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4장 솔로몬이 본 네 가지 인간군상
4장에서 솔로몬은 4명의 인간 군상을 회상하는데,
전도서는 코헬렛 유언이라고 하는데, 마지막 유언에서 이들이 언급되었다.
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 보았도다 보라 학대 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첫 번째 인간 군상은 위로자가 없이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죽는 사람들이다. 한 마디로 노예나 노비들이다. 이들 첫 번째 인간군상은 불의에 완전히 희생당하는 자들이다. 역사를 보면, 완전히 자본주의 논리에만 눌려서 죽어간 영국산업혁명시대의 노동자들, 그들 중에는 5살짜리 굴뚝청소부도 있었는데, 5살이면 부모 앞에서 사랑받고 재롱을 떨어야 할 나이인데 이들은 훈련된 강아지같이 굴뚝에 들어가 일을 하는데, 재를 먹으며 일을 하고, 또는 죽기도 하였다. 그런데 아이들이 공장에서 새벽부터 저녁까지 16시간 중노동을 하고, 공장에서 먹고 자는데, 십수년을 중노동을 하니 청년의 얼굴이 아니라, 노인의 얼굴이 되었고 평균 수명이 30살도 못되었다고 한다. 조지 휫필드는 광산에 광부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였다고 하는데, 산업혁명 때 영국에서 주일학교가 생겼다. 반면에 평균주의의 공산주의의 논리에 눌려 죽은 자들은 더 많았다. 스탈린 4천만, 모택동 6천만, 김일성 3백만, 킬릴필드 2백만 등, 안타까운 것은 극진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가 나왔는데, 한쪽은 권세자들의 극도의 이기심 때문에 벌어진 일이고, 다른 한쪽은 하나님 없는 극도의 평균주의에 미친 지도자들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극좌파의 정책은 무분별한 신용카드 대출처럼 무한 퍼주기식으로 하다가 나중에 막을 수 없는 쓰나미를 맞게 되는 것인데, 이런 것으로 인해서 빚이 천문학적으로 늘어 결국에는 국민들에게 그 빚이 돌아온다. 또한 히틀러의 6백만 유대인 학살도 그렇고, 전쟁의 때에 피아식별이 모호하여 죽은 사람들도 많았다. 그밖에도 갑작스러운 공사현장 사고, 묻지마 살인 등으로, 죽은 피해자들은 얼마나 많은가. 이들은 위로자가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로봇이 아니기 때문에, 선택에 결과가 있는데, 아담 안에서 인간의 죄의 문제는 매우 심각한 것이다. 세상이 왜 이런가. 그러므로 죄와 죽음 문제는 실상이며, 이는 필시 공의문제로 귀결된다. 성경은 부자와 빈자가 같이 살게 하였는데,
잠22:2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그러므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성경의 원리이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볼 때도 달란트 비유를 볼 때, 성경은 우에서 좌로 가는 순환이다. 이 균형이 무너질 때, 비극이 찾아왔다.
2 그러므로 나는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으며 3 이 둘보다도 아직 살아 있는 산 자들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들을 더 복되다 하였노라
모세가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자기 백성을 두고 마음아파했는데, 솔로몬도 이렇게 태어나면서부터 불의 때문에 죽도록 일만하다가 착취만 당하다가 사라지는 사람들을 두고 가슴아파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특별히 성전과 궁전 건축을 할 때, 노동자들을 3교대로 돌렸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솔로몬의 공사는 시작부터 끝까지 결점이 없는 공사였다고 생각된다.
왕상5:13~16 이에 솔로몬 왕이 온 이스라엘 가운데서 역군을 불러일으키니 그 역군의 수가 삼만 명이라 솔로몬이 그들을 한 달에 만 명씩 번갈아 레바논으로 보내매 그들이 한 달은 레바논에 있고 두 달은 집에 있으며 아도니람은 감독이 되었고 솔로몬에게 또 짐꾼이 칠만 명이요 산에서 돌을 뜨는 자가 팔만 명이며 이 외에 그 사역을 감독하는 관리가 삼천삼백 명이라 그들이 일하는 백성을 거느렸더라
두 번째 인간 군상은 탁월하여 많은 소득이 있으나 쉼이 없고 뭇사람들에게 시기를 받는 사람이다.
4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5 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 6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탁월함으로 시기를 받는 일이 있다. 아벨 다윗 야곱 스펄전 등이 그러하였다. 이와 반대로 팔짱을 끼고 일하지 않는 부류도 있다. 그러므로 매튜헨리는 이 본문을 두고, 사람을 시기 받게 만드는 탁월함과 자기 살을 먹게 만드는 게으름 사이에서 중용을 취하라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적당한 수고와 적당한 획득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하였다. 한 마디로 정직과 근면으로 한 손 가득하게는 붙들되, 양손 가득하게 잡지는 말자는 것이다. 그것이 평온을 빼앗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너무 많은 일을 하는 마르다보다 발치에서 말씀을 듣는 마리아를 칭찬하였는데, 마르다는 너무 많은 일을 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눅10:41~42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솔로몬이 기억하는 세 번째 군상은 돈에 미친 사람이다.
7 내가 또 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8 어떤 사람은 아들이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
솔로몬이 보니, 이 사람은 돈을 버는데, 후임자도 없고 아들도 형제도 없이 홀로 수고하면서도, 그 눈에 자기가 번 돈에도 만족함이 없는 사람인데, 그는 돈에 중독된 사람으로 보인다. 그는 돈을 버느라 쉬지도 않으며, 결혼도 하지 않으며, 아무도 없다. 그는 심지어 여가를 보내지도 않는 사람이다. 세상에는 알콜 게임 도박 주식 음란 마약 등 사람이 잘못하면 미칠 수 있는 것이 많은데, 성경은 사람의 눈과 마음은 만족함이 없다고 말한다.
잠27:20 스올과 아바돈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문명의 이기를 통해서, 지식의 전달이 용이해졌고 순작용도 있으나, 폐해도 있는데, 중독되는 것이다. 나도 중독에서 가족과 지인들의 기도로 돌아왔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이렇게 말한다.
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키는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그런데 예수님도 세 제자와 주로 다니셨는데, 모세도 홀로 고되게 일하고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이드로를 통해서 조직을 짤 것을 말씀하셨는데, 70인을 조직하였다. 대전도자 웨슬리도 친구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혼자 다니지 말라고 하였는데, 사람이 정말 혼자는 못 산다. 가족이 있어야 한다. 신앙의 가족이나 가족이 있어야 한다. 중보자가 있어야 한다.
네 번째로 솔로몬이 본 인간 군상은 어떤 왕이었다.
13 가난하여도 지혜로운 젊은이가 늙고 둔하여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더 나으니 14 그는 자기의 나라에서 가난하게 태어났을지라도 감옥에서 나와 왕이 되었음이니라 15 내가 본즉 해 아래에서 다니는 인생들이 왕의 다음 자리에 있다가 왕을 대신하여 일어난 젊은이와 함께 있고 16 그의 치리를 받는 모든 백성들이 무수하였을지라도 후에 오는 자들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솔로몬이 보니 어떤 가난하였으나 감옥에서 나와 왕이 된 사람이 있는데, 넬슨 만델라가 연상된다. 그는 타국의 왕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혜롭고 가난도 겪은 왕이었으나, 그도 백성들 사이에서 스쳐 지나가는 한 사람으로,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에게 돌을 던지는 그를 기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왕은 일을 많이 하는데, 백성들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니 왕이 무슨 소용이냐. 그러므로 솔로몬은 이것도 바람잡는 일이라고 하였다. 우리나라는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세우고, 기독교 확산(기독교국가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와 함께 군목제도를 도입하였음)과 토지개혁(양반이 모든 땅을 장악했었는데 전국민이 지주가 되도록 하였음), 교육개혁(남녀공학비율을 14%에서 96%로 늘렸음), 한미동맹 등의 업적을 이루었으나, 참모 이기붕의 315부정선거로 인하여, 일어난 419혁명의 요청으로 하야하였는데, 아직도 그를 독재자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마지막으로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가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소개하면, “내가 오늘 한 일에 대해 내일 다른 사람들의 여론을 들여다보면 태반이 잘못되었더라. 그러니 남의 칭찬을 받는다고 기뻐하지 말고 남의 비난을 받았다고 하여 실망하지도 말아라. 본시 인간은 이러나 저러나 잘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또 후세에 이름을 남기겠다는 사람이 있으나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다. 지금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도 내 마음을 알아주기 어려운데, 하물며 어찌 백 년이나 천 년 후의 사람들이 내 마음을 알아주겠는가. 그러므로 너는 다만 하나님만 네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 믿고 너무 세상의 칭찬에 관심을 두지 말아라.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칭찬 받도록 힘써라.” 라고 하였다.
성경을 볼 때, 진정한 참된 위로자는 성도 안에 계신 성령님이시다. 그는 영원토록 함께 하시는 분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성육신을 생각할 때,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대속 때문이다. 십자가는 모든 형벌 중에서 가장 무서운 형벌이었던 것은, 육체적으로도 천천히 죽이고 또 매우 고통스럽게 목말라하며, 또한 정신적으로도 치욕을 주는 형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적으로 볼 때 더욱 심각한데, 십자가 형벌은 무엇보다도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받는 형벌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형벌을 받을 때, 죄가 있으면 오히려 시원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전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십자가 형벌을 받으셨는데, 잘 생각해보면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께서 제일 억울한 일을 당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