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4:9~21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얘기는 어머니나 유모나 아버지가 키우는데,
땡강을 부리면, 얼래고 달래주고, 잘하면 칭찬해주고 또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그러다가 조금 커서 잘못가면, 회초리를 들거나 혼내키기도 하는데, 어렸을 때, 초등학교를 들어가서 처음으로 시험을 봤는데, 시험을 너무 못봤다. 그래서 채점 매긴 것이 비사이로 막가 너무 많이 틀려서, 부끄러워서 앞 사람 시험지를 안볼 때 슬쩍 이름만 바꿔치기 하였는데, 나중에 보니까 뒤에 이름쓰는 란이 또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처음으로 아버지께 시험지를 보여드렸는데, 쭉 보시다가, 시험지 마지막에 김OO이 누구냐. 딱 걸린 것이다.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 아버지가 무서운 분인 줄 그때 알았다. 몽둥이로 종아리를 사정없이 찜질을 하시는데, 죽는 줄 알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그런 것은 아예 상상도 하지도 못했는데, 아버지하고 아저씨하고 다르다.
교부라고 하는 것은 교회의 아버지라는 뜻인데, 사실 성경은 하늘 아버지 외에 지도자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아버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 안에서 교회의 성도들을 잘 돌보는 직분을 가진 어른들을 가리킨다. 성경은 아무나 교회의 지도자를 세우지 않는데, 바울은 디모데전서에서 자격을 말하는데,
딤전3:1~10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그런데 아버지는 그 안에 성령의 권위가 있어서, 아버지처럼 성도들을 사랑과 책망으로 섬기는 것이다. 또한 아버지는 어려운 일도 다 견딘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성경을 볼 때, 하늘 아버지가 어떤 모습인지는 예수께서 그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는데, 빌립이 예수님께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하니
요14:8~11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않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예수님을 보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보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과 인격이 그에게 있다. 예수님은 죄와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다.
요일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롬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또한 사도들처럼 복음을 위하여 말씀을 위하여 죽음까지도 수고를 아끼지 않는 바울이나 모세 같은 사람들도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데,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께 버림을 받을지언정 자기 민족의 구원을 간절히 소망하였다.
롬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모세도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무렵, 산 아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숭배로 타락하였는데, 그때 모세는 그들을 용서해주실지언정 내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달라고까지 요구하였다.
출32:31~33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그런데 아버지의 사역을 볼 때,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비롯하여 온갖 사역을 말할 것도 없고, 바울과 모세도 그렇고 엄청난 고난의 무게가 있다.
고후1:8~9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민11:11~15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그들이 나를 향하여 울며 이르되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 하온즉 책임이 심히 중하여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나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성경을 볼 때, 아버지는 성도 중에서 매우 드물고, 중한 자리이면서도 매우 고되고 힘든 자리이다. 그러나 잘하면 무엇보다도 마침내는 영광스러운 자리이다.
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 아버지는 때론 사형수같이 구경거리가 되기도 한다.
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었도다
-> 바울 당시, 초대교회는 이스라엘 지역에 조금, 그리고 디아스포라 흩어진 성도들을 통해서 아시아 지역 헬라 지역에 세워졌는데, 바울은 순회하는 식으로 전도하였는데, 거의 맨 땅에 해딩하는 식으로, 직접 수고하여 일하고 또한 박해를 받고 모욕과 갖은 무시를 당하면서 개척자같이 전도를 하였으므로, 고귀한 사도가 만물의 찌끼같이 된 것이다.
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 바울은 원래 굉장한 폭군에 엘리트 바리새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박해받고 쫓겨나고, 추움과 배고픔과 모욕과 침뱉음을 받는 찌끼 곧 걸레같은 거지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면서도 또한 품이 넓은 아버지같이 된 것이다.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17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하였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복만 받고 싶어한다. 예수님을 통해서 잘먹고 잘살고만 싶어한다. 그것이 목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았다. 바울의 소망은 예수님을 닮는 것이었다. 비천과 풍부 모든 것을 예수 안에서 닮고 싶어하였다. 잘 보면, 예수님은 창조주 구원주 심판주 왕이셨으나, 땅에서 세상의 왕들처럼 하지 않으셨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땅에 내려와 십자가에 자신을 죄인의 대속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다. 어느 왕이 이런 왕이 있나. 그러므로 바울이 이것을 너무 기이하여, 예수님을 닮으려고 하였다. 예수님을 크게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것을 본받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동역자인 디모데를 보낼테니, 그를 통해서 나의 가르침을 받으라는 것이다.
18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 바울은 왕처럼 된 사람들, 곧 바울과 아볼로 게바를 평가하며 파당을 이루어 교회를 어지럽히는 교만한 자들을 두고, 내가 귄위있는 아버지처럼 그들을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그래 너희가 말을 참 잘하는구나 그러나 너희가 정말 왕 같은가, 능력이 있는가 내가 보러 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엄하지만 사랑이 많은 아버지같이 간다는 것이다. 매를 든 아버지처럼 갈까 아니면, 사랑의 온유한 마음으로 갈까.
그런데 아버지가 하는 일은 티가 잘 안 난다. 어머니가 하는 일도 티가 안 난다. 당연한 것 같다. 그러나 덕분에 집안이 돌아간다. 세상도 그렇다. 보이지 않게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부모들로 인하여 돌아가고 있다. 그래서 자식들은 편하게 사는 것이다. 또한 이 세상이 어떻게 지탱되고 있는가. 하늘 아버지가 햇빛 공기 물 모든 것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햇빛 공기 물의 소중함을 잘 모른다. 오히려 금은동 보석을 더 값있게 본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영적인 것의 소중함을 모른다. 성경이 중요한지 모른다. 나도 전에는 성경은 그저 도덕책 고리타분한 책인 줄 알았다. 읽어도 재미도 없고, 도무지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고, 그러나 지금은 성경이 제일 중요한 책이다. 성경이 사람을 살린다. 죄를 이기게 한다. 마귀를 쫓아낸다. 예수를 믿어 구원받게 한다. 스승이 되게 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하고 그중에는 아버지가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딤후3:15~17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