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강 변 기찻길 옆「김유정문학촌」을 가다.
◆ 삼복이 지나도 지칠 줄 모르는 폭염이 맹위를 떨치는 8월 14일 (화) 명문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나 서민의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바탕에 깔고 인간의 본성인 순수한 사랑과 애환을 토속적인 언어로 승화시킨 작품세계를 주유하다 요절한 김 유정의 발자취를 더듬어 “봄 봄”의 무대 춘천시 신동면 실례마을 김 유정 문학촌을 수필가 김 문호 선생과 함께 찾았다.
★ 김유정의 생애 및 작품세계
김유정은 조선 현종의 비 명성왕후의 친정아버지인 김우명의 후손으로 그의 넷째 손자 도택(道澤)이 김유정의 선조이다. 아버지 김 춘식은 자를 윤주(允周)라 했으며 진사시험에 합격해 사마좌임금부주사(司馬座任禁府主事)를 지냈다.
김유정은 1908년 2월 12일(음력 1월 11일)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에서 팔 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으나 어려서 부터 몸이 허약하고 자주 횟배를 앓았다. 또한 말더듬이어서 휘문고보 2학년 때 눌언교정소에서 고치긴 해도 늘 그 일로 과묵했다. 휘문고보를 거쳐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결석 때문에 제적 처분을 받았다. 그때 김유정은 당대의 명창 박녹주에게 열렬히 구애를 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향하여 야학운동을 벌인다. 김유정은 민중들을 사랑하여 명문집안의 자손인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소작인들에게도 존댓말을 하였다고 한다.
1933년 다시 서울로 올라간 김유정은 고향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시작하여, 1933년 처음으로 잡지 <제일선>에 ‘산골나그네’와 <신여성>에 ‘총각과 맹꽁이’를 발표한다. 이어 1935년 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1등 당선되고,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에 가작 입선함으로써 떠오르는 신예작가로 활발히 작품 발표를 하고, 구인회 후기 동인으로 가입한다.
이듬해인 1936년 폐결핵과 치질이 악화되는 등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작품활동을 벌인다. 왕성한 작품 활동만큼이나 그의 병마도 끊임없이 김유정을 괴롭힌다. 생의 마지막 해인 1937년 다섯째 누이 유흥의 집으로 거처를 옮겨 죽는 날까지 펜을 놓지 못한다. 오랜 벗인 안회남에게 편지 쓰기(필승前. 3.18)를 끝으로 1937년 3월 29일(양력) 그 쓸쓸하고 짧았던 삶을 마감한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동백꽃" "봄 봄" "산골 나그네" 등이 있다
그의 사후 1938년 처음으로 삼문사에서 김유정의 단편집 <동백꽃>이 출간되었다.
김유정의 소설은 우직하고 순박한 주인공들 그리고 사건의 의외적인 전개와 엉뚱한 반전 매우 육담적(肉談的)인 속어 비어의 구사 등 탁월한 언어감각으로 1930년대 한국소설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했다. 인간에 대한 훈훈한 사랑을 예술적으로 재미있게 다루고 있다는 묘미가 있다. 많은 사람을 한 끈에 꿸 수 있는 사랑, 그들의 마음과 마음을 서로 따뜻하게 이어주는 사랑을 우리의 전통적인 민중예술의 솜씨로 흥미롭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민중에 대한 사랑에 뿌리를 둔 민중적 성격의 문학이라고 해서 그의 작품들이 한갓 통속적 흥미나 저급한 희극성에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김유정의 소설들은 흔히 인물들의 어리석음이나 무지함이 웃음을 자
아내게 하는 일면에서 그것은 바로 그들 자신의 가난하고 비참한 실제 삶과 이어져 진한 슬픔을 배어나게 하는 해학과 비애를 동반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은 우리 가슴 속에 깊은 감동으로 살아있다.
그의 모습 또한 깊이 각인되어 앞으로도 인간의 삶의 형태가 있는 한 잊히지 않을 것이다.
★ 김유정의 생가
김 유정의 생가는 조부 김익찬이 지었다. 김 익찬은 일제 때 춘전 의병 봉기를 재정 지원 하는 배후 인물로 당시 이마을 대부분의 땅이 그의 소유였다. 집의 내부를 보이지 않게 하고 외부의 위협으로 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하여 □ 형태의 기와집 골격에 당시 헐벗고 못 먹던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지붕을 초가로 올렸다. 지금의 집은 마을주민의 증언과 고증을 거쳐 2002년에 복원되었다.
★ 금병산(錦屛山)과 "실례이야기길"
김유정의 고향이자 작품 배경이 된 실례마을은 마을 전체가 김유정 문학촌이라 할 수 있다.
김유정기념전시관 맞은편 언덕에는 김유정이 움막을 치고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쳤던 야학터가 있고 해발 652m의 금병산 자락아래 둘레길은 "동백꽃"의 배경이며 마을 가운데 잣나무 숲으로 들어서면 소설 "봄 봄"의 실존 인물이었던 봉필영감의 마름집이 있다. 그리고 "산골 나그네" "소낙비" "노다지" "산골" "만무방" "가을" 등의 소설 제목을 무대로 연결한 5.2km 길이의 "실례 이야기 길"이 개설되어 산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작품 속으로 인도한다.
▶ 김유정 문학촌에서 바라본 금병산
느지막하게 김 유정 문학촌에 도착하여 둘러본 2002년 복원된 김 유정 생가 구조는 독특한 초가 □ 집의 넉넉한 칸수가 당시 지방부호의 안위를 염려한 자기 방어 편린을 엿볼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자라나 조실부모하여 내리사랑의 굶주림으로 인한 그늘진 심성과 변화되어 가는 세테에 적응하지 못한 가세의 몰락으로 학업을 중도 포기하고 순수 문학의 세계로 접어들어 도회 서민들의 일그러진 감정의 기복을 붙잡다 물러나서 좀 더 자유로운 실체에 근거한 아린 사랑의 흔적을 그린 작품배경의 현장에서 시간과 더위 양자가 모두 만만치 않아 문학촌 뜰 옆에 있는 유정마을에서 닭갈비로 늦은 점심을 해결한 후 금병산 정상을 돌아오는 산행코스는 포기하고 가까운 "실레이야기길"을 더듬어 가본다.
▶ 금병산 정상으로 가는 갈림길
「 난 갈 테야유, 그동안 사경 쳐내슈 뭐. 」
「 너 사위로 왔지 어디 머슴 살려 왔니? 」
「 그러면 얼찐 성례를 해줘야 안 하지요. 밤낮 부려만 먹고 해 준다, 해준다.......... 」
「 글쎄, 내가 안 하는 거냐, 그년이 안 크니까」하고, 어름어름 담배만 담으면서 늘 하는 소리를 또 늘어놓는다.
〈 "봄 봄" 중에서 〉
「 요담부터 또 그래봐라, 내 자꾸 못 살게 굴 테니. 」
「 그래 그래, 인젠 안 그럴 테야. 」
「 닭 죽은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 」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 하였다. 〈 "동백꽃" 중에서 〉
「 아 얼른 좀 오게유. 」
똥끝이 마르는 듯이 계집은 사내의 손목을 겁겁하 잡아끈다. 병든 몸이라 끌리는 대로 뒤 툭 거리며 거지도 으슥한 산 저편으로 같이 사라진다.
수은빛 같은 물방울을 품으며 물결은 산벽에 부닥뜨린다. 어디선지 지정치 못할 늑대 소리는 이 산 저 산서 와글와글 굴러 내린다. 〈 "산골 나그네"의 마지막 글 〉
▶ "실레 이야기길" 언덕에서 본 유정리 마을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