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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의 대외정책
미국의 외교정책의 수립과 이행에 대한 주된 책임을 대통령이 지게 되어 있으나, 의회도 이에 대해 강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 우선 의회는 전쟁을 선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하원은 대통령의 외교정책 수행에 필요한 예산에 대해 강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으며, 상원도 재원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다. 특히 상원의 경우에는 고급 외무 관리의 임명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 체결하는 모든 조약에 대한 비준권을 가지고 있다. 의회의 이와 같은 제재 권한은 행정부와 의회의 갈등을 초래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에드워드 코르윈(Edward Samuel Corwin) 교수는 미국의 정치체계가 외교정책에 있어서 행정부와 의회 간의 투쟁을 초래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 좋은 예로서는 상원이 국제연맹 헌장의 비준을 거부한 사실을 들 수 있다. 의회와 행정부간에는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유엔헌장 비준 당시의 의회와 행정부 간의 긴밀한 협조는 너무나 유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협동외교는 한국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는 '초당외교'라는 말과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베트남 전쟁으로 말미암아 파생된 행정부와 의회 간의 갈등은 심각한 형편이었다. 그러나 의회가 대통령에 가하는 압력은 행정부의 독주를 견제하는 동시에 건전한 방향의 미국 대외정책을 모색하고 있다. 의회는 국민의 대표기구로서 국민의 의사와 직결돼 있다. 따라서 대외정책의 수립이나 이행 과정에도 항상 의회를 '문제아'로 취급하거나, 또는 그러한 범주 내에 의회의 기능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2.대외관계사
미국의 외교정책은 고립주의로부터 시작되었으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개입주의와 고립주의가 병행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윌슨 대통령은 국제연맹의 창설을 제창하고, 주도함으로써 고립주의를 탈피하려 했으나, 상원이 국제연맹 헌장의 비준을 거부함으로써 다시 신고립주의 시기로 돌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미국은 고립주의, 세력균형, 집단 안전보장이라고 하는 3개의 외교노선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그당시 미국인들에게는 세력균형 정책이 유럽의 권력 정치를 연상시켰기 때문에 거부되었으며, 집단 안전보장정책은 새로운 것이기는 했지만 미국인들이 세력균형 정책과 집단 안전보장정책을 명백히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배척되었다. 따라서 미국인들은 그들에게 보다 익숙하고 안전하게 보이는 고립주의로의 도피를 선택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이 세계정치에 적극 참여하도록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은 과거의 교훈을 거울삼아 새로운 시대의 지도적 위치를 떠맡아, 유엔의 창설과 운영을 주도하였다. 그러나 냉전의 양상이 초래되자, 미국은 유엔이라는 집단 안전보장체제만으로는 세계평화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집단 방위체제와 상호 방위체제의 구축에 노력하게 되었다. 이러한 바탕 위에 소위 말하는 봉쇄정책이 등장했으며, 이는 구 소련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공산세력을 군사적으로 봉쇄하고,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는 데 그 목적을 두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정책은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접어들면서 점차 약화하였으며, '닉슨 독트린' 이후로 급격히 약화되어 그 형태마저 찾아보기 어렵다. 더욱이 카터의 등장 이후 모든 국가에 대한 여행제한 철폐를 비롯한 개방정책이 적극 추진되고 있으며, 무장에 의한 평화보다 협상을 통한 평화외교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20세기 중후반의 냉전의 갈등을 겪고 난 이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남게 된 미국은 대량 살상무기 확산, 인권개선, 민주주의의 신장, 환경문제 등 새로운 범세계적인 문제의 외교 현안화에 노력하면서 유엔 등 다자협력체제를 통한 해결을 도모하고 있다.
3. 고립주의 미국
한국 정치가 부정적인 의미에서 가장 특출난 점은 예측 불가능성이다.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전과 후가 매우 크게 바뀐다. 게다가 정당마다 어떠한 정책을 밀지 확실하게 예상된다. 하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 전간기의 미국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고립주의이고, 이는 제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초당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즉, 한국이 정당마다 대표하는 대외정책이 있는 반면, 미국은 그렇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고립주의인 먼로 독트린
고립주의란 아메리카 대륙 외부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즉 전략적인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군사적, 정치적 투자를 아메리카 대륙 외부로 하는 것을 최대한 피한다. 이는 군사적, 정치적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경제적 고립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왜 고립주의를 채택하는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왜 미국이 고립주의를 채택할 수 있는가? Eric Nordlinger에 의하면 미국은 전략적 면역 (strategic immunity)을 가진다. 비록 중국이 우세하거나 독일이 우세하더라도, 미국은 안전할 것이다.
이유는 총 네가지로 나뉠 수 있다. 먼저 지형이다. 미국은 다른 국가와 거리가 멀다. 게다가, 사이에는 대양이 펼쳐져 있다. 또한, 공군력도 충분히 존재하고, 최근에는 핵무기까지 있다. 따라서, 지형적으로 침략하기 극도로 어렵다. 둘째, 미국은 너무 크다. 크기상으로 말도 안되게 큰데, 이 때문에 미국 대륙을 점령하기가 매우 어렵다. 셋째, 내수시장이 강력하다. 유지 가능한 내수시장이 존재하기 때문에 고립주의를 한다고 해도 발전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세계적인 개입이 오히려 문제를 만든다고 보는데, 9.11테러의 원인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럴듯 하다.
결국 고립주의라는 개념 자체는 미국을 절대 위협할 수 없다는 데에 대한 동의에서 출발한다. 그렇다고 해서 군사적 준비를 아예 안하는 것은 아니다. 군사적 준비를 선호할 수 있고, 아메리카 대륙 자체에서의 공격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한편 세계는 위험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를 한다. 이 때문에 아메리카 대륙 내부에서의 군사적 준비가 정당화된다.
고립주의는 과거에만 있는 외교 정책이 아니다. 자국을 위한 안보가 국가에 미치는 영향을 과대평가하는, 즉 안보로 인한 두려움을 낳기도 하였다. 이에 따르면, 세계에 대한 군사적, 정치적 개입이 시민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위협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대응으로 매카시즘이 있다. 또한 큰 군대에 대한 군사적 준비는 공격적인 행동을 낳으며, 피할 수 없는 동원령을 만들기도 한다.
제 1차 세계대전의 마른전투
고립주의의 역사적 예시를 보면 이를 역사적으로 채택한 가장 대표적인 시기가 바로 20세기 이전 까지의 미국의 외교 정책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은 강력한 국가가 되고자 하였고, 당시 아메리카 대륙 보다는 유럽, 그리고 아프리카와 인도 등의 식민지가 주요한 전장이었다. 미서전쟁을 제외하면 1914년 까지 지속적으로 고립주의를 채택하였다. 게다가 제 1차 세계대전이 터진 직후에도 지속적으로 고립주의를 채택하였는데, 전쟁 후반부에 참전하여 유럽 국가들이 치고받고 싸우면서 국력을 소진하고, 미래 청년층을 갈아버리는 와중에 쉽게 승리를 얻었다.
4.미국의 패권
한편 제 1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고립주의는 이어졌는데, 이는 국제 연맹에서의 실패 때문이다. 윌슨이 상원에서 다수석을 얻지 못함에 따라서, 국제 연맹에의 미국의 참여가 제한되었다. 또한 제 1차 세계대전의 참전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 참전은 미국의 실수였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전략적 이득이 불분명했다는 것이 그들의 주된 주장이다.
1929년의 대공황은 미국의 고립주의를 심화시켰다. 대공황으로 인해 예산이 삭감되고, 국제적으로 얻을 이익이 줄어들고 말았다. 1880년에서 1910년 사이에 1700만명의 이민자가 유입되었는데, 이들이 미국 국내 정치 지형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서 미국은 유럽을 떠났고, 유럽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손을 아예 때고 말았다.
고립주의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1920년대 까지는 아시아와 유럽에서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30년 부터 세계적으로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아시아는 1931년에 만주 사변이 있었다. 1937년에는 아예 중일전쟁이 발발했고, 동남아로 전쟁이 확산될 가능성이 생겨났다. 유럽에서는 1933년에 히틀러가 집권하였고 재무장을 시작했다. 1938년에는 오스트리아를 독일이 병합한 안슐루스, 그리고 뮌헨 협정을 통한 체코슬로바키아의 독일로의 합병이 일어났다. 결국 1939년에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하지만 1940년 여름까지만 해도 미국은 고립주의를 택했다. 실제로 진주만 공습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립주의 분위기가 팽배했다. 의회에서는 고립주의가 당연한 것이었다. 군비에 제한을 두는 등의 내용을 포함하는 1937년의 중립법이 가결되었다. 1939년에 시작한 제 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하지 않으려 했다. 의회에서는 루즈벨트의 유럽 개입을 못하게 막았다. 특히 뮌헨 협정에도 주의만 기울일 뿐, 개입하지는 않았다. 다만 영국을 돕기는 했는데 구축함을 판매하는 등의 거래가 있었다. 게다가 1941년에는 랜드리스를 하기도 하였다. 다만, 어디까지나 거래의 형태였을 뿐이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대항하여 일부 정책을 취했다. 먼저 태평양과 필리핀에 군사를 주둔시켰고, 이는 방어 전략의 일종으로 시행되었다. 1939년 4월 15일, 루즈벨트는 미국 함대를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옮겼다. 1940년 5월, 미국 함대의 모항을 캘리포니아에서 진주만으로 옮겼다. 또한 중국에 지원을 하면서 일본에 대해서는 금수조치를 시행했다. 필리핀 방어 병력을 1940년과 1941년에 증강케 했으며, 1941년 7월에는 맥아더를 소환하여 아시아를 지키라 하였다. 하지만 더 공격적인 정책은 취하지 않았다. 특히 1940년 이후에 이러한 정책을 취한 것은 프랑스 침공이 단 6주만에 종료되었던 것에 대한 충격이었다.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이 일어나고, 고립주의가 문제가 있었다는 수정주의자들이 등장했다. 유럽에서는 히틀러가 매우 공격적인 정책과 행동을 보여주었다. 미국은 가장 잠재력 있고, 강력하고, 부자인 국가이기 때문에 무언가 했어야 했다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 아시아에서는 더 빠르고, 다른 대일정책을 취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만 이러한 의견은 어디까지나 수정주의적 시각이다. 경영전략에서 많이 하는 말 중에 "미래를 알고 보면 다 말할 수 있기 때문에 당시의 시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당시 미국은 대공황으로 고통받고 있었고, 자국을 살리기도 힘든 상황에서 국제 개입을 하라는 것은 비약으로 볼 수도 있다.
이에 반대되는 것이 국제주의이다. 국제주의는 미국의 국제 질서나 국제적 사건에 대해서 제도화된 개입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내용은 매우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포함하는 내용은 미국이 국제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 능동적인 역할을 해야한다는 내용이다. 윌슨의 14개조 조항이 바로 이 내용을 포함한다.
켈로그-브리앙 조약
국제주의는 193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주목받던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에 과거에는 그 예시가 많지 않았다. 워싱턴 군축 조약에서는 해군의 국가별 쿼터를 정했다. 비율은 영국:미국:일본:프랑스:이탈리아 = 5:5:3:1.75:1.75 였다. 켈로그-브리앙 조약에서는 아예 전쟁을 위법화 하였다. 특히, 군사적 움직임 말고도 경제적으로 보면 셀수없이 많은 개입이 있었다. 증명은 간단하다. 대공황이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과 경제적으로 연결된 국가가 많았음을 의미한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주의는 미국 외교 정책에서 더이상 뗄 수 없는 주요한 정책이 되었다. 1933년 부터 1938년 까지 국제주의와 고립주의 사이의 담론이 있었고, 대부분 고립주의가 다수를 이루었다. 1938년부터 1941년에는 두 정책의 방향성이 균형을 이루기 시작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해당 담론을 조종하기 시작했고, 타국의 움직임이 미국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논설하였다. 결국 1942년 국제주의가 주된 의견이 되었다.
5.향후 향방
경제주기, 즉 호황과 불황은 지난 10년의 경우처럼 투기와 금융조작(financial manipulation)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좀더 깊은 수준에서, 경제의 팽창과 축소는 인구통계학적 요인과 기술 혁신에 의해 주도된다.
다음 10년에는 전후 번영의 동력이 되었던 인구통계학적 조류가 바뀌는 상황을 보게 될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트루먼과 아이젠하워 대통령 집권기에 태어난 세대'라고 알려진 이 연령대는 60대에 접어들면서 은퇴를 하고 정체기를 거쳐 늙어갈 것이다. 그 결과 반세기 전 풍요로움을 창출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던 이 세대의 인구 팽창이 수년 후에는 경제적인 부담을 만들어낼 것이다.
1950년대에 베이비붐 세대는 수백만 개의 유모차와 분양 주택, 스테이션왜건, 자전거, 세탁기 등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는 데 기여했다. 1970년대에 베이비붐 세대는 아직 그들을 맞을 준비가 안 된 경제 체제에서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들이 구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낲아 기르고, 구매를 하고 대출을 받음에 따라 이자율과 인플레이션, 실업률이 증가했다.
1980년대에 경제가 베이비붐 세대를 흡수함에 따라 그리고 1990년대에 이르러 이들이 중장년층이 되자 경제도 비상한 수준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다가올 10년에는 베이비붐 세대가 미국에 가져다주었던 창의성과 생산성의 엄청난 분출이 막을 내릴 것이다. 그리고 경제는 인구학적 위기에서 나타나는 첫번째 현상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전성기를 마침과 동시에 기술혁신도 급격히 쇠락할 것이며, 이런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이들이 점점 늙어감에 따라 생산력은 줄어들고 소비가 급등하여 유례없는 수준의 의료와 장례 서비스가 생겨날 것이다.
다음 10년은 기술이 필요(needs)를 따라가지 못하는 시기가 된다. 일부에서는 기존 기술이 한계에 다다르고 이를 대체할만한 기술이 나오지 않을 수 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충분한 기술변화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를 테면, 전기자동차와 차세대 휴대전화가 대량으로 공급될 것이다. 공급이 딸리게 될 것은 긴급하고 새롭게 출현하는 필요들을 해결할 혁신이며, 실질적인 경제 성장을 이끄는 것도 바로 그와 같은 혁신이다. (==> AI, 자율주행, 로보틱스, 저궤도위성통신, 우주태양광, SMR 안전하고 저렴한 에너지)
첫번째 문제는 재정인데, 획기적인 신기술의 개발은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고 제품을 시장에 적용시키는 측면 모두에서 본질적으로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2008~2010년의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는 기술개발을 위한 자본 투자뿐만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려는 욕구 역시 위축시켰다. 다음 10년 중 몇 년은 자본 부족 현상과 함께 자본을 위험성이 낮은 사업이나 좀더 안정된 기술에 투자하려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이런 현상은 다음 10년의 후반기로 넘어가면서 전 세계적으로 완화될 것이며, 미국과 같은 국가에서는 상황이 좀더 일찍 나아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개발의 준비기간을 고려할 때 차세대 주요 기술 혁신은 2020년이 지나야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 코로나로 인해 위험자산 선호up, 투자 증가하며 투자 시기 앞당김)
이러한 혁신의 속도에 있어 두번째 문제는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군대와 관련되어 있다. 19세기 증기기관의 발명과 영국 해군의 발전(그리고 그것의 제국적 확장)은 동시에 진행되었다. 20세기 들어 미국은 전 세계쩍인 기술개발의 엔진 역할을 했으며, 혁신의 상당 부분이 군사조달(military acqusition)에 의해 자금이 제공되고 추진되었다. 이렇게 개발된 대부분의 기술이 민간부문에 적용되었다. 군은 항공기와 라디오 개발을 대폭 지원했으며, 그 결과 항공 산업과 방송산업이 태어났다. 미국의 광역 고속도로 체계는 소련의 공격이나 핵 재앙에 대비해 신속하고 원활한 병력이동을 위한 군 프로젝트로 처음 제안되었다. 마이크로칩은 핵미사일과 위성발사체를 관리하는 소형 디지털 컴퓨터에 사용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인터넷은 원래 1960년대 군사적 커뮤니케이션 프로젝트로서 시작되었다.
전쟁기간에는 기술의 변혁이 집중적으로 일어난다. 사회는 삶과 죽음이 걸려 있는 상황에서는 많은 돈을 빌려서라도 투자를 하기 때문이다. 미국-지하디스트 전쟁은 무인정찰기와 공격용 항공기, 데이터베이스 기술 등의 개발을 자극했지만, 2차세계대전(레이더, 페니실린, 제트엔진, 핵무기)과 냉전(컴퓨터, 인터넷, 광섬유, 첨단재료) 당시처럼 중대한 변혁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궁극적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전쟁이 획기적인 혁신이 아닌 기존 기술의 개선으로도 충분한 경 보병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쟁을 위한 자금 공급이 끊어지면, 연구 및 개발 예산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다. 이것은 미국의 국방조달 과정에서 일반적인 순서이며, 다가올 3~4년 내에 새로운 위협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성장 또한 재개되지 않을 것이다. 획기적인 군사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국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혁신을 위한 이러한 전통적 동력은 2020년 이후까지도 민간 부문에서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다가오는 10년에 기술혁신을 이끌 가장 강력한 동력은 인구학적 위기와 그와 관련된 비용이다. 내가 <100년후> 에서 논의했던 인구감소는 10년 안에 일부 지역에서 먼저 나타날 것이다. 반면 인구 감소의 전조인 고령화는 세계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노동력도 축소될 것이다. 그 이유는 노동자들이 은퇴할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상향되는 교육 조건으로 인해 사람들이 20대 초반이나 중반까지는 고용 시장에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령화의 경제적 영향을 악화시키는 것은 늘어나는 평균 수명과 그에 따라 증가하는 퇴행성 질환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오래 살게 되면서 알츠하이머, 파킨슨, 치명적인 심장질환, 암과 당뇨병 등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치료(최첨단 기술을 수반하는 치료를 포함하여)를 필요로 할 것이고, 이는 경제에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다.
다행히 현재 충분한 자금이 지원되고 있는 유일한 분야가 의료연구이다.(이 분야에서 혁신적인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유전자치료, 유전자 편집, 노화 정지 등) 정치연합은 기초 연구가 의약 및 생명공학 산업의 기술적 응용으로 이어지도록 연방정부로 하여금 충분한 자금 지원이 이루어지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균형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게놈 지도 연구는 퇴행성 질환에 대한 신속한 치료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다른 연구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앞으로 10년 이상은 임시적 처방조치들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퇴행성 질환에 대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경제에 상당한 부담이 될 노동비용을 수반할 것이다. 이에 대한 한 가지 대안으로 로봇 공학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효과적인 로봇공학은 오랫동안 진화하지 못한 두 가지 주요 분야에서의 혁신에 달려 있다. 바로 마이크로프로세서와 배터리다. (반도체, 배터리, 전력공급)로봇이 노인들을 돌보려면 엄청난 처리 능력과 강화된 기동성을 필요로 하지만, 실리콘칩은 이제 소형화의 한계에 다다랐다. 한편 로봇을 조종하고, 감각 입력을 처리하고, 임무를 지정하는 데 필요한 기본 프로그램은 현재의 컴퓨터 기반에서 구동할 수가 없다. 생물학적 재료부터 양자 컴퓨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잠재적 해결방안이 있으나, 이 분야는 아직 기본적인 연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음 10년에는 두 가지 수렴하는 기술 요소들도 정체될 것이다. 첫째는 19세기에 시작된 커뮤니케이션 혁명이다. 이 혁명은 전자기 스펙트럼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과학적 발전은 세계적인 제국들과 시장의 부상에 의해 일부 영향을 받았다. 전보는 통신 케이블만 갖춰져 있으면 먼 거리에서 실시간에 가까운 의사소통을 가능케 해주었다. 전화, 라디어, 텔레비전 같은 매체는 새로운 정치적, 경제적 관계를 창출하여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했고, 중앙집중화된 방송커뮤니케이션의 시대를 열었다. 이러한 '1대 다수' 매체는 그 시스템을 통제하는 이에게 암묵적으로 상당한 권력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중앙집중화된 '1대 다수' 방송의 패권은 디지털 시대의 가능성이 확장됨에 따라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 다음 10년은 심지어 이러한 최첨단의 디지털 기술에 있어서조차 지난 60년의 성장과 혁신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인사 관리라는 엄청난 도전을 해결하는 데 필요했던 데이터처리 혁명과 함께 시작되었다. 당시만 해도 병사 개개인의 정보는 분류 및 식별을 위해 비전자 바이너리 코드의 형태로 컴퓨터 펀치 카드에 입력되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국방부는 이 원시적인 형태의 컴퓨팅에서 전자 시스템으로의 변환을 추진했으며, 이는 진공관과 거대한 메인프레임에 대한 수요를 창출했다. 이런 메인프레임들은 대부분 IBM영업조직을 통해 민간 부문에 공급되었고, 청구서부터 임금 대장에 이르는 다양한 업무들에 활용되었다.
트랜지스터 및 실리콘 기반의 칩이 개발된 이후 혁신은 서부 연안으로 옮겨갔고, 퍼스널 컴퓨터에 혁신의 초점이 맞춰졌다. 메인프레임이 주로 데이터의 조작과 분석에 사용되었던 반면 퍼스널 컴퓨터는 타자기, 스프레드시트, 게임 등과 같이 이미 존재하고 있던 것들의 전자적 아날로그를 만들어내는 데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휴대용 컴퓨팅 기기들과 가전 제품을 위한 내장용 컴퓨터 칩으로 진화했다.
1990년대에는 두 개의 기술적 지류인 커뮤니케이션과 데이터가 하나의 줄기로 통합되었으며, 정보도 전자 바이너리 형태를 띠게 되어 기존 전화선으로 전송될 수 있었다. 국방부가 메인프레임 컴퓨터 간의 데이터 전송을 위해 개발한 인터넷은 퍼스널 컴퓨터에, 그리고 전화선과 모뎀을 이용한 데이터 전송에 재빨리 적용되었다. 그 다음 혁신은 엄청나게 큰 용량의 그래픽 파일뿐만 아니라 많은 양의 바이너리 데이터를 전송하기 위한 광섬유였다.
웹사이트상에 영구적으로 보여지는 그래픽과 데이터가 출현하면서 그 변화가 완성되었다. '1대 다수' 브로드캐스팅으로 통제되었던 세계는 '다수 대 다수' 내로캐스팅narrowcasting 이라는 무한히 분산된 체계로 진화했다. 그리고 20세기의 뉴스와 커뮤니케이션 기술에 의해 제공된, 공식적으로 부과된 현실 인식은 현실에 대한 불협화음으로 바뀌었다.
컴퓨터는 전통적인 기능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도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기기로도 사용되었다. 컴퓨터는 기존 우편과 전화통화 방식을 바꿔놓았으며, 연구의 도구로도 활용되었다. 인터넷은 천문학 관련 데이터에서 이베이 최신 수집품까지, 정보와 판매, 마케팅을 결합한 시스템이 되었다. 인터넷 네트워크는 공공의 광장과 시장이 되어 대중 사회를 통합하는 동시에 분열시켰다.
휴대용 컴퓨터와 아날로그 휴대전화는 이미 특정 응용 프로그램들에 이동성을 부여하고 있다. 이 두 기기가 컴퓨팅 능력, 인터넷 접속, 음성 및 문자메시지, 그리고 퍼스널 컴퓨터와의 즉석 동기화 기능을 갖춘 개인용 디지털 기기로 통합되자, 세계 어디에서든 데이터를 빠르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커뮤니케이션 혁명은 이제 극점에 도달했다.
지금 우리는 점진적인 변화 상태에 있다. 즉, 수년 전에 개발한 기술을 위한 능력을 확장시키고 새로운 응용 프로그램을 찾는 데 주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것은 닷컴버블 말기에 퍼스널 컴퓨터가 다다랐던 정점과 비슷한 위치다. 당시에도 하드웨어에서 인터페이스까지 기본적인 구조가 자리잡혀 있었다. ... 그러나 지난 10년을 돌아볼 때 진정한 의미의 기술적 혁신을 떠올리기는 매우 어렵다. 획기적인 발전 대신 소셜 네트워킹 같은 새로운 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기존 능력을 모바일 플랫폼으로 옮기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아이패드가 보여주듯이 이러한 노력들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궁극적으로 새로운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재배치하는 것이다. 1980년대 경제를 변화시켰던 마이크로 소프트는 현재 그동안의 성취를 고수하는 비교적 얌전한 기업이 되었다. 애플은 우리가 이미 하고 있는 것을 좀더 효율화하는 새로운 기기들을 만들고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인터넷 상에서 광고를 팔고 수익을 얻는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획기적인 기술혁신은 이제 시장 점유율을 위한 전투, 즉 작은 개선이 마치 큰 사건인 것처럼 포장하여 돈을 벌어보려는 노력으로 대체되었다. 한편 경제의 동력이 되었던 기술 기반의 생산성은 감소하고 있다. 이것은 다음 10년 동안 부딪히게 될 난제들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다. 기초 연구개발이 저조하고 기업들이 지난 세대의 핵심 기술에 대한 작은 개선만을 시도하는 상황에서, 전세계적 성장의 주요한 추진력은 기존 기술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제한된다. 하지만 휴대전화 판매가 이미 포화에 다다랐고 기업들은 불필요한 업그레이드에 투자하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에, 이것은 성장을 위해서는 문제가 있는 처방이다.
그렇다고 디지털 기술의 세계가 죽어가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컴퓨팅은 여전히 본질적으로 수동적이며, 데이터 조작과 전송에 한정되어 있다. 필요한 다음 단계는 로봇공학처럼 적극적으로 데이터를 사용하여 현실을 조작하고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한 적극적인 단계로 나악는 것은 다가오는 인구구조 변화와 연관된 경제적 변혁을 상쇄할 생산성의 거대한 신장을 성취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미 국방부는 군용로봇을 오랫동안 개발해왔으며 일본과 한국도 민간 부문 활용에 발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기술이 2020년까지 준비되려면 아직도 많은 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로봇공학에 의존하는 것은 또 하나의 복잡한 문제를 낳는다. 바로 이 기계들을 작동시키는 데 필요한 전력공급 문제 때문이다. 인간의 노동력은 에너지를 비교적 적게 쓴다. 그러나 인간의 활동을 모방하는 기계들은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며, 이런 기계가 경제 내에서 확산됨에 따라(컴퓨터나 휴대전화가 그랬던 것처럼) 전력 소비도 대폭 증가할 것이다.
기술혁신에 전력을 공급하는 문제는, 증가하는 탄화수소 사용이 환경에 영향을 미쳐 정말로 기후변화를 초래하는지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불러온다. 이런 문제들이 열정을 불러일으키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슈는 아니다. 기후변화를 둘러싼 문제는 대통령의 통찰력 있는 리더십을 요구하는 두 가지 문제를 추가저그로 제기한다. 첫째, 에너지 사용의 절감은 가능한가? 둘째, 탄화수소 그리고 특히 석유를 사용하여 경제를 계속 성장시키는 것이 가능한가?
공공정책의 입안자들은 절약을 통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그러나 최근의 에너지 소비 증가는 개발도상국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약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생각은 실효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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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10년 동안 우리는 에너지 사용이 계속해서 급증할 것이라고 전제해야 한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화석연료의 소비를 줄일 것인가가 아니라 급증하는 수요를 뒷받침할 수 있는 화석연료가 충분히 남아있는가에 있다. 비화석연료는 에너지 사용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빨리 개발되지 못한다. (원전, 신재생 등) ... 다음 10년 안에 어떤 장기적인 해결책이 제시되든,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급증하는 에너지 사용에 대한 대체연료를 찾는 동시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제한하는 것이다.
에너지 사용은 운송, 전력발전 ,산업용, 주거용이라는 네 가지 범주로 크게 분류된다. 다음 10년에도 운송 분야에서는 계속해서 석유가 사용될 것이다. 기존의 이동수단들을 대체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에 10년 내에 큰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일부는 전기동력으로 전환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단순히 화석연료 소비를 자동차에서 발전소로 옮기는 것일 뿐이다. 전력 발전은 석유와 석탄, 천연가스 모두를 쓸 수 있기 때문에 더 융통성이 있다. 산업용의 에너지도 마찬가지며, 주거용 냉난방은 약간의 비용으로 전환이 가능하다.
석유 생산이 점점 높은 비용을 요구하는 기술(셰일, 해양시추)을 요구하고 있는 점 등 때문에 다음 10년간 증가할 에너지 소비를 맞추려면 석유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가오는 10년을 위한 두 가지 선택이 남는다. 하나는 석탄이고, 다른 하나는 천연가스다. 절대적인 의미에서 에너지 소비를 경감시킬 만큼 광범위한 절약은 미국뿐만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더 ㅁ낳은 석유를 생산할 능력은 제한되어 있으며,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는 이란같은 국가들에 의한 수송 차단에 취약하다. 다음 10년에 대체 에너지원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원자력 발전소는 지금 시작해도 5년이나 6년 뒤에나 가동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더 많은 석탄이냐, 아니면 더 많은 천연가스냐를 놓고 선택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빠른 가용성, 환경에 대한 무영향, 그리고 저비용을 겸비한 묘책일 것이다. 하지만 다음 10년에 그는 필요한 것과 가용한 것 같에 균형을 잡아야만 할 것이다. 결국, 그는 둘 다 선택하겠지만 천연가스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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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10년은 아직까지 위기로 전환된지 않은 문제들을 다루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해결책들을 모색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물의 가용성 문제를 생각해보자. 산업화의 확대와 함께 높은 생활수준을 누리는 인구가 여전히 증가함에 따라 여러 지역에서 이미 물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고갈 현상은 종종 국가들 사이에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정치적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여기에 기후 변화가 날씨의 양상을 바꿀 수 있고, 그로 인해 인구밀집 지역에 강수량이 줄어들 수 있는 가능성을 더하면 이러한 문제는 위기가 될 수 있다.
물론 물이 고갈된 것은 아니다. 단지 물에 소금이 섞여 있거나 사용하기 불편한 곳에 있을 뿐, 엄청나게 많은 양의 물이 존재한다. 기술 향상이 필요하긴 하지만 우리는 물에서 염분을 제거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또한 파이프라인을 통해 물을 공급하는 방법도 알고 있다. 문제는 탈염과 파이프라인 공급 모두 엄청난 비용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에너지는 현재의 기술로는 확보하기 어렵다. 가용한 에너지를 상당한 수준으로 증가시키려면 우주 기반의 태양력 발전 혹은 다른 종류의 혁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인구 고령화와 노동력 축소, 물 부족 등 우리가 해결해야 하는 주요한 문제들을 살펴보면 공통점을 몇 가지 발견할 수 있다.
이 문제들은 이번 10년에 등장하고 있는 중이지만, 시간이 더 지난 뒤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 될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로보틱스, 바이오, 탈염기술 등-은 이미 존재하거나 생각해닐 수 있지만 아직 완전히 자리잡지는 못했다.
그러한 기술 중 대부분을 실행하는 데든ㄴ 에너지에 대한 단기 해결책과 장기 해결책 모두를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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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의 원천이 우주 기반 태양력이든 다른 기술이든, 대통령은 몇 가지 축을 중심으로 개발이 진행 중이며, 그것이 실현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앞으로 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게 될 것이며, 지나온 역사를 살펴볼 때 이런 기술의 원천은 미 국방부가 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정부는 초기 개발 비용의 부담을 줄이고 민간 투자는 그 보상을 챙기게 도리 것이다.
우리는 국가가 시장보다 더 많은 힘과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시장은 기존 과학과 초기 기술을 활용하는 데 있어서는 탁월하지만 기초연구에는 약하다. 항공기와 원자력, 달 탐사와 인터넷, GPS 등 장기적인 혁신에 투자하는 데는 정부가 훨씬 뛰어나다, 정부는 물론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그러한 비효율성과 그에 따르는 비용을 흡수하는 능력이 바로 기초연구의 핵심이다. 우리가 다음 10년 동안 착수해야 할 프로젝트들을 볼 때 그것을 가장 성공적으로 실행시킬 수 있는 조직이 바로 국방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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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시 그러한 국가 중 하나이다. 미국은 현재 경제적 압력을 받고 있지만 군사적 압력은 감소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기엔 대개 미국이 극적이고 새로운 모험에 나서지 않는다. 현재 미국 정부는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퇴행성 질환에 많은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또 국방부는 로봇공학 연구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인 에너지는 아직 합당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다음 10년에 있어, 에너지와 관련된 선택들은 전혀 획기적이지 않다. 대통령이 절약과 풍력발전, 지상의 태양력 등의 프로젝트에 자신의 권한을 소모하게 될 위험이 있다. 이런 것들은 요구되는 양 만큼의 에너지를 창출할 수 없다. 특히 천연가스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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