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라이트의 갈라디아서 강연
요약과 소감
톰 라이트는 이 강연에서 루터의 갈라디아서 이해를 비판합니다. 루터의 해석은 개신교 성서해석의 전통이 되었는데, 그것은 유대주의자들이 갈라디아의 개종자들에게 모세의 율법을 준수할 것을 요구할 때 사도 바울은 그럴 필요가 없으며 믿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에 대하여 톰 라이트는 일곱개로 비판합니다. 톰 라이트가 보기에, (1)1세기 유대인들은 그렇게 단순한 율법주의자들이 아니었고, (2)사도 바울도 신구약 언약의 연속성을 강조하며 마르시온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었고, 도리어 (3)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강조했으며, (4)사도 바울이 행위를 강조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사실 갈라디아서 5장과 6장을 보면 바울은 윤리에 대하여 엄격하게 강조합니다. 그리고 (5)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율법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서나 갈라디아서는 같은 사람의 작품입니다. 특히 (6)사도 바울이 사용하는 핵심 용어인 피스티스나 디카이오쉬네는 공동체 안에서의 성실함과 정의를 가리키는 말이지 구원론의 체계를 설명하는 말이 아니며, 끝으로 (7)갈라디아서는 천국에 들어가는 법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톰 라이트는 이런 고전적인 입장이 중세의 질문에 대한 16세기의 대답이라고 주장합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1세기의 질문에 대하여 21세기의 대답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합니다. 갈라디아서의 해설을 통하여 톰 라이트는 1세기의 교회, 특히 바울이 어떤 문제와 씨름했는지를 밝히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인 상황에 대하여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 가지 차원으로 읽는 갈라디아서입니다. 그는 갈라디아서를 입체적으로 읽어보자고 제안합니다.
이런 논의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것은 ‘새 관점’입니다. 톰 라이트는 이 강연에서는 이 주제를 깊이 다루지 않지만 급진적으로 새 관점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우려합니다. 강연의 말미에서 이런 우려를 표현합니다. 신약학에서 말하는 새 관점은 루터의 옛 관점을 수정하려는 것으로서 루터가 율법을 설명할 때 구원을 얻기 위한 공로의 수단으로 바라보았다면, 새 관점은 유대주의자들이 율법을 그렇게 이해한 것이 아니라 언약에 신실하기 위한 그들의 표지로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루터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스도의 희생을 헛되게 하므로 율법은 폐기되어야 하지만, 새 관점의 입장에서 보면 율법이 폐기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 목적이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톰 라이트의 주장입니다. 그러면 율법의 목적은 어떻게 성취되었습니까? 톰 라이트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백성이 일어났으며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이 함께 한 가족이 되어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를 상속하고 펼쳐 나갈 모델공동체 또는 시범 프로젝트(pilot project)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강조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무너뜨리신 담을 다시 세우는 것이 됩니다. 여기서 톰 라이트가 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마당은 구원론이 아니라 교회론임이 드러납니다.
톰 라이트는 이 강연에서 특별히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살던 상황에 대하여 주목합니다. 그리스-로마 문화가 지배하던 당시는 사방에서 우상숭배가 일상의 문화 현상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모든 마을에서는 개인의 사적 활동이 별로 보장되지 않고 공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 개종하여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압박을 이겨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우상에는 조상신을 비롯하여 당시 세상에서 널리 알려진 제우스나 헤라, 아테네, 아르테미스 등입니다. 거기에 추가로 로마 황제와 로마제국 그 자체를 숭배하는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유일신 신앙을 고수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종교적 열심이 로마황제들을 설득하여 그들의 다신교적 종교활동에 참가하지 않아도 되는 면제권을 얻었습니다. 다만 유대인들은 행실을 바르게 하고 세금을 성실하게 냄으로써 그들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처럼 다신교의 제의나 로마 황제 숭배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했던 것이지요. 그때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당국으로부터 압박을 받고 동시에 로마 당국의 압력을 받은 유대인들로부터 직접적인 압력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율법에 충실하게 함으로써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갈라디아에 왔고 안디옥에도 와서 교회에게 율법을 준수하라고 강요했습니다. 톰 라이트는 이런 강요를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5:12).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육체의 모양을 내려는 것이었습니다(6:12). 한마디로 말해서 로마인들에게 잘 보여 자신들의 면책특권을 유지하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압력에 굴복하여 율법으로 돌아간다면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이루신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는 헛된 것이 됩니다. 아브라함 언약이란 그가 이룰 가족이 온 세상에 복이 되는 것인데, 그것을 위해 이스라엘이 부름을 받았으나 실패하였고 예수께서 오셔서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하셨고 그 결과로 이제는 율법의 테두리를 철폐하시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만들어 한 가족이 되게 하시고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기교회가 극복해야 하는 위협은 첫째로, 로마제국의 황제숭배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당해야 하는 불이익과 박해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황제에게 분향하기를 거부하다 순교한 교부 폴리갑입니다. 두번째로 극복해야 하는 위협은 유대주의자들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율법에 충실해야 하나님의 구원에 동참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울이었을 때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다니엘의 예언에 깊이 심취해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유대주의자들은 로마제국의 당국자들을 기쁘게 하려는 목적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을 강요했습니다. 그것이 갈라디아 교회를 비롯한 초기교회의 상황이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은 교회에게 그렇게 율법으로 그들을 다시 끌고가려는 육신적인 자들을 몰아내라고 권면했습니다. 그것이 4장에 나오는 사라와 하갈의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혔고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자신 안에 사신다고 고백했을 때, 이제 유대교의 틀을 벗어나 그리스도께서 시작하시고 열어주신 새로운 창조에 동참하겠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 전에는 유대교의 전통에 충실한 것이 자랑이었다면,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시고 시작하신 바로 그 새 창조가 자랑이며, 그 끝에 완성될 미래를 소망하면서 현재 그것을 나타낼 교회를 바르게 세우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 하나라고 한 것이며, 할례나 무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에 동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것이 톰 라이트가 갈라디아서 강연에서 강조한 점입니다.
톰 라이트는 갈라디아 교회의 상황이 하나됨을 가로막은 세력들에 대한 사도 바울의 싸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동시에 오늘 우리 교회들의 상황도 여러가지로 사분오열되어 있다고 우려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새로운 창조와 그 창조가 완성될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나됨을 이루어야 할 교회가 옛적에 갈라디아의 어떤 사람들처럼 단지 육신적인 이유로 인하여 이런 저런 주장과 정치적 성향에 치우쳐 교회를 분열시키고 있다고 그는 지적합니다.
톰 라이트는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하기를, 십자가가 걸림돌이었다고 합니다(5:11). 그것은 우상숭배에 깊이 물든 로마제국의 당국자들과 시민들에게 걸림돌이었으며, 동시에 극단적인 생각에 빠져 박해하는 유대주의자들과 로마에게 아부하는 유대인들, 그리고 그들의 세계관과 안일함에 편승한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누구에게도 걸림돌이 되지 않으며, 십자가의 걸림돌을 인식하지도 못하는 것 아니냐고 톰 라이트는 우려합니다. 교회가 교회다울 때 그 교회는 이 세대에게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교회가 극단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세대의 문화가 하나님을 거스르는 신성모독적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교회다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무슨 일을 이루셨는지를 이해하는 데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리고 그 일은 성경 이야기의 언약이 성취될 때 나타날 모습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을 나타낼 때 드러날 것입니다. 그 모습은 예언자들의 메시지에 그림으로 그려졌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났으며, 초대교회가 역동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톰 라이트가 갈라디아서 강연에서 말하려는 것은, 오늘의 교회가 루터의 주장을 이어받아서 성경을 읽을 때 개인의 구원론에 갇혀 있다는 우려입니다. 그렇기에 초기교회의 상황과 그들의 문제와 도전, 그리고 그들의 꿈과 확신을 바르게 이해하여 21세기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새 창조 사역을 분명하게 펼치자는 권면입니다.
노학자가 평생에 걸쳐 연구하면서 발견하고 깨달은 바가 오늘 우리에게 새로운 각성과 도전을 주어 우리들의 교회를 바르게 세우고 세상에 빛으로 드러날 수 있게 하기를 두 손 모아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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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원본 영상
https://youtu.be/pkLl1AZ7two?feature=shared
강연 우리말 자막 영상
https://youtu.be/jLeAc78jVOI?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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