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것이 새벽이다.
빛 속의 태양과, 어둠 속 달과 별의 성질을 품고 있다. 새벽엔 꽃이 피고 만물의 싹이 움트는 생명의 시간이면서 야행성 포식 동물이 초식동물을 사냥하는 살생의 시간이다. 평화와 전쟁의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는 게 새벽이다. 평화로이 잠자는 새벽에 기습 공격을 가한 하마스와 이스라엘과의 전쟁, 새벽 4시에 남침을 한 한국전쟁(Korean War)이 그렇다.
새벽은 생존하느냐, 도태되느냐의 시험대이다. 하루하루를 어렵게 생활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포장마차 운영자, 서울 남대문, 동대문 시장에 와서 옷을 구매해 가는 지방의 소매상들의 새벽이 그렇다. 새벽의 고요함 속에서 침묵을 깨는 소리가 사찰의 목탁과 교회의 기도에서 나온다. 새벽은 피로를 풀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면서 잠 못 이루는 불면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일하는 자와 수면하는 자의 선택이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떤 이는 그 새벽에 부족한 능력을 위한 공부를 하고, 어떤 이는 24시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번다. 산업계 중에서 3교대 근무자에겐 새벽에 근무 하는 시간이 겹치고 그 외 다른 교대자에겐 자기만의 시간이다. 이는 치열함과 평온함의 복합성을 지닌 ‘마법의 시간대’라고 하겠다.
기업에 다닐 때 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 소위 「7.4 제」라는 틀 안에서 3,650 번의 새벽, 그러니까 10 년이 지나갔다. 그 새벽이란, 강북 창동에서 수원공장에 7시까지 출근하기 위해 컴컴한 겨울밤 4시에 일어나 창동역 근처에서 4시 반에 출발하는 회사 버스에 몸을 싣고 앉자마자 다시 수면을 청하는 시간이었다. 6시 조금 지나 공장에 도착하면 새벽밥 아닌 아침밥을 먹곤 했다. 그때 35년 전의 새벽은 통제와 구속의 것이었고, 지금의 새벽은 자유 의지를 즐기는 것이 되고 있다.
오늘도 내일도 어김없이 새벽을 맞는다. 새벽은 아침을 부르고, 저녁과 한밤중을 데리고 온다. 이어서 그 밤이 다음 날, 전혀 다른 새벽을 잉태한다. 새벽이 낳는 안개의 모호함과 불투명을 아침 햇빛이라는 투명성과 명쾌함이 쫓아버린다. 새벽은 불안과 희망의 교차로이고 고독과 명상이 갈등을 일으키는 시간이다. 자기 변화와 생존의 시간이고 또 자신을 탐색하기 좋은 휴식 시간이다. 새벽이란 껍질을 벗기면 그 속엔 꿈과 희망이 있다. 푸념과 불평과 한숨만을 늘어 놓는 새벽을, 밝은 아침은 외면한다. 변덕스러운 성질을 보이는 존재가 새벽이다.
허약하게 보이는 겁쟁이 같은 새벽이란 놈이 골목길 어둠 속에서 홀로 뽐내고 있을 때, 지평선 넘어 서서히 태양이 얼굴을 드러내면 도망자가 되어 슬그머니 사라진다. 새벽은 미스테리이다.
지구의 자전이 멈추면 어떤 곳은 매일 밤만 오고 한쪽은 낮만 겪게 된다. 어느 곳은 항상 춥게 지내고 어떤 곳은 평생 뜨겁게 지내게 되는 땅으로 나뉜다. 그때의 새벽은 없다. 상상만 해도 삭막하고 지루하고 무서워 지기까지 한다. 당분간은 그런 일이 터지지 않을테니 다행이다.
지구는 태양을 공전하고 23.5 도 기울어져 자전하니 인간에겐 최고의 축복이요. 기적이다. 누가 이렇게 무거운 땅덩어리를 스스로 돌게 했을까. 그때 생기는 새벽이란 현상을 그가 우리에게 선물한 이유는 무엇일까.
(2024년 2월 2일. A4 8매)
첫댓글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새벽의 이중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셨네요. 일찍 쓰신 글 '새벽에 관한 명상록' 덕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새벽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 봅니다. 잘 감상했어요.
지송 김영신 작가님, 화가님,,,글을 읽어주시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니 고맙습니다.ㅎㅎㅎ
영화 scene cut 을 하나하나 바라보듯 생생히 묘사해 가는 지송님 글을 즐거이 읽는 fan 입니다.
'새벽에 관한 명상록' 크게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심도있게 접근하신
선생님의 글에 박수를 보냅니다.
엄 안젤라 작가님^^ 감사드립니다^^
졸필을 읽으시고 댓글을 주시니 큰 기쁨이고 영광입니다. 더욱 노력하라는 격려로 알고 더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오타를 쳤습니다. 접귾-접근 죄송합니다.
별 말씀을 다하시네요. 저도 자주 오타를 치고 탈자도 나와요^^ 고맙습니다^^
야누스의 얼굴같은 새벽 -4번째 문단이 제게는 깊게 들어옵니다.
김하임 선생님의 철학적 사유와 사색이 어떤 내용인지 알 것 같기도 합니다.ㅎㅎㅎ
느낀대로 쓴 보잘 것 없는 글인데...격려를 해주셔서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공부하는 새벽이 있는가 하면, 학비 벌이를 위한 새벽이 있고, 3교대 일터의 새벽이 있는 삶.
각자 처한 환경에서 나름의 새벽이 밝아오고 삶에 희망을 쏟아 붓지요.글에 힘이 팍팍 들어가 있습니다.
첫 단락 세번 째줄 말미에 6.25 사변이라 하셨는데, 수정 의사는 있으신가요? 요즘은 한국전쟁이라 하지 않나요?
안해영 수필가님, 늘 관심을 갖고 읽고 주시고 교정을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