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가장 꽃혔던 단어는 심신건재였다. 심신미약과는 반대로 몸과 마음이 건재한 사람에게 내리는 진단명이다. 나는 작년 말부터 몸 곳곳이 급격하게 안 좋아지면서 병원에 들락날락하는 일이 많아졌으므로 ‘신미약’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과연 완벽하게 심신건재한 사람이 있기는 할까? 사람들이 심신미약을 감형의 사유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나도 힘든데 범죄를 저지르진 않아’
누구나 생각의 시작은 ‘나’에게 맞춰져 있다. 몸이나 마음(혹은 둘 다)이 힘들어 보지 않은 사람이 없기에 심신미약 범죄자에게 배풀 동정이나 관용이 부족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심신미약 처분이 필요한 이유는 심신미약 상태인 자는 의사 판단과 행위능력에 있어 결함을 가지는 ‘환자’이며 악의가 없는, 즉 불가항력에 의해 범죄를 저지르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나만 하더라도 언론에서 다뤄지는 강력범죄에 핑계처럼 따라붙는 ‘심신미약’ 주장에 짜증이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피해자를 향한 공감과 안쓰러움의 감정이 격해지면 ‘내 알빠야?’ 하는 생각으로 빠지면서 ‘진짜’심신미약자들까지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감기에 걸려서 재채기를 하면 어쩔 수 없지만, 일부러 얼굴에 침을 뱉으면 나쁜 행동이다. 행동이 같은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병의 증상인지 잘못을 저지를 것인지 구별해야 한다.
_<법정으로 간 정신과 의사> 표지 , 하지현
그럼에도 혼란스러운 것은 내가 심신미약 처분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의 뒷면에 적힌 이 글은 심신미약자들을 이해하기에 가장 근본적인 접근법을 제시한다. 일부러 내 명품 가방에 침을 뱉은 사람에게는 새 가방값을 받아내겠지만 감기에 걸린 사람이 한 재채기로 침이 튀었다면 결과는 같더라도 세탁비 정도만 받을 여지가 있다.
물론 상대방이 감기라는 의사의 진단에 내가 무조건 상대방 사정을 봐줄 필요는 없다. 어찌 됐든 피해자의 구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갑자기 친구를 찔러 죽인 러시아에서 왔다는 I를 심신미약으로 판단했다는 부분에서 나는 책에 물음표를 그렸다. 내가 빼먹은 맥락이 있나 다시 읽어보기도 했다. 지금은 저자가 그저 의학적 소견을 내놓았을 뿐이고 죗값의 판단은 판사의 몫임을 안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읽겠다며 다짐했지만, 나는 책을 끝까지 읽어도 진정한 의미의 ‘죗값’이라는 게 뭔지 모르겠다. 꼭 자신의 죄를 깨닫고 뉘우쳐야지만 죗값을 받을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이 와닿지도 않는다. 그럼 평생 뉘우칠 일 없는 사이코패스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평생 죗값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가? 아파서, 치료가 필요해서 감형을 받는 범죄자들은 소위 말하는 ‘갱생’이 가능한가? 너무 낙관적인 유토피아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이 단 한 사람에게도 그런 ‘보류’의 단서로 작용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모르겠다. 책을 읽고 난 지금이 더 혼란스럽고 마음이 복잡하다. 그렇지만 이런 고민을 법을 다루는 판검사나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끼리만 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결국 한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인 우리가 여러 측면을 살펴보고 같이, 바람직한 방향성에 대해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정신질환자, 심신 미약자에 대한 나(혹은 어른이들 모두)의 인식과 판단을 ‘보류’ 상태로 돌려놓았다는 점에서 작가는 충분히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첫댓글 선과 악을 나누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뚜렷이 구분하려 드는 우리 사회에서 '보류'라는 결정의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