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가스실
백정희
현관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오는 냄새에 저절로 찌푸려진다. 세희가 외출해 있는 동안 허락도 없이 쳐들어 온 침입자는 온 집안을 가득 차지하고 있다. 현관 안으로 발을 들여놓기가 바쁘게 집을 차지하고 있던 냄새는 코로 입으로 피부로 일시에 공격을 가해온다. 밖에서부터 쓰고 온 마스크를 벗지 않은 상태인데도 침입자는 강렬하게 찌르듯 콧속으로 덤벼든다. 콜록콜록! 기침이 터져 나온다. 침입자로 인해 호흡기는 이미 점령당한지 오래다.
“빌어먹을!……”
세희는 자신도 모르게 콧속으로 입안으로 덤벼든 냄새를 쏟아내듯 짜증스러운 말을 뱉어낸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침범을 받으며 참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세희는 자신이 늘 침범당하는 이 공간을 떠나가고 싶어도 형편이 안 되는 자신의 주머니 현실을 생각하며 아득한 절망감이 밀려온다. 혹시라도 밖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묻어왔을지 모를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 문을 연다. 화장실 안으로 내 딛던 발을 멈칫 놀라 뒤로 물러선다. 화장실 안은 쳐들어온 침입자 냄새로 부연 안개가 자욱하다. 머리를 풀어헤친 담배연기가 콧속으로 훅 끼쳐 들어온다. 또 다시 콜록 콜록 콜록. 기침이 더욱 심해진다. 세희는 터져 나온 기침으로 눈물 콧물까지 흘리며 화장실 안으로 들어서려던 발을 얼른 거두고 뒤로 물러선다.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멀찍이 떨어져 서서 화를 삭이며 기침을 계속한다. 환풍구를 통해 빠져나가지 못한 담배연기는 머리를 풀어헤친 채 베란다와 현관 쪽으로 달아나고 있다. 세희는 코 속으로 쳐들어와 기관지를 자극하며 신경을 곤두서게 하던 침입자의 정체가 조금이라도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다. 숨을 편하게 쉴 수 있기를 기다리며 서 있는 시간이 벌을 서고 있는 것만 같다. 마치 자신의 집이 아닌 남의 집에 잘못 들어온 기분이 든다. 속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뜨거운 화의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고 올라온다. 담배냄새와 함께 욱 토하고 싶은 욕지기가 느껴진다.
세희는 늘 옆집에서 들어오는 담배냄새에 시달린 지 오래다. 그 누군가에게 감시를 당하며 살고 있는 것만 같다. 옆집에서 들어오는 담배연기는 늘 시도 때도 없이 화장실 안을 가득 채우고 집안을 차지하고 장악해버린다. 연기는 주방 환풍기 쪽이든 화장실과 베란다 창이든 머리를 풀어헤치고 달려들고는 한다. 세희 혼자만 사는 것이 아니라 형체도 없는 침입자가 장악한 집안에서 그 냄새와 공존을 하고 있다. 냄새 속에는 침입자의 입안에 들어갔던 음식물 냄새가 묻어있다. 옆집 남자의 비말을 잔뜩 묻힌 연기다. 남자의 코와 입으로 들어갔던 담배연기다. 무저갱 같은 남자의 입을 흘러나온 담배연기가 죽음의 사자처럼 세희의 집으로 기어들어 온다는 사실이 소름끼친다. 옆집 남자의 입안에 들어갔던 비말 묻은 연기가 집에 침범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면 욕지기가 터져 나온다. 아니 죽음의 사자가 집안에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아 진저리가 쳐진다. 냄새 속에 섞인 것은 침입자 육신이 그날 어떤 음식을 섭취했는지 어떤 술을 마셨는지 조차 감지해 낼 수 있다. 침입자는 강렬하게도 코를 자극하며 불쾌한 기분으로 휘감아 버리고 만다. 어느 새 세희에게 스며든 냄새로 인해 두통이 시작된다. 옆집 남자의 비말이 잔뜩 묻은 연기가 소리도 없이 집안에 침범해 들어와 세희를 독가스실 고문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날이면 날마다 소리 없는 전쟁의 연속에 견딜 수가 없다.
5호집 남자는 이혼 후 혼자 사는 택시기사다. 밤이면 그나마 운전을 하고 새벽 3, 4시에 들어온 후 줄곧 담배를 피워댄다. 세희가 남자네 옆집으로 이사를 하고 며칠이 지난 후 그 날도 집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담배연기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5호집에서 담배연기가 퍼져 나오고 있었다. 세희는 한 여름 더위에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 한 대로 버티고 있었다. 선풍기 바람도 뜨거운 바람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창문을 열어놓지 않을 수없는 폭염이 계속되는 나날이었다. 세희는 숨 막히는 더위에 담배연기까지 견딜 수 없어 옆집 현관 앞으로 주춤주춤 다가갔다. 활짝 열린 현관문 앞을 들여다보고 그만 돌아서고 싶을 만큼 퍼져 나오는 연기로 숨이 컥 막혔다. 세희는 최대한 조심스럽고 공손하게 옆집 남자를 불렀다.
“저 아저씨? 담배연기가 저희 집으로 다 들어와서 너무 괴로운데요.”
세희는 주저주저하며 남자에게 부탁하듯 말했다. 층간소음으로 다툼이 일어나 종종 살인사건으로까지 번지는 뉴스를 기억하며 최대한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알았어요. 그만 피울게요.”
남자는 선선히 들어주는 태도로 대답했다. 세희가 집안으로 들어와 두 시간 가량이 지나도록 남자는 계속해서 담배를 피워댔다. 아니 그만 피우겠다는 대답은 그냥 대답일 뿐이었다. 담배연기는 계속해서 피어올랐으나 세희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바로 옆집이라 잘못하다간 서로 감정이 악화될까 걱정이 되어서였다. 무엇보다 세희는 혼자 살고 있는 상황이니 무슨 해코지라도 당할까 위험이 느껴져 걱정이 되었다. 그저 독한 담배연기로 인해 독가스 실에 갇힌 것 같은 고통을 참는 수밖에 없었다. 날이면 날마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도 괴로워도 하루하루를 참아내야만 했다. 남자의 담배연기는 그 뒤로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세희는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퇴근길이었던 어느 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남자를 만난 적이 있었다.
“아주머니는 전원주택으로 이사 가셔야겠어요.”
옆집 남자가 미혼인 세희를 향해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것도 기분 나쁜 일인데 비싼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가라며 빈정거리는 거였다. 세희 형편에 전원주택은 꿈도 꿀 수 없는 현실이었다. 헌데 남자는 마치 세희의 가난한 형편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느물느물 빈정거렸다. 미안해하기는커녕 오히려 빈정거리는 남자를 보고 독가스실에 가둬놓은 유태인을 학살한 히틀러가 떠올랐다. 세희는 이 집에 살고 있는 한 독가스실에 갇힌 그들과 다를 바가 없을 거라는 절망감이 밀려왔다.
“옆집에서 또 현관문을 열어놓고 담배를 피우고 있어요.”
“또 현관문을 열어놓고 피워요?”
“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담배연기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고 미치겠어요.”
세희는 관리실에 전화를 하여 하소연 겸 사정을 말해 보았다. 관리실에도 수차례 전화를 한 상태였다.
“여름이라 더워서 창문을 닫아놓을 수도 없잖아요.”
“그렇긴 하죠.”
관리실 여직원은 세희의 말에 동조를 하며 대답했다.
“담배연기가 집안으로 너무 많이 들어와 밖을 내다보았더니 또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거예요. 그 연기가 우리 집으로 다 몰려오잖아요. 지금 방송을 좀 해주세요.”
“참, 왜 그러지? 지금은 오전이라 방송은 안돼요. 야근하고 와서 잠자는 사람도 있으니 우리가 욕을 먹어요.”
관리실 여직원은 걱정해주듯 하면서도 방송은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담배연기 들어온다고 이 더운 여름에 창문을 닫아놓을 수도 없잖아요. 지금 방송 좀 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렇긴 하죠. 그렇게 주의를 주는데도 말을 듣지 않으니 우리도 어쩌겠어요. 개인 집이라 자꾸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제가 전화해서 말해볼게요.”
“그 남자가 집에서 담배를 피우는 지금 방송을 해주면 좋겠는데요. 날이면 날마다 괴로움을 당하는데 관리실에서 밤에만 방송을 하면 그 남자가 출근하고 없을 때니 소용이 없잖아요.”
“그래도 지금 방송은 안 돼요.”
“아니 사람이 있을 때 방송을 해야 들을 거 아니에요.”
“그 사람이 자기 집에서 피우는데 우리인들 어쩌겠어요.”
“그럼 관리실이 아닌 길가는 누구에게 말을 하겠어요? 관리실이니까 부탁하는 거잖아요.”
관리실 여직원은 다시 전화를 해보겠다고 했고 세희는 고맙게 여겨졌지만 방송이 안 된다고 하니 당장 시행을 하지 않는 관리실에도 화가 나서 언성이 높아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세희는 이렇듯 몇 번이나 관리실에 전화를 하여 담배연기가 괴롭다는 호소를 해보았다. 세희의 괴로움과는 달리 관리실에서는 꼭 옆집 남자가 출근하고 없는 저녁 7시경 정해진 시간에만 방송을 했다. 5호집 남자는 번번이 관리실에서 찾아오거나 전화를 하면 알았다는 대답은 잘도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냥 대답을 위한 대답일 뿐이었다.
세희는 외출을 하려면 5호집 앞을 지나다녀야만 하는 것이 괴로움이었다. 5호집 앞을 지날 때는 늘 그 집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찌들은 니코틴 냄새가 복도를 가득 차지하고 출렁거렸다. 세희는 숨을 쉬기조차 힘든 끈적거리는 니코틴 냄새가 넘실거리는 복도를 지나다니는 일이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남자의 입에 들어갔다 남자의 입과 코로 다시 나온 비말이 묻은 니코틴 연기를 맡지 않으려고 5호집 앞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숨을 참아야만 했다. 숨을 참고 발걸음을 빠르게 뛰다시피 걸어도 복도 가득 출렁이는 니코틴 담배냄새는 그녀 몸 어디이고 끈적끈적 달라붙었다. 그녀는 5호집 앞을 오갈 때마다 시커먼 굴뚝 속을 헤엄쳐 빠져나가는 고양이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길거리에서도 골목에서도 아파트 현관 앞에서도 누군가가 피워대는 담배연기는 끊임없이 공격해 왔다. 흡연을 금하는 안내문이 여기저기 붙어 있어도 그녀가 가는 세상 어디에서든 불시에 보이지도 않는 담배연기는 그녀를 향해 콧속으로 침범해 들어왔다. 그녀는 자신이 거대한 독가스실에 갇혀 빠져나가려고 끊임없이 울어대며 발버둥치는 고양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아아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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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희
1998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등단. 소설집 『탁란(托卵)』, 『가라앉는 마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