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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에서건 좌파 몰이가 강해지고 있다. 좌파 몰이를 하는 것은 극우들이다.
좌파는 무엇인가?
칼 맑스의 역사발전 5단계설이 있다.
원시 공산제 사회, 고대 노예제 사회, 중세 봉건제 사회, 근대 자본주의 사회,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한 공산주의 사회로의 복귀. 이것이 역사를 5단계로 나눈 칼 맑스의 이론이다. 맑스는 1818년 태어나서 1883년 사망했다. 200년 전에 태어난 인물이다. 그 당시 유럽은 아직 근대 역사학이 정립되지 않았고 맑스는 자기 스스로 역사를 5단계로 상정한 것이다. 역사적 근거가 없다. 그러면 맑스는 왜 역사를 그렇게 생각했을까? 자본주의가 형성되면서 아이들도 탄광에 들어가 하루 19시간씩 일을 하고 그랬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농경사회였다는 점을 잘 알아야 한다. 자본주의라는 말도 맑스에 의해 정립된 것이다. 맑스의 영향력은 지금도 절대적이다. 농경사회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니 인간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노예나 다름없는 존재로 노동자는 전락했다. 이것을 중세로 되돌리면 중세에 생산을 담당했던 것은 농노였다. 영주층과 성직자층은 농노들의 생산을 통한 생산물을 마음대로 소유했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와 중세 봉건제를 보니 유산자층은 노동을 안 하고 생산자층인 노동자나 농노들이 생산을 담당했다. 여기서 고대 사회에도 같은 구조를 맑스는 상정했다. 고대에는 노예가 생산을 담당하고 지주층은 그것을 소유했다고 생각했던 것인데, 고대 사회는 노예가 생산을 전담한 것이 아니었다. 고대 사회 전 세계는 소농들에 의한 사회였다. 노예를 두기는 했지만 노예들이 생산을 전적으로 담당한 것이 아니라 소농들의 직접 노동이 전 세계 고대 사회를 지탱한 경제였다. 맑스는 여기서 상상력을 더 발휘해 원시 사회까지 갔다. 원시 사회는 공동 생산 공동 소비의 공산제 사회였다고 가정했다. 여기서 사유 재산이 발생하고 고대 사회가 등장했다고 생각했다. 인류는 원시 공산제 사회에서 출발해 고대 노예제 사회, 중세 봉건제 사회,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거쳐 무산자층인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 공산주의 사회로 되돌아 갈 것이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중세의 생산은 농노가 담당한 것이 맞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산자층인 노동자들이 생산을 담당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고대 사회는 노예제 사회가 아닌 소농들의 사회였고, 원시 사회는 공산제 사회가 아니라 수렵 사회로부터 출발했다. 맑스가 살았던 시기에는 인류학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원시 사회에 대한 이해는 전무했다. 맑스는 근대와 중세의 생산 양식을 고대에 적용해보고, 원시 사회 경제를 상상해보고, 인류는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한 공산 사회로 회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시, 고대 사회에 대한 생각이 틀렸고,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역사 법칙에 따라 발생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공산 사회 자체가 맑스의 상상이지 실제했던 게 아니다. 따라서 공산 사회로 역사가 발전한다는 이론은 틀린 것이다. 최초의 무산자층 혁명이 일어난 것은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 러시아에서였다. 유럽에서 산업화가 가장 느렸던 러시아에서 맑시스트 이론가들의 선동으로 제정이 무너지고 소위 사회주의 사회가 등장했다. 이것을 공산주의 사회라고 부를 수가 없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공동 생산 공동 소비의 이상적인 사회였던가? 결과는 쉽게 드러난다. 1991년 소련은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소련은 해체되었다. 연이어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도미노 현상을 일으키며 붕괴하였고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해갔다. 애초에 공산주의 사회라는 것은 맑스의 상상이었을 뿐 역사의 발전 법칙이 아니었다. 중국에서는 모택동이 소련의 레닌과 같은 역할을 했다. 농민들을 선동하여 공산주의 사회를 주장하고 혁명을 일으켜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무산자층인 노동자들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일으켜 공산주의 사회로 넘어가지도 않았다. 맑스가 말했던 것과 실제 레닌과 모택동의 혁명은 서로 관계가 없었던 것이다. 사회주의 세계는 결국 전부 자본주의 체제로 변경이 되었다. 남은 것은 북한 뿐이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맑스의 책들을 금서로 했다고 하는데, 사실 맑스가 주장했던 내용대로 하면서 맑스를 제거하고 김일성의 생각인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공산주의는 맑스의 상상이었을 뿐 사실도 아니었고 김일성이 떠들은 내용은 김일성의 생각이 아니라 맑스의 생각을 도용한 것일 뿐이다. 현실 사회주의권은 이미 30년도 더 전에 붕괴되었고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가 현재의 세계이다. 북한이 공산 혁명을 떠들어봐야 쓸데없는 쌩고집 부리는 것 밖에 안 된다. 이런 내용은 역사 전공자나 정치학 전공자들에게는 상식적인 것이다. 맑스의 역사발전 5단계설은 틀린 가설이었다. 구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증명까지 끝났다.
그러면 좌파란 무엇인가?
좌파는 우파와 대립이 되는 개념이다. 현실에서 좌파는 맑시스트를 가리킨다. 그런데 맑스의 역사발전 5단계설은 틀린 가설임이 역사학, 인류학, 정치학적으로 밝혀져 있고,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도 전부 붕괴되어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했다. 그러면 지금 맑시스트는 누구인가? 이걸 알 수가 없다. 우파는 좌파에 대립적인 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우파 자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맑시스트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있다. 이 사람들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상정하는 사람들이냐? 이건 이미 끝난 얘기다. 그런 건 없다. 시간이 갈수록 좌파탓을 하는 극우들이 주로 선진국에서 등장하고 정당으로 세력이 크게 확대되어가고 있다. 그 안에는 경기 침체로 인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 주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추방하여 일자리를 되찾자는 주장이 들어있다. 이건 파시즘이지 우파가 아니다. 극우들은 파시스트들이지 좌파의 대립 개념이 아니다. 정작 좌파라고 자칭하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이론적 현실적 근거는 없다. 그래서 좌우 논쟁 치우고 진보와 보수로 나누자는 주장도 있는데 이것도 이론과 현실이 어느 나라에서도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면 도대체 뭐가 현실에서 작동하는 동인인가? 지금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최상류층이 각 국가의 부를 거의 독점하다시피하는 구조로 정착되어 있다. 미국에서도 마트에서 장을 보는 주부가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을 한다. 왜 이렇게 먹고살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 부의 분배와 재분배가 기능을 잃고 빈익빈 부익부가 극한으로 치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의 문제이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가 문제인 것이다. 이걸 언급하면 좌파로 몰린다. 쉽게 말해 빨갱이란 얘기고, 공산주의자란 말이다. 이걸 누가 떠들까? 최상류층의 선정선동에 불과한 것이다. 이론으로서의 공산주의는 틀린 것이었고, 현실에서 사회주의권은 자체 붕괴해 자본주의로 전부 전환했다. 좌파 몰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좌파는 없다. 좌파라고 몰아가 사회적 인식과 토론을 방해하는 일은 있지만 좌파는 개념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빈익빈 부익부를 문제시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지나친 부의 편중 현상이 문제인 것이지 좌우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학자들이 이런 지나친 부의 편중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를 유지시키는데 찬성하고 있다. 이러면 공산주의 혁명 일어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위의 내용을 그새 까먹은 것이다. 좌우 구분이 없는 개념 가지고 덮어씌우기 하는 것에 불과하고, 보수와 진보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실에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진보와 보수의 구분이 현실에 적용해서 맞아들어가는 사회는 없다. 보수와 진보의 구분도 허상을 가지고 있다고 잠재적 가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간단하다.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가 부의 극단적 편중으로 치달리고 있어서 중산층마저 붕괴되어 가는 것이 현재의 세계이다. 이걸 해결해야 한다. 이 얘기를 해야한다. 좌파 운운하고 보수 진보 싸움한다는 식으로 정치 용어가 남발되고 있는데 없는 거다 없는 거. 현실은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 부의 극단적 편중만이 있는 것이다. 최상층 상류층이 아닌 대다수의 중산층 서민층들이 먹고살기도 힘들 정도로 부의 분배가 잘못되어 있는 현실을 보고 그에 대해 말을 해야지 좌우, 보수 진보라는 허상 가지고 떠들 필요가 없다.
여기에 쓴 것은 이 정도로 간략하게 밖에는 표현할 수 없다. 이걸 세세히 설명하려 들면 책 몇 권은 써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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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은 10월 22일에 쓴 것이고, 관련 서적 기사가 있어서 아래에 붙인다.
이대남 극우화, 한국만의 문제 아니다…신자유주의 사회의 그늘
[프레시안 books] <젊은 남성은 왜 분노하는가? - 상처입은 남성과 극우의 탄생>
이재호 기자 | 2025.11.01. 11:55:34
지난 6월 3일 치러진 제21대 대통령 선거의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의 37.2%가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를, 36.9%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10~20대 남성의 보수화가 화두가 됐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뿐만 아니라 서방을 중심으로 한 국가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들은 왜 보수적인, 더 나아가 극우적인 정치 성향을 가지게 됐을까?
호주 국립대학교 사회학 연구원으로 온라인 여성 혐오, 극단주의, 남성 폭력, 소셜 미디어 및 디지털 플랫폼 정치 분야의 전문가인 사이먼 제임스 코플런드는 저서 <젊은 남성은 왜 분노하는가? - 상처입은 남성과 극우의 탄생>에서 그 원인을 짚었다.
그는 "영어권 웹상에서 운영되는 남성 중심의 블로그, 포럼, 온라인 커뮤니티 네트워크를 통틀어 일컫는 신조어로 '매노스피어'(Manosphere)"라는 단어가 있다면서 "인생 철학, 자기 계발, 인생, 연애, 섹스를 위한 성공전략 등 남성의 다양한 관심사를 주제"로 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코플런드는 이러한 '매노스피어'라는 곳은 "남성이 서로의 불만을 공유하고 그 불만을 중심으로 연결되는 공간"이라며 "말하자면 '남성의 불만'이 형성된 것이다. 이 공통된 불만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는 일부 남성에게 강한 매력을 발휘하며 집단적 정체성과 목적 의식을 통해 그들을 하나로 결속시킨다"고 분석해 젊은 남성들이 비슷한 경향을 가지게 되는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매노스피어가 "현대 사회의 이념과 제도, 특히 후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낳은 실패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났다"며 역사적 연원을 설명했다.
코플런드는 "이상화된 남성성에 대한 서사는 20세기 두 차례 세계 대전 이후 사회가 남성에게 내건 약속과 궤를 같이한다"며 전쟁 이후 사회는 남성에게 4가지의 사명을 부여했는데 △개척해야 할 새로운 영역 △무찔러야 할 사악한 적 △익명의 구성원이 더 큰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는 형제애적 제도 △부양하고 지켜야 할 가족 등이다.
그는 "이러한 남성의 사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에게 일정한 지위와 존재의 의무를 부여했다"며 "가정 내에서 여성에게는 집에 머물며 자녀를 돌보는 역할이 주어졌고 반대로 남성은 집 밖으로 나가 일하고, 싸우고, 정복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렇게 자본주의는 '공적 영역(남성적)'과 '사적 영역(여성적)'을 분리하고 이원화된 질서를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 <젊은 남성은 왜 분노하는가 - 상처입은 남성과 극우의 탄생>, 사이먼 제임스 코플런드 지음, 송은혜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바다출판사
이러한 '패권적 남성성'은 "많은 남성에게 삶의 목적과 방향성을 제공"했는데, 문제는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후기 자본주의 체제가 엄청난 부유층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남성들을 이러한 사명을 이뤄내지는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았다는 점이다.
물론 경제적, 사회적 안정성을 상실한 이들은 남성만이 아니었다. 코플런드는 오히려 "여성과 유색인종"이 "매노스피어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백인 남성보다 훨씬 더 큰 타격을 입었다"고 진단한다. 그런데 일부 남성이 "이 위기에 대해 매우 젠더화된 방식으로 반응"하면서 지금과 같이 보수적이고 극우적인 성향을 띄게 됐고, 매노스피어를 매개로 이러한 경향이 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거대한 구조 속에서 남성들이 보이는 이같은 반응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저자는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이들이 활동하는 온라인 공간에 공권력을 투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접근이라고 지적한다.
극우적 성향을 가진 사용자의 소셜 미디어를 차단하는 조치 역시 효과적이지 않다는 것이 코플런드의 생각이다. 그는 "소셜 미디어 기업은 극우나 매노스피어에서 비롯된 폭력을 진정으로 해결할 의지가 없다"라며 "설령 소셜 미디어 기업들이 정치적 압력에 잠시 부끄러움을 느낀다 해도 그들의 궁극적 목표는 이윤 추구다. 그리고 극우 계정의 자극적인 콘텐츠는 사용자 참여를 끌어내며 이는 광고를 통해 수익으로 이어진다"고 진단했다.
저자는 극우적 성향을 가진 사용자들을 처벌하거나 배제하는 방식 보다는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고 이들의 여성혐오에 전면적으로 맞서는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코플런드는 구체적 해결책 중 하나로 "남성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소속감을 제공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저자는 과거 청소년 단체, 노동조합, 스포츠 클럽, 교회 등 젊은 남성과 여성이 모이던 공간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고 그 결과 사람들이 주로 온라인에서 공동체를 찾고 있는데 이러한 경향성이 매노스피어가 만들어지고 강화된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또 다른 중요한 상실의 영역"인 고용 문제를 짚었다. 코플런드는 "안정적인 고용은 공동체 의식과 안정감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라며 "우리는 모두 점점 커지는 사회적 불안을 겪고 있다. 이 광범위한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경제적 변화를 되돌리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러한 구조적 방법이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코플런드 역시 신자유주의적인 경제 체제의 변화를 논하려면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정도라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그는 "닉 스르니책과 알렉스 윌리엄스는 저서 <미래를 발명하다>(Inventing the Future, 2015)에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약탈적 구조를 되돌리기 위해 필요한 여러 변화를 제안"했다며 "노동 시간을 단축하며 모두가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보편적 기본 소득을 도입하고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근로 윤리를 약화하기 위한 문화적 캠페인을 추진하는 것"등이 구체적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사회구조적 측면의 변화뿐만 아니라 이들의 사고를 전환시키는 것 역시 중요한데 코플런드는 "급진화를 완화 하기 위해 설계된 여러 운동에서는 최근 '대안 서사'라는 새로운 접근법이 주목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대안 서사는 참여자가 자신들의 상황과 감정을 설명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야기를 제공하고 더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길을 제시함으로써 급진화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여성혐오적 사고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대신에 남성에게 그들의 문제가 발생한 실제 원인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운동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방식"이라고 전했다.
그는 "매노스피어에 모인 소외된 남성, 심지어 폭력적인 이들조차 예외적이거나 극단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징후를 드러내는 하나의 단면일 뿐"이라며 "그들은 괴물이 아니고 사실 우리와 크게 다르지도 않다. 극단적인 운동에 가담하는 남성이 어떤 일탈적인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해 이들을 변화시키기 위한 전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첫댓글
원시 사회에 대한 실증적인 증거는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 대륙에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금속기를 사용하지 않고 석기 시대에 머물고 있었고, 대체로 평화롭고 지혜로운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사람 간의 불의의 사고로 인해 싸울 수가 있다. 부족간 전쟁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평화롭고 지혜로운 사회였다. 중앙 아메리카에는 마야, 잉카, 아즈텍 문명도 있었다. 국가를 이루고 왕이 통치했었다. 지금도 아마존 유역에는 원시인 그대로 생활하는 부족들이 있다. 역시 부족의 평화와 지혜로운 사회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
이것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도 아니었고, 맑스는 원시 사회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당시엔 연구된 것이 없었다. 맑스의 원시 공산사회는 적용이 불가능한 가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