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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명품을 만드는 바이오테크놀러지
몽고식품의 욕심을 신의로 실현시킨 쾌거
“세계인의 입맛을 몽고식품에 맞추어라”
▲ 이날 인터뷰는 임직원이 참석하여 더욱 활기찼다.
창원시 팔용동 중소기업공단길을 팔랑팔랑 아기손 같은 벚나무 잎의 손짓을 따라 들어가면 ‘앞서온 100년의 자리에서 새로운 100년을 생각합니다.’란 문구를 따라 덜어가면, 넓은 앞마당 연못가에는 일찍부터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 통통튀어 오를 것만 같은 소녀처럼 가녀리고 명랑한 웃음소리 같은 연등 30여개와 수십종의 바이올렛 꽃들이 처음 보는 객을 두 팔로 끌어안는다.
“환영합니다! 흐터러진 구석없이 꼬장꼬장하게 만들어진 돌우물 속에는 모래위에 잔물결 일듯 하늘을 가득담고 팬지와 연산홍이 자리잡은 계단을 지나면 맑고 호쾌한 음성이 손객을 맞이한다. 이 문으로 과연 몇 명의 객을 들이고 또 내 보냈을까? 손님맞이 인사가 여간 유연하고 살갑지 않다.
몽고간장은 지금으로부터 700여년전 고려 충렬왕 원년(1281년) 몽고군이 고려와 합세하여 려몽연합군을 편성하고 일본군을 정벌코자 합포(현,마산)에 주둔하면서 병사들의 식수를 공급키 위해 거대한 우물을 팠던 바 이 우물이 몽고정(경남문화재 자료 제82호)인 것이다.
이 몽고정 우물은 가뭄과 홍수에도 물이 줄거나 늘지 않았으며, 특히 칼슘함량이 풍부하여 양조공업에는 더할 수 없는 최우량의 수질인 것, 국내 양조공업에는 아주 이상적인 도시로 전국에서 물 좋고 기후 좋기로 이름난 양조공업의 발상지 마산, 특히 몽고정 수류에 위치한 몽고간장은 1세기(창업1905년)동안 오로지 맛좋은 장류 만들기에 전념한 해온 몽고식품이 지난달 4월 20일은 104주년을 맞이했다.
맛이 역사를 빗어낸 것일까? 역사가 맛을 빗어낸 것일까? 본지는 100년을 지내오면서 오로지 몽고장류의 외길을 걸어온 5대 김만식회장을 만나 ‘향후 100년 장맛도 책임’을 주장하는 이유 속에는 분명 신비의 새로운 바이오테크놀러지가 들어 있을 테니가 에둘러 본지가 들어보기로 했다.
▲ 몽고식품 100주년 행사 기념사진. 왼쪽부터 나시모토, 히라이(전 히라이 장유부 자손, 야마다 요우이치, 야마다 사치코, 명예공장장 강암석, 이윤정 부회장, 야마다 데루코, 김만식회장, 김현승 사장, 김현진 부사장, 김경태 실장
Q-몽고간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손꼽히는 향토 기업입니다. 5대가 이어온 기업으로서 자신감이 상당할 것 같습니다.
A-최고 큰 자랑이라고 한다면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문어발식의 경영이 아닌 오직 정도를 걸어 왔으며 그 덕분에 국가적 경제 위기속에서 법정관리 등과 같은 위기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앞으로 이백년, 삼백년까지도 이어지는 전통의 기업이 되기 위해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Q-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A-7살 때의 일입니다. 아버지와 마당에서 운동 중에 갑자기 어느 찝차가 나타나더니 갑자기 아버지가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1940년도 후반 우리나라는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민란전쟁이 한창이었는데 자경단에서 아버지를 친일파로 오인 납치 7일만에 무혐의로 나오셨지만 당시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합니다. 또 운영하던 공장 창고 옆의 학교 교사에 불이나 삽시간에 창고처마에 불이 붙게 된 일이 있었지요. 위급한 상황에서 저는 간장을 동원해 불을 진화했습니다. 당시 마산일대에는 몽고간장은 불도 간장으로 끈다며 지역 이슈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철렁하면서도 한편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 혁신적 자동화 설비를 통해 청결을 유지한다.
Q-미래를 준비하는 젊은이들에게 조언 한 말씀 해주신다면?
A-제가 이런 자리에 오르기 까지 많은 슬픔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뚜기 인생을 조언해 주고 싶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라는 말을 하는데 정말 공감합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항상 두드려야 열리는 법이며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이라는 결과가 찾아오게 되어 있고, 희망을 가지는 사람에게만이 미래가 찾아옵니다.
Q-참 건강하신 것 같습니다. 건강의 비결이 있으시다면
A-건강은 간장으로 지킬 수 있습니다. (웃음) 우리나라에서 나는 식품, 즉 신토불이가 중요합니다. 두부, 찌개, 간장, 젓갈, 김치 등을 먹어야 합니다. 삽겹살이나 소고기 등은 과식하면 성인병의 원인이 되니 수육으로 쌈장, 상추, 배추 등과 함께 먹어야 무병장수 할 수 있습니다. 우동과 국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우동은 면발을 살리기 위해 각종 부산물이 들어가지만 국수는 부산물 없이 자연에 가깝도록 제조합니다. 즉 신토불이를 지향합니다.
Q-향토 기업에 대한 국가적 지원의 아쉬움은 없으신지요?
A-한국전통식품들에는 원래 중소기업 룰이 적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법이 풀리고 대기업들이 물밀듯이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소기업들은 이전투구하고 있지만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성장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이러한 중소기업을 보호해야 하는데 지금은 소기업이 중기업이 되고 중기업이 대기업이 되는 성장과정이 망가져 있는 상태입니다. 국가시책과 법이 점점 중소기업이 설 땅을 좁혀가고 있는 현행 구조는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향후 몽고간장의 더 큰 사업목표가 있으시다면?
A-우리나라 장유 역사를 집결하는 ‘한국 장유 기념관‘을 건립할 계획입니다. 방대한 양의 자료들은 이미 모아온 상태고 이러한 자료와 지식, 노하우들이 후대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이것은 제 이후의 회사 오너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만 간장과 관련된 다른 식품을 개발하여 한국의 모든 전통식품을 대변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저 개인이 아닌 몽고식품 전체의 목표입니다.
Q-남은여생의 개인적인 삶의 목표는?
A-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면 정말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큰 후회는 없습니다. 남은 인생은 지역의 후학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불우한 이웃들을 도와가면서 자유분방하게 살고 싶습니다.
Q-경남여성신문 애독자 분들에게 한 말씀...
A-지금도 내가 어째서 존재하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제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모성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어머니의 자장가 속에서 어머니의 따스한 정을 받으며 자란다면 인생은 분명 올바르게 펼쳐나갈 것입니다. 요즈음의 사회는 정말 어머니의 정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바쁜 사회생활 속에서도 우리 아이들에게 어머니의 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여성으로 거듭나 주시기 바랍니다.
인터뷰를 마친 김만식회장은 지난 ‘몽고식품 100년의 발자취’를 발간한 두툼한 책한권을 기자에게 전해주었다. 이는 한 가업의 역사를 다루긴 했지만, 그 변천과정이 마산의 근현대사와 맞물려 있어 어쩌면 ‘마산경제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듯 하다. 내용은 몽골의 일본 원정부터 시작, 그리고 일본이 지배하던 상권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이어 본격적으로 현 몽고식품의 전신인 ‘야마다장유’가 창업하게 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3.15의거 때엔 시위대가 ‘몽고장유양조장’앞에서 경찰과 대치했던 역사적 장면도 이 책에서 볼 수 있었다.
▲ 2007년, 백만불 수출 달성
마산의 역사와 더불어 세계 30여 나라에 30여 품목을 수출하게 된 현재에 이르기 까지 외길을 지키며 성장을 거듭해온 몽고식품의 과거와 현재,미래가 한권의 책속에 고스란히 담겨졌다. 김만식회장은 발간사에서 “창업 100주년을 맞이해 한국 장류시장의 선두주자로서의 자부심과 한국 장류업계를 이끈 역사의 산 증인으로서 그 생생한 고난과 성장의 발자취를 후대에 남겨 사료적 가치를 뒷받침하고자” 이 책을 발간하게 됐다고 취지를 밝혔다.
회장을 만나본 사람들은 모두 한마디씩 하는 얘기가 있다. 너무도 호쾌한 반면 세계사를 공부한 느낌이 든다는 얘기다. 이는 오로지 몽고장류가 세계로 뻗어나기 위한 그 분의 특출한 CEO전략일 것이다. 세상에 그저 주어지는 것은 결코 없으며 그저 얻어지는 것도 결코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장류의 품질만 생각하고, 대한장류의 최고가 되고자 소비자를 위한 신뢰, 신의의 기업으로 달려왔다.”고 말하는 김 회장은 “국민들의 식생활을 양심적으로 지키며 불량식품을 척결하는 선봉장이 되기 위해 노력한 것이 오늘날의 몽고간장의 역사로서 소비자와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약속은 절대 어기지 않겠습니다.”고 말하는 김만식 회장의 모습에서 100년 전통을 이어가는 대한민국 최고의 전통기업으로서의 자신감이다.
유난히 여행을 좋아하는 김회장은 ‘세상사 마음먹기 달렸다’ 했나. 그의 마음속에 호수와 물고기, 애첩 같은 몽고장류가 들어있으니 세상 어디를 가든, 장맛으로 소꿉놀이 할 수 있는 곳이라면 분명 그에게는 천국일 터이다. 특히 “내 몸에는 피가 아니라 간장이 흐른다”고 말할 정도의 김만식회장 정말 구름 같은 사람이다. 돌아오는 마당 한켠 할머니세대부터 사용하던 장맛 깊은 장독이 100년이 넘는 세월 속에 혼을 불어넣고 소담거리며 길손을 배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