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
4년 동안 관리하지 못한 정원에
무섭게 자란 풀들을 잘랐습니다. 일년 전 아니 그보다
더 오래되었을 누렇게 말라버린 풀들을 뚫고
그악스럽게 자라는 잡초는 정말 대단해 보였습니다.
어떻게 저것들은 악조건 안에서도 더 기를 쓰고
자라는 것일까.
당장 묵은 게으름과 나태와 무관심을
깡그리 없애야겠다고 다짐하고 뿌리까지 뽑는
작업을 했습니다. 애교스럽게도 들리는 풀메기 정도는
아니었고 "발본색원"이라는 말에 더 어울리는
뿌리째 뽑는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그러니깐
땅 위로 초록초록하게 보이는 그것은 약과였구나!
땅 밑으로 굳게 연대하는 잡초의 뿌리들은
정말 강히고 질겼습니다. 층층시하 깊이 팔수록
굵은 하수관 같은 뿌리들이 넓게 세를 형성하는
모습에서 순간 악의 전형성을 보는 듯하여
회개의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돌보거나 가꾸지 않으면 신앙도 자라기 보다
다른 것들로 약해지거나 사라지겠구나..
잡초의 뿌리를 뽑는 전쟁을 열흘 간 하고
모래사장 같이 흙만 드러난 정원을 보면서
저곳에 무엇을 심어볼까? 궁리만하기를 또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그러는 사이
동네 길고양이들이 그 곳의 모래가 좋다는 소문이
난건지 와서는 응가를 하고 덮고 가기도 하여서
헛웃음을 짓기도 하였습니다.
어서 무언가를 심으면 좋겠는데...
그러다 오늘!
조금.늦게.일어나긴 하였지만 정원 관리
전신자의 날이라는 것이 떠올라
7시 20분에 성당에 도착하였습니다.
이미 부지런하기도 하신 교우님들께서
거의 다 일을 하시고 저는 그간 질리게 해왔으나
너무도 재밌는 김메기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숱하게 트레이닝 된지라 고되거나 어렵지 않고
즐겁고 재밌었습니다. 게다가 김메는 작업이 주는
"은유"에 대한 묵상을 한지라 꽤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제가 성당국화를 얻어 온 것입니다.
과연 야훼이르에 라고
주님께서 손수마련해주신다는 말이 있는데
선행하러 온 날 어떤 풍채가 듬직하고 멋진
형제님께서 주신 국화 뿌리를
둥민둥한 정원에 심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우연일 수 있고 흔하게 이뤄지는 일일 수 있으나
어느 한 개인의 역사와 여정 안에서는
개별적으로 신기한 체험이기도 할 것 같기에
감사함이 올라왔습니다. ^^
늘 성당에 미사만 오기 바쁘고 가기 바빴는데
성당 주차장 주변을 둘러보며
아! 아름답다 예쁘다 하는 마음의 여유와 온유함이
있으시길 기도드립니다.
기도와 활동과 공부로
주님과 더 돈독해 지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잡초를 뽑으며 신앙과 믿음을 생각하시는 이 글이야말로...모든 것 안에 계신 하느님을 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