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복소복 눈이 쌓인 날, 모처럼 소쇄원을 찾는다.
사계절 내내 제 집 드나들 듯 다녔던 곳인데 입장료를 받게 된 후부터 어쩌다 방문하게 된 곳.
메타세쿼이아 길과 더불어 서민들이 편하게 찾는 휴식처를 굳이 입장료를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반감이 일어 발걸음이 뜸했었다.
조선시대 학자 양산보의 민간정원, 자연미와 구도 면에서 조선시대 정원 중에서도 첫손으로 꼽힌단다.
소쇄원은 양산보의 호(號)인 소쇄옹(蘇灑翁)에서 비롯되었으며,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널찍한 주차장에서 내려 바로 앞 도로를 건너면 매표소가 보인다.
성인 1인당 입장료 2,000원을 지불하고 입구로 들어선다.
푸르른 대나무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다.
담장도 한 쪽은 대나무를 엮어 푸르르게, 다른 한쪽은 나뭇가지를 엮어 자연의 향기 물씬 나게 만들어 놓았다.
걷는 길은 하얗게 눈이 덮혀 있고, 양쪽으로는 푸르름 가득한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눈이 와서인지 사람들이 서너명에 불과하다.
대나무 숲을 벗어나 눈에 들어 온 소쇄원의 풍광은 한 폭의 산수화다.
졸졸졸 끊임없이 흘러 내리는 시냇물은 맑디 맑다.
연못엔 살얼음이 얼어 있고 절반쯤 하얀 눈이 살포시 내려앉아 있다.
오두막에서 바라보는 계곡엔 물이 흐르도록 파놓은 나무가 걸쳐져 있고 홈틍 아래로 고드름을 주르륵 매달고 있다.
떨어져 내린 물과 눈이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말라버린 잎들을 둥글둥글 예쁜 얼음꽃으로 만들어 놓았다.
흙과 돌로 쌓은 담벼락에 오곡문, 애양단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그 아래로 투명하고 말간 계곡물이 경쾌하게 흐른다.
뜻이 궁금해 찾아 보니 오곡문의 '오곡'이란 주변의 암반 위에 계류가 之자모양으로 다섯 번을 돌아 흘러 내려간다는 뜻에서 얻어진 이름이란다. 정말 다섯 번을 돌아 흘러 가는 거 맞나? 글쎄 잘 모르겠다.
애양단은 한겨울에도 볕이 많이 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효경(孝經)에 의하면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을 마치 볕이 드는 양이라는 의미에서 효심을 잊지 않기 위하여 담장을 쌓았던 것이란다.
볕이 많이 드는 담장 정도의 뜻만 알고 숨겨져 있는 의미는 모르고 있었는데 작년 추석 무렵 조카들과 함께 엄마 손을 잡고 애양단 길을 걸었을 때 생각이 난다.
제월당 올라가는 길엔 ‘소쇄처사양공지려’라는 글씨가 담벽에 박혀있다.
제월당은 주인이 거처하며 조용히 독서하는 곳으로 제월霽月은 ‘비 갠 뒤 하늘의 상쾌한 달’을 의미한단다.
제월당 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비 갠 뒤 달은 정말 상쾌하려나? 눈 내리는 하늘이 뿌옇다.
뒷마당에 있는 굴뚝엔 이쁘게 눈이 쌓여 있다. 몽글 몽글 연기라도 피워 오르면 좋으련만.
굴뚝마저 멋스럽게 짓는 우리네 조상님들의 솜씨, 어깨가 으쓱해진다.
내려가는 길, 계단에 놓인 대문은 고개 숙여 지나야 할 만큼 낮다.
한복 곱게 차려 입은 여인네가 빼꼼 고개를 내밀 것 같다.
조심조심 눈덮인 돌계단을 지나 '시원한 바람이 부는 집'이란 의미를 지닌 광풍각으로 향한다.
바람이 서늘한 날이면 어김없이 쉬어가던 곳.
당시 사랑방 역할을 하던 광풍각이 처음 지어졌을 때는 ‘계곡 물을 베고 자는 글방’이라는 뜻의 ‘침계문방(枕溪文房)’이라 불리었단다.
어쩜 이리도 멋스러운 이름이란 말인가.
정자 하나 하나에도 그 자리에 딱 어울리는 이름을 붙여주던 조선 선비들의 넘쳐나는 감각과 유유자적함이 빛나 보인다.
광풍각 앞으로는 바람과 함께 계곡이 흐른다.
돌아 오는 길 가둬 놓은 계곡물에서 먹이를 찾아 부지런히 입질하는 청둥오리 두 마리를 만난다. 무척이나 크다. '암컷은 왜 없지' 두리번거리는데 바위랑 딱 닮은 색깔로 암컷 한 마리가 고개를 그러 모으고 주저 앉아 있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 하는 것 같다.
오늘 만난 소쇄원은 청량하고 시원했다.
주변을 깨끗하게 다듬어 한결 정갈하고 개운해 보인다.
입장료를 제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뭐 이럼 아낌없이 지불해야지
산책로도 제법 길게 만들어 놓았다. 따뜻한 날 끝까지 걸어 봐야지.
* PS
오는 길 '제비 오는 날' 카페에 들러 고구마랑 커피 한 잔
내가 좋아하는 불멍을 할 수 있는 곳.
그림 그리는 쥔장이 손맛도 좋다.
카페가 올드한 편이지만 따뜻하게 데워 놓은 의자에 앉아 바깥 바라보며 노닥이는 재미가 꿀맛이다.
첫댓글 눈 내리는 날 사람도 없는 소쇄원에 청승 맞게 혼자 갔었는가 했더니 아니네요.
툇마루 혼자 앉은 사진은 누군가가 찍어준 게 틀림없으니까요. 청둥오리가 찍어줬는가요.
저런 고쿠락에 불 때는 거 완전 내 전공인데,,,당장 달려가 불 때고 싶어요.
저는 언제나 바늘과 실~^^
불멍 불놀이 저도 엄청 좋아하지요.
여기 카페 회원 중에 남편분이 있나요.
남편은 가입하지 않았답니다^^;;;
바늘과 실이라기에 당연히 여기 게실 거라 생각했어요.
14명 중에 누굴까 물어보려고 했어요.
여기 14명은 나만 빼고 거의 까미노님 지인들이죠.
맞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