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개요
1) 창 1장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으로 학문으로는 알 수 없는 영역이다.
2) 지성소는 시공을 넘어서 있는 일로 여기에서의 낮과 밤은 ‘히다’와 ‘마샬’의 내용이다.
3) 작은 광명과 별들이 밤에 빛을 발하듯,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도 밤에 빛을 발한다.
4) ‘별들을 만드시고’는 오역으로 하나님은 어떤 것도 만들지 않으며, 자신만 드러내신다.
5) 아브람은 내면의 하늘에서 수많은 별들이 떠 있는 것을 자신 안에서 본 것이다.
나. 본론
1) 창 1장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으로 학문으로는 알 수 없는 영역이다.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창 1:16).”
(방댜아스 엘로힘 에트-셰네 함메오로트 핚돌림 에트-함마오르 하까돌 레멤셸레트 하용 베에트-함마오르 하카톤 레멤셸레트 할라엘라 베에트 하코카빔.) 번역이 잘못 되었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도록 번역하였다. 휘장을 넘어 지성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그 안을 들여다보고 알아야 하는데 혹 들여다본다 하여도 시공이 없어서 지혜가 없으면 마음(시공이 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는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창 1장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으로 학문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으며 더욱 소경이 될 뿐이다.
“하나님이 두 큰 광명들(복수)을 온전케 드러내시고(아사) 그 큰 광명 체(단수)는 그 낮(욤)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 체(단수)는 그 밤(라엘라)을 주관하게 하시며 그리고 그 별(코카브)들을 주관하게 하시고(베에트)”
2) 지성소는 시공을 넘어서 있는 일로 여기에서의 낮과 밤은 ‘히다’와 ‘마샬’의 내용이다.
앞 절부터 ‘그 낮’과 ‘그 밤’이 등장한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시공을 넘어서 있는 지성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낮과 밤은 히다와 마샬로 이루어진 내용으로서 인생들의 개념 안에 있는 낮과 밤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낮은 깨달음이고 밤은 죄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과연 그런가?
지성소 안에는 죄가 없다. 히다와 마샬과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파라볼레(히다)로 말씀하여 주심으로 파로이미아(마샬), 크륍토(마샬)가 드러난다. 이 관계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저녁이 되어야 아침이 온다. 저녁이 되어야 밤이 오고 다음에 욤이 임하게 된다. 그러므로 저녁이 오면 밤이 오는데 밤은 아침을 여는 안내자다. 밤이 와야 아침이 나타난다. 이 절정의 순간은 밤과 아침이 하나다.
3) 작은 광명과 별들이 밤에 빛을 발하듯,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도 밤에 빛을 발한다.
여기에서 밤은 무슨 의미일까? 밤에 작은 광명과 별들이 빛을 발하듯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도 밤이 되어야 빛을 발한다. 이처럼 밤은 대단히 중요하다. 밤과 낮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다. 지성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광야에서 밤(뉘크스)과 낮(헤메라) 사십일을 지내야 했고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쇠로쉬욤) 삼야(솨로쉬라엘라)를 있었다. 밤과 낮은 한 쌍으로 나타나며 밤은 아침을 여는데 필수 요소다.
4) ‘별들을 만드시고’는 오역으로 하나님은 어떤 것도 만들지 않으며, 자신만 드러내신다.
넷째 욤 안에서 나타나는 마오르들에서 오트들 모에드들 욤들 샤네들이 등장하고 큰 광명들 둘이 있고 큰 광명들은 욤(낮으로 번역)을 주관하고 그 중 작은 광명 체(단수)가 밤(하라엘라)을 주관하고 있다.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이다.
‘별들을 만드시고’는 잘못 번역하였다. 하나님은 그 어떤 것도 만들 수 없다. 자신만 드러내신다. 그러므로 ‘별들을 온전케 드러내신다(아사).’가 그 흐름에 맞는다. 마오르 안에 원래부터 있는 별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작은 광명 체(마오르)가 밤을 주관하면서 광명체로부터 별(코카브)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 별들이 아침을 연다. 작은 광명과 별들이 아침으로 안내한다.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로서 다음 욤으로 안내하고 있다.
깨달음의 단계는 이처럼 자세하고 상세하게 흐트러짐 없이 지도처럼 그려나가고 있다. 이를 벗어나면 아버지와 하나를 이루지 못한다.
5) 아브람은 내면의 하늘에서 수많은 별들이 떠 있는 것을 자신 안에서 보았다.
아브람은 내면의 하늘에서 수많은 별들이 떠 있는 것을 자신 안에서 본 것이다. 이 별들이 새 언약에 나타날 바로 오트(징조)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머금고 있는 믿음의 선진들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수많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그 마음의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러므로 시공간에 있는 세상의 별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예수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정확하게 아버지와 하나, 한 몸으로 되어 인도한다. 넷째 욤에서의 일이다.
왜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넷째 욤 안으로 들어가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된 가룟 유다를 보게 된다. 복음서에서 오천 명이 예수께서 주시는 양식을 받아먹었지만, 그 의미를 아는 자는 열둘뿐이 없었고, 나머지는 육신을 채워주는 썩을 양식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만큼 말씀을 먹어도 내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깨어나는 자가 드물다.
생명의 그 빛과 안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