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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복 단편소설]
먼 길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밭고랑이나 길바닥에서 일어난 뿌연 흙먼지가 공중으로 훨훨 솟구치고 있었다. 황량한 두메산골이었다. 좁다란 도로변으로 가물에 콩 나듯 외딴집들이 띄엄띄엄 흩어져 있었고, 낡을 대로 낡은 헌털뱅이 버스는 덜컹덜컹 몸을 흔들면서 울멍줄멍한 길을 따라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다. 버스 옆구리에는 ‘송산여객’이라 쓰여 있었다.
산모퉁이로 이어진 길은 요리 꼬불 조리 꼬불 휘어져서 끝 간 데가 보이지 않았다. 버스가 협곡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산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다. 뒤를 돌아다보면 청솔가지 연기 같은 흙먼지가 버스의 뒤꽁무니에서 뭉클뭉클 흩어지고 있었다. 산비탈에는 군데군데 화전으로 일군 밭뙈기들이 알몸을 드러내고 있었다.
형준은 검단리(劍丹里) 종점에서 내렸다. 자갈과 모래로 다져진 버스 종점은 쓸쓸하고 고즈넉하였다. 여기저기 주먹만 한 돌멩이들이 제멋대로 나뒹굴고 있었다. 깎아지른 바위 절벽에서 수평으로 뻗어 나온, 몸통이 불그죽죽한 왕소나무는 어기찬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쉬익쉬익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부짖고 있었다. 물러가는 겨울이 허공으로 잦아들면서 몸살을 앓았고, 다가오는 새봄이 꽃과 초록을 잉태하면서 입덧을 하고 있었다.
그는 잠시 주변 경관을 살펴보았다. 높은 산들이 온통 주위를 에워싼 이 일대는 하늘만 빠끔하게 트여 있는 형상이었다. 마침 실개천 메마른 억새밭에서 일제히 치솟은 멧새 떼가 바람을 헤치며 숲속으로 와르르 날아가고 있었다. 까치 몇 마리는 나무들 사이로 미끈한 포물선을 그으며 날렵하게 비행하고 있었다.
등산로 안내판 옆에 다 쓰러져 가는 엉성한 점방이 있었다. 금세 폭삭 내려앉을 듯 퇴락할 대로 퇴락한 가게는 그 안에 사람이 사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유리문에는 누런 흙먼지가 더께더께 올라앉아 아예 개흙으로 맥질을 해놓은 것 같았다. 지붕 추녀 루핑 조각 한 자락이 푹 꺼져 위태롭게 늘어져 있었다.
형준은 드르륵 유리문을 열었다. 허름한 문짝도 문짝이지만, 문턱이 워낙 닳고 닳아 유리문은 몹시 덜렁덜렁하였다. 가게 안에는 조잡한 과자 봉지와 삐쩍 마른 건어물 따위를 진열해 놓은 좌판이 있었고, 그 옆의 술청에 찌그러진 탁자와 나뭇등걸로 만든 투박한 걸상 몇 개가 뒤엉켜 있었다.
술청에서는 퀴퀴한, 그러면서도 시큼 텁텁한 냄새가 물씬 풍겨 나왔다. 탁자 밑에서는 송아지만 한 늙은 개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낯선 나그네가 들어서자 개는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게으른 하품을 베어 물었다. 좌판이나 술청에는 어디라 할 것 없이 까뭇까뭇한 파리똥이 쫙 깔려 있었다. 개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더니 어슬렁어슬렁 술청 한구석으로 자리를 옮겨 사지를 펴고 몸을 눕혔다.
오죽잖은 쪽마루 밑에는 검정 고무신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방에 누군가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형준은 커음커음 헛기침을 뱉으면서 가게와 술청 사이의 장지문 앞으로 다가갔다.
“주인 양반 계십니까.”
“누구슈?”
다소 퉁명스러운 음성과 함께 장지문이 슬쩍 열리나 했더니 핼쑥한 중늙은이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병색이 짙어 보였다. 거무튀튀한 낯에 까칠하게 자란 수염하며, 쿨룩거리는 기침이라든가 아무튼 첫눈에도 대뜸 병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형준이가 말했다.
“말씀 좀 여쭤볼까 합니다.”
“물으슈.”
중늙은이는 핵핵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숨소리 끝에는 가르랑가르랑 가래 끊는, 마치 물레로 명 잣은 듯한 소리가 끈적끈적 묻어나고 있었다. 쿨룩쿨룩… 기침도 예사롭지 않았다. 지붕의 루핑 쪼가리 풀럭거리는 소리가 심란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형준이가 물었다.
“저어, 혹시 검단리 3백 20번지가 어딘지 아십니까.”
“흥. 여기는 번지수로 사람을 찾는 곳이 아니라우. 그보다는 동네 이름을 대는 게 빠르지.”
“동네 이름은 강당골이라고 들었습니다만…”
“강당골에 누구를 찾으러 가시우?”
“그 동네 사람들을 잘 아십니까.”
“알다마다… 강당골에는 겨우 여남은 가구가 살 뿐인디 뭐.”
그는 계속 헐떡거렸다. 목구멍에서는 여전히 가래 끊는 소리가 넘어오고 있었다. 여간 딱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앉은뱅이처럼 뭉그적거리며 문지방으로 넘어와 쪽마루에 걸터앉았다. 형준이가 물었다.
“혹시 박분녀 씨를 아십니까.”
“박분녀라… 아무래도 여자 이름 같수 그려.”
“그렇습니다. 살아 계신다면 지금쯤 환갑 진갑이 훨씬 넘으셨을 겁니다.”
“글쎄… 남자 이름은 다 아는디 여자 이름이라 잘 분간이 안 가는군. 가만있자, 정일상 씨 부인이 박 씨라고 했던가… 그런데 정일상 씨 부인은 오래전에 죽었수. 하여간 좀 더 자세한 사정을 알고 싶거들랑 강당골에 가서 직접 수소문을 해 보슈.”
“그럼 강당골에 가면 정일상 씨를 만날 수 있습니까.”
“예끼, 여보슈. 그 사람 세상 뜬 지가 언젠디 그 사람을 만난단 말이우? 저엉 그 사람을 만나고 싶거들랑 이담에 저승에 가서 만나슈.”
중늙은이는 시종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그는 병들어 골골하는 몸인지라 만사가 귀찮게 느껴지는 듯했다. 형준은 조금씩 모종의 단서가 잡힌다고 생각했다. 비록 고인이 되었다지만, 정일상 씨라는 이름과 박씨 성을 가진 부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아주 큰 소득이었다.
이제 정 씨를 중심으로 차근차근 탐문해 들어가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은 동물적 육감이 들었다. 하지만 입맛이 씁쓸했다. 어쩌면 생모일지도 모를, 박씨 성을 가진 정일상 씨의 부인이 사망했다는 사실이야말로 유감천만이 아닐 수 없었다. 형준이가 물었다.
“그럼 그 가족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것까진 잘 모르겠수. 정일상 씨가 죽자 그 가족들은 타관 객지로 뿔뿔이 흩어졌으니께.”
“강당골에 가면 박분녀 씨를 아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요.”
“그렇지. 강당골에 가거들랑 홍 노인을 찾으슈. 그 동네일은 누구보다도 홍 노인이 훤하게 알고 있으니께. 그 양반한테 물으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외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강당골은 어디쯤 됩니까.”
“요 앞에 쬐끄만 다리가 하나 있수. 그 다리를 건너 곧장 올라가슈. 그러면 큰 느티나무가 나오는데 거기가 바로 강당골이우.”
“네, 감사합니다. 맨손으로 그냥 갈 수는 없고… 홍 노인은 뭘 좋아하십니까.”
“술을 좋아하지. 그것도 막걸리를 좋아한다우.”
“아, 그렇군요. 막걸리 있으면 서너 병 주십시오.”
“알았수.”
중늙은이는 검정 고무신을 신었고, 봉당으로 나와 진열대 밑의 막걸리병을 꺼냈다. 병의 표면에는 ‘송산 막걸리’라 인쇄된 상표가 붙어 있었다. 하얀 플라스틱병에 담긴 툽툽한 막걸리는 며칠이나 묵었는지 절반쯤 가라앉아 있었다. 형준이가 말했다.
“안줏거리도 좀 주십시오.”
“홍 노인은 원래 술을 좋아하기는 해도 안주는 별로 안 먹는 사람이라우. 막걸리에 김치 한 가지면 그만이거든. 아마 그 집에 김치는 얼마든지 있을 겨.”
“담배도 피우는 분이신가요?”
“그야 물론이지.”
“그럼 평소 홍 노인께서 좋아하시는 담배로 열 갑만 주십시오.”
“그럽시다.”
중늙은이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곧이어 포장지에 ‘라일락’이라 쓰인 담배 한 포를 꺼내왔다. 그는 연신 기침을 토하면서 막걸리병과 담배를 비닐봉지에 주섬주섬 주워 담았다. 중늙은이는 등이 유난히도 엉구부정하게 굽어 있었는데, 수전증까지 심해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는 데도 양쪽 손을 덜덜덜 떨고 있었다.
물건값을 치르고, 형준은 서둘러 가게에서 나왔다. 때마침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길바닥을 휩쓸며 지붕 위로 높이 치솟고 있었다. 지푸라기와 휴짓조각과 비닐 쪼가리 같은 잡동사니들이 한 데 뒤섞여 을씨년스럽게 난무하고 있었다. 건너편 언덕에는 ‘산불조심’이라 쓰인 표지판이 서 있었다.
그는 곧 중늙은이가 일러준 다리를 지나 개울 옆길로 들어섰다. 개울에는 유리처럼 투명한 시냇물이 졸졸졸 흘러가고 있었다. 물이 얼마나 깨끗하던지 개울 바닥의 반들반들한 돌과 희고 고운 모래알까지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계곡 언덕 바위틈에는 검푸른 이끼가 끼어 있었고, 앙상한 나무들 사이로 메마른 가랑잎이 후룩후룩 나뒹굴고 있었다.
형준은 뭔가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에 더욱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마음은 벌써 강당골에 가 있었고, 수십 년 묵은 수수께끼가 말끔히 해결될 듯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어제였다. 그는 고향 마을 선영에 들러 조상 산소에 차례차례 성묘한 뒤 송산 읍내 공동묘지에 있는 부모님의 묘소에도 들렀다.
본래 고향에는 일가친척이 여러 세대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 객지로 떠나고 음지뜸에 재당숙네 한 집과 팔촌들만이 살고 있었다. 재당숙 내외와 팔촌들은 하룻밤 묵어가라고 애써 붙잡는 것이었지만, 형준은 날이 밝자마자 검단리를 들러야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그는 송산 읍내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 한 여관에서 묵었다. 재당숙이나 팔촌들은 말만 당내 간이지 사실상 남이나 다름없었다.
해 질 무렵, 그는 식당에서 저녁밥을 사 먹고 곧장 여관으로 들어와 초저녁부터 잠을 청했다. 하지만 그는 자정이 훨씬 지나도록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이제야 드디어 검단리를 찾아가게 되었구나. 어머니의 숨결을 만날 생각에 자꾸만 가슴이 설레었고, 기구한 운명이 골수에 사무쳐 잠이 멀찌감치 달아나는 것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일생일대의 비밀들을 모조리 밝혀내고야 말리라. 그는 새벽녘에 이르러 겨우 잠이 들었지만, 그러나 동창이 밝기도 전에 눈을 뜨지 않을 수 없었다. 가던 날이 장날이라더니, 그날이 마침 송산 장날인 터라 이른 새벽부터 바깥이 시끌벅적했기 때문이었다. 장을 보려고 버스를 타고 온 승객들로 터미널이 붐비기 시작한 탓이었다.
그는 눈을 비비고 일어나 욕실로 들어가 몸을 씻었고, 어제 저녁밥을 사 먹었던 그 식당에서 맛깔스러운 해장국으로 빈속을 채운 뒤 곧바로 검단리행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는 서너 사람이 타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검단리가 산간 벽촌이라는 말은 자주 들었지만, 사실 송산에서 검단리에 이르는 길은 여간 험하고 후미진 것이 아니었다. 아직도 이런 오지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새삼스럽다 못해 신비스럽기까지 하였다.
버스는 송산에서 검단리까지 하루 두 차례 운행하고 있었다. 버스 종점에서 강당골로 들어가는 길에는 인가 한 채 보이지 않았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곤 온통 산뿐이었다. 산, 산… 산자락 끝을 돌고 돌아 허리띠처럼 가느다랗게 이어진 길은 이런 심산유곡에도 더러 사람이 내왕한다는 것을 넌지시 일러주고 있었다.
형준은 한평생 가난에 쪼들리다 돌아가신 선친을 생각했다. 김 씨 일문은 본래 송산 일대에서 갑부로 군림했었는데, 무슨 연유에선지 형준의 부친 김선태 씨가 한창 젊었을 때 비참하게 몰락했다. 집안이 망하는 것은 하루아침이었다. 김 씨 일문의 쇠락은 형준이가 철들기 이전의 일로서 송산 지역의 전설로 남아 있었다.
알다시피 인간사는 불가사의로 가득했다. 죽었다 깨어나도 풀지 못할 거짓말 같은 실화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그 많은 재산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김 씨는 한평생 말할 수 없는 곤궁 속에 등골이 빠지도록 힘겨운 중노동에 시달리다가 처참한 일생을 마쳤다. 그러나 살쾡이보다 더 무서운, 천벌을 받아 마땅한 어머니는 집안이 곤두박질친 뒤에도 누릴 것 다 누리며 살았다. 아버지가 아니라면 어머니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부이면서도 성격상 남남보다 훨씬 더 이질적이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두 분은 극과 극이었다. 아버지가 온순한 양이라면 어머니는 굶주린 승냥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두 분은 애당초 한 가족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도 한 집에서 한솥밥 먹으며 한 이불을 덮고 살다니 사람 팔자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어린 시절, 형준은 그 요물 같은 어머니에게 엄청난 반감을 품고 자라났다.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찬 적개심이었다. 그녀는 남이야 죽든 말든 마치 호강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아버지가 공사판에 나가 겨우 날품팔이를 하는 형편이건만 그녀는 별로 하는 일도 없으면서 호사스러운 비단옷을 입었고, 장날 같은 때에는 근동의 내로라하는 부잣집 마나님들과 어울려 곧잘 읍내로 나가 영화 구경이나 서커스 구경을 즐기기도 하였다.
아버지의 고생은 말이 아니었다. 마음 여린 당신은 늘그막에 이르러 거의 술과 눈물로 뼈를 깎으며 살았다. 말년에는 벌이가 없어 끼니조차 잇기 어려웠다. 아버지는 거의 매일 주막거리에 나가 친구들로부터 술을 얻어 마시곤 하였다. 거나하게 술기운이 오르면, 당신은 허청허청 비틀거리며 집에 돌아와 거의 예외 없이 훌쩍훌쩍 울곤 했다.
형준은 그런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남들, 특히 같은 또래의 동네 아이들이 그 장면을 훔쳐볼까 두려웠다. 고만고만한 동무들이 울보 같은 아버지의 모습을 훔쳐본다면 미상불 좋은 놀림거리로 삼을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술이었다. 술만 마시지 않으면 울고 자시고 할 일도 없으련만, 인사불성으로 대취한 날에는 어김없이 눈물바다를 연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극복하기 어려운 난관은 발작에 가까운 어머니의 화풀이와 패악질이었다. 아버지가 하염없이 울고 있을라치면 그녀는 부엌에 들어가 구시렁거리며 무엇이든 왈그락 왈그락 두들겨 부쉈다. 오죽하면 부엌의 바가지나 사기그릇 따위는 어느 것 하나 온전한 데가 없었다.
무서웠다. 어머니는 한 번 화가 났다 하면 형준이를 가만두지 않았다. 아버지가 울다가 지쳐서 잠들면 그녀는 어김없이 형준이를 뒤꼍 솔밭으로 끌고 들어가 미친 듯이 매를 휘둘렀다. 그런 어머니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었다. 그녀는 본래 성격 자체가 모질어서 마을 사람들과 자주 말다툼을 벌이곤 했는데, 일단 매를 들었다 하면 눈에 불을 켜고 식식거리면서 형준이가 기절하여 널브러질 때까지 절반쯤 죽여 놓는 것이었다.
어머니의 매질은 가혹했다. 그녀는 사흘이 멀다고 형준이를 두들겨 팼고, 무참히 얻어터진 형준이의 몸뚱이는 한 군데도 성한 데가 없었다. 남들도 다 알다시피 어머니는 매질 대신 보리타작이라는 말을 즐겨 쓰곤 했다. 그것은 도리깨로 보리를 타작하듯이 있는 힘을 다해 요모조모로 두들겨 팬다는 뜻이었다.
더구나 어머니는 불여우처럼 교활했다. 아버지 앞에서는 형준이를 아끼는 척 갖은 알랑방귀를 다 뀌었지만, 아버지가 없는 곳에서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표독스러운 살쾡이로 돌변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으면 우선 형준이에 대한 호칭부터 달라졌다. 평소에는 꼬박꼬박 이름을 불러 주다가도 아버지의 눈길이 미치지 않거나 비위가 좀 뒤틀렸다 하면 그녀는 으레 형준이를 ‘돼지새끼’라 부르곤 하였다.
어머니의 눈에는 형준이가 사람이 아닌, 하찮은 돼지새끼 정도로 비치는 모양이었다. 남들도 다 알다시피 형준이는 그녀 앞에서 돼지새끼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었다. 세상에 그렇게 매를 맞고 자라는 돼지새끼가 어디 있을까. 하여간 그녀는 악마보다도 더 악독한, 별종 중에서도 유별나게 지독한 별종이었다. 저승사자는 그런 괴물을 잡아가지 않고 어디에서 뭘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형준이가 읍내 야간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이었다. 어느 날이던가 하루는 감나무집 침쟁이 아저씨가 형준이를 산제당(山祭堂) 앞으로 조용히 불렀다. 그분은 오래도록 동네 구장(지금의 이장)을 지낸, 출생신고에서 사망신고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을 위해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해준 분이었다. 그 아저씨는 누구보다도 동네 대소사에 적극적이었다. 울퉁불퉁 불거져 나온 소나무 뿌리에 걸터앉아 아저씨가 말했다.
“형준아. 네가 정말 딱하지 뭐냐. 명색 어머니라는 사람이 왜 그렇게도 널 구박하는지 모르겠구나. 네 어머니는 너무 포악하단 말이여. 세상에 그렇게 몰인정한 여자는 둘도 없을 것이구나.”
형준이는 그 말 한마디에 하마터면 왈칵 울음을 터뜨릴 뻔하였다. 아저씨의 말에는 따스한 인정이 넘쳤다. 동네 사람들이 다 알다시피 인품이 훌륭했다. 형준이가 말했다.
“저는 사실 살고 싶지도 않아요.”
“그렇겠지. 네 심정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살아야 한다. 저엉 견디기 어려우면 느이 생모를 찾아가거라.”
기상천외의 귀띔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형준은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온몸이 쩌르르 하면서 정신이 어질어질해지는 전율을 느꼈다. 형준이가 물었다.
“생모라니요?”
“너를 낳아준 어머니는 따로 있느니라.”
“네에? 절 낳아주신 어머니가 따로 있어요?”
“그럼. 따로 있지. 강당골이라던가, 좌우간 검단리 어디쯤에 산다는 말을 들었다만… 거긴 험한 곳이라 네가 혼자서 찾아가기는 힘들 겨. 나중에 좀 더 크거들랑 네 생모를 찾아보렴. 너처럼 착한 아이가 악마 같은 서모를 만나 너무 안쓰럽지 뭐냐? 여자란 모름지기 자기 몸으로 아이를 출산하고 볼 일이지. 그래야만 남의 자식 귀한 줄을 아는 법이여. 네 서모는 아이를 낳지 못한 돌치라서 그렇게 쌀쌀맞고 매정하거든. 하여간 네가 너무 딱하구나.”
형준은 줄곧 아저씨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중에서도 ‘악마 같은 서모’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면서 진저리를 쳤다. 어느 사이엔가 벌겋게 충혈된 아저씨의 눈에는 그렁그렁 영롱한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형준은 그때 당장 집을 뛰쳐나가 검단리 모친 곁으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 형준은 어렸고, 만약 어설피 가출을 시도했다가 불발로 끝나는 날에는 서모한테 무슨 날벼락을 맞을지 모르는 형편이었다. 그뿐 아니라, 서모에게 워낙 주눅이 들어 언감생심 생모를 찾아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형준은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릴 무렵 아저씨를 따라 산제당에서 내려왔다. 그는 그날 이후 이 나이에 이르도록 검단리 어딘가에 살고 있을 모친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검단리는 너무 멀었다. 생모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사람의 일이란 자기 뜻대로 그렇게 간단히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쓸데없는 빈말이나 구차스러운 변명이 아니었다. 생모는 어찌하여 어린 나를 버렸을까. 복잡한 의문과 쓰라린 원망이 뒤죽박죽으로 뒤엉켜 이만저만 혼란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얼굴조차 모르는 생모. 인제 와서 그분을 찾는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가 하면 모친과의 상봉이 또 다른 참화를 불러오지나 않을까 두렵기까지 했다. 현실은 엄혹했다. 자학과 절망과 자포자기의 나락에서 모친을 찾기보다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가 더 바빴다.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초봄이었다. 아버지가 송산 읍내 네거리에서 교통사고로 즉사하였고, 그 직후 형준은 송산양조장 배달부로 들어가 자전거에 무거운 막걸리 통을 실어 나르며 근근이 살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더니, 입에 풀칠하려면 단 하루도 뼈마디가 물러나는 듯한 살인적인 중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이어지는 중노동이었다.
그 무렵, 철천지원수 같던 서모는 당뇨병에다 해소병까지 들어 고롱고롱하였다. 형준은 그 여자 약값 대기도 바빴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를 아무 데나 내치고 싶었지만, 그러나 저승에 계신 아버지 체면을 봐서라도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끈질긴 악연이었다.
결국 서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약 3년 만에 숨을 거두었다. 추운 겨울이었다. 형준은 싸늘하게 죽어간 그녀의 시신을 거두어 아버지가 잠든 공동묘지에 장사지내 주었다. 서모는 걸핏하면 형준에게 매질이나 해댔지만, 형준은 그녀의 최후까지 자식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었다.
삼우제를 지낸 뒤, 형준은 다짜고짜 송산양조장 배달부 생활을 청산하고 송산역에서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딱히 서울에서 오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번듯한 취직자리가 기다리고 있을 리 만무했지만, 그러나 그는 서울에만 가면 뭔가 지금보다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 속에 무턱대고 상경한 것이었다.
그런데 웬걸 형준의 서울 생활은 더욱 험난한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그가 오늘날까지 고생한 이야기를 하자면 한도 없고 끝도 없었다. 처절했다.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고, 해가 져서 날이 저물면 서울역 대합실은 물론 변두리 야산이나 도심의 공중전화 부스를 잠자리로 삼아야 했다.
풍찬노숙이었다. 일자리를 구하기란 잠자리를 마련하기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막노동에서 행상으로, 행상에서 노점상으로, 노점상에서 월세로나마 두 평짜리 구멍가게를 마련하기까지 그는 밑바닥을 박박 기며 정말 숨 가쁘게 살아왔다. 돌이켜보면 굶어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 천행이었다.
그런 와중에서 형준은 가발공장 공원으로 일하던 아가씨를 만났다. 그는 착하디착한 그녀를 아내로 맞아 살림을 차렸다. 천생연분이었다. 아내는 천애 고아 출신으로 의지가지없는 형준을 위해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 그동안 아이들도 연년생으로 남매가 태어났다. 다행히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라나 이제 두 녀석 모두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큰 녀석이 중학교에 들어가던 해 정부가 호적 정비 기간을 공표했다. 출생신고나 사망신고 등 아직까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호적을 전국적으로 일제히 바로잡으려는 것이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형준은 마침 잘 됐다 싶어 송산읍사무소를 찾아가 생모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형준은 호적 따위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실지로 호적 따위가 먹고사는 일을 좌지우지하는 것도 아니었다. 누가 호적등본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었고,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관공서 같은 곳에 호적 관련 서류를 제출할 일도 없었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형준이가 아직 학생이었을 때, 그는 간혹 학교에서 나누어 주는 서류에 가족 관계를 적어내야 할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아버지 김선태, 어머니 최을순으로 이름만 써넣으면 그만이었고, 그 후에도 형준은 굳이 호적 문제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호적뿐만 아니라 읍사무소와 관련된 사무는 전적으로 아버지의 몫이었고, 만일 아버지가 해결하지 못할 까다로운 사안이 생기면 발 넓고 인정 많은 감나무집 침쟁이 아저씨의 힘을 빌리곤 하였다. 그 아저씨에게 부탁하면 안 되는 일이 없었다. 특히 이웃에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발 벗고 나서서 당신 일처럼 도와주었다.
형준이가 훗날 혼인신고를 할 때나 아이들 출생신고를 할 때도 매번 그 아저씨의 도움을 받았다. 형준은 굳이 고향에 갈 필요가 없었고, 아저씨에게 연락만 하면 아저씨가 가타부타 군말 한마디 없이 그 성가시고 귀찮은 일을 찬찬하게 해결해 주었다. 형준은 고향 일에 관한 한 순전히 그 아저씨에 의지해 엄벙덤벙 주먹구구식으로 살아온 셈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돌아가신 이후로는 그런 일을 만만하게 부탁할 데가 없었다. 그 반면, 아이들이 자라나면 자라날수록 은연중 호적에 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이었다. 만일 아이들 호적이 잘못돼 있다면 그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거나 군대에 입대할 때 본의 아닌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지 않은가.
더욱이 호적에 관해 생각할라치면 뭐니 뭐니 해도 모친 문제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리하여 그는 꼭 호적을 통해 모친의 이름만이라도 밝혀내리라 벼르고 별러왔던 것인데, 마침 호적 일제 정비 기간이 주어졌고, 그는 실로 오랜만에 고향의 읍사무소를 찾아 호적등본부터 떼어 보았다.
서류는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우선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에는 큼지막한 ×표가 북북 그어져 있었다. 김선태와 최을순이라는 이름은 사망신고와 동시에 호적에서 영영 지워진 것이었다. 그 대신, 그 서류에는 형준과 아내, 그리고 두 아이에 대한 기록이 등재돼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형준은 자신의 출생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다가 그만 소스라치게 놀랐다. 호적에 의하면, 형준은 검단리 300- 20번지에서 박분녀의 사생아로 출생하였고, 그로부터 3년 뒤 김선태에게 입양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 기상천외의 기록을 발견하는 순간 형준은 실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렇다면 아버지까지도 생부가 아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양부였단 말인가. 만약 아버지가 양부였다면 모친 박분녀에게 형준을 잉태시킨 진짜 부친은 어디 사는 누구란 말인가. 후사(後嗣)를 위해서라면 문중에서 양자를 간택하는 것이 순리이련만, 아버지는 어찌하여 아무런 연고도 없는 박분녀의 사생아를 굳이 양자로 맞아들였을까.
의문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진정 양부였다면, 감나무집 침쟁이 아저씨는 왜 아버지에 대해 일언반구 언급도 하지 않았을까. 아저씨는 악독한 최을순을 집중적으로 성토할 뿐 아버지에 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전혀 말 한마디 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아저씨는 그날 왜 최을순을 굳이 ‘서모’라고 표현했을까. 아버지와 최을순은 엄연한 부부였고, 아버지가 정녕 양부였다면 아버지의 부인이었던 최을순을 마땅히 서모가 아닌 양모라고 말했어야 옳지 않았을까. 그렇건만 아저씨는 분명 그 여인을 ‘악마 같은 서모’라고 지칭했던 것이다.
의문은 또 있었다. 아이를 낳지 못한 원죄가 자기한테 있다면, 그리하여 어차피 남의 자식을 양자로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면, 최을순이야말로 어느 누구보다도 형준을 극진히 애지중지했어야 할 텐데, 아버지가 형준이를 끔찍이 아껴 주었던 반면, 그 여자는 한평생 형준을 잡아 죽이지 못해 안달하다가 마침내 당뇨 합병증으로 병사한 것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양자를 맞아들인 사람은 어디까지나 김선태와 최을순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세 살짜리 형준이가 자진해서 그 슬하로 들어갔을 리 만무했다. 그렇다면, 형준이가 아무리 모자라고 바보 천치 같은, 최을순의 말마따나 돼지새끼만도 못한 무지렁이라 해도 그렇게 천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모친은 어쩌다 사생아를 낳게 되었고, 무엇 때문에 어린 자식을 남의 손에 넘겨주었을까. 그 후 모친은 어떻게 되었을까. 형준은 그런 의문들을 떨칠 길 없었지만, 그러나 산다는 게 뭔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아등바등 발버둥 치는 동안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풀지 못할 의문 또한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이제 형준의 이마와 뺨에 굵은 주름살이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머리에는 흰 머리칼이 부쩍부쩍 늘어가고 있었다. 지난번 읍사무소에 가서 호적등본을 발급받을 때만 해도 새치가 드문드문 한두 오라기씩 생기나 했더니, 불과 몇 해 사이에 귀밑머리가 서릿발처럼 희끗희끗 희어지는 것이었다.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선친에 대한 그리움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만약 아버지가 없었더라면 형준은 서모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진작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형준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그는 아버지 덕택에 가까스로 청소년 시절의 위기를 넘기면서 이날 이때까지 모진 목숨을 건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형준이가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학교 문턱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던 것도 순전히 아버지 덕택이었다. 당신께서는 그 어렵게 번 품삯으로 학비를 마련해 주었고, 형준은 그나마 야간 고등학교라도 마칠 수 있었다. 술만 마시면 베갯머리가 흠씬 젖도록 눈물짓던 아버지… 어렸을 때는 그런 당신이 얼마나 싫었던지 나중에는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그렇건만 이제는 도리어 한 많은 당신의 처지를 웬만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였다.
집안이 곤두박질친 것도 억울한데, 부인까지 그렇게 별난 여자를 만난 아버지는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웠을까. 두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면서 형준은 아버지의 회한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서모 최을순 만은 결코 용서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녀를 향한 저주도 눈뭉치처럼 점점 더 불어나는 것이었다. 그녀는 저승에 가서 기름이 펄펄 끓는 지옥에 떨어졌으리라. 오죽하면 ‘최’자만 보아도 최을순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가 떠올라 치가 떨리면서 으드득 어금니가 들썩거리곤 하였다.
그 반면, 검단리 어딘가에 살고 있을 생모를 생각하면 죄책감이 골수에 사무쳤다. 어린 자식을 남의 손에 넘겨준 뒤 모친은 얼마나 뼈아픈 업보를 감내했을까. 모친이 어쩌면 화병을 앓다 사망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할라치면 억장이 무너지다 못해 머리가 헤까닥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지난겨울이었다. 형준은 하루빨리 해동하기를 기다리면서 이번 봄 선친 제사 때에는 만사 제쳐놓고 송산 산소를 거쳐 기어이 검단리를 찾아가리라 작정했다. 어느 정도 시간적 여유도 생겼겠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었다. 그는 당초 예정대로 송산에 들러 성묘부터 하였고, 마침내 검단리 강당골로 들어서서 몽매에도 잊지 못했던 모친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그러고 보니 검단리는 실로 가깝고도 먼 곳이었다. 송산에서 검단리까지는 버스 편으로 한나절 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를 찾아오기까지 30여 년 이상 별러온 것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먼 곳이 아닐 수 없었다. 가슴 속 저 깊은 곳에서 만시지탄이 분출하고 있었다.
형준은 굽이굽이 이어진 외줄기 산길을 따라 줄기차게 올라갔다. 드디어 펑퍼짐한 둔덕이 나타나면서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시야에 들어왔다. 아까부터 한 번도 쉬지 않고 줄창 걸어온 터라 꽤 숨이 가빴다. 입에서 쓴내가 나고 있었다. 종점에서는 바람 끝이 몹시 차갑다고 느꼈으나, 어느덧 그의 이마에는 번질번질 개기름 같은 땀이 흐르고 있었다.
형준은 느티나무 밑으로 다가갔다. 돌담 아래 해바라기를 하고 누워 있던 검둥개가 일어나 컹컹 짖었고, 그것을 신호로 동네 개들이 떼거리로 왈왈대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검둥개는 흘금흘금 눈치를 살피면서 허연 이빨을 드러내 놓고 으르렁거렸다.
마침 어떤 아낙네가 조각보 같은 돌투성이 다랑논 논두렁에 쭈그리고 앉아 봄나물을 캐고 있었다. 개들은 계속 짖어대고 있었다. 아낙네는 엉거주춤 일어나 낯선 외지인의 출현에 의아스러운 눈길을 보내오고 있었다. 형준이가 그녀에게 물었다.
“저어, 여기가 강당골 맞습니까.”
“맞는데유.”
“그럼 홍 노인 댁이 어디쯤 됩니까.”
“조 위 기와집 가서 알아보세유.”
아낙네는 나물 캐던 칼끝으로 산자락 밑에 있는 고색창연한 기와집을 가리켰다. 종점보다도 훨씬 고지대에 위치한 이곳은 오히려 바람 한 점 없이 안온하였다. 산자락에 오막하게 둘러싸인 마을은 마치 새둥우리를 연상케 하였다.
형준은 잰걸음으로 기와집에 당도하였다. 기와집 추녀 밑에는 들창문에 닿을 만큼 깍지동이가 높이 쌓여 있었고, 문간 가까운 곳에는 볏짚으로 엮은 무시래기가 치렁치렁 매달려 있었다. 사랑방 안으로부터 사람들 두런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형준은 문간으로 들어서서 목청을 가다듬으며 주인을 찾았다.
“주인어른 계십니까.”
그러나 안으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형준은 약간 목소리를 높여 재차 주인을 찾았다. 이윽고 사랑방의 격자문이 열리면서 한 백발노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수염이 부얼부얼한 노인은 마치 만화나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전설 속의 산신령 같았다. 노인이 물었다.
“뉘시우?”
“여기가 홍 노인 어른댁입니까.”
“그렇수. 근동 사람들이 어른이나 애나 나를 그렇게 부른다우.”
“아, 네, 그러시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전 서울에서 온 김형준이라고 합니다. 다름이 아니옵고, 꼭 여쭤볼 일이 있어서 이렇게 불쑥 찾아뵙게 되었지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되, 하여간 일루 들어와서 얘기해 보슈.”
홍 노인은 깝작깝작 손을 까불렀고, 형준은 약간 쭈뼛거리면서 댓돌 쪽으로 다가갔다. 사랑방 안에는 홍 노인 이외에도 늙수그레한 영감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스웨터 입은 영감은 삼태기를 만드는 중이었고, 흰 저고리에 쥐색 조끼를 입은 영감은 새끼를 꼬고 있었다. 방안을 기웃하면서 형준이가 물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우. 방이 좀 누추하긴 하지만 어서 들어오슈.”
신발을 벗고, 형준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온몸이 후끈했다. 노인들이 쓰는 방이어서 그런지 방바닥은 절절 끓고 있었다. 형준이가 말했다.
“방이 무척 따뜻하군요.”
“여기는 산골이라 땔감 하나는 풍족하거든. 좌우간 무슨 일인지 앉아서 조곤조곤 얘기하자구.”
“이거 별로 대수로운 건 아닙니다만, 어른께서 막걸리를 좋아하신다기에 요 아래 가게에서 서너 병 샀습니다. 막걸리만 사기가 뭣해서 담배도 조금 샀지요.”
형준은 막걸리와 담배를 홍 노인 앞에 정중히 내놓았다. 막걸리병이 간당간당 뒤뚱거리고 있었다. 홍 노인은 이게 웬일인가 싶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 스웨터 영감이 촉새처럼 끼어들었다.
“그러잖아도 여태 막걸리 타령을 하고 있었는데… 허허, 형님은 역시 복도 많으시다니께.”
그 영감은 홍 노인을 힐끗 쳐다보았고, 조끼 입은 영감은 새끼 꼬던 손을 멈추고 비시시 웃기만 하였다. 두 영감은 아마도 강당골에 살면서 거의 매일이다시피 이 사랑방에서 소일하는 듯했다. 홍 노인이 형준에게 말했다.
“우리 집에 올 때는 맨몸으로 와도 괜찮은디, 초면에 이렇게 귀한 선물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수 그려.”
“그 뭐 얼마 됩니까.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받아 주십시오.”
“어쨌든 고맙수. 우리 집은 귀한 손님이 와도 별로 대접할 것이 없으니께 우리 이 술로 목을 축이도록 합시다. 여긴 워낙 외진 곳이 돼놔서 손님이 와도 도통 내놓을 만한 것이 없다우. 우리 강당골이 이 고랑에서 끝 동네요, 끝 동네.”
홍 노인은 ‘끝 동네’라는 말에 유난히도 힘을 주었다. 사실 종점에서 올라오며 생각한 일이지만, 이런 깊은 산속에 마을이 있다는 것 자체가 희한하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형준이가 말했다.
“올라오면서 보니까 골짜기가 아주 깊더군요.”
“깊다마다… 옛날에는 호랑이 등쌀에 동네 닭이나 개가 남아나질 않았다우.”
“이렇게 깊은 산속에 마을이 있었다니 약간은 놀랍기도 했습니다.”
“말도 마슈. 그래도 한때는 30가구 이상 살았수. 어디 그뿐인 줄 아슈. 근동에서 글줄이나 배웠다는 사람은 우리 동네를 다녀가지 않고서는 행세를 할 수가 없었다우.”
“그건 왜 그랬죠?”
“그야 강당이 있었으니께 그랬지. 흥선대원군 시절에 서원을 모조리 철폐했잖수. 그때, 서원에 드나들었던 선비들이 우리 마을에다 강당을 지어 놓고 학문을 논했었다 이 말이외다. 저 위에 강당이 있었는디, 그나마 왜놈들이 불 질러 버리는 바람에 지금은 그 터만 남았다우.”
홍 노인은 ‘저 위에’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대나무 등긁이로 시렁 쪽을 가리켰다. 시렁 밑에는 메줏덩이들이 엉기성기 매달려 있었다. 아마 그 방향으로 더 올라가면 막다른 지점에 옛 강당 터가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형준은 그제야 이 마을이 형성된 내력과 강당골로 불리는 까닭을 알아차렸다. 형준이가 말했다.
“그래서 이 마을을 강당골이라고 하는군요.”
“바로 그렇수. 그러나저러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잠깐만 기다리슈.”
홍 노인은 끄응, 하고 일어나 문을 열었다. 안반 같은 그의 엉덩이에 지푸라기 몇 오라기가 대롱거리고 있었다. 나머지 두 영감은 하던 일을 뒷전으로 밀어 놓으며 형준에게로 돌아앉았다. 그들 두 영감은 홍 노인보다 훨씬 연하로 보였다. 스웨터 영감이 형준에게 물었다.
“서울서 왔다구 그랬수?”
“네. 그렇습니다.”
“서울 어디?”
“영등포에 살고 있습니다.”
“아, 그렇군. 우리 큰아들도 영등포구 문래동에 살고 있지. 좌우간 이 먼 데까지 오느라고 수고 많았수.”
그때 홍 노인이 안채에 대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여봐요. 아, 뭐 하고 있어!”
홍 노인의 목소리는 울안에 쩌렁쩌렁 울렸다. 백발노인의 음성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힘이 넘쳤다. 스웨터 영감이 홍 노인에게 지청구하듯이 말했다.
“하, 형님두… 화통을 삶아 자셨나 웬 목소리가 그렇게 커유. 하마터면 귀청 떨어질 뻔했네.”
그 영감은 귀를 어루만지면서 능청을 떨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안채 안방 문이 열렸고, 곱살하게 늙은 마나님이 툇마루로 나와 이쪽을 건너다보고 있었다. 홍 노인이 마나님에게 말했다.
“여기 술상 좀 봐 와요.”
“대낮부터 웬 술상이래유?”
“웬 술상이라니… 대낮이든 꼭두새벽이든 손님이 왔으면 대접할 줄을 알아야지. 술은 여기 넉넉히 있으니까 상만 봐 오면 돼요.”
마나님은 군말 없이 부엌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사랑방으로 조촐하면서도 정갈한 술상을 내왔다. 술상 위에는 김치와 도토리묵 이외에도 보시기와 젓가락 몇 벌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형준은 마나님에게 가벼운 목례를 보냈는데, 마나님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술상만 들여놓고는 곧 마당을 가로질러 안채 툇마루로 올라갔다. 홍 노인이 말했다.
“자, 안주는 이렇거니 우리 한 잔씩 들까.”
“제가 먼저 한 잔씩 따라 올리죠.”
형준은 술병을 짤짤 흔들어 홍 노인 앞의 보시기에 막걸리를 따랐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른 두 영감에게도 잔을 권했다. 스웨터 영감이 형준에게 말했다.
“그 술병 이리 주슈. 젊은이한테는 내가 한 잔 따르지. 내가 산 술도 아니지만 말이여.”
“제가 따라 마시겠습니다.”
“아니지. 술이란 그런 게 아니여. 서로 따라주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 법이거든.”
형준은 못 이기는 척하고 그 영감에게 술병을 건네주었고, 영감은 형준이가 두 손으로 받쳐 든 보시기에 술을 가득 부었다. 툽툽한 막걸리가 보시기에 잘람잘람 넘칠 듯하였다. 홍 노인이 말했다.
“출출하던 판이었는디 젊은이 덕분에 생각잖은 술을 마시게 됐수 그려. 이거 고맙게 마시겠수. 자, 그럼 우리 모두 술잔을 들더라구.”
홍 노인과 두 영감은 보시기를 들어 목마른 말이 물 마시듯 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형준은 옆으로 몸을 약간 돌리고는 조심스럽게 잔을 기울였다. 한참 동안 가파른 길을 걸어와서 그런지, 아니면 오랜만에 마시는 막걸리여서 그런지 아무튼 술맛이 달착지근하게 느껴졌다. 젓가락으로 김치를 집으면서 홍 노인이 형준에게 물었다.
“우리 강당골엔 초행이우?”
“그렇습니다.”
“어쨌든 반갑수. 우리 동네에는 고작해야 등산객이나 들락거리거든. 등산 왔다가 길 잃은 사람들이 가끔 동네로 들어서곤 하지. 보아하니 등산객은 아닌 것 같구, 날 찾아온 거로 미루어 본다면 필시 무슨 곡절이 있는 것 같은디…”
홍 노인이 말했고, 형준은 어디서부터 화두를 풀어나갈 것인가 신중하게 궁리하였다. 그는 자신이 찾아온 본연의 목적을 먼저 드러내기보다는 홍 노인과 두 영감의 증언에 더 신경을 기울이기로 마음먹었다. 자칫 일을 서둘렀다가는 목적도 달성하지 못한 채 부끄러운 집안 내력만 들통 내는 꼴이 될지도 모른다는 조심성 때문이었다. 그가 조용히 물었다.
“검단리 3백 20번지가 어디쯤 됩니까?”
“바로 이 뒷집이여. 내 친구 일상이가 살던 집이지.”
“아, 그렇군요. 그럼 작고한 정일상 씨를 잘 아십니까?”
“허허, 서울 사람이야 이웃 간에도 얼굴조차 모른다지만, 이런 산골에서는 동네 사람이 모두 한 식구나 다름없이 지낸다우. 아,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있잖수? 더군다나 죽은 일상이하고 나는 아주 가깝게 지냈었지.”
형준은 꼴깍 침을 삼켰다. 아까부터 뭔가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었는데, 이제 비로소 모든 수수께끼가 본격적으로 술술 풀리려 하고 있었다. 홍 노인이야말로 모든 열쇠를 쥐고 있는, 해묵은 의문들을 속 시원히 풀어줄 인물이라는 확신을 안겨주었다. 형준이가 물었다.
“혹시 그분 집에 박분녀라는 여인이 있었습니까?”
그 질문을 던져 놓고, 형준은 한껏 촉각을 곤두세웠다. 과연 홍 노인의 입에서 무슨 말이 어떻게 튀어나올 것인가를 생각하자 사뭇 뒷골이 뻑뻑해질 정도로 긴장되는 것이었다. 홍 노인이 말했다.
“있었지. 송산댁이라고 아주 기구한 여자였어. 한데 젊은이는 어찌하여 자꾸 죽은 사람만 찾으시우?”
형준은 몸을 움찔하였다. 홍 노인의 입에서 ‘송산댁’이라는 택호가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와 동시에 그녀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까지 알게 된 때문이었다. 점방 중늙은이한테 귀동냥할 때만 해도 형준은 모친의 생사에 긴가민가하였다. 그런데 홍 노인은 모친의 사망을 재차 확인해준 셈이었다. 그때쯤 해서는 나머지 두 영감도 한층 숙연해지고 있었다. 형준이가 물었다.
“왜 송산댁이라고 했지요?”
“그야 송산에서 왔으니께.”
우문현답이라고나 할까, 홍 노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밖에서는 까치들이 까악까악… 청아하게 우짖었고, 홍 노인과 두 영감의 안면에는 불콰하게 술기운이 오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스웨터 영감의 안면은 잘 익어 가는 홍도처럼 가장 불그레하였다. 형준이가 물었다.
“그러면 그분 친정이 송산이었나요?”
“그렇지도 않수. 본래 친정은 송산이 아니고 계룡산 근처 어디라고 들었는디 확실히는 기억나질 않수. 어쨌거나 그 여자는 어느 김가들 문중으로 출가했다가 그 집안에서 아무런 까닭도 없이 소박을 맞았다는 거여. 그 뒤로 우리 강당골로 들어왔는디, 한동안은 우리 집 이 방에서 기거했었지.”
충격적이었다. ‘소박’이라는 말도 놀라웠지만, ‘바로 이 방’이라는 증언이 형준을 더욱 경악게 하였다. 형준은 등골이 찐득찐득해짐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이마에는 벌써부터 송진 같은 진땀이 찐득찐득 배어 나오고 있었다. 형준이가 물었다.
“아니, 바로 이 방에서 살았단 말입니까?”
“그럼. 오갈 데가 없다길래 방을 비워 줬었지. 그 무렵 일상이는 젊은 나이에 상처를 하구 마침 혼잣몸으로 지내고 있었수. 그래 일상이가 의지가지없는 그 여자를 새 식구로 맞아들인 거여. 말하자면 재혼을 하게 된 셈이었지. 송산댁은 그때 이미 홀몸이 아니었수. 일상이가 새살림을 차리고 얼마 안 있어 아들을 낳더군.”
“그랬어유. 그 집 식구들이 그 아이를 돼지라고 불렀었지유.”
홍 노인의 말이 미처 다 끝나기도 전에 스웨터 영감이 잽싸게 끼어들어 한 몫 거들었다. 그의 입에서 ‘돼지’라는 호칭이 튀어 나왔을 때, 형준은 하마터면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기절할 뻔하였다. 그 호칭은 ‘송산댁’이라는 택호가 나왔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호되게 형준의 정수리를 후려치는 것이었다. 어느 사이엔가 형준의 몸뚱이에는 닭살 같은 소름이 쫘악 올라붙고 있었다. 홍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어. 비록 애비도 모르는 자식일지언정 돼지처럼 별 탈 없이 잘 자라 달라는 뜻에서 그렇게 불렀었지. 아마 걔가 어딘가에 살아 있으면 지금쯤 한 마흔 살 넘었을걸.”
“그렇게 됐어유. 서울 사는 우리 큰애보다 이태 먼저 태어났으니께유.”
스웨터 영감이 말했다. 조끼 영감이 시종 침묵을 지키고 있는 반면, 스웨터 영감은 채신머리없게 불쑥불쑥 끼어들기를 좋아했다. 이제 형준의 뺨에서는 구슬땀이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조끼 영감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아마 송산댁 같은 여인도 없을 것이구먼. 그렇게 한 많은 인생이 어디 또 있을까.”
“그러게 말이여. 평생 친정에 가는 법도 없었잖어.”
이번에도 스웨터 영감이 조끼 영감의 말을 싹둑 잘라먹었다. 형준은 조끼 영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으나, 스웨터 영감이 중뿔나게 끼어들어 초를 치는 바람에 여간 김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남들이 심각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말거나 입이 근지러워 견딜 수 없는 모양이었다. 형준이가 조끼 영감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친정에도 가지 않았단 말입니까.”
“출가하자마자 시댁에서 소박맞은 몸인지라 친정 식구들을 볼 낯이 없다는 것이었지.”
막걸리는 어느 사이엔가 세 병째 비워지고 있었다. 때마침 어디선가 꼬꾜 꼬끼오… 닭 우는 소리가 들려왔고, 안채로부터 때앵, 때앵… 괘종시계 소리가 건너왔다. 홍 노인이 필터 끝까지 타들어 가는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끄면서 목청을 높였다.
“그렇게 착한 사람을 소박 놓다니 송산 김가 놈들이야말로 천하의 불상놈들이지 뭔가. 아, 자고로 짐승도 새끼를 배면 함부로 대하는 법이 아니거든 하물며 아이 가진 새댁을 매몰차게 내쫓다니 김가 놈들은 숫제 인간들도 아니여. 천벌을 받아 마땅한 놈들 같으니라구.”
“그렇구말구유. 그러니까 김가 놈들은 폭삭 망하고 말았지유. 풍문으로 들으니까 김선태란 놈이 데리고 살던 첩년은 아이도 낳지 못하는 돌계집이었다고 하데유.”
조끼 영감은 김 씨 일족을 싸잡아 매도했는데, 그 핏줄을 타고난 형준은 낯이 뜨거워 차마 고개를 똑바로 들 수가 없었다. 만약 돌아가신 아버지가 되살아난다 해도 이 마당에 뭐라 변명할 것인가. 형준이가 홍 노인에게 물었다.
“그 후 돼지라는 아이는 어떻게 됐습니까.”
“젖 떨어지자마자 즈이 애비한테로 보냈지. 일상이 내외는 돼지란 녀석이 젖 떨어질 때까지 잘 키워서 즈이 애비인 김선태한테 보낸 거여. 그 뒤로 돼지란 녀석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조차 없었다우. 하기야 너무 어린 나이에 떠났으니께 걔가 무얼 알았겠수?”
홍 노인은 마지막 잔을 쭈욱 들이켰다. 그때 형준은 사지가 녹아나는 듯한 아픔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아, 그랬었구나. 형준은 이제 비로소 모든 전후 사정을 알아차렸다. 자신이 사생아로 기록된 까닭이며, 호적에 아버지 김선태와 어머니 최을순 사이의 양자로 등재된 사연까지도…
그러니까 모친 박분녀는 혼인신고도 하기 전에 아버지의 아기를 가진 몸으로 시댁의 누군가에게 소박당해 쫓겨난 듯했다. 모친이 무슨 일을 얼마나 잘못했기에 쫓겨났단 말인가. 그러나 아버지가 앞장서서 모친을 내쫓은 것 같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인륜을 저버릴 만큼 그렇게 살벌하고 무지막지한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살아생전 남에게 폐 한 번 끼친 적이 없었고, 도리어 남자답지 않게 마음이 너무 나약해서 탈이라는 평판을 받곤 하였다. 그런 아버지가 아기 가진 새댁을 내쫓았을 리 만무했다. 그렇다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숙명적으로 이별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의 능력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처절한 천형을 받고 태어난 인생인지도 몰랐다. 아무튼 형준이가 김선태와 박분녀 사이에서 출생했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의심할 나위가 없었다.
사실 감나무집 침쟁이 아저씨가 최을순을 양모가 아닌 서모라 지칭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양부가 아니었고, 따라서 아버지와 부부 관계였던 최을순도 양모일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본실은 어디까지나 형준을 낳은 박분녀였고, 최을순이야말로 아버지의 소실에 지나지 않았던 터라 그렇게 부른 것이었다. 조끼 영감이 홍 노인에게 말했다.
“어쨌거나 송산댁만 가련했지유. 그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아 보내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겠어유? 아, 오죽하면 송산댁이 머리까지 돌았겠어유?”
“그러게 말일세. 송산댁은 너무 불쌍했어. 아, 참…”
홍 노인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적지 않은 막걸리를 마셨는데도 얼굴이 보기 좋게 붉어진 것을 제외한다면 그는 전혀 술 마신 티도 내지 않았다. 형준이가 조끼 영감에게 물었다.
“머리가 돌다니, 그건 또 무슨 뜻입니까.”
“실성했던 거여. 돼지란 녀석이 한 번쯤 찾아올 줄 알고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지. 한데 어렸을 때 떠나보낸 그 녀석은 끝내 나타나질 않았어. 송산댁은 요 때나 조 때나 그 녀석이 찾아오길 기다리다가 종당에는 미쳐버린 거여. 송산댁은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눈을 못 감았다는 거여.”
아, 이럴 수가… 형준은 북받쳐 오르는 통곡을 참느라 무진 애를 썼다. 알딸딸했던 취기까지 싹 달아나는 것이었다. 송산댁, 아니 박분녀라는 이름으로 실재했던 모친의 생애는 비극 그 자체여서 더 이상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오직 모친 살아생전 서둘러 찾아오지 못한 것이 애통할 따름이었다.
허망했다. 형준은 곧 홍 노인과 두 영감에게 작별 인사를 고한 뒤 허둥지둥 사랑방에서 나왔다. 그가 문간을 나서서 느티나무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을 때, 마침 사랑방 들창문을 통해 스웨터 영감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저 젊은이가 필경 돼지인 것 같어유.”
“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홍 노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형준은 손수건을 꺼내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냈다. 그는 잠시 발걸음을 멈춘 채 검단리 3백 20번지 정일상 씨 집으로 눈길을 던졌다. 형준이가 태어난, 모친이 죽을 때까지 살았다는 그 집은 겨우 형해만 남아 있었다. 삐뚜름하게 기울어진 폐가에서는 금방이라도 도깨비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마당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폭삭 허물어져 내린 지붕 위에도 무성하게 우거졌다가 메말라버린 잡초가 누렇게 뒤덮여 있었다.
형준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기 텅 빈 창공에는 솜뭉치 같은 순백의 구름 한 무더기가 두둥실 떠서 어디론가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어머니의 혼백인지도 몰랐다. 허무했다. 벼르고 별러 이곳을 찾아왔건만, 회임한 친모가 어쩌다 소박을 맞았는지 그것은 영구미제로 남게 되었다. 아, 어머니의 원혼(寃魂)은 오늘도 어느 구천(九泉)을 헤매고 있는가.
그는 우람한 느티나무 밑을 지나 비탈길로 들어서서 휘청휘청 강당골을 벗어났다. 저 아래로 버스 종점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지만 닭똥처럼 뚝뚝 떨어지는 뜨거운 눈물이 앞을 가려 세상이 온통 희뿌옇게 보였다. 산기슭의 왕소나무 가지들도 아까처럼 쉬익쉬익 몸부림치며 미친 짐승처럼 서럽게 울부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