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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화자의 활용과 주제의 명징성
언제 봄이 왔는가 했더니 벌써 여름이다. 6월인데도 한여름의 기온으로 상승해서 모두들 헉헉거리고 있다. 거기다가 메르스라는 괴질이 와서 온 국민을 긴장하게 하고 있다. 그런 저런 이유로 문학행사들이 취소되거나 연기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러나 지난 3월부터 6월초까지 박목월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는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용인 공원묘원에서 ‘박목월 시 정원’이 그의 묘소에 개장되어 많은 제자와 문하생들이 참석하여 선생을 추모하였으며 고향 경주에서는 목월 생가 복원 1주년기념과 함께 백일장, 시화전, 음악회 등으로 목월 시문학을 기렸다.
언젠가 나는 목월 선생을 생각하면서 시를 썼다. ‘한밤중에 목월 시인을 만났다 / 책장에서 깊은 수면을 털고 / 나와 마주 앉았다 / 천상 어디쯤에서 영혼의 음악 연주하다 / ‘나그네’‘청노루’‘선도화’ 모두 데불고 / 허기진 나에게 수혈을 하고 있었다 / 희움한 새벽녘에야 비로소 / 혈관을 흐르는 장중한 교향곡을 / 조금 눈치챌 수 있었다 / 목월 시인을 만나는 일은 / 언제나 꿈속 선율로 이루어졌다.(「餘白詩 . 57」전문)’- 이 작품은 2006. 3. 23.~26. 동리 . 목월문학기념관 개관 시화전에 출품되어 지금도 경주 동리 . 목월문학관 광장에 시화로 걸려있다.
각설하고 우리는 현대시의 창작에서나 감상에서 그 표현방법을 가장 중시하는 경향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어떤 언어를 조합해서 어떻게 전개했느냐 하는 구체적인 형상화를 살펴보면 그 시인의 창작 의도와 주제를 감지(感知)할 수 있게 된다. 지난 봄호 『시와 수상문학』에서는 많은 작품들이 시적 화자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작품을 완성하고 있어서 상황 설정과 전개 등에서 주제를 명징(明澄)하게 이해할 수 있는 매체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看過)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시적 화자는 문법상의 인칭대명사를 말하는데 주로 ‘나’와 ‘너(혹은 당신)’ 그리고 ‘그(혹은 우리)’ 등으로 시 문장에서 사물과의 대칭에서 상당한 보조기능을 담당하거나 스토리텔링의 시법에서는 직접 실체(實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작품의 중심 체제를 이룩하기도 한다.
빛무리 흘러 번지는 꿈길에
널 그리는 붓질이 덧입혀지면
일어서던 상념들은 허물어져 내리고
해 그린 섬돌에 가지런히 놓이는
한 켤레의 신발
먼 길 휘돌아온 과거를 묻고
무수히 쏟아지는 꽃잎들을
실어 나르는 햇귀가스리엔
하얀 맨발의 내가 산다.
--전미야의 「햇귀가스리」 전문
여기 전미야는 ‘하얀 맨발의 내가 산다.’는 어조에서 알 수 있듯이 화자는 ‘내’가 어떤 시적인 상황에서 결론을 정리하고 있다. 이 ‘나’는 한 사물을 의인화한 경우도 있고 실재하는 시인 자신의 ‘나’일수도 있다. 이 화자는 시에서 말하는 사람을 화자나 퍼소나(petsona)라고 하는데 이는 모든 시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퍼소나라는 말은 배우의 가면을 의미하는 것이다. 가면을 쓴 인물인 퍼소나는 물론 시인 자신이 아니기 때문에 무수한 얼굴과 개성을 가질 수 있다.
시인은 퍼소나를 통해서 수많은 인생과 세계를 폭넓게 조명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시적 화자라고 하는 퍼소나가 작품 속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전미야의 화자는 ‘햇귀가스리’라는 자신의 당호를 소재로 하면서 자신의 명상에서 생동하는 자신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있어서 ‘나’는 당연히 자신을 앞세운 시적 상황을 조명하려는 의식이 펼쳐지고 있다.
이번 호에 발표한 작품 중에서 1인칭 ‘나’를 화자로 한 것은 다음과 같다.
- 그때 그 시절 / 슬픔과 기쁨 / 소식통이 되어 주었던 / 빨간 자전거 / 나의 소년 기 추억(백화정의 「사라진 자전거」중에서)
- 헤어지니 이렇게 / 죽은 것 같은 내 사랑아 / 당신 곁에 있고 싶어서 / 나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김세영의 「덩그러니 난」중에서)
- 새벽녘 / 이슬 미소에 / 촉촉 젖어 내린 사랑 / 내 마음 / 노을빛 속에 / 나는 사 랑할래요(강경규의 「임의 봄날」중에서)
- 무탈하길 갈구하지만 / 나보다 더 / 아플 수도 있겠다 싶어도 / 옆구리 허전하긴 매한가지다. (이옥천의 「군계일학」중에서)
- 아롱아롱 꿈결을 타고 / 머나먼 술바다로 기어이 가 버리고 / 나는 달의 입술이 되었다.(김영희의 「달의 입술」중에서)
- 보랏빛 속살 내밀어 / 내 입술 끌어대고 / 향긋한 꽃물 짜 넣어준다.(안혜란의 「고향길」중에서)
그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상념 속 깊이
외로운 추억들이
별처럼 반짝거린다
잔잔한 호숫가에
그대 기다림에 흐릿해진 마음도
잔잔한 물결처럼
흘러서 가고
항상 세상은
오늘 같은 약속을 남기고
유유히 사라져 가지
들어줄 사람 하나 없는 곳에
무표정한 얼굴로
혼자 바람 맞고 사는 세상
그리움이란 사치로
뜨거운 한 잔의 커피향에 취해
때론 이렇게 회상에 잠긴다.
--정중기의 「회상」전문
여기 정중기는 화자를 ‘그대’라는 2인칭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는 ‘회상’을 통해서 재생하는 ‘그대 기다림’에서 ‘그리움’으로 형상화하는 시법이다. 여기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전미야는 ‘햇귀가스리’라는 외적 사물에서 투영시킨 ‘나’이지만 정중기는 ‘회상’이라는 내적인 관념에서 직접 언급한 ‘그대’라는 점이 다르게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시적 화자의 활용은 그만큼 상황 전개뿐만 아니라 주제의 정립에도 무관하지 않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시인들은 화자를 적절하게 응용함으로써 작품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시법을 대할 수 있게 한다.
이렇게 2인칭 화자를 투영시킨 작품은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다.
- 바다에 가면 / 그곳에도 당신이 있었습니다(박종식의 「그곳에도 당신이 었었습 니다」중에서)
- 몸이 타는 고통의 낮달을 보며 / 그때서야 후닥딱 / 너에게 준 아픔을 깨달았다 (김지향의 「낮달을 보며」중에서)
- 그대는 지금 / 무엇을 붙들려고 그렇게 발버둥을 치고 있나(김지명의 「공수래공 수거」중에서)
그런데 겁도 없이
새까맣게 높고 찬 밤하늘에
팔베개하고 누워 있는 나는 누구냐
생각하면
무서리 내린 밭에 알몸으로 누운 양
등골은 오싹오싹한데
카-톡 카-톡하며 말놀이하자는
너는 또 누구냐
--소재수의 「아파트」중에서
이 작품에서는 소재수는 ‘나는 누구냐’와 ‘너는 또 누구냐’라는 어조와 같이 ‘나’와 ‘너’를 복합적으로 화자를 동원하고 있다. 우리 시법에서는 이처럼 많은 화자들이 동시에 등장해서 하나의 스토리를 만드는 경우도 있어서 화자의 활용은 시 창작에서 불가분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화자를 복합적으로 등장한 작품은 오영수가 작품 「회춘」중에서 ‘세상사는 마음먹기 따라서라니 / 내 이미 그리 마음먹을 줄 알았으면 / 세월아 네월아 / 너는 너대로 가거라 / 나는 나대로 갈 테다’라거나 홍군식이 작품 「란이와 같이 걸은 길」중에서 ‘버드나무 우거진 / 산과 들 / 바람따라 향기로움 풍겨주며 / 나를 영접하는 마음 / 그대의 소박함을 알고 있습니다’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이 심하게 흔들다
구름을 빼앗아 가고
남은 구름끼리 부대끼다
비가 내린다
가족끼리 부대끼고
흩어지고 모이고 헤어지고 만나지 않던가
어디 가족뿐이랴
밤하늘의 빛난 별들이 그렇고
이끼 낀 담장 밑 민들레 홀씨가 그러하듯이
사랑 또한 끈질기게 밀고 당기며
아픔을 주고 그리움만 앙금처럼
남겨주고 떠나지 않던가
인생이 그러하고
삶이 그러하고
세상 이치가 그러하거늘
순리대로 부대끼며 흔들리며
말없이 그리 살리라.
--왕영분의 「부대끼며 흔들리며」전문
이 밖에도 ‘그’라는 3인칭 화자도 있고 ‘그녀’나 ‘아내’, ‘부부’ 그리고 ‘아버지’ 등의 화자도 있다. 그러나 위의 왕영분의 작품에서 보는 바와 같이 화자가 나타나지 않고 뒤에 감춰져 있다. 이러한 시법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시인도 있다. 왜냐하면 인칭대명사로 화자를 설정하면 자칫 그 시인의 내면을 표현하는 독백이 되거나 넋두리가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작품에는 왕영분의「쉬었다 가렴」을 비롯하여 강경규의「숲속 향기」, 이오례의「목련꽃 날다」, 김봉균의 「임진각 3」, 윤영석의「부부」등에서는 그 어조가 노출되지 않고 내면에서 시인의 정서나 사유를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화자의 어설픈 응용보다는 더욱 정감의 주제가 명징해 짐을 알 수 있게 한다.(시와 수상문학 2015. 여름호)
시와 수상문학 2014. 가을호 계간평
장미와 사랑 혹은 자연 사랑
벌써 가을이 완연하다. 가을은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니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니 대내외적으로 풍성한 이미지를 우리들에게 제공한다. 오곡백과가 결실을 이루어 자연이 선물하는 이 지상에는 흥겨운 풍년가가 울려퍼지고 대자연은 내년에 다시 찾아올 봄을 위하여 조용한 명상에 잠긴다. 일찍이 시성 두보(杜甫)는 ‘이슬 치는 가을밤 홀로 거닐면 / 시름에 쌓이는 나그네 마음 / 멀리 배에서는 등불이 새어 오고 / 초생달을 두들기는 다듬이 소리(露下天高秋 氣淸 空山獨夜旅魂驚 疎燈自照孤帆宿 新月猶懸雙仵鳴)’라는 가을밤 정경을 읊었다.
우리의 김남조 시인도 ‘가을은 청징한 거울 같아서 가려진 사실마저 낱낱이 담아낸다. 더하여 가려진 정념이 모두를 비추어 낸다. 때문에 소름 기치도록 진실에의 무섬증이 일어 온다고 할 수 있다’고 청순하면서도 청징한 가을의 관념이 물씬 풍기는 가을의 찬사이다. 지난 호 『시와 수상문학』에서는 꽃을 비롯한 친자연에 관한 이미지가 사랑의 진실을 담고 저마다의 필치로 노래하고 있다.
바람이 부드러운 손길로
꽃잎의 입술을 어루만지자
꽃잎이 입을 열어 소곤소곤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말만
골라서 했다
세상은 금세 향기로 가득 차고
감동의 눈물이 이슬처럼 맺힌다
그 이슬들이 금강석으로 굳더니
은하에 가득하다
저마다 눈을 깜박이며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하라
눈짓한다.
--김창완의 ‘꽃잎이 입을 열어’ 전문
우선 김창완의 경우 꽃잎의 소곤거림에서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하라’라는 ‘눈짓’을 듣는다. 꽃과의 대화에서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말만 / 골라서 했다’는 어조에서 알 수 있듯이 꽃잎이 나(시인 혹은 독자)에게 소곤대는 말에서 ‘세상은 금세 향기로 가득 차고 / 감동의 눈물이 이슬처럼 맺’히고 있다. 이러한 시인과 사물과의 교감은 시에서만 허용하는 화법(話法)이다. 더러는 사물을 의인화해서 화자(話者)들이 서로 대화를 시도하면서 시적 진실을 분사하는 경향은 자주 있었지만, 여기에서처럼 사물(꽃)이 직접 눈짓으로 ‘사랑하라’를 절규하듯이 들려주고 있음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사랑이 깊어
하얀 마음 붉게 물들인 뒤
이 계절 내내 향기를 마셔도
갈증은 가시지 않네
그대의 젖은 눈
빈 가슴에 박혀
상처가 깊을수록
꽃잎은 더욱 붉어 가고
마음의 상처
화농이 짙어져
향기로 토하다 못해
밤마다 가시로 돋아나
내 사랑을 찔러 아프게 하네.
--박일소의 ‘장미’ 전문
박일소의 ‘장미’는 어떠한가. 장미가 붉은 이유는 ‘사랑이 깊어’라는 단정으로 꽃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또한 ‘그대의 젖은 눈 / 빈 가슴에 박혀 / 상처가 깊을수록 / 꽃잎은 더욱 붉어 가고’ 있어서 박일소의 ‘장미’는 사랑에 대한 상처가 짙어질수록 ‘밤마다 가시로 돋아나 / 내 사랑을 찔러 아프게 하’고 있어서 사랑과 그 상처가 서로 대칭을 이루면서 결국 ‘가시’로 전이(轉移)하는 시적 정황(situation)과 그 전개를 이해하게 한다.
울타리에 치렁치렁 매달린 화약방울
붉은 얼굴 맞대고
터뜨린다 터진다 마음 죄더니
멍울진 피멍사이
날카로운 가시 뾰족뾰족
엉덩이 붙이지 못한 새 한 마리
주변을 맴돌다 가고
사랑의 불덩이
장작불보다 뜨겁게 타올라
콧속 자극하는 향기에
오월의 가슴은 경기를 앓는다.
--정영례의 ‘넝쿨장미’ 전문
정영례 역시 이 ‘넝쿨장미’를 통해서 ‘사랑의 불덩이’로 그 향기를 분사하고 있다. 그 향기는 ‘오월의 가슴은 경기를 앓’게 하는 설레임의 요인으로 분화(分化)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장미는 다른 꽃들과 함께 사랑의 원류로 이미지를 제공하여 그 시인의 진실을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장미에는 가시가 많이 있다. ‘핏방울이 지면 / 꽃잎이 먹고 / 푸른 잎을 두르고 / 기진하며는 / 가시마다 살이 묻은 / 꽃이 되리라’는 송 욱의 ‘장미’는 장미와 가시의 불가분성을 노래했는데 정영례 역시 ‘멍울진 피멍사이 / 날카로운 가시 뾰족뾰족’ 돋아 있는 것은 바로 ‘장작불보다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의 불덩이’ 때문이기도 하다.
푸른 잎사귀
줄기마다
날카로운 송곳니
험하게 세운다
붉은 혈
흐르게 하는 꽃
오월의 심장.
--황창순의 ‘장미’ 전문
황창순은 장미를 ‘오월의 심장’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날카로운 송곳니’는 장미의 가시를 표징한다. 대체로 장미에 관한 이미지는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붉은 혈’ 등의 언어는 장미의 꽃말인 정열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계절의 여왕 5월
햇살도 빗겨선
반(半) 십리 장미꽃터널
빨간 장미 지날 때는
뜨거운 사랑을 속삭이고
분홍 장미 지날 때면
영원한 사랑을 다짐하는
연인들의 밀어가 들린다
꽃의 여왕 장미
백만 송이 향기 뿜으니
벌 나비 멀리 가까이서
산 넘고 강 건너 찾아오고
짙푸른 잎 사이로 스민 초록 바람
심중에 고인 시름을 날려 보내니
꽃향에 취한 미소를 담는
셔터소리 그치지 않는구나.
--김양호의 ‘백만 송이 장미터널’ 전문
김양호의 장미는 ‘뜨거운 사랑을 속삭이고’라는 어조에서 알 수 있듯이 청각작인 이미지를 많이 활용하는 특성이 있다. ‘연인들의 밀어가 들린다’거나 ‘꽃향에 취한 미소를 담는 / 셔터소리 그치지 않는’다는 청각(聽覺)이 작품의 전개에 주된 이미지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장미의 주제는 사랑임을 이해할 수 있는데 ‘영원한 사랑을 다짐하는’ 그의 심중(心中)이 내포(內包)된 그의 시적 진실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백만 송이 장미터널’에서는 벌과 나비가 그 향기에 취해서 ‘미소를 담는’ 상황에서 우리는 장미의 진면목을 이해하게 된다.
이 밖에도 친자연적인 작품들(특히 꽃류의 식물)이 많이 게재되었는데 김영미의 ‘씨방의 향연’에서 ‘바람 켜는 꽃잎의 춤사위가 위태롭다 / 꽃 진 자리마다 / 푸른 증언들이 햇살을 퉁기며 / 우주의 묵계를 읽고 있는데 / 꽃잎을 실종시킨 내 문장들은 / 폐경 증후군에 시달린다’는 꽃과 씨방의 애환이 서려 있어서 시적 전개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강경규의 ‘진달래꽃’에서 ‘산에 핀 바람 장단에 / 허리춤 노래하는’ 상황이나 이향재의 ‘제비꽃’에서는 ‘초봄부터 하얀 기도까지 / 손톱만 한 꽃망울 / 피워 올린 그대’라는 의인화가 눈에 띄인다. 또한 임상호도 ‘만개한 꽃잎을 접을 때’에서 ‘가슴속 깊은 곳에 간직했던 고운 향 / 만개한 꽃과 더불어 말없이 천리를 가니 / 그윽한 향기에 취해 너를 예찬한다’는 향기예찬의 율시(律詩)도 꽃과 함께 지향하는 사랑의 하모니임을 알 수 있다.(시와 수상문학 2014. 가을호)
시적 공간에서의 사물 응시(凝視)
이제 바야흐로 여름이다. 올 여름의 날씨는 지난 4월부터 이상기온으로 치솟더니 그 기세가 약간 완만해졌다. 여름이면 더위도 문제이지만, 지루한 장마나 태풍 등이 우리의 삶에 불편을 주기도 한다. 우리의 시인 김광섭은 그의 작품「비 개인 여름 아침」중에서 ‘비가 개인 날 / 맑은 하늘이 못 속에 나려와서 / 여름 아침을 이루었으니 / 녹음이 종이가 되어 / 금붕어가 시를 쓴다’라는 낭만적이며 서정적인 어조를 들려주고 있다.
한편 이어령 교수도 그의 유명한 글 「차 한 잔의 사상」에서 ‘여름은 개방적이다. 닫혀진 창이란 없다. 모든 것이 밖으로 열려진 여름 풍경은 그만큼 외향적이고 양성족이다. .......여름의 숲은 푸른 생명의 색조를 드러낸다. 그리고 그 숲속에는 벌레들의 음향으로 가득 차 있다. 은폐가 없고 침묵이 없는 여름의 자연은 나체처럼 싱싱하다’라는 언지로 여름을 예찬하고 있다.
이 녹음방초(綠陰芳草)의 계절에 청량(淸凉)한 시 한 편을 마주하면 삼복 더위도 시원한 훈풍으로 바뀐다. 지난 봄호에는 많은 계절적 이미지가 부각된 작품을 대할 수가 있어서 세월과 삶의 동화(同化)는 어쩔 수 없는 순리라는 어줍잖은 위안으로 작품을 읽었다.
이번에 중점적으로 읽은 작품들은 시적 공간에서 응시하는 사물과의 연관성에서 추출하는 이미지와 주제는 어떻게 형상화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우리는 시적 소재에서 우선 외적(外的)으로 접할 수 있는 시각적인 접근에서 사물의 속성이나 그 내면에 잠재한 상상적인 진실을 해부하는 시법이 많이 통용되고 있음을 간과(看過)할 수 없었다.
발아래 ‘툭’ 떨어지는
포풀러 잎사귀처럼
내려앉는 무게가 예사롭지 않다
가난한 마음을 꿈꾸며
수 없이 내려놓았던 것들은
여전히 그대로였던가
무리지어 사뿐히 내려앉는
노랑 은행잎들을 보며
심장 한 쪽에 납덩이를 달아 놓은 듯 묵직하다
가을은 또 그렇게
자아의 회초리를 들어
스스로를 견책하는가
비대한 몸집으로 뒤뚱거리는
삶을 돌아보게 한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길.
--이정인의「길 위에서」 전문
우선 이정인은 ‘길’이라는 시적 공간에서 그의 사유는 출발한다. 이 ‘길’이 내포하는 이미지는 대체로 인생의 방향제시나 원대한 희망의 나아갈 향방(向方) 등에서 형상화하는 경우가 많다. 위의 작품에서는 먼저 결론적으로 적시한 ‘비대한 몸집으로 뒤뚱거리는 / 삶을 돌아보게 한다’는 어조가 우리들의 삶과 무관하지 않은 보편적인 사유(思惟)라고 할 수 있지만, ‘자아의 회초리를 들어 / 스스로를 견책하는’ 자신의 삶과 인생에 대해서 성찰하는 시적 진실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이 길이 곧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대미(大尾)를 장식함으로써 그가 탐색하면서 구현하려는 인생관이 심도(深度)있게 현현되고 있어서 우리들의 시 읽기에 더욱 공감을 유로하고 있다.
소백산 허리 휘감고
그리움 세월 삼킨다
산천이 여섯 번 변한
서릿발 삭풍 삭이며
멈춰버린 민족의 시간
짓밟힌 삶의 멍울 실어 온다
어둡고 냉습한 북녘
가슴 절절히 한으로
얼룩져 흐르는
소통의 강이여.
--김정일의「한탄강」 전문
김정일은 ‘한탄강’을 시적 공간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는 그가 체험한 ‘한탄강’의 이미지가 ‘그리움 세월 삼킨’ 현장에서 ‘멈춰버린 민족의 시간’이며 ‘짓밟힌 삶의 멍울’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는 다시 ‘어둡고 냉습한 북녘 / 가슴 절절히 한으로 / 얼룩져 흐르는 / 소통의 강’이라는 애잔한 민족의 한이 녹아 있다.
꽃피는 봄날에는
벌 나비 벗을 삼아
꽃 향에 취하기도 하고
삭풍 이는 겨울날이면
한 길 깊은 눈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무지개 꿈을 좇아
애면글면 넘어온 일gms 한 고개
호젓한 호숫가에 앉아
물비늘 쪼는 오리에게
느림의 미학을 배우고
비온 뒤 계곡에 서서
기쁘게 흐르는 물살에서
빠름의 철학을 깨달으며
태산준령은 넘어 왔다마는
미련만 가칫가칫 뇌리를 스친다.
--김양호의「해질녘 언덕에 서서」 전문
김양호는 ‘해질녘 언덕’이 그가 설정한 시적 공간이다. 그는 ‘허우적거리면서 / 무지개 꿈을 좇아 / 애면글면 넘어온 일gms 한 고개’의 애환이 서려 있다. 이 71년의 연륜이 적시하는 요체는 ‘느림의 미학’이며 ‘빠름의 철학’을 수용하는 세월의 애증(愛憎)이 그의 주제로 승화하고 있다.
우주가 삼켜버린 시간
신(神)이 지워버린 얼굴들 매달고 서 있는
호숫가 노송의 그렁한 눈빛 속에
스스로 출렁이는 물소리 들으며
흥건히 젖은 별을 건진다.
--신인호의「백운호수에서」 중에서
이 ‘백운호수’는 신인호의 시적 공간이다. 그가 백운호수에서 ‘우주가 삼켜버린 시간’과 ‘신(神)이 지워버린 얼굴들’을 응시하고 있다. 그의 심저(心底)에는 서정이 넘치는 이미지를 창출하면서 탐색하는 자연과의 교감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밖에도 김연화의 「눈오는 밤의 연가」 중에서 ‘눈이 소복소복 오는 밤이면 / 아름다운 설경을 화폭에 그려 담아 / 세상 속 밝은 풍광 눈 오는 밤의 연가를 / 차렵처럼 접어서 당신께 띄워 보내고 싶다’라거나 임상섭의 「한탄강변에서」 중에서 ‘협곡 감아 도는 한탄강 / 수면 위로 / 조심스럽게 떠오른 물안개 / 고향 대숲으로 번지는 / 저녁연기 같다’는 어조와 같이 짙은 자연 서정의 정감이 시적 공간에서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또한 신유하의 「반지하 방」 중에서도 ‘매번 좁은 골목을 거쳐야 가는 새벽길 에 / 반지하 방 허름한 주렴발 틈으로 / 희미한 불빛이 정겹다’거나 최홍규의 「하이델베르크성」과「하이델베르크대학교」중에서도 하이델베르크를 방문하고 이를 시적으로 형상화하려는 기행시의 공간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박숙희는 「2월 매화마을에 오르다」에서 ‘빗줄기 속에 젖은 가슴 곰글리며 / 침묵과 강과 나무 하늘 가슴에 품고 / 벌써부터 봄을 그려본다’는 매화마을의 공간에에서 매화의 표정을 탐색하고 있으며 정다운은 삶 자체를 시적 공간으로 설정하는 특성을 읽게하고 있다. ‘우리 가난한 인간은 옷섶을 더욱 여미고 / 힘겨운 삶을 애써 참으며 / 삶의 공간의 무한함에 공허한 웃음이라도 / 웃어 보려는 마음의 여유’라고 실질적인 삶의 현장을 공간으로 하고 있다.
지난 호에서는 ‘재중 조선족 문학’ 특집을 마련하고 시와 수필 각각 세 분의 작품을 수록하였는데 여기서도 이상각의 「묘지에서」중에서 ‘기쁨도 슬픔도 예서 끝났다 / 욕심도 불만도 매장했구나 / 자유와 민주를 아는지 모르는지 / 묘지 천국은 쓸쓸하다’ 그리고 김용준의 「외로운 마을」중에서 ‘텅 빈 집안 장독대엔 / 밤 깊도록 가난을 켜던 귀뚜라미 / 기타를 내려놓고 새 악장 기다린다.’는 정한(情恨)의 어조를 읽을 수 있다.
한편 ‘문학회 순례 / 신안문학회’의 특집에서도 김문철의 「설산에 가면」중에서 ‘살아서 숨을 쉬고 있는 귀천 / 너에게만 가면 아이로 돌아가 / 모든 욕심이 날아가 버린 난 / 거산을 안은 하얀 주인이 된다’거나 김혁식의 「102보충대에서」중에서도 ‘어리광 부리던 시간들 뒤로하고 날 선 깃발을 향해 / 청춘은 짙은 안개 속을 헤치듯 / 차마 덜어지지 않는 발걸음 / 고개를 떨구었다’ 는 어조가 시적 공간에서 다양한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우리의 시법에는 이처럼 시간과 공간의 정점에서 투영하는 이미지나 주제의 창출이 시적 상황 전개나 양질의 작품 창작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시공(時空)의 공감대가 형성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와 수상문학 2014. 여름호)
시적 화자(話者)의 어조(語調)와 그 감도(感度)
이제 봄 기운이 완연하다. 계절의 향훈은 새로운 활력으로 우리들의 심신(心身)을 요동케 하면서 시 창작에도 폭넓은 이미지로 봄(혹은 계절적인 시간성)과 접맥(接脈)시키고 있다. 일찍이 독일의 시인 하이네(h. heine)는 그의 작품「즐거운 봄이 찾아와」에서 ‘즐거운 봄이 찾아와 / 온갖 꽃들이 피어날 때에 / 그 때 내 가슴속에는 / 사랑의 싹이 움트기 시작하였네 // 즐거운 봄이 찾아와 / 온갖 새들이 노래할 때에 / 그리운 사람의 손목을 잡고 // 불타는 이 심정을 호소하였네’라는 서정적인 감성(感性)으로 봄을 노래하고 있다.
또한 우리의 시인 박남수도 그의 작품「봄의 환영(幻影)」에서 ‘복사꽃 피면 복사꽃 내음새가 발갛게 일렁이는 시골에서 / 하품을 하다가 놋방울이 흔들리면 꼬리 한 번 치고 / 황소는 취할 듯이 꽃잎을 먹고 육자배기 한 가락, / 음매--- 얼굴을 쳐들며 들녘이 온통 흔들리는 아지랑이, / 꽃 아지랑이 붉은 저편에 / 시커먼 기동차가 뽀오 지나가는 봄이 있었다’라고 봄의 환희를 상기시키고 있다.
지난 겨울호에서는 ‘다시 읽는 명시’에서 마종기의 「초겨울 주변」과 김요섭의 「어느 겨울의 악수」를 수록하여 겨울 정취를 물씬 풍겨주고 있다. ‘겨울은 맨 먼저 / 혼자 쓸쓸히 / 내 팔장에 오고 // 조용히 바람소리 내고 / 손 바닥에 흘로 내린다’라거나 ‘쏟아지는 / 찬 비 / 겨울은 어두웠다 / 램프가 켜진 헛간 // 무엇을 기다리는가 / 꽃씨들이 잠든 땅이여 / 어느 겨울의 악수’라고 겨울 이미지가 살아 넘치는 작품을 대할 수가 있었다.
대체로 작품 속에서 상황이 전개되거나 주제를 창출하기 위해서 그 작품을 흡인(吸引)시키는 주체가 있는데 이를 우리는 시적 화자(persona)라고 하고 그 화자가 이끌어가면서 사용하는 언어를 어조(tone)라고 해서 시읽기와 주제의 해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화자가 작품의 지향점이나 향방을 제시하고 시인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어떤 어조로 형상화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시정신(poetry)의 범주에서 공감의 영역이 확대하는 좋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내
어린 뒤뜰의
앵두나무 그늘에 서면
아
너무 오래
고향(故鄕)을 잊어온 것 같다.
--최계락의 「봄밤」중에서
너를 보내고
견디다 견디다
마지막 나려앉은
내 가슴 소리다
아,
잎이 지듯
잎들이 지듯
후둑 후둑
--이창호의 「그 소리」중에서
이번 특집 ‘다시 읽는 명시’ 중에서 발췌한 위의 두 작품들에서 알 수 있는 화자 ‘내’ 혹은 ‘너’라는 인칭 대명사에서 나와 너가 작품 전체를 어떤 언어를 통해서 내용을 심화(深化)시키고 있다. 좀더 자세히 보면 ‘내 / 어린 뒤뜰’과 ‘너를 보내고 / 견디다 견디다’라는 상황에서 우리는 거기에 전개되거나 들려주려는 어조를 파악하게 되고 그 내용에서 주제-시인의 정신과 진실-을 이해하게 된다.
부르고 싶고
마음으로 보듬고 싶은 사랑
그러나 당신은
나에게 아픔과 슬픔
그리고 외로움이었습니다
--박종식의 「어느 불행한 시인의 첫사랑」중에서
사랑을 알고 있는 나이에
사랑도 할 줄 모르는
우리는 연약한 미숙아여라
너와 나의 뒤늦은 사랑
가슴에 담지 않고서는 아
이 가을 어찌하란 말이냐.
--이성미의 「가을 사랑 담으리」중에서
그렇다. 이 두 작품에서 구체화시키는 화자는 ‘당신과 나’이며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이다. 이들 화자가 어떤 진실을 적시(摘示)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작품의 흐름과 내용이 무엇을 우리들에게 제공하고 있는가라는 실체를 확인하게 되고 우리들은 그 작품에 흡인되거나 거부하는 두 가지의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사례는 왕영분이 ‘그대 아직도 / 내게서 떠나지 않고 있었구나(「그대 아직도」중에서)’ 또는 ‘오늘도 난 / 너를 닮고 싶어 안달이 난다.(「나무가 되고 싶다」중에서)’라거나 김종임이 ‘내 고향인 것처럼 정이 들까-중략-흔들며 퍼져 나가는 하얀 구름 같은 내 마음(「가을날 하얀 구름」중에서)’ 그리고 ‘나를 벗고 마음 비워 / 생애에 가장 단단한 모습으로 / 그대 가슴 빈 곳 비집고 들어서면(「이 세상 사는 마음」중에서)’과 같이 많은 시인들이 이 화자의 어조를 활용하고 있다.
이처럼 작중 상황은 작품 속에 전개되는 (또는 나타나는) 시적 상황(situation)을 말하는데 이것은 시 읽기에서 무었보다도 작품 속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 화자가 지금 어떤 공간과 시간에 있는가를 파악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소설이나 영화 또는 연극을 감상할 때 우리는 눈앞에 있는 등장 인물이 어떤 사람이며 무엇 때문에 사건과 관련되어 있는가 그의 위치와 주변 상황과 그 상대는 누구인가를 아는 것과 같이 우리 시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먼저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게 된다.
대체로 서정시는 사건이 없고 간단한 장면만 제시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 장면의 모습도 일정한 상황을 이루기 마련이다. 그런데 소설에서는 이 하자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가령 춘향전에서는 춘향이를 비롯해서 이도령, 월매, 향단이, 변사또 등 많은 인물이 등장해서 작중 화자가 표면화하고 있고 이들이 전개하는 사건이나 대화 내용이 작품의 진행과 거기에 내재된 진실을 파악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유명 교수는
성스런 이야기를 하고
여인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남자2는
자꾸만 칭찬을 받아 마시며
콧등을 붉히고
한 여인의 해원(日圓) 값은 무거웠다
--김기진의 「6월 19일에」중에서
여기에서 화자는 ‘유명 교수’와 ‘여인 그리고 ’‘남자2’이다. 이 세 사람이 모여서 시 한 편을 구성하고 있다. 이 외에도 ‘남자3’이 있다. 이들이 벌이는 스토리가 결국 시적 진실을 유로하는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김기진은 작품「송암 선생 어머니」중에서도 ‘어머니는 힘쓰시라 용채 쥐아 주시는 / 송암 선생 건강하시어 / 봄의 완성 보십시오.’라고 ‘송암 선생’과 ‘어머니’를 화자로 설정하여 상황을 전개하면서 작품을 완성시키고 있다.
이 밖에도 강은혜의 작품「장흥계곡」중에서 ‘근데 / 베토벤의 운명을 / 악기도 없이 연주하는 / 너’ 또는 박채선의 작품「인연을 꿈꾸고 싶다」중에서 ‘내 심장속을 외로룸이 파고들어 / 얼룩진 상처가 시련으로 남아 있어도’라고 ‘나’와 ‘너’를 화자로 내세우지만 주응규의 작품「쑥부쟁이」중에서 ‘청순가련한 여인의 / 올곧은 흠모의 정은 / 한결같건만’이나 채 린의 작품「방과 기다림」중에서도 ‘고양이와 두루마리 화장지 숟가락과 입 사이 / 집시여인의 손과 가방 그 가방에 든 숨 쉬는 시어 한 마리’라고 해서 ‘청순가련한 여인’과 ‘고양이’, ‘집시여인’ 등과 같이 인칭 대명사가 아닌 제3자나 ‘고양이’와 같은 동물 등도 시적 화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잊어질까
좀 더 멀어지고 싶어
바닷가로 떠나왔건만
지지리도 못살게 괴롭힌다
잊으면 된다는 걸 왜 모를까마는
그게 그리 쉬운 일인가
머릿속 뇌를 꺼내어
기억 장치를 망가트리면 모를까
까맣게 어둠 깔려
자리에 돌아누워 두 눈 감아도
창문 밖 서성이며
내리는 빗방울처럼 툭툭
창문 두드리며 떠나지 않는 걸.
그러나 박종식의 작품「그리움이라는 것」전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인칭 명사나 특정 인물의 화자가 보이지 않는다. 대체로 화자 없이도 작품의 상황 설정과 전개는 특수한 시적 효과를 제공해 준다.
이처럼 작품 속에 시적 화자가 없고 어조가 보이지 않더라도 작중에서 무언으로 어디서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알고 있다. 대체로 시적 스토리가 아닌 경우에는 ‘나’와 ‘너’ 등의 인칭명사의 화자를 배제하고 순전히 시인의 지향적인 의식의 흐름만으로 창작하면 숨어 있는 어조의 감도는 더욱 명징(明澄)해져서 좋은 작품이라는 요즘의 견해가 지배적이다.(시와 수상문학 2014. 봄호)
시와 수상문학 2013. 겨울 계간평
계절적 향연과 그 이미지의 정취(情趣)
현대시와 계절적 이미지의 투영은 모든 시인들이 즐겨 응용하는 시적 모티프(motif)가 된다. 어떤 사물에 있어서도 시간과 공간 개념 없이는 다양한 이미지의 창출은 많은 난관(難關)에 처한다. 이 모티프는 시를 쓰는 경우 그 표현과 동기가 된 생각이나 사상, 또는 그 생각과 사상 및 이념이라고 하는 것이 결부된 소재를 가리킨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시작과 동기, 시심의 충동이 되는 것으로써 보통 말하고 있는 단순한 소재라든가 제재(題材)라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시인은 모티프를 정리하고 풍부하게 하며 발전시켜서 표현하게 된다. 모티프가 뛰어났느냐 아니냐는 그 대상에 대응하는 시인의 감도(感度)와 인식에 의한 것인데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그 시인의 시 창작상의 체험의 깊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모티프는 소재와 제재 등의 기초적인 것을 포함하면서 주제와 발상과도 깊이 관련되는 시 형성상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노춘래 시인은 그의 작품「시인의 길」전문에서 ‘돌마다 꾹꾹 눌러 쓴 / 시어들의 비명이 / 겨울 바람 들쳐 업고 / 목 메인 걸음으로 / 절규한다 // 시를 사랑하라 / 시를 사랑하라’라는 어조로 ‘겨울 바람’과 시인의 ‘절규’를 모티프로 연관지어 형상화하고 있어서 주목하게 된다.
이 계절적인 향연을 통한 시인들의 시심은 무한하게 펼쳐진다. 지난 가을호에 수록된 계절적인 이미지는 많은 시인들이 단골로 접근하는 소재이며 주제이다.
가을 빗줄기
상처의 눈물일지라도
추풍에 낙엽 찟기는 이 아픔에 비할까
왜바람에 문풍지 소리 음산해도
야밤삼경 추풍에 울어대는 억새
구슬픈 이 소리에 비할까
낙엽 따라 가버린 여심
인생무상 한탄일지라도
애끓는 이 마음에 비할까
생에 무관한 바람은 앞에 서고
덧없는 세월은 뒤에 섰으면
이 가을 지천명에 세속을 마신다.
--유근수의 「무상(無常)」전문
이처럼 유근수는 ‘가을 빗줄기’에서 ‘인생무상’을 감지하는 시적 정황에서 그가 탐색하는 ‘상처의 눈물’을 투영하고 있어서 잠시 숙연해지는 분위기를 느끼게 하고 있다. 이 가을의 이미지는 다양하게 현현되지만, ‘낙엽’에 이르면 어쩐지 고독하거나 ‘무상’에 까지 연관하는 서글픔에 이르게 된다. 그는 ‘덧 없는 세월’과 ‘추풍’과의 상관은 다시 ‘이 가을 지천명의 세속’과 조화를 이루면서 더욱 고적(孤寂)한 상황에서 ‘생’에 관한 깊은 수심(愁心)에 잠기고 있어서 그가 여망하는 시적 주제는 바로 가을의 스산한 정취의 함몰(陷沒)이다. 그러나 그가 표현에서 ‘이 아픔’, ‘이 소리’, ‘이 마음’ 그리고 ‘이 가을’이라고 ‘이’라는 관형사를 매 연마다 붙여서 현재로부터 더욱 가까운 어조로 시적 효과를 표현했으나 사용 빈도수가 잦아서 현대시의 언어 함축에 손상될 우려가 있음을 상기해할 것이다.
들국화 속으로
9월이 숨었다
어느 사랑이 보낸
이별의 자리였을까
코스모스 피어 손 흔들고 있다
먼 하늘바라기의
가을 햇살에 익어버린
해바라기 기다림으로 서 있고
저무는 9월의 햇살이
구월구월 노래 부르며
하루의 모로 비틀며 돌아가고 있다.
--안혜란의 「구월의 빛」전문
안혜란 역시 ‘구월’에서 절감하는 가을의 정취가 ‘들국화’와 ‘코스모스’, ‘해바라기’ 등의 사물로 ‘가을 햇살’과 함께 아늑한 정감으로 현현되고 있다. 여기에서 ‘어느 사랑이 보낸 / 이별의 자리였을까’라는 자문(自問)을 하고 있어서 그가 여망하는 사랑에 대한 여백을 탐색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함께 발표한 「감나무」에서는 ‘한 알의 홍시로 익은 / 사랑 하나’라는 어조로 사랑의 여백을 명민(明敏)하게 조망(眺望)하지만, 동일한 가을 정취가 상반된 그의 이미지로 나타나고 있다.
애초부터
들국화로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오월의 장미로
우아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어느 바람 부는 날
척박한 들판 언저리
우연히 앉게 되었을 뿐입니다
한여름의 갈증
쓰디쓴 혈액은 세포를 돌고
어둠 속 폭우엔 풀숲에 쓰러져 울다가도
아침 햇살에 다시 일어섰습니다
알곡 거둬간 들녘에 오롯이 꽃은 피었는데
스산한 바람에 쇠약한 들플의 신음소리
그곳에 그윽한 향기를 나누어 주는
가냘픈 들국화
이제는 참으로 사랑하고 싶습니다.
--신두업의 「들국화」전문
신두업의 ‘가을’은 기원이나 기도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표현에서 ‘싶지 않았습니다’라거나 ‘싶었습니다’라는 등의 언어는 그의 간절한 여망이 짙게 농축된 이미지가 ‘들국화’라는 사물에서 추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적 진실은 ‘들국화’보다는 ‘오월의 장미로 / 우아하게 살고 싶었’다는 기원은 그가 ‘어느 바람 부는 날 / 척박한 들판 언저리 / 우연하게 앉게 되었을 뿐’이라는 어조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현실적인 고뇌와 갈등이 묵언(黙言)의 메아리로 울려퍼지고 있다. 그는 다시 ‘어둠 속 폭우엔 풀숲에 쓰러져 울다가도 / 아침 햇살에 다시 일어섰’다는 스스로의 진솔한 고백과 같이 현실 생활(real life)에서 절망하는 주변의 행위들을 이제사 극복하고 새로운 ‘향기를 나누어 주는’ 사랑으로 변신하려는 그의 심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깊은 산골짝 계곡에서
속삭이듯 흐르는
물소리를 본다
이끼 낀 바위 틈새
낙엽이 따라 흐르기 싫다며
도리질치는 속 훤히 보이는 물속
돌멩이가 물결에 씻겨 닳아
모래알 되어
금빛으로 반짝이는 가재가 놀고
다람쥐 목 축이는 골짜기
--전홍구의 「백운산 계곡」전문
전홍구의 가을은 ‘백운산 계곡’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는 ‘계곡에서’ 들리는 ‘물소리’를 ‘본다’라는 표현으로 시적인 이미지를 구체화하고 있다. 정갈하고 청순해 보이는(‘속 훤히 보이는 물 속’) 가을 계곡에서 어쩐지 ‘낙엽이 따라 흐르기 싫다’는 ‘도리질’을 보고 있다. 그는 자연 서정을 통해서 한 폭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가재가 놀고’ ‘다람쥐가 목 축이는’ 백운산 골짜기에서 그의 정감은 형상화하고 있어서 가을 정취는 더욱 현장에서 느끼는 생동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 계절에는 ‘시의 날’이니 ‘문화의 날’이니 제약되어진 행사들이 많았다. 특히 회원들이 참여하는 ‘서울문학제’를 비롯해서 다양한 문학행사가 있었으나 문학단체들은 저마다의 실적 위주의 행사로 흐르고 있어서 그 타성에서 좀더 진취적인 발전과 변화를 찾기가 아쉬웠다.
그러나 문협에서 시행했던 ‘문인 육필전’과 ‘광화문 목요 낭독 공감’은 많은 회원들의 공감이 있어서 문인 외에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겨울에도 기온이 급강하한다니까 월동(越冬) 준비 단단히 해야겠다. 마지막으로 필자의 졸시「낙엽--그 행간에서 . 11」을 덧붙여 가을 정취를 부추기면서 이 글을 맺는다. ‘잠시 / 지난 여름 무성하던 내 모습을 접었다 // 찬바람 한 올에 / 아사사 떨리는 몸 움츠린다 // 누가 여기에 / 눈물 노랗게 쌓아 두었을까 // 자폐증을 앓는 이들이 / 줄지어 한숨만 쉬고 있다 // 아마도 흐느낌을 안으로만 삭이는 / 깊은 명상이 시작 되었나보다 // 노란 눈물 황황히 사그라질 때 / 이제사 가을 타는 이유를 알겠다.(시와 수상문학 2014. 겨울호)
2013. 가을호 계간평
화자의 어조에 따라 변화하는 감응
현대시의 표현에는 작중 화자(話者)의 어조에 따라서 독자들의 감응(感應)은 변한다. 그것은 그 시인이 언어를 구사하면서 서술하는 방법의 변화를 청자(聽者)가 예리하게 수용함으로써 그 작품의 주제를 이해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로 서술하는 방법이 일반적인 종결어미로 처리했는가 아니면 의문형으로 종결했는지를 살피는 일이지만, 요즘의 언어적 경향은 화자간의 대화체로 구성하는 작품들도 많이 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대화체의 문장에서는 자칫하면 명령어로 들릴 우려가 있어서 상당한 유의가 필요함을 발견하게 된다. 화자가 청자에게 들려주는 포근하면서도 지적인 내용이 이미지나 상징으로 현현되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이 되겠지만, 시인의 언어의 사용 방법에 의해서 그 감도(感度)는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일직이 T.S. 엘리엇도 시는 근본적으로 언어방법이라고 했다. 언어에 의해서 시인은 그의 사상과 정서는 물론 그의 직각적인 메카니즘을 포착하고 기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한편 I.A. 리처즈는 언어 전달의 총체적 의미 파악을 ‘말뜻’, ‘느낌’, ‘어조(語調)’, ‘의도’의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이는 시 문장에서 한 단어의 뜻이나 한 행, 한 연, 또는 시 전문에 대한 느낌을 이해하고 화자(話者)나 청자(聽者)들의 어조를 통해 작품 속에 내재된 의도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 버혀내어 / 春風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황진이의 님을 그리는 애절한 정감이 총체적 의미로 나타나고 있으나 문장에서 화자가 종결어미(결국 ‘하였다’ 또는 ‘있다’ 는 등)로 마무리하지 않고 자신(화자)이 ‘구뷔구뷔 펴리라’라는 어법으로 소회(所懷)를 밝히고 있다. 이처럼 시의 언어는 리처즈가 말한 네 가지 분류를 모두 충족하면서 미화되고 함축적임을 알 수 있다.
얼어붙은 것은 틀에 가둔 계절만이 아니다
전진하지 못하는 사유들과
관습을 표절한 문장들이다
무리지어 빈 페이지를 달구는
새들 날개 치는 소리
하루치 허공을 채우며
얼어붙은 낱말을 녹인다
동장군 사잇길로
낮게 내려온 하늘이
행간을 더듬어 진을 친다
이런 날
봉합된 밀어들이 복병처럼 터져
나무들은 은밀히 제 키를 불리고
느닷없이 열린 아기 첫소리 같은 시어가
숲의 맥을 짚으며 움트겠지요
벽면액자를 벗어난 봄도
몇 알갱이의 깅게랍 너머 아지랑이를
봉지 속 마른 꽃씨만큼
정원의 치맛단 속으로 밀어넣고 있겠지요
현기증을 앓는 시들이 정립을 위해
스스로 명상의 틀에 갇히는
이렇게 눈물겨운 날에도.
--김영미의 「내 시는 묵언수행 중」 전문
오랜만에 정갈한 한 편의 작품을 대한다. 앞에서 언급한 화자는 작품 제목에서만 ‘내’라는 일인칭으로 거론되었으나 내용 중에는 일절 언급이 없다. 이런 어조는 일단 제목에서 ‘내’라는 화자를 암시했을 뿐이다. 만약 내용 중에서 ‘나는’, ‘나는’하고 화자를 제시했다면 시적 내용이나 주제에서 그만큼 약한 모습으로 현현하게 되어 시적 의미와 진실이 감소하는 모순의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김영미는 그 어법에서도 다양하게 구사하고 있다. ‘아니다’, ‘들이다’, ‘녹인다’, ‘진을 친다’는 등의 종결어미를 사용하다가 중간에서 다시 ‘움트겠지요’, ‘넣고 있겠지요’라는 어조로 단정이 아닌 약간 불안정한 의문형식의 어법으로 독자들과의 공감을 유로하고 있다.
그는 함께 발표한 작품 「숲의 이면을 엿보다」에서도 ‘긴 그림자를 끌고 숲을 향한다’거나 ‘겨울산은 / 신의 비망록이다’ 그리고 ‘붉게 물든 숲을 접는다.’ 등의 어조와 같이 종결어미로 문장을 마무리하여 모든 이미지의 투영을 단정하는 시법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종결어미의 어법은 많은 시인들이 선호하는 시법이기도 하지만, 나분점의 작품「십오야 휘영청 둥근달 중천(中天)에 떠오르면」에서 ‘고향집으로 조급한 마음 / 먼저 달려간다’, ‘목젖이 시소를 탄다’, ‘그날 그 모습 떠올려 봅니다’는 등의 어조와 같이 ‘.....다’로 문장을 종결하면서 작품을 완성하고 있는데 이는 시적 소재에서 취택한 주제에 대하여 그가 간직한 확신을 단정(斷定)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고운 햇살이 아침부터
미소를 보내며 손짓을 하고
아지랑이 눈을 뜰 수 없게
아롱거리며 다가왔어요
--허영옥의 「유혹에 넘어 갔어요」중에서
허영옥은 ‘다가왔어요’처럼 ‘그 유혹에 빠져 버렸네요’ 그리고 ‘나 그대 봄 유혹에 넘어가 버렸어요’와 같이 그의 심중(心中) 깊이 간직했던 진실을 화자 ‘그대’에게 보고(혹은 고백)하는 형식의 문장으로 작품을 구성하였다. 한편 최종석의 작품 「물처럼」에서도 ‘가는 곳이 단지 바다일 뿐 / 나도 이제 너처럼 누워 / 상처를 모르는 영혼이고 싶어라 / 울어도 흥겨운 삶이고 싶어라’는 간절한 기원의 의지가 ‘싶어라’라고 고백하고 있다.
첫눈 보듬어
가슴 속 스며드는 기다림
이렇게
꽃비 내리는 날엔
사랑의 나무를 심자
--조육현의 「오월에 내린 비」중에서
그러나 조욱현은 ‘사랑하는 나무를 심자’라고 강하게 절규하고 있는 어법이다. 이것은 어쩌면 ‘심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역설을 내포하고 있어서 독자들에게 명령어로써 어떤 강요의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시법은 이동윤의 작품 「말하라」에서도 이를 확인하게 되는데 ‘땅 속의 뿌리를 / 보지 못하면서 / 꽃을 말하지 말라’거나 ‘그러나 세상 한 티끌도 / 모른다 함은 / 언제든 순순히 말하라’와 같이 ‘말하지 말라’ 또는 ‘말하라’라고 명령하고 있다. 또한 박종식도 작품 「우리 죽어 파도와 갈매기 되자구나」에서 ‘이승에서 못다한 사연 / 함께 서러워 하며 / 그렇게 목노아 울어 보자구나’라거나 고봉훈이 작품 「북한산 등산 무효」에서도 ‘그렇게 놀려거든 북한산에 다시 오지 마 / 만휘군상들이여 / 그래도 산이 좋거든 언제든지 오시게나’처럼 화자가 청자에게 명령어로 동감(同感)을 유로(流路)하고 있다.
지나온 세월 설움 헤치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자유와 희망을 노래하며
어둠을 넘고 장애를 넘어
우리는 세상 밖으로 나아갑니다
--제경근의 「세상 밖으로」중에서
거리마다 바삐 출근길에 오르는
사람들의 기다림을 향해 걷다가 벽에 부딪치어
잠시 멈추고 갈 길 잃은 당신에게도
아침이슬처럼 맑고 고운 눈빛으로
웃어주고 싶었습니다
--우인순의 「웃고 싶었습니다」중에서
한편 이 두 작품에서는 종결어미를 경어(敬語)로 표현하는 점을 간과(看過)할 수 없다. 이는 그 시인의 표현 취향에 따라서 다를 수 있겠으나 제경근은 ‘우리는 세상 밖으로 나아가야 합니다’로, 우인순은 ‘웃어주고 싶었습니다.’라는 어조와 같이 존칭어를 사용함으로써 시적 구성과 주제의 전달에 친근감을 보여주어 더욱 시적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효과를 획득할 수 있게 한다. 김명숙도 작품 「당신 때문에」에서 ‘당신이 아니라서 슬펐습니다’, ‘그 길이 지루하고 염려와 절망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 때문에 / 행복 가득합니다’는 등의 어조와 같이 존칭어로 작품을 완성하는 경우는 허다(許多)하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이명희의 작품 「봄비의 기도」에서 ‘아 나를 더 흐르게 하소서 / 하여 이 봄 / 누군가의 가슴에 흘러 사랑으로 꽃피게 하소서 / 사랑한다는 것은 이렇듯 / 누군가의 가슴에 가만히 들어 꽃으로 피어나는 것입니다.’라든가 우인순은 작품 「눈」에서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이 / 그대 사랑하는 하얀 마음뿐이라 / 오늘도 펄펄 눈을 내리며 / 온 세상 가득 하얀 꿈을 꿉니다 / 받아주소서’와 같이 ‘하소서’ 혹은 ‘주소서’ 등으로 호소하는 기도의 시법도 많은 효과를 획득하고 있다. 그리고 ‘너처럼 그리움의 연가 하늘 향해 부르리라(이명희)’, ‘너의 푸른빛 언어는 / 생명의 노래가 되리라(최연희)’, ‘이 정성 모두 다해 쓸고 닦았노라 말씀드리리(김기탁)’ 그리고 ‘남은 자여 기억하라 / 모든 것이 다 떠나도 사랑만은 남아 / 우리 가슴에 살아 있으리(오승영)’와 같이 ‘부르리라’, ‘되리라’, ‘드리라’ 그리고 ‘있으리’라는 평소의 소신을 형상화하는 시법도 특이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살펴볼 수 가 있다.
현대시가 언어의 조탁(彫琢)을 강조하는 부분도 이처럼 화자가 어떤 어조로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정감은 천차만별(千差萬別)의 감응으로 재현(再現)될 것이기 때문이다.(시와 수상문학 2013. 가을호)
시와 수상문학 2013. 여름 계간평
정감적 언어와 그리움의 이미지
6월의 날씨가 삼복더위처럼 연일 상승하는 이상기온으로 모두들 헉헉거리고 있다. 마치 성하(盛夏)의 계절적인 생명성이 이 지구를 지배한 것 같은 날씨를 맞고 있다. 일찍이 조병화 시인은 여름이야 말로 우리 생명의 큰 에너지의 원천인 것이다. 많은 에너지를 공급받는 계절, 그것이 여름이라고 했다.
지난달에는 한국문인협회가 평생교육원을 설립하고 무료공개 강의를 실시하는 많은 호응을 받은 바 있다. 문학의 전 장르에서 경험이 풍부한 강사들이 지망하여 시범적으로 공개강의를 통해서 문협 회원들과 일반 수강생들을 위한 공감의 장을 마련했다. 필자도 ‘시창작반’에 지망하여 공개 강의를 실시하여 많은 회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는데 강의 주제가 ‘현대시와 언어’였다. 여기에서 주된 내용은 시와 언어의 불가분성에 관한 실증적인 사례와 함께 강도 높게 역설하여 갈채를 받았다.
시는 언어의 예술이다. 물론 문학 자체가 언어를 매개체로 하기 때문에 언어 예술로서의 문학을 말할 수 있겠지만, 시는 고도의 언어 예술이다. 그것은 우리가 시를 쓰거나 이해하고 분석하려 할 때 먼저 그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언어를 살피고 언어를 통한 의식의 흐름을 유추하게 된다. 이 언어는 시를 구성하는 기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작품 전체가 포괄하는 이미지, 은유, 상징, 나아가서 주제까지도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작품의 총체적 의미 파악은 바로 언어의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처럼 ‘시는 언어의 예술’임을 강조하고 시인들이 행하는 언어의 마술성과 언어의 무법성 그리고 폭력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시적 언어의 용례를 살피고 시창작에서 조언으로 남는 언어의 중요성을 피력한 바 있다.
지난 봄호에서는 정감적인 언어가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는데 결론적으로 그리움의 표상을 진지한 소재와 더불어 ‘사랑’으로 전이(轉移)하는 의식의 흐름을 이해하게 된다.
늦가을 오후
낙엽이 꽃잎처럼 내려앉은
가지런한 장독
자식 얼굴 어루만지듯
닦고 매만지던 어머니 손길이
반지르르 윤기로 흐른다
새벽 하얀 물그릇 올리고
두 손 모아 숨죽인 흐느낌에
가슴 철렁이던 때가 엊그제인데
장독 뚜껑을 여니
짭조름한 향기 속에 하늘 가득
어머니 사랑이 찰랑인다.
--장예원의 「장독」전문
절대적인 사랑을 조롱하듯
닿는 곳마다 날(刃)이 되고
정(釘)이 되어 가는
그녀의 뜰이 난장이다
툭툭 불거진
그녀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장밋빛
사랑이었거늘
회색빛 너울이 번지는 공간
깊은 밤 소나기들의 난타처럼
번뇌케 한다
안개 짙은 어머니의 바다.
--이정인의 「회색빛 너울」전문
우선 위의 작품 두 편에서 공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의 결집이 ‘어머니’에 대한 회상으로 탐색하는 그리움의 형상화가 돋보인다. 장예원은 ‘장독’에서 재생시킨 상상력이 체험적 진실로 강렬하게 함축되어 ‘짭조름한 향기’와 ‘어머니의 사랑이’ 결합하여 모정(母情)에 대한 그리움이 자연스럽게 발현되고 있다. 한편 이정인은 ‘안개 짙은 어머니의 바다’에서 펼쳐진 ‘회색빛 너울이 번지는 공간’이 그가 탐색하는 ‘장밋빛 / 사랑’의 응집(凝集)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러한 상상력의 범주(範疇)에서 진실로 갈구(渴求)하는 ‘어머니’의 사랑을 음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종을 통한 그리움과 ‘사랑’의 인식은 김오순도 작품「보리밥」중에서 ‘보리밥은 미소다 / 꽁보리밥 물 말아 드신 후 / 힘없이 나오는 피실 방귀에 / 부끄러워 수줍게 웃던 / 울 엄마의 미소다’라거나 박일소의 작품「창포꽃 2」중에서 ‘단오날 창포물에 감은 / 곱고 긴 어머니의 쪽진 머리’ 또는 허 전의 작품「1512호에 내리는 비」중에서도 ‘지상에서 비등하는 눈물 줄기가 / 하늘로 흩어지는 밤이면 어머니는 / 별빛에서 넌출을 뻗어내려 그렇게 / 희디흰 박꽃을 피우는 것입니다’는 등의 어조는 ‘어머니’를 통한 사랑과 그리움의 절정이 침잠(沈潛)되어 있다.
뒤 켠 참나무 숲에서 선승의 할(喝:갈)하는 외침소리처럼
적막(寂寞)을 깨트리는 산까치 울음에
물안개처럼 다가오는 멀어진 유년
마음은 그리움에 말을 달린다 내 고향으로.
--유상윤의 「유정도 병이련가」중에서
푸른 바다 위로 점점아 떠있는 섬
가파른 비탈 위로 층층이 들어선 논
굽은 길 위로 분분히 날리는 꽃
낯선 땅이 정든 땅 같은 곳
정든 땅이 처음 같은 곳이 된 지금
고요한 새벽의 물안개와 함께
고향의 잔상이 겹겹이 밀려온다.
--권정희의 「남해기행」전문
이 두 작품에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배어 있다. 우리들에게 고향에 의식은 그리움 그 자체로써 심저(心底)에 깊게 무르녹아 있어서 생명의 탄생과 함께 정갈한 정서의 발달과 사유(思惟)의 중심축이 형성되는 곳이기도 하다. 유상윤은 유년에서 재생하는 다양한 정경(情景)의 사념(思念)이 ‘물안개처럼 다가오’고 있어서 그가 정서적으로 재현하는 ‘내 고향’에 대한 ‘유정(有情)’이 지금의 뇌리에 잠자하는 시적 상황과 거기에 투영된 ‘그리움’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권정희도 ‘남해’의 정경이 아직 잔상으로 남아 있어서 ‘낯선 땅’과 ‘정든 땅’으로 대칭하면서 역시 ‘물안개’라는 이미지가 작용하고 있다. 이는 이들이 동시에 ‘물안개’라는 사물을 대입하여 향수에 대한 정감의 감도를 높이는 효과를 이해하게 되는데 이 ‘물안개’의 이미지는 대체로 고즈넉한 심리적인 안정을 현현해주는 정취(情趣)를 읽을 수 있게 한다.
일찍이 시성 두보는 그의 시 「절구(絶句)」에서 ‘파란 강물이라 나는 새 더욱 희다 / 산엔 타는 듯 사뭇 꽃이 붉어라 / 올봄도 이렇게 지내니 / 어느 때 고향에 돌아가리(江碧鳥逾白 山靑花欲燃 今春看又過 何日是歸年)’라고 읊지 않았던가. 한편 최종석도 작품「추억의 마지막 밤」에서 ‘슬픔도 두려움도 모두 희쓸어가는 / 바람의 고향에 홀로 서서 / 나 어쩌다 그대를 만났던 기억 속에 / 또다시 그대를 묻고 돌아서야 했는지’라는 어조로 성찰의 의미를 고조하면서 ‘바람이 되고 싶었네’ 혹은 ‘어둠이 되고 싶었네’라는 기원의 의지를 발현하고 있다. 이러하듯이 고향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시적 모태(母胎)라고 할 수 있다.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퇴색되어 빛바랜 세월
정지된 넌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비운 마음
사시나무 잎에 햇살이 눈부시고
흔들리는 물결 위로
그대 성큼 걸어와도
오는 세월 머리 돌려 외면한 채
손사래 막으려 함은
강물 아래 침전되길 바라는 마음
빈손으로 잠시 나왔던 길
그리움 하나 얻어가니
기다림이란 또한 행복인 것을.
--신소대의 「기다림」전문
이 작품에서의 ‘그리움’은 어머니나 고향보다는 상이(相異)한 이미지를 추출하고 있다. ‘기다림’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비운 마음’과 ‘강물 아래 침전되길 바라는 마음’이라는 관념이미지를 축으로 해서 그의 심중(心中)에 천착(穿鑿)한 그리움과 기다림의 대칭적인 이미지를 통한 시적상황을 설정함으로써 간결하면서도 함축성이 돋보이는 시법을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빛바랜 세월’이라는 시간성과 ‘비운 마음’과 ‘빈손’ 등의 진솔한 관념적인 가치관의 창출은 주제의식을 더욱 선명하게 분사(噴射)하는 시적 효과를 거두고 있어서 이것이 결론적으로 ‘행복’이라는 어조와 상관성을 갖게 된다.
또한 김종임은 작품「그대가 머문 자리」에서 ‘눈을 감으면 잔잔하게 밀려오는 / 아련한 그리움 / 마음 깊은 곳에 묻고 / 마지막 입맞춤과 눈물을 삼키며 / 이제는 아픔을 씹는 숨소리 듣는다.’는 애절한 간구의 어조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박점주도 작품「눈 내리는 밤에」에서 ‘그리움 한 올 / 어둠 속에 멈춰집니다 // 기억되지 않는 / 헤아릴 수 없는 그리움과 // 지워지지 않는 / 막연함이 함께 그렇습니다’라는 자성(自省)의 어조는 그가 간구하는 그리움에 관한 정감이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하듯이 시인들의 정감적 언어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절절하면서도 간결한 어휘로 진실을 탐구하는 시법이 그리움이라는 주제를 승화하는 매체적 역할이 대단히 중요함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시와 수상문학 2013. 여름호)
(시와 수상문학 계간평 2013. 봄)
계절 시편들의 시간과 공간
봄이 완연하다. 영국의 시인 W. 워즈워스는 ‘봄철의 숲 속에서 솟아나는 힘은 인간에게 도덕상의 악(惡)과 선(善)에 대하여 어떠한 현자(賢者)보다도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는 말로 봄을 칭송(稱頌)하고 있다. 또한 우리의 거장(巨匠) 시인 미당 서정주도 ‘복사꽃 피고 복사꽃 지고 뱀이 눈뜨고 초록제비 묻혀오는 하늬바람 위에 혼령 있는 하늘이여’라고 그의 작품「봄」에서 노래하고 있다.
봄이 되면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적인 변화에서 응시(凝視)하고 지각(知覺)하는 것은 새 생명의 탄생이라는 신비에 매료(魅了)되면서 우리 인간들은 그 사유(思惟)의 범위가 확대되고 상상력의 차원은 바로 새로운 희망으로 전환하는 상황을 발견하게 되어 생기가 넘치는 계적의 묘미(妙味)를 체험하게 한다. 이처럼 새봄이 열리면서 우리 시인들도 예외일 수 없이 춘정(春情)에 흠뻑 젖게 되는데 이는 예나 지금이나 서로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옛
고려시대에 관군(官軍)의 사령관이었던 김부식이 봄시를 한 수 지었다. ‘양류천사록(楊柳千絲綠-버들은 일천 가지로 푸르고) 도화만점홍(桃花萬點紅-복숭아는 일만 송이로 붉구나)’이라고 적어놓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때 시적(詩敵)이었던 정지상(그는 묘청의 난에 관련되었다는 김부식의 고발로 처형되었다)의 혼령이 문득 공중에 나타나서 김부식의 빰을 갈기면서 호령했다. ‘이놈아! 버드나무가 일천 가지인지, 봉숭아꽃이 일만 송이인지 네가 세어 보았느냐? 왜 -바들은 실실이 푸르고 복숭아는 송이송이 붉구나(楊柳絲絲綠 桃花點點紅)라고 못하느냐?’라면서 호통을 쳤다.
이와 같이 우리 시가 빚어내는 의미는 언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는 좋은 사례이다. ‘천 가지’나 ‘일만 송이’를 굳이 숫자로 표시하지 않고 그냥 무수히 많다는 의미로 표현하는 것이 시적 구도나 봄의 계절적인 향취가 더욱 공감의 영역을 확산하는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이런 일화는 서거정이 편찬한 『동인시화(東人詩話)』에 전해지고 있다. 신라에서 이조 초기까지 시인들의 시를 평한 시화집이다. 당시 정지상은 고려때 문신이며 김부식은 고려 때 유학자로서『삼국사기』를 편찬하기도 했다.
지난 겨울은 눈도 많이 내렸고 추위도 길었다. 이제 동면을 깨고 만유(萬有)의 자연이나 우리 인간들이 약동의 새로운 계절을 맞이했다. 한편 세상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탄생하는 쾌거도 있었고 그 공약 싵천을 위한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폐일언하고 지난호 시평으로는 2012년 가을을 예비하는 작품을 많이 읽었는데 비해서 지난 겨울호에는 특이하게도 시간성-어쩌면 사계절-에 관한 작품들을 다수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신춘문예의 열풍이 지나가면서 지망생들의 희비(喜悲)가 상반하는 격동의 계절이기도 했다.
한 끝을 힘껏 당겨 가만히 놓으면
다른 한 끝이 길이 된다
활시위는 지상을 향해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지만
과녁의 위치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없다
아직 다 그리지 못한 한쪽 눈썹
마당 모서리에 반쯤 보이는 길고양이 꼬리
뒤꼍 항아리 돌아 핀 흰 철쭉꽃이거나
추녀를 넌지시 들어 올린 풍경소리거나,
어둠이 빛을 좇아 하늘로 오르기 시작하면
비어 있는 그늘에 풀씨들이 날아들어
지상의 벼랑 위에 피는 꽃들은
극한의 향기를 오로라의 남극으로 잇는다지
지하도를 빠져나오는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전리층의 프리즘 속으로 사라지고
한 시절 끝 간 데 없이 오로라와 연결된
달빛의 통로를 빠져나오면
활시위의 과녁 위다
피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풍경소리가 추녀 끝 아래쯤에서 멈추기를 기다려
당신의 눈썹으로 달을 그리는 일,
그 끝이 다른
한 끝의 길이다
--조선의의 「하현달 소묘」전문
이 작품은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품이다. ‘하현달’이라는 시간 개념이 시적 형상화에 추축으로 대두되고 있다. ‘달’에 관한 시간성은 초승달, 반달, 보름달 다시 반달, 그믐달로 대별(大別)해서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 상현(上弦)은 음력으로 매월 7~8일경에 나타나는 달의 형태를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대체적으로 ‘달’에 대한 이미지는 보름달에만 국한해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시간성에 대한 상상력의 부재를 말할 수 있다. 이 상형달의 형상은 ‘한 끝을 힘껏 당겨 가만히 놓으면 / 다른 한 끝이 길이’ 되는 ‘활시위’이며 ‘아직 다 그리지 못한 한쪽 눈썹’으로 분화(分化)하고 있다.
서울대 권영민 교수와 내가 본심을 맡아서 결정된 작품인데 ‘당선작으로 뽑은 「하현달 소묘」는 시적 대상에 대한 진술 자체가 섬세하면서도 날카롭다.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이동을 동시에 포착해내는 시인의 언어 감각이 남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주적 공간과 그 질서에 대면하여 시적 주체의 자기 존재에 대한 인식을 이렇듯 섬세하게 표출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라는 심사평을 붙였다. 지난호에서 우선 시간성에서 탐색할 수 있는 작품은 2012년도 ‘시와수상문학 문학상’ 수상작품인 최연희의 「겨울나무」전문에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벌거벗음은
나로 인한 소멸이요
젖어오는 이 슬픔은
당신을 사랑한 까닭입니다
삶의 뒤안길에
머물고 계신 당신은
계절의 이완보다
더 깊은 사랑이 있음이요
겉 나무네서 쏟아지는
삶의 사연, 속으로 삭히신
긴 침묵은
내 생명의 샘물
찬 겨울 살을 에는
칼바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벌거벗은 당신은
내 삶의 깊은 뿌리입니다.
그렇다. 하나의 사물이 한 시인의 여과(濾過)된 정서와 상관하면서 특히 시간(혹은 세월)과 상호 교감이 이루어지는 그 중심에는 반드시 ‘삶’이라는 큰 명제가 동행하게 된다. 최연희도 ‘삶의 뒤안길’이거나 ‘삶의 사연’ 또는 ‘내 삶의 깊은 뿌리’가 곧 ‘겨울나무’라는 사물에서 추출해낸 ‘생명의 샘물’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소멸’과 ‘슬픔’ 그리고 ‘사랑’과 ‘침묵’이라는 ‘삶’과의 상관성이 바로 시간성과 동일한 개념으로 융합(融合)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 인간들과 시간이 교감하는 정황은 이 ‘겨울나무’의 속성과 일치하는 자연 현상이라는 점에서 그는 ‘벌거벗은 당신’의 이미지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는 다시 ‘곱게 책갈피 이불삼아 잠든 / 뜨거운 여름 양귀비 붉은 잎 / 초가을 곱게 핀 코스모스 / 흔들어 깨워 / 알몸 문틀의 예쁜 속옷--중략--비움으로 벗어낸 알몸에 / 계절 담아 햇살에 몸 말려 / 일년 내내 삶의 사연 품을 문틀에게 / 예쁜 꽃무늬 속옷과 / 눈부신 꽃무늬 속옷과 / 눈부신 빛의 옷 선물하고 싶다.(「창호지문」중에서)’라는 어조와 같이 ‘여름’과 ‘초가을’의 혼합된 이미지가 역시 ‘알몸’이라는 상징을 투영시키고 있다.
사랑에 색이 있다면 가을색이면 좋겠다
하늘색 크레파스로 그린 찬란한 가을
뜨거운 열정을 쏟았던 빛의 향연으로
애틋한 가슴 속 강렬한 눈짓으로
가을을 노래하고 가을 속에 묻혀서
우리가 그렇게 하루를 넘기며
전율하던 가을을 잊고
절망의 고통에서 순수의 감성을 잃을 때
황금빛 가을을 꺼내어 두 손을 닦으며
온기로 데워진 너의 따뜻한 품에 안겨
가을에 감사하고 가을을 그리면서
그 빛에 눈물짓는 가을색이면 좋겠다
--장경복의 「너에게」전문
장경복의 ‘가을’은 ‘사랑=가을색’이라는 등식으로 ‘너’라는 화자(話者)와 교감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사랑과 가을에서 ‘너’가 매체역할로 시간성을 적시하는 시법이다. ‘뜨거운 열정’과 ‘강렬한 눈짓’ 그리고 ‘온기로 데워진 너의 따뜻한 품’이 조화를 이루면서 사랑을 탐색하고 있다. 이렇게 가을과 관련되는 작품들은 대체로 시간과 공간의 접목하고 있는데 공간개념에 따라서 시간이 갖는 이미지는 다양하게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을빛 물든 노을 / 우정을 낚아 올려 어깨동무 하나로 / 이 자리에 붉은 꽃 곱게 곱게 피어난다(안혜란의 「고향 언덕에 걸린 노을」중에서)’, 또는 ‘바람 실린 만추의 가을비는 / 화려했던 지난 계절의 번성도 떠난 텅 빈 가지에 / 흥건히 젖은 투명한 설움 방울들로 애처롭다(권병산의 「만추의 용문사 서정」중에서)’ 그리고 ‘가을 하늘 한 조각 / 남강 가운데 떨어져 / 황금빛으로 물들어 갈 때(백덕순의 「가을 여행」중에서)’과 같이 ‘고향 언덕’이거나 ‘용문사’ 그리고 ‘남강’ 등의 공간이 시간과 동시에 형상화하는 시법을 대할 수 있다.
우리는 항상 사물에서 이미지를 추출할 때에는 시간과 공간개념을 대입해서 체험과 상응하는 시적 주제를 창조하는 시법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시와 수상문학 2013. 봄호)
시와 수상문학 계간평 2012. 겨울)
가을의 정취 그 시적구도와 진실
우리들은 계절감각에 민감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가을이다 싶으면 바로 겨울로 진입해서 두툼한 옷을 꺼내야 한다. 가을이 짧다는 것은 우리가 누려야할 풍요의 계절에서 음미할 수 있는 다양한 사물들과의 교감이 단축된다는 것이고 겨울이 빨리 왔다는 것은 또 한 해를 보내야 하는 아쉬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지난 가을에는 문학행사가 많이 열렸다. 우선 한국문인협회에서는 ‘2012 서울 문학축전’을 개최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는데 ‘문인육필전’을 비롯해서 ‘문학특강(김후란, 권영민)’, ‘문학심포지엄(김우종, 류재엽, 신현득)’, 애송시낭송회‘ 그리고 서울문학작품 낭독회’ 등 다채로운 문학행사가 되었다. 이러한 문학행사는 각 지역마다 또는 문학단체마다 문학인구의 저변확대를 위해서 가장 바람직하다는 견해이다. 한국시인협회에서도 신달자 회장의 고향인 경남 거창에서 심포지엄(주제 : 아리랑, 시의 모태인가)을 개최하여 전국의 시인들이 군단위의 지역에서 정담을 나누고 문학정보를 교환하는 잔치를 열기도 했다.
이러한 문학의 계절(아마도 독서의 계절이라서 문학이라는 용어를 첨가했으리라) 가을에 계간『시와 수상문학』에서 시에 대한 계간평을 게재하기로 해서 지난 가을호를 일별했다. 대체로 소재들이 가을이라는 점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많은 필자들이 가을에 관해서 그들만의 주제를 창조하는 특성을 읽을 수 있었다.
우선 정금자의 「가을의 서시」를 읽어 보자.
투명한 이슬이 무겁다던
새까만 눈동자
너 아니면 안 된다 안 된다 하던 가슴들끼리
어깨 마주하며 열정을 불태우던
하늘 높이 고추잠자리 날던 날
붉으니 붉지 않은 뙤약볕 뒤안길
초록빛 잎새가 흔들리는 산 위에
무성한 흔적만 남기고 가는
보랏빛 책장을 넘기며 인생을 말한다
알알이 맺힌 산중에 열매들도
외로움에 젖을까
가을이 오는 길목이면
낙엽 밟는 소리 서럽게 들리리
그는 가을을 열면서 먼저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낙엽 밟는 소리 서럽게 들리’는 예감으로 그의 시적상황을 적시(摘示)하고 있다. 그가 가을에 관한 ‘서시’로 ‘인생을 말’하는 것도 그가 심연(深淵)에 깊이 간직한 시간성의 진실이 시적 동기로 발현하는 시적 구성과 그의 체험이 상호 상관성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가을이라는 시간성과 ‘초록빛 잎새’와 ‘낙엽’의 사물적 변화에 따른 시인의 정서와 사유(思惟)의 지향점은 서로 상이하게 표현될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가을이 던져주는 이미지나 메시지는 어쩐지 약간 을씨년스러운 표정으로 읽을 수 있게 한다.
이렇게 교감하는 시법(詩法)이 정금자의 가을에 대한 ‘서시’라면 그는 다시 가을에 관한 집념을 버리지 않는다. 그는 ‘정금자 시인의 소시집-어머니의 꽃신’을 발표하면서 가을에 관한 작품이 많다는 점도 주목하게 되는데「가을의 노래」에서 ‘곧은 정조인 양 / 비바람 꿋꿋이 견뎌온 낙엽송’이나 ‘갈바람에 날려온 ’ 코스모스 향기‘가 정취를 더하고 있다. 그러나 「가을이별」에서는 ‘가을비 내리면 / 짙푸른 하늘 홑이불 삼은 / 엎어진 낙엽처럼 속옷 젖고 / 만남도 없이 이별하는 마음’이라는 어조(語調)로 가을 이미지가 이별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는 가을의 이유가 낙엽에 있는 것처럼 ‘낙엽’을 다양하게 등장시켜서 시적 의미를 정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대체로 가을에 관한 보편적인 이미지는 결실의 계절답게 풍요로 형상화하는 것이지만 ‘낙엽’과 동시에 스며드는 이미지는 고독이거나 이별 등 인생의 결실을 예비하는 정황으로 변환하는 시법이 많이 창출되고 있다.
한편 정금자는 ‘사랑하는 당신과 나 / 마음을 걸러내는 / 국화차 한 사발 속에 담긴 / 소국잎 한 줌 // 갓 핀 향기로 퍼진다 / 짙은 안개로 드리웠던 / 우리들의 영혼(「국화차 꽃향기를 마시며」중에서)’이라는 자연 서정적인 가을 이미지를 공감할 수도 있게 하고 있다. 역시 박용구의 다음「가을의 노래」를 읽어보자.
하늘은 푸르고 마음은 익어가고
꽃잎은 떨어진 자리마다 열매를 키워
달콤한 열매의 향기여
슬프지 않아도 가슴으로 고여 오는
마음의 눈물은 그리움 때문인가
가을이 오면
어머니의 숨소리가 가까이 들리고
떨어져 있는 동무가 보고 싶고
청순해 눈이 맑았던
소실시절의 나를 만나고 싶네
동무여 너와 나 사이에도
말보다는 소리 없이 구름이 흐르고
이제는 더욱 고독해져야겠구나
남은 인생 아껴 쓰며 언젠가 흘러 갈
인생을 서서히 정리해야겠구나
단풍이 날릴 때마다
한 소절의 글들을 쏟아내는
고독한 인생이여
영원을 향한 그리움이
어느새 나이처럼 무르익은 가을이여
박용구의 가을은 ‘그리움 때문’이라는 시적 상황을 설정하고 ‘고독한 인생’에 관한 연민이 적시되고 있다. 가을은 역시 이별의 예감이 바로 ‘인생’과 직접 연관되어 ‘인생을 서서히 정리해야’하는 ‘가을의 노래’가 공감을 획득하고 있다. 그는 이 ‘영원을 향한 그리움’의 정체를 ‘어머니의 숨소리’와 ‘떨어져 있는 동무’ 그리고 ‘나’라는 화자(話者)와의 상관성에서 시적 구도를 유추하게 되는데 결국 계절적인 ‘가을’의 의미가 시간성과 동시에 융합(融合)하면서 ‘남은 인생’에서 ‘고독’함으로 연결하는 하나의 성찰의 요소를 분사(噴射)하고 있다. 이처럼 인생에 관한 문제들은 우리 현대시에서 새로운 인생관으로 변환시키는 시적 효과를 발산시키고 있으나 계절적으로 분류하면 다양한 이미지가 생성한다. 그러나 가을은 역시 풍족하면서도 무엇인가 성숙한 현실적인 정감으로 나타나는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 작품과 같이 ‘이별’이나 ‘그리움’ 등에서 절실하게 창출해낸 인생의 무상같은 영원성을 갈구(渴求)하고 있다.
또한 김춘년도 「가을 미소」와「가을바람」두 편을 동시에 발표하고 있다. 그는 가을에 대해서 앞의 작품들과는 약간 다르게 밝고 진취적인 이미지를 발견하게 된다. 우선「가을바람」을 읽어보자.
웃음이 바다를 이루었다
분홍
빨강
순백의 미소가
여덟 쪽의 꽃피자 되어
갈바람에 파도를 일렁이다
청순
정조
평화
진실한 이름을
고이고이 사랑하고픈 이들이
가을바람 타고 석양에 걸터앉아
고결하게 몸서리친다.
김춘년은 ‘갈바람 파도’에서 ‘순백의 미소’를 응시(凝視)하고 있다. 그리고 ‘가을바람’과 ‘석양’에서 ‘고결하게 몸서리’치는 ‘진실의 이름’ 즉 ‘청순 / 정조 / 평화’를 좋아한다. 이 ‘가을바람’에서 정감나게 느껴보는 어조들이 한결 밝은 시향(詩香)으로 다가오고 있다. 한편 「가을 미소」에서도 ‘담자락 수놓은 / 호박잎의 너울거림 / 가을햇살 살포시 온몸 가득 / 퇴색되어 주름이니 / 숨바꼭질 누런 호박덩이 / 만삭되어 농심이 허허’라는 ‘미소’가 절정을 이루고 있다. 그는 또 ‘혹여 늦되랴 / 서둘러 오곡백과 익어가니 / 고개 숙인 겸손의 나락 / 알알이 영글어 / 석양 바라보는 / 너그러운 마음’으로 가을과 교감하면서 이 또한 풍년의 풍요로운 이미지가 창출되고 있어서 가을은 역시 가까이에서 응시할 수 있는 풍요의 감응(感應)이 절대적으로 투사(投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철우의 「가을바람」은 어떠한가. 그는 다음과 같이 가을의 계절적인 변화의 구도로 자연 섭리를 노래하고 있다.
길 가장자리에서 여린 매무새로
꽃을 피우던 삼색 코스모스도
대를 이으려 합궁(合宮)에 들었고
갈대와 억새도 금풍(金風)에 서걱거리며
하얀 포말을 천공에 날리면서
내년을 기약하려고
은갈색 옷치장에 들었다
이철우의 가을은 누구보다도 예리한 시각적 이미지로 가을의 화폭을 장식하고 있다. 이러한 사물적인 이미지는 ‘대를 이으려 합궁’과 ‘내년을 기약’이라는 관념을 삭제하면 완전히 사물시(physical poetry)가 되고 만다. 그러나 ‘서석거리’는 청각이 동시에 융합함으로써 작품의 구도를 친 자연적으로 발현하고 있다. 여기에서 특이한 점은 시의 색채에 민감하다는 점이다. 그는 ‘나뭇잎을 다색(茶色)’, ‘삼색 코스모스’, ‘하얀 포말’ 그리고 ‘은갈색 옷치장’이라는 여섯 색깔을 시 한 편에 삽입하면서 색채를 응용한 작품의 형태를 조절하는 현상은 요즘 현대시에서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어서 주목하게 한다.
현대시는 독일의 극작가 쉴러가 ‘시란 냉랭한 지식의 영역을 통과해서는 안 된다. 시란 심중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곧바로 마음으로 통해야 한다’는 언지와 같이 우리 시는 현실을 직시하거나 자연을 응시하는 관조(觀照)의 미학을 중시하면서도 그 구도나 주제의 명징(明澄)을 요구하게 되는 묘미(妙味)가 동행해야 하는 시인들의 고뇌가 가미(加味)되어야 할 것이다.(시와 수상문학 2012.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