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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장
제 9 장 변화산
[대 지]
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을 예고하심(1)
二. 예수께서 변화하심(2-8)
三. 엘리야가 오는 일에 대한 문답(9-13)
四. 귀신을 내쫓는데 대한 교훈(14-29)
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죽음과 부활에 대해 교훈 하심(30-32)
六. 어린아이와 천국에서 큰 자(33-37)
七. 반대하지 않는 자는 위하는 자이다(38-40)
八. 믿는 소자 하나를 영접하는 자와 실족케 하는 자(41-42)
九. 불구자로 영생을 얻는 것이 온전한 몸으로 지옥 형벌을 받는 것보다 낫다(43-50)
[본문강해]
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을 예고하심(1)
. 9:1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을 가리킨다. 오순절의 성령 강림은 하나님의 나라(복음 운동)가 큰 권능으로 실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제자들이 죽기 전에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하늘 나라 운동(복음 운동)을 강한 능력으로 이루어 나가게 될 것을 가리킨 것이다. 사도행전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했다. 누가복음24:49에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고 했다.
신약시대의 복음 운동은 하나님 나라 운동이며, 성령이 임할 때에 권능으로 이루어져 나간다. 마태복음13장에 천국을 나타낸 일곱 가지 비유가 있는데 그 친국은 하나님 나라 운동, 즉 신약 교회를 가리킨다. 그 운동이 성령 강림으로 인하여 큰 권능으로 이루어져나갈 것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또한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한 것은 예수님이 심판주로 임하신 것이다.
二. 예수께서 변화하심(2-8)
. 9: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높은 산 이스라엘 북방에 있는 해발 9100척의 유다에서 제일 높은 헤르몬산(Hermon)이라고 한다. 예수님이 그 높은 산에 가신목적은 무엇인가?
첫째, 기도하시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은 자주 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기도하셨고, 습관적으로 감람산에 가셔서도 기도하셨다(눅22:39-40). 엘리야도 갈멜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였고, 모세도 호렙산(시내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였다.
둘째, 변화하실 목적에서였다. 누가복음9:28-30에는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었다고 하였다.
세째, 세상을 멀리 떠나 은밀한 곳을 찾기 위해서였다.
네째, 하나님을 앙망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올라가셨다. 즉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하려는 정신으로 올라가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성도는 높고 신령한 하나님의 세계를 사모하고 앙앙하여 그 세계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 그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가까이 찾아가 만나 주신다. 성도가 마음으로 산에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세상을 멀리 떠나 신령한 세계로 높이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시간을 말이 들여 기도해야 한다. 성도가 신령한 세계로 올라가려고 힘을 써야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그 때에 영적 시온산에 올라가게 된다. 그러나 성도가 올라가려는 생각도 하지 않고 힘쓰지 않으면하나님께서도 도와주시지 않는다.
. 9: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예수님이 높은 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실 때에 변화되었다. 이 변화는 속에서부터 이루어진 것이 외부에까지 나타난 것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항상 심령이 깨어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며, 하나남 안에서 성령으로 기뻐하고, 하늘 나라의 영광에 참여하고 있었다.
옷이 광채가 나며 예수님의 심령이 변화되니 옷까지 빛나 보였다. 또, 땅까지 빛나고 아름답게 보였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의 영광 속에서 살으셨으나 여기에서만 특별히 변화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 계시로서 성도에게 변화된 세계를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다. 스데반이 예수님을 위하여 돌에 맞아 죽기까지 순종할 때에 심령이 변화되고, 기쁨이 충만한 하나님의 역사가 속에서부터 외부에까지 나타나 얼굴이 천사와 같이 되었다. 이것이 성도의 변화이다. 믿는 사람이 예수를 잘 믿어 고 심령이 변화되면 얼굴까지도 변화되며 의복이나 그 거처도 아름다와 보인다.
. 9: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저희에게 나타나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거늘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세 제자들에게 보였다. 그 말씀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장차 예루살렘에서 별세할 일이었다(눅9:31). 변화된 자리에는 변화한 사람만 참여했다. 엘리야는 죽지 아니하고 승천한 자이며, 모세는 육신이 죽어 장사되었으나 두 사람이 모두 변화되어 나타났다. 모세와 엘리야가 왜 나타났을까?
모세는 율법의 대표로,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로 왔다. 모세가 오경(율법)을 기록하였으므로 율법의 대표이며, 엘리야는 선지자의대표이다.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 성경 전체를 의미한다. 구약 성경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구속이다. 예수님은 모세 오경과 선지서에 예언된 대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속죄의 제물이 되어 주실 것을 계시해 주기 위하여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이다.
또 모세는 예수를 믿고 죽은 성도가 주님 재림시에 부활할 것을 예표하는 것이고, 엘리야는 살아서 믿는 성도가 주님 재림 시에 변화될 것을 예표한다고 하는 해석도 있다.
. 9: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누가복음9:32-33에는 베드로가 곤하여 졸다가 갑자기 눈을 떠서 변화의 세계를 볼 때에 너무 당황해서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라고 하였다. 베드로는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모르고 실수한 것이다. 기도하기 위해 예수님을 따라 산에 갔던 제자들이 비록 졸기는 하였으나 큰 은혜를 받았다. 기도하기 위해 힘쓰는 성도는 기도 중에 연약하여 졸다가도 은혜를 받는 때가 있다. 기도하다가 졸더라도 기도하지 않은 것보다 훨씬 유익이 있다. 제자들이 졸지 않았으면 물론 더 큰 은혜를 받았을 것이다.
베드로는 그 변화의 세계가 너무 좋아서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라고 하였다. 그러나 초막 셋을 짓자고 말한 것은 큰 실수를 범한 것이었다. 그 이유는,
①예수님이 초막에 계셔야 할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오셔서 구원 운동을 하시고 속죄 제물이 되어야 할 분이시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인간이 만든 초막집에다 모시려고 한 베드로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사람이 만들어 놓은 어떤 장소에 머물러 계셔야 할 예수님이 아니시다. 예수님은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어디서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그 사람에게 같이 하신다. 그러므로 인위적이고 제도적인 제한된 테두리에 예수님을 모시겠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수님을 예배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복종하고 따라가야 한다.
②모세와 엘리야를 예수님과 동등으로 취급하였기 때문이다.
③임시로 보여 준 변화의 세계를 영원히 붙들어 두려고 했기 때문이다.
④자기의 사명, 즉 주님을 증거하고 구속 운동을 해야 할 것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⑤산 아래에 있는 아홉 제자와 또 불쌍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 9:6 이는 저희가 심히 무서워하므로 저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알지 못함이더라
심히 무서워하므로 부족한 인간은 지극히 엄위하신 하나님이 임재(臨在) 하실 때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사도 요한도 밧모섬에서 예수님의 성상(聖像)을 발견할 때에 무서워서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와 같이 되었다(계1:17).
무슨 말을 할는지 알지 못함이더라 변화산에 나타난 영광스러운 세계와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위엄을 볼 때에 제자들은 자신들이 너무 미천하고 부족함을 발견하고 감히 무슨 말을 할는지 알지 못하였다.
. 9:7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구름 마태복음17:5에는 빛난 구름이라고 했다. 이것은 영광의 구름이요 하나님의 임재를 가리키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이니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그 아들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것을 모두 소유했고, 그것을 또 우리에게 주신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변화산의 영광을 붙잡아 두려고 하거나 모세와 엘리야를 모시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만 들으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은 독생자의 영광이 충만하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므로 그 말씀을 순종해야 친국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고 예수님을 영원히 모실 수 있다.
. 9: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이에 변화의 현상도 사라지고, 모세도 엘리야도 보이지 않고 오직 예수님만 남았다. 성도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 그 예수님만 따라가야 바른 신앙이 된다.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이 아무리 좋게 보여도 그것을 붙잡으면 신앙이 탈선된다.
三. 엘리야가 오는 일에 대한 문답(9-13)
. 9:9 저희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계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예수께서 메시아직을 완성하려면 반드시 십자가와 부활을 통과하여야 된다. 완성되기 전에는 숨기는 것이 그 일을 이루는데 유리하고, 또 완성된 다음에 공적으로 전하는 것이 원칙이다.
. 9:10 저희가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제자들은 아직 부활에 대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는 진리와 앞으로 이루어질 것을 미리 말씀해 주신 것은 그 일이 이를 때에 믿게 하려 함이었다(요14:29). 그러므로 우리도 성경 말씀 중에 깨닫지 못하는 말씀이 있더라도 그대로 받아야 되고 그대로 믿어야 된다. 그러면 그 사실이 이루어질 때에 깨닫게 될 것이다.
. 9:11-12 이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제자들은 변화산에서 엘리야가 나타난 것을 보고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된다고 하던 말이 생각나서 이같이 예수님께 물어 본 것이다. 서기관들이 말라기4:5-6을 가지고 엘리야가 먼저와야 그리스도가 온다고 가르쳤으며 그 엘리야가 아직 오지 않았으니 그리스도도 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거기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두 가지로 답변하셨다. ① 엘리야가 과연 벌써 와서 회개 운동을 일으켜 모든 것을 회복하여 그리스도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② 그리스도가 이미 와 있다. 이사야53:1 이하에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였다. 그리스도는 그 성경대로 고난을 받아야 될 것이다. 엘리야가 왔다는 것은 세례요한을 가리킨다. 마태복음17:13에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고 했다.
엘리야가 온다는 것은 ① 엘리야와 같은 역할(役割)을 하는 사람을 보낸다는 것이요 ②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온다는 것이요(눅1:17참조) ③ 엘리야와 같이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백성들 간에 윤리를 바로 세운다는 것이요 ④ 죄를 미워하여 회개하게 하고 거짓 선지자의 미혹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회복한다는 것은 말라기4:5에 예언된 말씀대로 엘리야가 와서 아비들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들에게로 돌이키게 한다는 것이다.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와서 그 일을 다 이루었다.
. 9: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임의로 대우하였다는 것은 엘리야의 역할을 하는 세례 요한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영접하지 않고 임의대로 학대하고 핍박했다는 뜻이다. 어느 시대에나 참 선지자를 임의로 대접하여 핍박하고 배척한다. 이것은 그리스도도 그들에게 핍박과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四. 귀신을 내쫓는데 대한 교훈(14-29)
. 9:14 저희가 이에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둘렀고 서기관들이 더불어 변론하더니
서기관들이 더불어 변론하더니 산아래 있던 아홉 제자들이 서기관들과 더불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 데 대하여 변론하였다(18절). 무슨 변론인지 확실치 않으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는 것을 본 서기관들이 제자들의 무능력한 것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언사에 대한 변론인 것 같다.
. 9:15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심히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고난 당하는 것을 보고 안타깝게 생각하는 무리들은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놀라며 기쁨으로 달려와서 문안했다.
. 9:16-17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 무리 중에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벙어리 귀신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나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 변론의 진상을 물으니 귀신들린 아이를 데리고 온 아버지가 그 진상을 말하였다.
. 9:18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그 아이가 귀신의 역사로 간질환자와 같이 발작을 일으켜 자주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고, 또 귀신이 그 아이를 거꾸러뜨리기도 하고, 거품을 흘리게도 하며, 점점 파리하여 갔다. 귀신은 이와 같이 악독하여 사람에게 많은 해를 주고 죽이려고 한다.
. 9:19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 오라 하시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마태복음17:17에는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했다. 제자들이 믿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는데 무슨 믿음이 없다고 하였을까 ?
① 하나님의 권능이 역사하는 믿음이 없다고 한 것이다.
② 생명 있는 믿음이 없다고 한 것이다. 겨자씨 만한 믿음이라도 생명만 있으면 태산을 명하여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했다(마17:19-20).
③ 능력 있는 믿음이 없다고 한 것이다. 하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전4:20).
④ 마귀를 이기고 승리하는 믿음이 없다고 한 것이다. 예수께서 이미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제자들에게 주셨다(마10:1; 막6:7). 그러나 그들이 그 권능을 사용할 수 있는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은 지 오래되었으므로 믿음이 생겼어야 했다. 히브리서5:12에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라고 했다. 믿은 지 오랜 자가 믿음이 자라나지 못하였으면 책망을 받아야 마땅하다.
. 9: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저가 땅에 엎드러져 굴며 거품을 흘리더라
귀신이 예수님을 보고 그 아이로 하여금 다시 발작을 일으키게 하여 땅에 엎드러져 굴며 거품을 흘리게 했다. 마귀는 예수님께 쫓겨날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발악을 한 것이다. 말세에도 마귀는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삼킬 자를 찾아다닌다(벧전5:8).
. 9:21-22 예수께서 그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하시니 가로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예수께서 그 병의 근원을 물으시매 그 아버지가 근원과 증세를 자세히 보고했다. 우리도 마귀 역사를 근원부터 바로 알고 주님께 직고하여야 한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그 아이의 아버지는 아들의 병이 너무 오래되어 고질화된 것과 예수의 만능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였다.
.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예수님은 만능의 주님을 전적으로 믿지 않는 자를 책망하신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믿음은 만능이라는 뜻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난다(롬10:17). 그러므로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마음으로 순종하고, 몸으로 순종하는 것이다(약2:22). 말씀이 없이 믿사오니 하는 것은 미신이요 맹신이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구상하는 목표(理想)를 세워 놓고 그대로 될 것을 믿고, 계속 기도하며 노력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바른 신앙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될 것을 믿고 순종해 나가는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이 만능으로 도와 주셔서 반드시 그것이 이루어진다. 이것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이루시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큰 일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노력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므로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다. 말씀을 믿고 순종해 나갈 때에 홍해도 갈라지고, 반석에서 물도 나오고, 사자의 입도 봉하고, 풀무불 속에서도 타지 않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믿음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
. 9:24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내가 믿나이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책망을 받을 때에 자기가 전적으로 믿지 못하는 것을 회개하며 이제는 내가 믿나이다 하고 신앙을 고백하였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의 책망을 받는 즉시정신을 차리고 심령이 깨어 믿음에 서게 된 것이다. 에베소서5:13-14에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다. 책망을 받을 때에 빛이 들어오고 심령이 깨어난다. 그러므로 책망 받을 때에 변명만 하고 회개하려고 힘쓰지 않는 자는 바로 설 수가 없다.
다음에 그 아비가 자기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간구 했다. 이것은 예수님이 누구에게나 요구하시는 것이다. 우리도 "내가 전적으로 믿나이다 이 믿음의 길을 걸어가도록 도와주옵소서"하고 간구하며 나아가야 한다. 믿음이 약한 자리에 머물러도 안되고, 이제는 내가 믿으므로 예수님이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다 하여 "스스로 섰다"해도 안 된다. 겸손히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옵소서! "하고 주님만 의뢰하고 주의 능력으로 걸어나가야 한다.
. 9:25-27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오랫동안 사람을 괴롭게 하던 귀신이 주님의 명령 한마디로 쫓겨나게 되었다. 그 귀신이 나갈 때에 최후의 발악을 하여 그 아이를 죽은 것 같이 만들어 놓고 나갔다. 귀신은 언제나 사람을 망하게 하려고 한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어떤 사람은 귀신의 말을 녹음하여 들려준다고 한다. 사람이 귀신의 말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녹음할 수 있겠는가? 원칙적으로 귀신이 사람의 말을 할 수 없다. 또 귀신의 말을 육신의 귀로 들을 수 없다. 본절에서 귀신이 소리 질렀다는 것은 귀신이 그 아이에게 들어가 그 아이를 주장하고 그 아이를 통해서 소리지른 것을 말한다. 즉 그 아이가 귀신이 시키는 대로 말한 것이다.
죽은 것 같이 되어 귀신은 그 아이를 죽이려고 했으나 예수님은 그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켜서 살려 놓았다. 마귀는 언제나 사람을 죽이려는 악한 자요, 예수님은 사람을 살려 내는 분이시다.
. 9:28-29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노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귀신들렸다 나은 아이와 그 아버지가 돌아가고, 그때 모여서 떠들석하던 사람도 다 돌아간 다음 예수님이 조용히 열 두 제자를 데리시고 집에 들어가셨다. 그때 제자들이 자기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를 진지하게 물어 보았다. 이것은 자기들의 결함이 어디 있는지, 또 무엇을 하여야 되겠는지 배우고자 하며 물어 본 것이다. 이렇게 문제의 원인을 깨달아 고치려고 하는 성도는 희망이 있다. 그때 예수님이
① 기도하지 않아서 쫓아내지 못했다고 가르쳐 주셨다. 기도해야만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는다(행1:8, 눅24:49). 기도를 많이 하지 않으면 능력이 떠나고 점점 약해져서 마귀를 이기지 못한다.
②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19절). 제자들은 믿음이 없으므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다. 산 믿음, 능력 있는 믿음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19절 해석참조),
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죽음과 부활에 대해 교훈 하심(30-32)
. 9:30 그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예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와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시고, 갈릴리 지방으로 지나오실 때에 이렇게 은밀히 행하신 것은 제자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가르치기 위한 목적이었다. 예수께서 공개적으로 많은 사람을 가르치시기도 하고, 특별히 제자들만 가르치실 때도 있었다. 예수께서 많은 사람이 모일 때는 표적과 능력을 행하며, 비유로 가르치고 조용한 때는 제자들에게 그 뜻을 풀어 가르치시곤 하였다(마13:11).
. 9:31-32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죽은지 삼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연고더라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무서워하더라
그 때 예수님이 가르치신 내용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것이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가르칠 수 없다. 마가복음8:31에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허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라고 했다. 본절에서는 두 번째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말씀이다. 그러나 제자들이 그 중대한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직 믿음이 어리기 때문에 이 중대한 진리를 깨달을 만한 정도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그 진리를 말해 주신 것은 그것을 미리 알게 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에 실족하지 아니하고 그 말씀에 서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이 지금은 깨닫지 못하나, 때가 오면 깨닫게 될 것이므로 예수님이 소망 가운데 계속 가르치신 것이다.
六. 어린아이와 천국에서 큰 자(33-37)
. 9: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노중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집에 계실새 이 집은 예수님의 집이다.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가버나움으로 이사하여 그곳에 예수님의 집이 있었던 것 같다.
노중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제자들이 노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을 한 것을 예수님이 아시고 그들을 가르쳐 바로 세우기 위해서 이렇게 물으신 것이다.
. 9:34 저희가 잠잠하니 이는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제자들이 노중에서 누가 크냐 하고 서로 다투었으므로 부끄러워 답변하지 못하였다. 서로 높아지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부끄러 운 일이다.
. 9:35 예수께서 앉으사 열 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뭇사람의 끝이 되며 사람들은 보통 끝이 되기를 싫어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끝이 되어야 첫째가 된다는 것이다. 누가복음16:15에는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칭찬하고 높여 주면 교만해져서 믿음에서 떨어지기 쉽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벧전5:5).
그러므로 가장 낮은 자리(끝자리)에 처하여 사람들에게 묻혀 살며, 나다나엘과 같이 은밀히 기도 생활을 하며 하나님과 교통하는 성도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사람이 된다.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며 종살이하는 자가 하늘 나라에서 큰 자이다. 세상에서 제일 많이 섬기고 봉사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만대 만민의 모든 택한 백성을 목욕시켜 정하게 해주시고(그리스도의 피로 중생 시켜 주심), 발을 씻어 주셨다(회개시켜 정결케 해주는 일). 그러므로 예수님이 천국에서 제일 크고 존귀한 분이시다. 세상 사람들은 서로 권세를 잡으려 하고, 임의로 남을 주관하고, 남을 누르고 올라가려고 한다(마20:25).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세상 나라와 반대로 낮아져서 섬기는 종이 되어야 큰 자가 되고 으뜸이 된다.
. 9:36-37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마태복음18:2-4에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 이가 친국에서 큰 자니라"고 했다. 왜 어린아이와 같은 자라야 친국에 들어가고 큰 자가 되는가? 어린아이는 자기를 낮추고 순진하여 젖을 사모하며(벧전2:2), 말씀을 전적으로 잘 받아들이고 그대로 믿는다. 천국 복음에 대해서 이렇게 하는 자가 친국을 소유하게 되고, 큰 자가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성도를 영접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그 안에 계시고 말씀의 생명의 역사가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천국을 소유한 자를 영접하는 자는 친국을 영접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있는 자를 영접하는 자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다.
七. 반대하지 않는 자는 위하는 자이다(38-40)
. 9:38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자는 예수를 믿는 자였다. 그러나 제자들과 같이 예수님을 따라다니지 않았다. 요한은 그 사람이 자기들과 같이 다니지 않는다고 하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 내쫓는 것을 금하였다.
. 9:39 예수께서 가라사대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그가 제자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를 통하여 어느 정도주의 이름이 전파되어 나가고, 예수님을 비방하지 않고 측면에서 협조하기 때문에 구원 운동에 유익하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금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열 두 제자에게 맡겨 주신 사명과 일은 특별한 것으로 그가 행하는 것과 같지 않음을 명심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복음 사역은 원래 열 두 제자를 통해서 이루어 나가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한 단체, 한 교파에 있지 않는 자라도 신앙만 같으면 배척하지 말고 서로 인정해 주는 것이 옳다.
. 9: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진리 운동에 대하여 찬성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며, 찬성도 하지 않고 반대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반대하지 않는 사람들은 진리 운동을 위하는 자이다. 또 비진리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는 자는 그 비진리 운동을 도와주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 성도가 성경과 반대되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반대해야 된다.
八. 믿는 소자 하나를 영접하는 자와 실족케 하는 자(41-42)
. 9:41 누구든지 너희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가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물 한 그릇만큼이라도 도와주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반드시 상급을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운동, 진리 운동에 물 한 그릇이라도 도와주는 자리에서 있어야 복을 받는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받들어 도와주었고, 사렙다 과부는 엘리야를 공궤하며 도와주었다. 또 수넴 여인은 엘리사를 공궤하여 도와주었으므로 하나님께 많은 은혜와 복을 받았다. 우리도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도와주는 위치에 서 있어야 복을 받는다.
. 9: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
윗절과 반대로 어린 아이 하나라도 실족케 하고 손해를 주면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 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걸이 낫다고 했다. 성도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실족케 하고, 그 신앙에 조금이라도 손해를 주면 그 죄가 크고, 큰 벌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금이라도 구원 운동에 손해를 주지 말고 냉수 한 그릇이라도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세상도, 정욕도, 재산도, 건강도, 청춘도 다 지나가지만 주를 위해서 도와 준 것은 그것이 지극히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하늘 나라에서 반드시 상급을 받게 된다. 고린도전서15:58에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했다. 이것은 주안에서 주를 위하여 수고한 것은 전부 하늘 나라에 남아있으므로 힘써 주를 위해 수고한 것만큼 상급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 다.
九. 불구자로 영생을 얻는 것이 온전한 몸으로 지옥 형벌을 받는 것보다 낫다(43-50)
. 9:43-47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없음)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없음)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이것은 실제로 손, 발을 찍어 버리거나 눈을 빼어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이 말씀은 손과 같이 귀하고, 발과 같이 필요하고, 눈과 같이 요긴한 것들이 라도 범죄케 찰 때에 그것들을 끊어 버리라는 것이다. 자기에게 없어서 안될 사람이나 재물이나 사업체나 지위나 명예나 직장이라도 그것으로 인하여 신앙의 길을 걷지 못하게 되고 범죄케 될 때에는 그것을 단호히 끊어 버려야 한다. 그러나 그것들을 잘라 버리지 않고도 신앙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을 때는 그것들을 하나님의 일에 이용하는 것이 좋다. 그것들 때문에 성도가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생명 길을 걷지 못할 경우에만 단호히 그것들을 끊어 버리고 말씀을 지키라는 것이다. 물 속에 사는 게는 사람에게 발 하나를 붙잡히면 스스로 그 발을 끊어 버리고 도망간다. 도마뱀도 꼬리가 붙들리면 꼬리를 스스로 잘라 버리고 도망간다. 성도가 두 눈, 두 손, 두 발이 다 있는 것이 좋으나 그것들이 마귀에게 붙잡혀 생명 길을 걷지'못하고 범죄의 자리로 끌려갈 때는 끊어 버리고 영생 길을 걷는 것이 낫다.
지옥에 던지우는 것은 현재 흑암을 만나 지옥 고통에 빠지고 하나님의 교통이 끊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또 믿지 않는 자는 장차 지옥에 들어간다는 말이다. 요한계시록13:10에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라고 했다. 내가 다른 사람을 붙잡으려고 하면 자기가 붙잡힌다. 불의한 길을 걷게 하는 것들을 잘라 버리지 않으면 거기에 붙잡혀서 영적 생명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고 마귀의 종이 되어 사망과 고통의 길로 간다.
. 9: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거기는 지옥을 가리키며, 영적으로는 고통, 흑암, 또는 하나님과의 교통이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지옥에 구더기가 있는 것이 아니다. 구더기는 추하고 미약한 미물인데 아무리 미약하고 비천한 목숨이라도 일단 지옥에 던지우면 죽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옥은 한번 가면 결코 죽지 않고 세세에 고통만 당하는 곳이다. 세상에서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일단 지옥에 던지우면 구더기와 같이 다 천하고 미약한 생명이 된다. 아무리 유력한 장군들도 적군에게 포로 되어 포로 수용소에 들어가면 다 미천한 죄인으로 취급받는 것과 같다. 세상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자주자라도 지옥에 가면 천하고 미약한 존재에 불과하여 영원토록 꺼지지 않는 불 속에서 고통을 당하게 된다. 그 상태가 얼마나 처참하겠는가 ! 성도가 범죄 할 경우에는 영적으로 혹암을 만나고 고통이 들어오고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지며 각종 징계를 받는다. 그 때에는 비천한 칙지에 빠지고 죽으려고 해도 죽음이 그를 피한다(계9:6).
. 9:49 사람마다 여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불로써 소금 치듯 함 소금 치듯 골고루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 소금 칠 때 한 쪽만 치는 것이 아니고 골고루 다 친다. 그와 같이 지옥에는 고통이 골고루 미친다는 뜻이다. 또 소금에 절여지면 힘을 쓰지 못하고 기운이 빠지는 것처럼 지옥에서 불의 세력에 잡혀서 기운을 쓰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채소 같은 것이 소금에 절여지면 모든 생기가 다 죽고 힘이 없어진다. 지옥에 간 자들도 그 불로 인하여 거의 죽다시피 되나 죽지는 않고 계속 고통만 당하게 된다. 그리하여 구더기와 같이 미천한 생명이 된다.
. 9: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이것은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녹아져서 화목하라는 뜻이다. 과거에는 완악하고 무자비하고 교만하고 고집스러운 자이었으나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에 녹아져서 온유하고 겸손하고 사랑으로 희생 봉사하며 화목하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써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여 화목해야 한다. 화목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뻣뻣한 채소가 소금을 치면 부드러워지듯이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면 자신이 다 죽어지고 겸손히 낮아져서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며 봉사하게 되고 사랑으로 화목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 들어가서 살게 되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어떤 경우에서라도 서로 화목할 수 있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