의 칭하심을 받게 된 순서가 5절에서부터 시작돼요. 그 순서를 놓치면 안 됩니다.
5절 하나님의 아들 신성
6절 멜기세덱
7절 육체의 고난
8절 순종을 배우심
9절 이래서 온전한 대제사장 구원의 근원이 되신다.
11절부터 14절에서 설교를 한다. 이것, 어려운 거야. 딱딱한 거야.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히 5:11)
듣는 것이 둔하므로/ 무관심하다.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어?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히 5: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신앙생활을 한지 오래되었잖아
신앙의 초보에 대해:
단단한 음식과 젖, 헬라어의 비유
너희들 크면 단단해 져야해,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히 5:13)
어린 아이: 네피오스, 유아를 말한다. 맘마, 맘마 하는 아이를 의미한다. 이해능력, 삶의기준, 도덕적 판단이 유아같은 상태이다.
의의 말씀:단단한 음식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 5:14)
장성한 자의 특징:
①지각을 사용함으로 : 분별력-도덕적, 영적 분별력
②연단을 받아 : 시험과는 다르다. 굳어지는 것이다.
③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
동그란 네모가 가능하다는 것을 분별하는 깨달음이다.
히브리서 저자가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 너희가 이런 상태에 이르러야 하는데
장성한 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 3:15)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16)
도의 초보란? 1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