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휼이 있는
정의
미가 6 : 6-8
지금
여기에서
요즘 한 손에는 휴대폰을, 다른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걸어 다니면서 음식을 먹고, 이동 중에 휴대폰이나 태블릿PC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런 문화를 '스탠딩 문화' 라고 합니다. 문화평론가 김지룡은 스탠딩 문화에 관해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스탠딩 문화는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된 사회에서 생겨난 것으로, '본질적'인 소비 성향을 갖추게 된 사람들의 특성이다. ······커피든 음식이든 '본질' 그 자체에만 관심을 집중할 뿐 먹기 위한 공간과 시간에 돈을쓰는 것에 거부감을 나타낸다."
스탠딩 문화는 불필요한 겉치레나 형식을 걷어 내고, 본질에 집중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도 스탠딩 문화와 같이 본질에 집중하기 위한 변화가 필요함을 본문 말씀을 통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미가가 말씀을 선포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좋은 제물만 많이 드리면 어떤 불의한 행위도 용서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가는 이들을 향하여 형식과 겉치레가 아니라 삶을 통한 제사를 드릴 것을 외칩니다.
1.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행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아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 : 8).
공의란 히브리어로 '미쉬파트'입니다. 재판에서 쓰이던 말로 재판장이 공정하게 판결한 것을 가리킬 때 '미쉬파트'라고 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마음으로나 말로나 행동으로나 정직하고 정의로운 것을 말합니다. 공의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성품을 본받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올바른 삶의 도를 행하는 것으로, 모든 구체적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공평과 정의를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정의는 이웃과의 샬롬과 연결된 때에만 참된 정의가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정의는 혼자만의 평화가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초월하여 촘촘히 짜여 있는 그물 같은 입체적인 공동체 안에서의 돌봄과 섬김, 사랑과 희생 안에서 구현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정의는 거창한 것도, 추상적인 것도 아닙니다. 공동체 안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면서 서로의 권리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공의를 실천하는 사람은 자신의 이익과 자신의 편리함에 따라서, 자신의 욕망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과 아내 사이, 부모와 자녀 사이, 친구 사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바른 관계의 회복에 중심이 있습니다. 어려움 가운데 고통당하는 이웃,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는 삶,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산 제사이며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삶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인자를 행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인자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헤세드'. 헬라어로는 '엘레에모네스'로서 '인자', '자비', '사랑', '불쌍히 여기다' 등으로 번역이 됩니다. 이 말은 은혜, 사랑, 긍휼 등으로도 사용됩니다. 인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삶, 이웃의 어려움을 돌아볼 줄 아는 삶, 이웃의 아픔과 함께할 줄 아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긍휼은 남을 불쌍해 여겨서 돕는 마음입니다.
왓슨은 사랑과 은혜와 긍휼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세 가지는 하나님 품속에서 나란히 살아가는 의좋은 세 자매입니다. 사랑이 애인을 방문하는 친구와 같은 것이라면, 긍휼은 병자를 방문하는 의사와 같은 것입니다. 은혜가 죄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애정이라면, 긍휼의 죄의 결과로 비참한 상태 속에 있는 사람을 향한 애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길을 주셨습니다. 긍휼은 상대방의 어려움에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 주는 것입니다. 긍휼은 슬퍼하는 사람과 함께 슬퍼하고, 그의 눈물을 닦아 주며, 아픈 사랆을 돌보아 주고, 그의 아픔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긍휼로 이웃을 돌보기 원하십니다.
3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겸손하게 하나님과 함께 행한다."라는 것을 히브리어 원문으로 보면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걸어가며,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순종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든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 : 22).
사무엘은 사울 왕에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순종임을 말합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며,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이 없는 제사보다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니의 말슴을 순종하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하나님과 함께 행하면서 겸손하게 순종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시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경외와 친밀감을, 이웃과의 관계에서는 사랑을 실천하여 평안과 감사를, 사회에 대하여는 정의로움을 원하십니다. 이것을 이루어 가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순종입니다.
새로운 삶을
소망하며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의는 마음과 삶을 드리는 것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겉치레가 아니라 우리의 중심을 원하십니다. 공허한 정의만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변화되고, 마음으로부터 정의를 실천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의 마음과 중심을 먼저 하나님께 내어놓아야 합니다. 몸의 예배가 아니라 삶의 예배로, 마음의 예배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열려질 때 그곳에 하나님의 정의가 세워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그 마음에서 공의를 행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것으로, 순종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마음의 중심으로 산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 6 : 8).
▽ 가정에서의 바른 관계 회복을 위해 가족 구성원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표현해 봅시다.
▽ 하나님께서는 나의 중심이 하나님을 따르기 원하십니다. 이웃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며 긍휼을 베풀 때 가질 수 있는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순종하고자 할 때 그 목록을 3가지 정도 생각해 봅시다.
예) 이웃을 용서하기,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가키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