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여신 신화
김 화 경 / 국문학과
가부장제가 성립되기 이전에 모든 것을 여성이 주도하던 사회가 존재했을 것이라는 가설을 제시한 사람은 19세기 스위스의 법제 사학자이면서 문화 사학자였던 요한 야콥 바흐오펜(Johan Jacob Bachofen)이었다. 그의 모권제 사회 존재 가설은 당시의 사회 여건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획기적인 견해였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이와 같은 가설 정립에 결정적인 단서가 된 것이 그리스 신화였다. 실제로 그는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가이아’나 ‘아프로디테’, ‘아테나’, 데메테르 등과 같은 여신들 위주의 신화로부터 여성들이 지배하던 모권제 사회의 잔영을 찾아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바흐오펜의 가설은 상당한 타당성을 가지는 것 같다. 왜냐하면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먼저 성립된 신의 관념은 대지를 어머니로 생각하는 지모신(地母神)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사냥이 주된 경제 형태였던 구석기시대에도 이미 출산이 생명의 탄생이라는 아날로지로 이런 부(富)는 여성, 즉 어머니가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관념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래서 자연에 대한 의존은 어머니인 자연에의 숭배라는 관념을 낳았고, 자연의 부를 가져다주는 자로서의 대지모신(Great Mother)에 대한 신앙이 종교의 중심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존재했던 이러한 지모신 사상을 반영하는 것이 이른바 비너스상이다. 이것은 커다란 유방이 아래로 처져 있고, 굵은 허리에 배는 불룩하게 나와 있으며, 엉덩이가 아주 잘 발달하여 있다. 이와 같은 모습은 단순한 인간의 어머니가 아니라, 많은 아이를 출산한 뒤에 젖으로 아이들을 길러낸 어머니, 곧 여신을 표현했을 것으로 상정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함경북도 청진시 농포동 유적과 옹기군 서포항 유적에서 발견된 소조(塑造) 인물상이 이런 비너스상과 유사한 형태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들 소조 인물상은 신석기시대에 농경이 시작되고 난 다음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지모신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창출된 것이 출현 신화이다. 이것은 인간이 대지로부터 나왔다고 하는 신화로, 세 성씨의 시조가 모흥혈(毛興穴)에서 솟아났다고 하는 제주도의 삼성 시조 이야기가 기록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대지를 이처럼 어머니로 생각하는 지모신 사상은 산업화가 이루어지기 이전까지 한반도에서 널리 존속되었던 것 같다. 이런 추정은 시골에서 아기를 낳으면 땅에다 파는 ’아이 팔기‘ 민속에 근거를 두고 있다. 여기에서 ‘팔다’라는 말은 ‘맡기다’라는 의미였으며, 이 민속은 대지로 하여금 아기가 무사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보호해달라는 신화적 사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또 이와 같은 지모신 사상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제주도에서 구전되는 설문대 할망 ― 우리 말에서 ‘할망’이나 ‘할매’는 ‘신’을 의미한다고 한다. ― 신화이다. 이 유형의 신화에서는 “그녀가 한강의 흙과 모래를 한 움큼 가지고 와서 제주도를 만들었다.”고 하거나, 특정 지역의 오름 ― 한 번의 분화 활동으로 붕긋하게 솟아오른 화산 ― 이 만들어진 것에 얽힌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근래에 “설문대 할망이 하늘과 땅을 떼어놓았다.”라고 하는 자료가 조사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이것은 창세 신화적 성격을 지니는 것이어서, 한국의 신화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인정받는다. 왜냐하면, 3세기에 중국의 서정(徐整)이 기록한 <<삼오력기(三五曆紀)>>에 실린 창세 신화의 주인공이 남성인 반고(盤古)였는 데 반해, 제주도의 이 신화에서는 그 주체가 여신이었으므로 구전되는 후자가 문자로 정착된 전자보다 시대적으로 더 앞선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문제는 앞으로 좀 더 연구를 천착하여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밝혀둔다.
어쨌든 여신 신화가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장구한 가부장제 사회를 거치는 사이에 많은 부분이 변형되고 왜곡되었다는 것은 많은 신화학자가 다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두루 알다시피 서구 사회에서는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불행과 죽음이 여성으로 인해서 생겨났다고 하는 신화가 남아 있다. 이런 신화의 예가 바로 판도라와 이브에 연루된 이야기이다. 전자는 제우스가 남자들에게 하사한 최초의 여성인 판도라가 금단의 항아리 뚜껑을 열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 불행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후자는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이브가 남편을 유혹하여 무화과의 열매를 따 먹었기 때문에 인류가 낙원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들 이야기는 남성들에 의해서 변형된 여신 신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들로, 인간 세상에 비극적인 불행이나 죽음을 초래한 장본인을 다 같이 여성으로 표현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는 이렇게 죽음과 불행이 여성들로 말미암아 생겨났다고 하는 여신 신화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단지 함경도의 ‘창세가’에서 “하늘에서 금쟁반에 떨어진 다섯 벌레는 사나이가 되고, 은쟁반에 떨어진 다섯 벌레는 계집애가 되었다.”라고 하여, 남녀를 차별하는 이야기가 남아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여신의 권위가 실추되고 비하된 흔적의 자료들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와 같은 신화의 한 예가 바로 바리공주 ― 바리공주를 ’바리데기‘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데기’란 어떤 일을 맡아서 하는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접미사이기 때문에 적당한 명칭이라고 보기 어렵다. ― 신화이다. 이것은 “일곱 번째 딸로 태어나서 버려졌던 공주가 무장승이 사는 저승 세계에 가서 약수를 구해와서 죽어가는 부모를 살려내고 무당의 조상이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이 신화에서는 바리공주가 험난하기 그지없는 저승을 다녀오지 않으면 안 되었고, 또 천민(賤民)으로 천시되던 무당들의 조상인 무조신(巫祖神)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여신의 권능이 실추되었음을 나타낸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한다.
또 이 신화에서의 바리공주는 일곱 번째 공주로 태어났기 때문에, 버려진 공주라는 의미의 이름이 붙여졌다. 그리고 그녀 역시 무장승과 혼인하여 일곱 명의 아들을 낳았다. 원래 일곱(7)이란 숫자는 우주와 인간을 포함하는 대우주(大宇宙)를 나타내는 것으로 완전과 전체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따라서 바리공주는 그녀 어머니의 다산(多産)과 풍요(豐饒) 신직(神職)을 이어받은 지모신의 성격을 지녔던 것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렇게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던 지모신은 각 가정의 자손 번창을 담당하는 삼신 할망으로 정착하였다. 삼신 할망 신화는 육지에서는 ‘제석 본풀이’의 ‘당금아기’ 이야기로, 제주도에서는 ‘삼신 할망 본풀이’로 전승되고 있다. 전자는 “아홉 아들의 출산 뒤에 태어난 당금아기가 혼자 집을 지키는데 찾아온 중의 감응으로 태어난 3형제는 삼불제석(三佛帝釋)이 되고 그녀는 삼신 할망이 되었다.”라는 것이고, 후자는 “임신하게 하는 방법만을 알고 해산하는 방법을 모르는 동해 용왕의 따님 아기와 명진국의 따님 아기가 꽃피우기 경쟁을 통해서 승리한 후자가 이승의 삼신 할망이 되고, 패배한 전자는 저승에서 아이들의 영혼을 차지하는 저승 할망이 되었다.”라는 것이다.
이들 신화에서도 포태(胞胎)와 출산을 담당하는 삼신이 되었다고 하는 것도 역시 지모신 기능의 확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의 여신 신화들은 지모신의 성격이 다변화되었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그리고 바리공주나 삼신 할망에 얽힌 자료가 무당(심방)이라고 하는 특수 계층에 의해서 전해져 왔다는 것도 여신 신화가 가진 특징의 하나로 지적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둔다.
첫댓글 교수님 감사합니다. 평생 신화를 연구해오신 교수님께서, '지모신,ㅡ여성신'에 대해 소개해 주시니 요즘 세상 흘러감을 아울러 보라는 말씀 같습니다.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명예교수회는 사회를 여러 면에서 종합적으로 본다는 기회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