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사 판정 후 진료비도 유족 부담”… 대법원 첫 기준 제시
“연명치료 중단은 호흡기 제거 한정… 사망때까지 201일치 병원비 내야”
김모(사망 당시 78세) 할머니는 2008년 2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폐종양 조직검사를 받다가 과다출혈로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김 할머니는 평소 “내가 소생하기 힘들거든 (인공)호흡기는 끼우지 마라. 기계로 연명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말해 왔다. 실제 회복 가능성도 거의 없었다. 자녀들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병원 측은 거부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뇌사자의 인공호흡기를 떼는 행위에 살인죄가 적용되고 있었다. 자녀들은 결국 ‘시간의 경과에 따라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달라’며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09년 5월 김 할머니의 뜻과 자녀들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해 6월 23일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가 제거됐다. 국내 첫 존엄사 집행으로 기록됐다.
그런데 김 할머니는 인공호흡기 없이도 201일을 더 살다 2010년 1월 숨졌다. 존엄사 집행을 두고 1년간 법정다툼을 벌였던 병원과 유족은 병원비를 두고 다시 맞붙었다. 병원 측은 연명치료를 중단한 이후부터 사망 시점까지의 병원비를 유족이 내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반면 유족들은 연명치료 중단이 결정되면서 진료계약이 해지된 것으로 봐야 하므로 병원비를 낼 수 없다고 맞섰다.
1·2심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연명치료를 중단하라는 판결문이 병원에 송달된 2008년 12월 4일을 의료계약 해지 시점으로 봤다. 이후 진료에 대해선 유족이 병원비를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2심은 인공호흡기 부착 외에 최소한의 생명유지를 위한 진료와 병실 사용에 관한 의료계약은 계속 유지된다며 1심 결론을 뒤집었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28일 병원의 손을 들어준 2심 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법원이 중단을 명한 연명치료를 제외한 나머지 의료계약은 존속된다”고 밝혔다. 법원이 인공호흡기를 통한 연명치료 중단만 명령했기 때문에 나머지 진료에 부과된 병원비는 유족이 내야 한다는 설명이다. 병원은 인공호흡기 제거 이후에도 김 할머니에게 인공영양·수액을 공급하고, 항생제를 투여했었다. 유족이 내야 할 병원비는 8643만7000원이다. 국회는 지난 8일 연명치료 중단 요건을 정한 ‘웰다잉법’을 통과시켰다. 2018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대법원 판단이 연명치료 중단 결정의 범위와 효력 등에 대한 실무상 중요한 해석 지침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존엄사 판정 이후..삶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2008년 11월 28일. 우리나라 법원에서 인간의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처음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1997년 발생했던 ‘보라매병원 사건’에서 뇌수술 환자를 보호자 요구에 의해 조기 퇴원시킨 의료진에게 2004년 8월 대법원에서는 2심 결과였던 ‘살인방조범’을 확정했었다. 그 후 의료진들은 보호자들의 요구가 있다 하더라도 중환자실에서의 연명치료중단에 대해서 매우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삶의 마지막 순간을 어떻게 마무리하여야 하는지에 대하여 의료계와 종교계 등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었고, 지난 1월 8일 드디어 호스피스 관련 법인 소위 웰다잉법이 통과되었다.
법원은 그동안의 판결 경향을 뒤엎고 새로운 사회의 요구를 전향적으로 받아들인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물론 법원의 판결 이후에도 각계에서 여러 입장들이 엇갈리고 있다고 한다. 존엄사 또는 연명치료중단 등과 관련된 사항을 빨리 제도화 시켜서 혼란을 줄이자는 입장이 다수설인 것 같으나 아직까지는 시기상조이므로 더 차분히 논의하자는 주장도 계속 있는 것이 현실이다. 죽음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거론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매우 터부시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뇌사에 대한 사망 인정여부에 대해서도 충분한 사회적 논란을 거치지 않고 장기이식을 하기 위한 전제 하에 뇌사를 사망으로 인정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죽음에 대한 논의를 미룰 수 없는 시점이 된 것 같다. 의학의 발달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고, 의료인들은 최후까지 환자를 살리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환자들은 중환자실의 인공호흡기와 주사바늘들 속에서 죽음에 부딪히고 있다. 삶의 마지막을 어떠한 모습으로 마무리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사전에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밝혀놓고, 서면으로도 작성을 해 놓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위하도록 하는 ‘사전의사결정서’를 제도화 하자는 의견들이 의료윤리학계에서는 꾸준히 제시된 바 있다. 이 판결을 계기로, 이제라도 ‘품위있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여 이에 대한 사회적 제도화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