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3:22~36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죽음은 사고로 올수도 있고, 자연적으로 올 수도 있는데,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죽음은 사람에게 언젠가는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준비하지 않으면 죽음은 매우 두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으로 사람이 끝나는 것 같지만, 성경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합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러므로 죽음 이후가 준비되지 않으면 진노가 있습니다.
요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예수께서는 이를 위하여 오셨는데, 사람의 문제는 잘 보면 죄의 문제입니다. 죄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세상이 악한 것은 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께서 사람이 되셨고, 십자가에서 죄의 대속의 죽음을 감당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를 믿음으로 죄에서 구원을 받고, 거듭나는 것입니다. 바울은 심지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아멘.
그러므로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사역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세례요한의 회개는 겉의 회개입니다. 물론 우리의 죄를 회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거듭나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교회가 존재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드리기 위하여, 또한 복음으로 거듭나 영생을 얻기 위하여 교회가 존재합니다. 물론 다른 여러 가지 것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와 복음 회개입니다. 교회 자체가 영생을 주지는 못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아니며 예수님의 지체일 뿐입니다. 교회는 그런데 세례요한적인 것과 예수님의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적인 것은 겉의 유익이지만, 예수님의 것은 더 깊은 영적인 유익입니다. 물론 세례요한의 것도 영적인 것입니다. 율법도 영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은혜와 믿음이 생기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교회는 사람을 거듭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곳이지, 사람을 교회 스스로 거듭나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이 교회의 신비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역사하셔야 사람이 거듭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지만, 예수님은 아니며, 교회는 세례요한처럼 신랑친구 혹은 바울처럼 중매쟁이입니다.
27~30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교회는 그리스도 메시야가 아닙니다. 세례요한이 매우 훌륭하게 사역을 하였으나 자신은 메시야가 아니라고 분명히 하였습니다. 바울도 그러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통해서 역사가 일어나고 부흥이 일어나는 것은 교회 자체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고 아무 능력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자신을 신랑 친구라고 하였고, 바울은 자신을 중매쟁이라고 하였습니다.
고후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신랑친구 중매쟁이는, 신부한테 신랑을 소개하는 친절하고, 진지하고,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신랑친구 중매쟁이는 신부될 사람에게 굉장히 많은 것을 신경써야 합니다. 중매쟁이나 소개팅을 시켜주는 신랑친구는 자기주장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대개 신랑이 권세자인 경우 신랑의 요구에 맞추어 준비합니다. 그리고 중매나 소개팅이 잘되면 그렇게 신나지 않을 수 없으나, 안되면 그처럼 어려운 경우가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여자가 나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하셨는데, 요한의 목소리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 매우 컸던 것 같습니다. 그는 결혼식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가지고 사람들을 모으는 친구같은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가 입을 열면 사람들이 자석 달라붙듯이 요한에게 와서 죄를 자복하고 회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알 정도로 궁중에 있는 사람 왕들도 그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성령의 지시 안에서 예수님과 자신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세례요한의 사역은 질이 다르다는 것을요. 세례요한은 나는 물세례로 마음과 생각과 몸의 죄를 회개하는 것, 겉을 깨끗이 하는 것이지만, 예수님의 사역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고 중심을 곧 사람의 영혼 자체를 거듭나게 하는 사역이다. 그러므로 나와 그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런데 심지어 이제 사람들이 다 자기에게서 예수님께로 간다고 어떤 제자가 요한에게 일렀는데, 예수께서 요한처럼 강에서 세례를 베푸신다는 보고였습니다.
22~26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그러나 요한의 대답은
27~30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교회도 그렇습니다. 교회가 회개를 외치고, 물로 씻고 많은 일을 하고 또한 예수를 믿으라 거듭나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은혜가 임하고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오직 하늘에서 주시지 아니하면 그렇게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가장 힘써야 할 부분은 예수님을 높이고 그분의 능력이 임하도록 하는 부분입니다. 이점에 있어서 세례요한은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른 성경에서는 나는 그분의 신발 끈도 풀지 못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바울도 늘 성령의 능력을 구했는데, 바울은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라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성령을 힘입어 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으로부터 받아야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늘 하늘의 능력을 받도록 힘써야 합니다.
31~34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
그러므로 바울도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하였는데,
고후1:8~9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지체이지만, 성령께서 계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신이 아닌 이상 아무도 자신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영광이 높임을 받되 교회는 낮아져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교회가 자신을 무익한 존재로 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이는 교회의 존재를 무시하거나 자기를 학대하고 비하하라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아니계시면 인간은 껍데기뿐이기 때문에, 교만이 불쑥불쑥 나타나기 때문에 상기하라고 주신 말씀일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것은, 자신을 제한하고, 낮추시고 낮아지신 일로서, 바울은 이것을 두고 감탄을 하였습니다. 대궐 같은 집에서 쪽방 촌에 들어와 사는 것도 답답한 일이겠지만, 우주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사람이 되셔서 마굿간에서 태어나시고, 사람처럼 사셨다는 것은 하나님 스스로 매우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이유는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낮아지심을 마음에 품으라고 말합니다.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라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의 신부이지만, 동시에 타인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중매쟁이 신랑친구임을 잊지 마시고 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