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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요녀(妖女) 등장 (1)
B.C 782년.
주선왕의 뒤를 이어 태자 궁생(宮生)이 제 12대 왕에 올랐다.
그가 주유왕(周幽王)이다.
점복가 백양보의 예언대로 주왕조의 기수(氣數)는 다했는가.
새로 왕에 오른 주유왕은 영명한 군주가 아니었다.
아니, 영명한 군주를 기대한 것이 과욕이라면 평범한 군주라도 상관 없었다.
그런데 주유왕(周幽王)은 평범함에도 미치지 못했다.
망국의 즈음에 등장하는 군왕의 스타일은 대개 두 가지로 압축된다.
- 암군(暗君)과 폭군(暴君)
암군은 어리석은 군주를 가리킴이요, 폭군이란 난폭한 군주를 말함이다.
대체로 암군(暗君)은 생존경쟁이 치열한 난세에 출현했다가 그 싸움을 이기지 못하고 역사 저편으로 사라져가고, 폭군(暴君)은 평화로운 시기에 등장하여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그런데 이번에 등극한 주유왕(周幽王)은 암군과 폭군의 기질을 모두 갖춘, 한마디로 자격 미달의 왕이었다.
우선 나라 일에 관심이 없었다.
조정에 나가 신하들과 국사에 관한 일을 얘기하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암군(暗君)의 전형이다.
거기에 난폭하고 음탕하기까지 했다.
부왕 주선왕의 상중에도 상복을 입기는 커녕 술에 취해 음악을 듣는 무도함을 서슴지 않았다.
폭군(暴君)의 전형이다.
때맞추어 노재상 소호와 윤길보, 중산보 등이 세상을 떠났다.
그외의 노신들은 신진세대에 밀려 은퇴했다.
괵공 석보(石父)와 제공(祭公), 그리고 윤길보의 아들 윤구(尹球)가 조정의 중역이 되었다.
그들은 주유왕(周幽王)의 심복이 되어 비위 맞추는 일에만 전념했다.
주선왕 때의 중신들로 태사 백양보, 정백(鄭伯) 우(友), 조숙대(趙叔帶) 등이 남아 있었지만 바른말만 하는 탓에 주유왕으로부터 냉대를 받고 있는 상태였다.
궁성 내부의 사정이 이러할 때 밖에서는 천재지변이 연이어 발생했다.
- 위수(渭水), 경수(涇水), 낙수(洛水)가 동시에 말라버리다.
- 기산(崎山)이 무너져 백성들의 집이 묻히다.
기산(崎山)은 주왕조가 창업되기 전 터전으로 삼았던 지역이다.
당연히 왕실에서 발벗고 나서서 수습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도 주유왕(周幽王)은 태평천하였다.
보다 못 해 중신 조숙대(趙叔帶)가 주유왕에게 간했다.
"옛날에 이수(伊水)가 고갈되어 하나라가 망했고, 황하가 마르자 은(殷)왕조가 망했습니다. 기산(崎山)은 우리 주왕조의 발상지입니다."
"그 기산이 무너지고 경수(涇水)가 마른 것은 마치 기름과 피가 마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나라에 상서롭지 못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정사를 부지런히 돌보시고 여색을 멀리 하십시오."
옆에 있던 괵석보가 끼어 들었다.
"현재 국조의 도읍은 호경입니다. 기산(崎山)은 이미 버려진 땅입니다. 버려진 땅에 연연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합니다."
주유왕(周幽王)은 그런 논쟁 자체가 정말 귀찮았다.
이마를 찡그리며 손을 내저었다.
"괵공 말이 옳다. 조숙대는 그만 물러가라."
쫓겨나다시피 궁에서 나온 조숙대(趙叔帶)는 집으로 돌아가는 중 태사 백양보를 만났다.
그는 백양보를 붙잡고 물었다.
"주왕실은 오래 가지 못할 것 같소. 만일 나라에 변이 생긴다면 그것은 언제쯤이겠소?"
백양보(伯陽父)는 손가락을 짚어 보고는 대답했다.
"10년을 넘기기 전에 커다란 변란이 일어날 것이오."
"어째서 그렇소?"
"8괘도, 64괘도, 일월성신의 운행도 모두 한 가지 이치에서 비롯합니다. 선(善)이 가득하면 복이 오고, 악이 가득하면 재앙이 오게 마련이지요."
"10은 영수(盈數)입니다. 지금 궁성 안팎으로 악이 가득 찼는데, 어찌 기울어지지 않을 수 있겠소. 그러므로 지금 왕실은 10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 한 것이오."
조숙대(趙叔帶)가 다시 물었다.
"왕실의 신하 된 몸으로 닥쳐올 재앙을 막고 싶은데, 좋은 방법이 없겠소?"
"왕에게 간(諫)하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소."
"내 지금 왕께 간하고 나오는 길이오. 하지만 왕은 괵석보의 말만 들을 뿐, 내 말은 귀담아 듣지도 않았소."
"그대가 간했는데도 듣지 않았다면 희망이 없소."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오?"
"떠나는 것이 상책이겠지요."
"떠나는 것이 상책이라....., 그대는 떠날 작정이오?"
"아니오. 나는 점을 쳐서 하늘의 뜻을 해석하는 직책을 가진 사람이오."
"앞날에 재앙이 온다 하여 어찌 여기를 떠날 수 있겠소. 이 곳에 앉아서 끝까지 지켜보아야 할 의무가 있소이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조숙대(趙叔帶)는 방 안에 앉아 밤을 꼬박 새웠다.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새벽녘에 조숙대(趙叔帶)는 마음을 정했다.
집안 식구를 한자리에 불러보아 자신의 결심을 밝혔다.
"옛말에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며, 어지러운 나라에서는 살지 말라고 했다. 이제 이 나라는 망국의 조짐이 역력하다."
"나는 차마 앉아서 주왕실의 <맥수지가(麥秀之歌)>를 들을 수가 없구나."
<맥수지가(麥秀之歌)>는 은왕조 말기 주왕의 숙부인 기자가 은(殷)나라 멸망 후 폐허가 된 궁전 주변으로 보리밭이 무성한 것을 보고 지었다는 노래이다.
보리는 파랗게 자라 빛나고
수수는 기름져 탐스럽구나.
아아, 어리석은 사람이
내 말을 듣지 않았음이여.
망국을 비탄하는 대표적인 시(詩) 중 하나이다.
<맥수지탄>이라고도 한다.
며칠 후 조숙대(趙叔帶)는 집안 식구를 데리고 호경을 떠나 진(晉)나라로 들어갔다.
후일 진나라에선 조쇠(趙衰)라는 사람이 등장하여 명성을 떨치게 되며, 또한 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조씨 일문이 조(趙)나라를 세우는데, 이 조씨들이 바로 조숙대(趙叔帶)의 후예들이다.
조숙대(趙叔帶)의 망명은 조정 중신들 사이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모두들 동요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 포성 땅을 다스리는 대부 포향(褒珦)이 조숙대의 망명 소식을 듣고 호경으로 달려왔다.
포성(褒城)은 하왕조 때에는 봉국이었다.
그 곳을 다스리는 사람이라면 과거에는 어엿한 왕족이요 제후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까마득한 옛날의 일.
지금은 오로지 망국의 후예요, 주왕실에 충성을 다하는 대부에 불과할 따름이다.
포향(褒珦)은 고지식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왕께서 천변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진 신하를 쫓아버렸으니, 나라가 텅 빈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사직조차 보존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곧이곧대로 간(諫)했다.
이미 거칠 것이 없는 주유왕(周幽王)이었다.
땅바닥을 기어가는 벌레 보듯이 이마를 찌푸리며 간단히 명령을 내렸다.
"저자를 옥에 가둬라."
죽이지 않고 옥에 가둔 것은 뇌물을 갖다 바치라는 뜻일까, 아니면 죽일 가치도 없다는 경멸의 뜻일까.
그런데 이 포향(褒珦)의 구금이 주유왕(周幽王)의 운명, 아니 주왕실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줄을 어느 누가 알았으랴.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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