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소동
권재기
대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밤 10시에? 계속 두드린다. 무서운 생각에 급히 불을 끄고 커튼 사이로 밖을 내다보았다. 갑자기 누가 나를 향해 플래시를 비춘다. 뒷걸음을 치며 떨리는 목소리로 남편을 불렀다. “누가… 문…두드려요….” “나도 들었어.” 하며 아래층으로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갑자기 방 전체가 이상한 빛으로 환해진다. 누군가 사람의 움직임을 보고 방을 향해 불을 쏜 모양이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나도 남편을 따라 내려가다가 다시 올라와 전화기를 들었다. 나는 더 천천히 내려갔다. 비상시에 911을 부를 생각으로.
“Who is it?” 하는 남편의 말에 밖에서 뭐라고 대답한다. 남편이 문을 여는 소리가 난다. 경찰이라고 하며 너의 집 알람이 울려서 ADT(경보장치 회사)의 연락받고 괜찮은지 확인하러 왔다고 한다. 휴…. 떨리던 마음이 조금은 진정된다. 나도 남편 뒤에서 자초지종을 들었다. 알람이 울렸는지 물어보고 남편 이름을 확인한다. 남편은 사이렌이 울린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인물도 괜찮은 젊은 백인 경찰은 직업 때문인지 얼굴이 무서워 보였지만 우리를 안심시키고 떠났다. 당황한 나는 왜 이런 소동이 났나 생각해 보았다. 한가지 짚이는 게 있다.
한 시간 전쯤 나는 부엌을 정리하고 이층으로 올라오면서 알람을 켜 놓고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카톡을 점검하다 “내일 아침 8시에 교회에 오는 대신 오후 4시에 오세요”라는 연락이 온 것을 보았다. 교회에 가져가려고 트렁크에 미리 넣어둔 수박 생각이 났다. 더운 날씨에 차에 오래 두면 나쁠 것 같아 수박 두 덩어리를 다시 집안으로 가져오려고 캄캄한 밖으로 나갔다.
한 덩어리를 들고 오는데 자그마게 들리는 지지직하는 소리가 자동차에서 나는지 아니면 집에서 나는 소리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두 번째 수박을 집으로 가지고 들어오다 갑자기 알람을 켜 놓았던 생각이 나서 뛰어가서 취소했다. 보통은 알람을 해놓고 문을 열면 금방 동네가 떠나갈 듯 큰 소리가 나서 혼비백산한다. 수박을 가져오는데 7~8분은 걸렸을 것인데 유일한 소리는 자그만 지지직거리는 소리였다. 그때는 온 동네가 떠나갈 소리가 나기 직전에 알람을 끈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잊어버렸다. 그런데 경찰에는 연락이 갔으니 무엇인지 우리 집 알람이 제대로 작동이 안 되는 듯하다.
십여 년 전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동안 아침에 알람을 풀지 않고 노인들이 문을 열어 여러 번 놀라서 잠을 깬 적이 있었지만, 오늘 같은 예상치 않던 경찰의 방문은 십년감수한 기분이다. 처음 알람 장치를 설치한 지는 30년이 된다. ADT에서 온 기술자가 우리의 것이 너무 오래된 것이라 새로운 것으로 바꾸기를 추천했다. 우선 문제가 된 현관문을 고친 다음 한번 생각해 보겠다고 대답했다. 30년이나 됐으니 고장이 날 만도 하다. 처음 설치했을 당시 한 달에 $25 내던 것을 지금은 $60, 새것으로 바꾸면 $100가량이 든다니 고쳐가며 쓰다가 새것으로 바꾸자고 남편과 이야기했다.
늦은 밤 소동을 통해 세상에 완전한 것은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라는 속담이 생각난다. 의지하고 믿었던 알람 시스템도 가끔 잘 작동하는지 점검해야겠다. 그 이외에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누가 초인종을 누르면 방문자를 미리 볼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하는 것이라고 남편과 의견을 모았다. 집 앞에 서 있는 사람을 알면 공포에 떠는 대신 우리 자신이 침착하게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사소한 실수로 경찰이 오는 소동이 난 것은 유감스럽지만, 우리의 알람 시스템의 문제점을 알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나로서는 일상의 조그만 일들, 알람과 같은 사소한 그것조차 놓치지 않기 위해 더 정신을 차리고 점검하는 습관을 갖도록 연습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누구든지 저녁에 알람을 켜 놓으면 서로 알리고 무턱대고 문을 열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 문 열어 놓고 자도 아무 일도 없던 옛날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