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시집『안개여, 안개꽃이여』
어둠과 안개의 현실적 위상
兪 昌 根
(문학평론가. 명지전문대 교수)
金松培 시인의 시에 표출되는 어둠과 안개는 한 마디로 말해서 현실적 위상으로 분장하고 있다.
현대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식이나 그 암울한 내면의 현실적 갈등을 밑바탕에 깔면서 그 상황의 탈피나 도피에서가 아니라 시인 자신이 깊숙이 함몰되면서 새로운 정화작용의 방편을 구조적으로 유도하는 인간 끈기의 진면목을 엿보게 한다.
그것은 金松培 시인의 첫 시집 『서울허수아비의 手話』의 짙은 ‘흔들림’으로 승화된 또 다른 진실의 갈구에 대한 해답으로 이 시집 『안개여, 안개꽃이여』에서 명징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실로, 어둠의 상황을 절실한 호소력이 깃들인 절망으로 설정하고 金松培 시인 자신의 삶을 조명하면서 어둠은 곧 절망이라는 등가적 인식의 출발로써, 수록된 60여 편의 전 시편에서 고르게 투영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게 한다.
안개 또한 미로에서 자칫 판연(判然)하기 어려운 인간의 존재 가치들이 모호한 상태에 안주하는 것은 바로 어둠과 함께 ‘두려움’이라는 정신적 감응 저쪽의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동시대의 고뇌를 자신의 고뇌로 심도 있게 접근하고 있다.
어찌 이 세상 아픈 것들이 내 마음뿐 이랴마는 눈물 배인 몇 줄의 삶의 부질없이 돌팔매질만 해대는 나의 시는 아무래도 신통치 않음을 되뇌이면서 여전히 안개를 걷어내는 한 사내를 동숭 동 마로니에 그늘에서 만난다.
『안개여, 안개꽃이여』의 <시인의 말>에서 金 시인이 직접 되뇌이는 그의 말을 통해서 확연히 볼 수 있듯이 여기에서 우리는 현실적 삶에 대응하는 보다 깊은 인식의 늪에서 탈출하려는 인간존재의 진실을 염원하게 되고 ‘그리움’의 이상세계를 ‘빛’으로 대치하고 있음에 주목하게 된다.
이러한 모든 상징의 언표는 ‘안개’와 ‘어둠’이 동질성의 구조로서 따로이 해석하거나 이해하기에는 尹石山 교수가 이 시집의 해설에서 지적한 것처럼 상당한 논리적 접근이 시도되어야 하겠으나 필연적으로 그것은 시간의 낭비만 따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어둠=절망(혼돈)’, ‘안개=미로(혼미)’라고 노래하고 있을까. 단순한 현실과 인간의 문명을 내부에서 체계화된 부정적 측면만을 강조한 것도 아니다.
① 가장 어두운 곳에서
잠시 머물렀던 내 영혼이
어릴 적 물들인 놀을 보고 있다.
② 어둠 속을 용케 빠져나간 발걸음들이 서성대는 지금의 지상에는
까맣게 실려나간 그리움들이 하늘에 떠돈다.
①은 「어떤 떨림을 위한 전언」중에서 ②는 「春帖」의 일부분이다. ‘가장 어두운 곳’과 ‘영혼’ ‘놀’등은 혼탁한 단순 현실의 부정적 측면을 뛰어넘은 영원한 소망으로 그 축을 이룬다. ‘어둠 속을 용케 빠져나간 발걸음’이나 ‘까맣게 실려나간 그리움’등은 ‘하늘에 떠’돌면서 미래의 밝은(이는 ‘온화=죽음’일 수도 있음) 햇빛을 조용히 꿈꾸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달맞이꽃」이나 「안개꽃 시대」연작시 등에서 쉽게 감지 할 수 있으며 계속적인 반복을 통해서 ‘달이 뜨면 모두 녹아 흐르도록’ 의미의 확산에 값하고 있다.
가시(可視)거리에서 마주섰을 때
나와 너 사이로
짙은 안개가 깔리고
산을 넘어 무섭게 꽂히는 안개비
안경 유리알에서 멎는다.
이것은 살아 있는 것들이
최후의 햇살을 쬐는
아하, 눈물겨운 모습일까
이제 다가서는 안개비를 피하여
작은 몸뚱아리를 챙기고
천천히 사라져야 할까
넘쳐나는 강물을 보듯
나에게로 투영되는
너의 싸늘한 모습들만
얼룩무늬인 채
감춰두려 한다 안개 속으로...
잠깐 눈물로 태어났다가
서로를 보지 못하는 시대에서
모였다가 흩어질 수밖에 없는
눈먼 나 그리고
안개여 ,안개꽃이여.
--「안개꽃 시대⋅1」전문
이 「안개꽃 시대」 연작 시편들에서 보여주는 시대적 고뇌 속에서는 어쩔 수 없이 모임과 흩어짐의 상반된 모순을 노출시킨 채 ‘가시거리’를 분간 할 수 없는 혼미를 절감하게 되고 그의 주된 목소리 ‘안개여, 안개꽃이여’를 목청 높게 부르고 있다.
이는 그의 시집 표제이기도 하지만 척박한 시대적 현실을 안개나 어둠 속에 파묻으며 잘못 가려진 그림을 지워 나가듯이 새롭고 신선한 이상향을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숙연하게 전개하려 하고 있다.
결국 안개와 안개꽃의 상관성을 혼돈과 혼미로 표징되는 특성은 「안개꽃 시대⋅6」에서 더욱 명확하게 그의 심저에 깔린 가치관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안개 속에서도 항해는 할 수 있을까
영점 몇 이하로 낮아진 시력
여전히 안개비는 뿌리고
누군가 수신호를 보낸다.
퇴색된 추상화에 던지는 우리들의 초점은
희미한 기상도와 표류하는 영혼
어디쯤에서 닻을 내릴까
알 수 없군요.
이승과 저승 사이
끝없는 미궁의 물안개 속에
매우 위험한 항해를 시작하는
이 시대의 고통
찢겨나간 돛폭과 흔들리는 등대 불빛
어쩌면 젖어버린 뱃머리로
떼밀리고 있는 사랑이여
멈춰선 나침판은
아아, 방향 감각이 없는 이 바다에서
나 또는 우리들-.
金松培 시인은 「안개꽃 시대」를 16편으로 함축함으로써 미로에서 절망으로 연계하고 두려움(혹은 무서움)을 청정으로 여과시키면서 그리움으로 변해가는 정서적 요소가 현실적 정황을 예리하게 꿰뚫는 해체 작업을 계속함으로써 우리의 긍정적인 삶의 제시를 맛보게 한다.
金松培 시인의 두 번째 시집『안개여, 안개꽃이여』는 그와 같은 정신적 집착에서 거듭 태어나 또다른 그의 세계에서 우리와 새롭게 만날 때 안개와 어둠의 시대적 위상은 더욱 명확한 얼굴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다.(‘88.11.『예술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