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점석 비평집-친일과 항일 사이
책 소개
전점석 작가의 비평집 『친일과 항일 사이』(신국판 336쪽 15,000원)가 <도서출판 두엄>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에 실린 네 분은 독립운동유공자, 월북자, 친일인명사전 등록자 또는 등록될 뻔했다가 빠진 분들임을 밝혀둔다.
“김소운, 지하련, 이효정, 조연현, 이 네 분을 하나의 책으로 엮은 것은 단순히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지금도 창원과 함안에서 찬반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소운은 소년 시절에 진해에서 살았고, 진해를 그리워하는 글이 있다는 이유로 기념사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지하련은 오빠들과 같이 마산에서 살았던 집이 재개발구역이라 철거 위기에 놓여 있어 지역에서 보존운동을 하고 있다. 이효정은 그를 알았던 마산사람들이 뒤늦게 항일독립운동가였다는 걸 알고서 놀라기도 하고, 공연히 미안해한다. 조연현은 함안이 고향인데 그의 생가를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과 기념사업을 하는 문인들이 있다.
본의든 아니든 지금도 이 네 분은 심심찮게 지역민들 간의 갈등 요인이다. 잊을 만하면 들썩거린다. 이들이 살아온 삶의 명암(明暗), 공과(功過)를 골고루 살펴봐야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선입견이나 개인적인 인연에 치중하여 객관화를 하지 않아서 아예 한쪽 면만 알고 있기가 쉽다. 눈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본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는 인물은 장점만 보이고, 싫어하는 인물은 단점만 보인다. 비록 직접 이분들을 만날 수는 없지만 남기신 글에 그들의 삶이 담겨있다. 글을 통해 삶을 이해하고, 삶을 통해 글을 읽어서 이분들에게 가까이 가기를 바란다. (-저자의 머리말 중에서)”
■ 머리말
지금도 살아있는 작가 네 분
책 제목을 「친일과 항일 사이」로 정했다. 어떤 분은 용서할 수 없는 친일과 훌륭한 항일로 확연히 구분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흔히 이중 보험이라는 얘기를 듣는 사람은 독립운동 군자금도 내고, 일제에 협력한 사람도 있었다. 나쁜 일본인과는 개인적으로 싸우기도 했지만 좋은 일본인을 적극 감싸는 사람도 있었다. 부일 협력을 하면서 마을발전을 위해 노력한 사람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먹고살기 위해서 시키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도 있었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물론 이들이 기념사업을 할 정도로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욕하기도 애매하다. ‘이해할 수 있는 정도’는 상대적인 표현이다. 이 책에 실린 네 분의 삶이 어느 정도인지를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친일과 항일 사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낸다.
이 책에 실린 네 분은 모두 문인들이다. 서예를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4자 성어가 있다. 글씨에는 그 사람이 담겨있다는 뜻의 ‘서여기인(書如其人)’이다. 내가 이때껏 만나본 서예인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모두 ‘書’가 곧 ‘其人’이라고 한다. 전주 시내로 들어가기 전에 제일 먼저 만나는 강암 송성용의 현판 「호남제일문」의 원본이 경매시장에서 5천만 원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안중근과 이완용의 글씨도 경매시장에 나온 적이 있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날인 1910년 3월 26일. 사형 집행 전에 쓴 글이 2023년 12월 서울 옥션 경매에서 19억 5천만 원에 낙찰되었다. 그러나 당대의 명필로 소문난 이완용의 글은 40만 원도 안 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경술국치를 주도한 매국행위를 모두 아니까 그의 글씨도 외면한 것이다. 글씨가 곧 그 사람의 삶이다.
서예에서는 글씨는 글씨일 뿐이고, 그 글씨를 쓴 사람은 글씨와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글씨가 그렇다면 당연히 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여기인(文如其人)’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글이 곧 그 사람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예를 들면 비록 이광수는 너무 지나치게 친일을 했지만 『무정』은 한국 근대문학사에 빛나는 작품이고, 이은상이 비록 독재 부역을 했지만 「가고파」라는 노래는 누가 뭐래도 마산의 자랑이라고 한다. 글과 사람은 별개라는 주장이다. 글씨와 글이 다르다는 이유도 있다. 글씨는 특별히 유명세를 타기 전까지는 한 사람이 쓴 것을 다른 한 사람이 소유할 뿐이다. 그러나 글은 한 사람이 쓰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또 갖고 있기 때문에 그분들의 생각이 여러 가지일 수 있다. 그런 차이가 있긴 하지만 글씨처럼 글에도 쓰신 분의 삶과 생각이 담겨있는 것도 사실이다. ‘文’이 곧 ‘其人’이다. 뿐만 아니라 글을 굉장히 잘 쓰는 사람이 친일을 적극적으로 했거나 독재 부역을 열심히 하면 보통 사람과는 그 영향이 완전히 다르다. 곁에 있어서 득을 본 일부를 제외하면 피해를 입는 범위가 훨씬 넓다. 그러니까 최소한 『무정』을 읽고, 「가고파」를 부르더라도 알고 하자는 말이다. 김소운, 지하련, 이효정, 조연현은 모두 친일 혹은 항일운동과 관련 있는 분들이다. 사회주의와 관련 있는 분도 있고, 독재자와 가까웠던 분도 있다. 그가 쓴 글을 통하여 그의 삶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 책에 수록된 네 분의 생몰연도는 김소운 1907~1981년, 지하련 1910~1960년 초, 이효정 1913~2010년, 조연현 1920~1981년이다. 4명 중에서 김소운이 제일 먼저 태어났고, 어릴 때 고생도 제일 많이 했다. 책도 제일 많이 출간했다. 친일인명사전에도 오를 뻔했다가 빠졌고, 독재 부역에도 나서지 않았다. 제일 늦게 태어난 조연현은 나이와 연륜이 적어서 이광수, 김동인처럼 대놓고 친일에 앞장선 건 아니지만 그때그때의 사정에 따라서 이러기도 하고 저러기도 했다. 생전에 김소운은 친일파로, 조연현은 친일과 만송족으로 비난받았다. 지하련과 이효정은 일제강점기에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했다. 지하련의 오빠들 중에는 사회주의자들이 있었고, 이효정의 집안 어른들 중에도 있었다. 물론 이효정은 여고시절부터 과감하게 조직적으로 했지만 지하련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지하련은 남편과 함께 북으로 갔지만 이효정은 남편과는 다른 선택을 하면서 빨갱이 가족으로 또 한 번의 험난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지하련은 일찍부터 소설을 써서 전국 문단에서도 이름을 날렸지만 이효정은 뒤늦게 시를 쓰면서 지역에서 동인 활동을 했다. 두 분은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네 분 중에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분은 1명이고,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분도 1명이다. 네 분의 삶은 그들의 글만큼이나 서로 다르다.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하고 최선을 다했다. 김소운은 일역 작업에, 이효정은 사회주의 독립운동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고, 지하련은 소설로, 조연현은 문단 권력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고자 했다. 이들의 삶이 오늘날과 너무 달라서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글을 쓰는 과정에서 지하련의 고향 강동 마을과 마산 산호동 주택 그리고 조연현, 이관술의 생가를 둘러보고,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다녀오고, 이효정의 친필 글과 조각상, 이관술의 친필 편지와 유적비, 지하련의 제적등본, 김소운과 이상화의 시비를 보면서 비로소 그분들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네 분을 하나의 책으로 엮은 것은 단순히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지금도 창원과 함안에서 찬반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소운은 소년 시절에 진해에서 살았고, 진해를 그리워하는 글이 있다는 이유로 기념사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지하련은 오빠들과 같이 마산에서 살았던 집이 재개발구역이라 철거 위기에 놓여 있어 지역에서 보존운동을 하고 있다. 이효정은 그를 알았던 마산사람들이 뒤늦게 항일독립운동가였다는 걸 알고서 놀라기도 하고, 공연히 미안해한다. 조연현은 함안이 고향인데 그의 생가를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과 기념사업을 하는 문인들이 있다. 본의든 아니든 지금도 이 네 분은 심심찮게 지역민들 간의 갈등 요인이다. 잊을 만하면 들썩거린다. 이들이 살아온 삶의 명암(明暗), 공과(功過)를 골고루 살펴봐야 하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선입견이나 개인적인 인연에 치중하여 객관화를 하지 않아서 아예 한쪽 면만 알고 있기가 쉽다. 눈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본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는 인물은 장점만 보이고, 싫어하는 인물은 단점만 보인다. 비록 직접 이분들을 만날 수는 없지만 남기신 글에 그들의 삶이 담겨있다. 글을 통해 삶을 이해하고, 삶을 통해 글을 읽어서 이분들에게 가까이 가기를 바란다.
이 책의 김소운에 대한 부분은 스스로 솔직하게 자세히 적어놓은 자전에세이 『하늘 끝에 살아도』를 참고했으며, 시인 오하룡이 정리한 연보와 강릉대 박경수 교수의 자료와 번역이 큰 도움이었다. 지하련의 경우는 큰오빠 이상문의 손자인 이재원과 거창문화원의 자료제공과 경남작가 회원 조재원 사무국장의 강동마을 안내가 있었다. 무엇보다 마산역사문화보전회의 지속적인 주택 보존 활동이 있었기에 이 글을 쓸 수 있었다. 이효정은 울산노동역사관 배문석 사무국장의 글과 자료제공, 울산 현지 안내, 가향문학회 활동을 같이 한 원은희의 논문 그리고 몸이 편찮은 아들 박진환의 증언, 장성운 이사의 회고가 있었다. 조연현의 경우는 정규웅, 이호철의 회고담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안내해준 노수영 교수의 번역도 고마웠다. 이관술에 관한 부분은 외손녀인 손옥희의 자료제공과 안내가 있었다. 두엄출판사 나문석 사장님의 여러 가지 조언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의 직, 간접적인 도움이 있었기에 이 책을 낼 수 있었다.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차례
北原白秋의 추천으로 일본문단에 선 김소운 / 11
일본인보다 일본을 더 잘 아는 김소운 / 55
해군대장 야마모토의 죽음을 슬퍼한 김소운 / 89
「지하련 주택」은 한국문학사의 보물 / 105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인 지하련의 오빠들 / 135
항일운동가 이효정과 경성트로이카 / 151
이념의 먼 길을 지나 시인이 된 이효정 / 201
이효정의 착한 남편, 박두복은 남로당원 / 227
이효정 집안은 의병에서 사회주의 독립운동까지 / 267
아시아 부흥론을 주장한 조연현 / 291
전두환 전 대통령과 문인 조연현의 생가 / 315
■ 저자 소개
우산(愚山) 전점석
1951년 대구 출생. 2010년 YMCA 퇴직 후에 2011년 8월부터 경남일보 칼럼 「경일포럼」을 현재까지 매월 게재하고 있으며, 2017년 8월, 칼럼 분야 회원으로 경남작가회의에, 2019년 11월 진해문인협회에 가입. 수필 「이름짓기」가 2018년 한국작가 제55회 신인작품상을 수상하고, 2020년 뉴스통신진흥회가 주최한 제2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에 「친일・반공・독재, 그 계보의 변신을 추적하다」가 가작으로 입선. 2020년 아름나라가 시행하는 세 번째 사리랑말꽃상을, 2022년 경남민예총 공로상, 2023년 「해상인민군 사건과 이상규 소령」으로 제10회 경남작가상 수상.
「인물추적 이은상」을 《피플파워》에 2017년 12월호부터 2019년 12월호까지 2년간 매월 게재. 거창민간인학살사건을 거창 《한들신문》에 2019년 6월부터 6회, 제주4.3학살의 박진경 대령에 대해 《남해시대》에 2020년 5월부터 3회 연재.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의 《기억과 기록》 2019년 12월호에 「1980년의 광주 상무대와 대구 50사단 헌병대」를, 합천 《황강신문》에 「전두환 씨는 합천의 자랑인가?」를 2023년 8월부터 4회 연재함.
지은 책은 『일할 때도 주인, 일하고 나서도 주인』, 『진주YMCA 50년사』, 『진주에서 지역운동하기』, 『창원에서 지역운동하기 1, 2』, 『경남소비자단체협의회 10년사』, 『지속가능한 지역사회』, 『친환경 건축이 지구를 살린다』, 『진해근대문화유산의 재발견』, 『북청 사나이 유택렬』, 『노산 이은상과 대통령』, 엮은 책은 『인간답게 살자』, 『자유상상의 나래를 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