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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대목들:
오현철님의 발언중에서,
~2004년인가 2005년인가에 어떤 미국 박사학위 논문을 봤는데, 입법·사법·행정 외의 제4부를 얘기하고 있더군요. 무작위 추첨으로 뽑은 사람들로 구성한 제4부인데, 저는 바로 이런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시민참여 제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참여사회연대도 있고 공론조사도 있고 합의회의 등등 다른 많은 방식이 있는데 시민의회가 왜 좋은가. 대표성과 정당성에서 월등히 낫습니다. 무작위 추첨으로 시민을 뽑는 것을 이론적으로 ‘소우주’를 만든다고 표현합니다. 대한민국 5,000만 명 국민을 딱 한 501명으로 성별, 연령별, 지역별로 완벽하게 뽑으면 이 사람들이 토론한 내용은 5,000만 명이 한자리에서 토론한 것과 거의 동일하다고 통계학적으로 봅니다. 그리고 저는 바로 이것이 입법·사법·행정의 제도권력을 견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다른 방식으로는 극복할 수 없어요. 간단하게 말하면 대통령이든 의원이든 대리인을 뽑았는데, 이 대리인들이 자기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주인인 국민의 말을 듣지 않아요. 이 딜레마는 주인이 직접 나서지 않고는 절대 극복할 수 없습니다. 대리인들이 착하고 일을 잘하더라도 그들을 좀더 다그칠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이 잘못할 때에는 즉각 제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의민주주의의 모순은 미국 트럼트 현상이나 유럽에서 극우정당들이 득세하는 것을 보면, 어디에나 항상 잠재하고 있는 겁니다. 대의민주주의가 19~20세기에 좀 잘나갔는데 그걸 가지고 자만하고 대의민주주의가 완벽한 정책이라고 생각하는 게 잘못이죠. 제일 좋은 건 역시 주인들이 직접 나서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시민의회가 현재 대의민주주의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이고, 깔끔한 해결 방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지문님 발언중에서,
~ 무엇보다 우리가 ‘대의민주주의는 선거로 만드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정치권이나 대선 후보들, 여야의 개헌안을 보면, 국민소환, 국민발안, 국민투표 한다면서 마치 이것들이 곧바로 직접민주주의인 것처럼 포장하는데, 그것들은 대의민주주의의 전제하에 도입하는 제도입니다. 시민의회를 포함해서 모두 대의민주주의의 한 부분인 것입니다. 선거만으로 대의민주주의가 완성될 수 없어요.
그중에서 저는 지금으로서는 시민의회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봅니다. 국민발안, 국민투표, 국민소환 모두 물론 중요하지만, 시민들이 모여서 심의하는 과정이 없다는 점에 한계가 있어요. 시민들이 같이 모여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숙고하는 과정 말입니다. 저는 이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여론조사 전화 많이 받지 않습니까? 사드배치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무상급식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 하면서. 그렇지만 솔직히 일반시민들은 별 관심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잘 모르기 때문이죠. 그런데 찬성이냐 반대냐 물어보면 뭔가 답을 해야 되니까 그냥 말한단 말이에요. 그걸 취합해가지고 국민여론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건 정말 우리 국민들의 생각이 아닌 것이죠. 직접 찬반 쪽의 주장을 다 듣고 나서 논의하고 난 뒤에 다시 여론조사를 하면 결과가 바뀐다고 하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서, 진짜 민주주의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충분히 정보를 습득한 다음에 내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현철 님:
제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시민의회는 다른 어떤 방법보다 전문성을 높이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냥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토의과정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런 얘기를 했죠. 희곡을 보고 나서 전문 비평가가 쓴 비평 하나랑, 시민 100명이 쓴 100개의 비평을 모은 것이랑 어느 쪽이 더 낫겠는가. 요즘식으로 말하면 집합지성을 얘기한 것이죠. 파티를 할 때에도 요리사 한 명이 와서 요리하는 거랑, 파티에 참석한 100명이 각기 자기 요리를 갖고 와서 하는 거랑 어느 쪽이 더 좋을까요? 개개인의 시민이 전문가 한 사람보다는 전문성이 떨어질지 모르지만, 시민 다수가 모여서 지혜를 모으면 전문가보다 훨씬 낫다는 겁니다. TV 틀어보십시오. 전문가들이 나와서 얘기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싸움으로 끝나죠. 전문가들은 전문가들 시야가 있고,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가 있어서 양보할 수가 없어요. 전문가들한테 자문을 받아서 시민들이 결정을 하게 해야죠. 완전히 뒤집어놔야 해요.
또하나 중요한 점은, 현대 정치시스템에서 의사결정은 전문성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4대강사업을 보세요. 이쪽 전문가 저쪽 전문가 다른 입장이 있지만, 결국 어떻게 결정됩니까. 그전 선거에서 다수표 받은 쪽이 이깁니다. ‘전문성’이라고 포장하지만 권력 있는 쪽 뜻대로 결정되는 겁니다. 시민의회는 시민들이 모여서 다양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그것을 기반으로 토론을 해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즉 전문성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또 아리스토텔레스가 좋은 예를 들었는데요, 어느 구두장이가 좋은 구두장이인지 아는 방법은 그 사람이 만든 신발을 직접 신어보는 것이라고 했어요. 어느 신발이 발에 잘 맞을지 가장 잘 아는 것은 당사자라는 말입니다. 전문가의 전문성을 토대로, 내 생활지식을 결합시켜서 만드는 창조물은 시민의회에서만 가능하다는 겁니다.
저는 정당을 현대의 군주라고 생각합니다. 정당에서 몇 명이 나와서 교대로 집권할 뿐이지 군주인 건 맞아요. 왜냐하면 이걸 견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민의회 같은 게 꼭 있어야 됩니다. 한편 정당이 잘되기 위해서도 시민의회가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한국의 정당정치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카르텔 정당 때문이에요. 두 개 정당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새로운 정당이 진입하는 것을 막고 있거든요. 말씀하신 대로 정당 설립 요건도 문턱이 높지만, 예를 들어서 우리는 원내교섭단체가 20석인데, 5석인 나라도 있어요. 5석이면 예전 민주노동당도 원내교섭단체가 되죠. 그럼 TV에도 나오고 사람들 눈에 더 많이 띌 수 있겠죠. 지지자를 확보할 수 있는 통로가 많아지는 것이죠. 그다음에 우리가 소선거구제 방식을 계속 지키고 있는 것까지 정말 큰 문제인데 기존의 카르텔 정당들이 선거법, 관련 정당법 모든 법률 개정을 막고 있어요. 이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도 그런 기득권 구조와 무관한 시민들이 참여해서 정당법, 선거법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됩니다.
오현철 브리티시컬럼비아를 보면 시민의회 웹사이트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거기 글을 쓰고 논쟁을 벌여요. 시민의회에 권한이 부여되니까 거기 가서 이야기하자, 이렇게 되는 거죠. 그리고 시민의원들이 브리티시컬럼비아 주민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 일주를 하면서 시민들의 의견도 듣고, 자기들끼리도 계속 토론을 하지요. 시민의회가 하나의 구심점이 되어 모든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독려하게 됩니다.
온라인 시민의회는 하나로 만들 수도 있고, 아니면 이슈별로 잘라서 여러 개 만들어서 동시에 진행할 수도 있고, 형태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설계할 수 있는데요, 중요한 것은 권한이 부여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권한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었을 때 시민들은 ‘강한 공중’이 되어서 자발적으로 참여합니다.
이지문 브리티시컬럼비아 시민의회 같은 경우 160명이었는데, 중도에 사퇴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어요. 평균 출석률은 95%. 책임감 없을 거라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들 출석률 보세요. 형편없지 않습니까? 브리티시컬럼비아 시민의회는 처음 석 달은 학습기간, 석 달은 다니면서 주민들 의견 듣는 공청회 기간, 나머지 기간 동안 시민의원들끼리 논의해서 결정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졌어요. 그런 과정을 다 보장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김종철 결국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이 시민의회를 구상하게 된 동기인데, 막상 시민의회를 성사시키자면 기성 정치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역설적인 이야기가 되네요. 딜레마라면 딜레마인데, 그렇지만 정치하는 사람들은 표가 된다고 판단하면 움직이는 사람들이니까 그걸 이용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리겠어요.
그런데 현명한 정치가라면, 국가적 난제를 풀기 위해서라도 시민의회를 도입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사드배치 문제는 누가 차기 대통령이 돼도 굉장히 풀기 어려운 문제잖아요. 그럴 때 시민의회를 소집하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결론을 가지고 미국이든 중국이든 그쪽에 설명을 하는 거죠―한국은 민주주의국가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국민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다, 시민의회를 통해서 이러한 결론이 났는데, 이걸 내가 대통령이라고 해서 변경할 수는 없다, 이러면 되잖아요. 정치지도자랍시고 국가의 중대사에 대해 꼭 자신이 고독한 결단을 내려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늘 엉터리 짓을 하고 문제가 안 풀리는 거예요. 나라의 외교도 민주적 정당성에 의해 뒷받침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잖아요. 그런 민주적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장치로서도 시민의회가 제일일 것 같은데요.
오현철 시민의회가 특히 유용한 경우가 정치권에서 이도저도 못하는 사안입니다. 사드 같은 경우, 4대강, 미국산 쇠고기 이런 사항은 시민에게 결정권을 넘기면 아주 간편하죠. 또 좋은 사안이 정치인들이 주저하는 것, 세금 올리는 거예요. 텍사스에서는 화력발전이냐 원자력발전이냐 풍력발전이냐, 이렇게 주민들에게 물어봤어요. 상대적으로 원자력발전은 싼데 재생에너지발전은 비쌉니다. 그리고 어느 쪽을 하든 세금은 더 거둬야 합니다. 시민들이 모여서 토론한 다음에 재생에너지로 결론을 내렸어요. 그리고 필요한 세금은 자기들이 기꺼이 내겠다고 했대요. 그렇게 해서 텍사스는 캘리포니아 다음으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높은 주가 된 거예요. 한마디로 시민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이죠. 시민들은 자긍심이 높아지고, 정치인들은 세금 걷자는 말 안하고 생색낼 수 있고, 대단히 좋은 방법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