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요
1) 한번 구원받았다고 해서 영원한 구원으로 착각하는 것은 대단한 오해다.
2) ‘땅의 속성은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으로 혈(하이마)과 육(사르크스)이다.
3) “유리하는(플라네테스) 별(아스텔)들”이 이사야에 나타난 계명성으로 번역한 ‘헤렐’이다.
4) ‘샛별’은 ‘프호습호로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데 밤의 끝에 오시는 분이다.
나. 본론
1) 한번 구원받았다고 해서 영원한 구원으로 착각하는 것은 대단한 오해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 14:1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 10:20).”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잘못하면 깨달음을 놓칠 수가 있는 된다. 정말로 조심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한번 구원되면 영원한 구원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사야서에 루시퍼가 등장하는데 대단한 깨달음을 가진 자다. 하늘에서 밝게 빛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계명성으로 번역한 헤렐을 kjv, 영어 성경에서는 루시퍼로 번역하였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헤렐)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라아레츠)에 찍혔는고(사 14:12).”
2) ‘땅의 속성은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으로 혈(하이마)과 육(사르크스)이다.
‘땅에’로 번역한 ‘라아레츠’는 ‘땅을 위하여’ ‘땅을 향하여’다. ‘땅의 속성은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으로 혈(하이마)과 육(사르크스)이다.
신약에 나타난 ‘땅’으로 번역한 ‘게’의 속성은 깨달음을 가지고 하늘(성전) 안에 있었는데 땅(에레츠)을 지향하게 되었다.
“저희는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자기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 된 캄캄한 흑암에 들어갈 유리하는 별들이라(유 1:12)”
3) “유리하는(플라네테스) 별(아스텔)들”이 이사야에 나타난 계명성으로 번역한 ‘헤렐’이다.
“유리하는(플라네테스) 별(아스텔)들” 유리하는 별들이 이사야에 나타난 계명성으로 번역한 ‘헤렐’이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고후 11:14)”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프호습호로스)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벧후 1:19)”
4) ‘샛별’은 ‘프호습호로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데 밤의 끝에 오시는 분이다.
여기 등장하는 ‘샛별’은 ‘프호습호로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프호습호로스‘는 ’빛‘으로서 빛을 보유함, 샛별을 나타낸다.
‘포스’는 빛이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빛을 나타낼 때도 ‘포스’를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훼로’는 참는다, 되다, 생기게 하다. 인도하다, 움직이다, 도달하다의 뜻으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결국 샛별로 번역한 ‘프호습호로스’의 빛은 계속해서 인도하는 생명의 빛이다. 결코 변하지 아니하는 생명의 빛으로 나타난다. 이 샛별은 밤의 끝에 오신다.
창 1장에 나타난 밤은 생명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밤은 죄의 실체를 알고 그 죄를 벗겨내는 기간이므로 반드시 겪어야 할 일이다. 몸과 마음의 작용 곧 그 실체를 알아내는 기간이다. 몸과 마음의 실상을 알려면 반드시 그 마음을 해체하여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래야 정복할 수 있다.
생명의 빛과 그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