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해공제일(解空第一) 수보리(須菩提)
공(空)을 보는 눈
지금 소개할 십대 제자 중 한 사람인 수보리 존자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참 난감하다.
그가 공(空)의 도리를 밝히는 데서 제일가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사실 공을 전면으로 내세운 것은 대승불교의 반야 사상인데, 그것은 초기 교단에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대 제자 중 수보리의 위치는 대승불교권에서 부각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설도 있다.
수보리의 산스크리트 명은 수부티(Subhuti)로서 브라만 부티(bhuti)의 아들로 태어났다.
여기서 수(su)는 '잘' '훌륭히'라는 뜻의 부사로서 선(善)이라 번역되었으며 부티는 존재, 능력, 행복을 뜻하는 여성명사다. 게다가 '존재하다' '나타나다'라는 뜻의 동사원형 부(bhu)에서 파생된 과거수동분사 부타(bhuta)가 '존재하는, 현존의'라는 뜻이기에 수부티는 선현(善現), 선생(善生), 선업(善業), 선길(善吉) 등으로 의역되었다. 수보리 또는 소부제(蘇部帝) 등은 그 음역이다.
이러한 이름과 관련하여 그의 용모가 단정하고 출중했다 하여 선현(善現)이라 했다는 설도 있는데, 후대에 들어서는 그의 탄생 사건 자체가 신비화 되어 나타나고 있다.
즉 수보리가 태어날 때 꿈을 꾸니 창고가 텅 비어 공생(空生)이라 하고, 일 주일 후에 다시 창고가 가득차 있는 것을 보고 선현(善現)이라 했다 하며, 그의 장래를 점치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오직 길(吉)하다 해서 선길(善吉)이라 했다는 얘기도 그렇거니와 『법화문구(法華經文句)』 제3에 "존자가 태어났을 때 집안에 있는 창고나 광주리, 상자, 그릇이 모두 비었기 때문에 공생(空生)이라 하였고 공행(空行)을 닦았기 때무에 선업(善業)이라고 이름했다"는 설도 그렇다. 아무래도 이러한 얘기는 대승불교권에서 공 도리에 뛰어난 그의 역할을 강조하려고 지어낸 것으로 보인다.
이런 류의 이야기가 또 하나 전한다. 『일체경음의(一切經音義)』에 나와있는 얘기다.
하루는 그가 먹을 것을 청했는데 그의 어머니는 하녀가 이미 밥상을 치우고 그릇을 깨끗이 씻어냈기 때문에 음식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어떤 영문인지 수보리가 그 그릇 뚜껑을 열자 그 속에 음식이 가득차 있는 게 아닌가. 신기하게도 온 집안 식구가 다 같이 그것을 먹자 심신이 안온해졌다.
그러자 부모 형제들이 그의 비범함을 깨우치고 부처님과 보살들을 청하여 음식을 베풀었다.
그리소 난 뒤 수보리는 출가하여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게 되었단다.
그런데 『장로게』의 주석에 따르면 그는 코살라 국에 부처님 가르침을 최초로 알린 수닷타 장자의 동생 수마나의 아들로 사위성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수닷타가 기원정사를 부처님께 바치던 날 그는 부처님 설법을 듣고 출가하는데, 부처님은 그에게 무공제일(無空第一), 혹은 소공제일(小空第一)이라는 칭호를 내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본 불전에서 공과 관련된 구체적인 그의 일화를 읽어내려 가면서 그가 파악한 공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아보자.
부처님께서 도리천에 올라 어머니를 뵙고 석 달이 지난 뒤 사바 세계로 돌아오는 날이 되자 많은 제자들이 부처님을 마중하기 위해 나섰다.
그때 수보리는 영축산 바위굴 안에서 옷을 꿰매고 있던 중 밖으로 나가려다가 발을 멈추고 잠시 생각하였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아 옷을 꿰매기 시작했다. '내가 서둘러 부처님을 맞이하러 가려고 하다니. 부처님의 형상은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의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은 결국 지(地), 수(水), 화(火), 풍(風) 4원소이니 부처님께 예배하려거든 그 오온과 육근(六根)이 무상한 것이라 관해야 한다.
또한 그것들이 모두 공하며 무아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무릇 일체의 법이 공적(空寂)하니 무엇이 나인가. 나는 지금 진실한 법취(法聚)에 귀의하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그는 계속 바느질을 했다.
한편 제자들 중 우발화색(優鉢華色) 비구니가 제일 먼저 부처님을 뵙고 예를 올리면서 자신이 첫 번째로 예배를 올린다고 하자 부처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말한다.
"우발화색이여, 그대는 매우 착하다. 그러나 제일 먼저 마중한 것은 네가 아니라 수보리다. 수보리는 모든 법이 다 공함을 관찰하여 여래를 예배하고 있다. 공무해탈문(空無解脫門)이 바로 예불이며 공무법(空無法)을 관찰하는 것을 예불이라 이름한다."(증일아함 권28)
이 대목에서 보듯이 수보리가 파악한 공은 무아로서의 공뿐만 아니라 법에 대한 공도 포함되어 있다.
근본불교에서는 말하길, 나(我)는 오온의 일시적인 화합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므로 실체가 없어 무상하며 무아다. 반면 오온 각각은, 즉 법은 영원하다고 했다.
그런데 대승불교에서는 그 오온 자체도 공하므로 나는 물론 법도 공하다는 일체개공(一切皆空)을 천명한다.
이렇게 본다면 그가 본 법에 대한 공은 후대에 가필된 것임이 분명하다. 즉 그가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공의 도리와 아주 유사한 개념, 즉 무아(無我)나 무상(無常), 내지는 연기(緣起)의 도리를 꿰뚫은 결과 궁극적으로는 공(空)을 깨우치는 데 으뜸가는 제자로 자리잡아 간 것으로 보인다.
은둔자요 무쟁도의 일인자이며 능히 공양받을 만한 자
대승불교는 공에도 집착하지 말 것을 촉구하여 그 공이 다시 현상으로 살아 움직여야 한다는 대긍정으로 방향 전환을 한다. 반면 근본불교에는 이러한 대긍정으로의 방향 전환은 없다. 어떻게 보면 염세주의적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적극적인 행위 자체, 즉 업을 만드는 일을 꺼려한다.
근본불교의 공관(空觀)은 적어도 그렇다.
그러기에 수보리 존자는 시끄러운 것보다는 고요를, 형상보다는 무상(無相)을 즐겼을 것이다.
아마 그는 내성적 성격의 소유자로서 은둔적 페시미즘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그러한 인물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증일아함 제3 「제자품」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좋은 옷을 즐겨 입지만, 행이 본래 청정하여 항상 공적을 즐기고 공의 뜻을 분별하여 공적의 미묘한 덕업에 뜻을 두고 있다. 그래서 은둔자 중에서 제일이라고 칭했다."
그러나 고요한 곳에서 은둔한다고 해서 그가 깊은 산속에서 홀로 숨어 지냈다는 의미는 아니다.
수보리는 사람들 속에서 생활할지라도 내면의 고요를 응시하면서 대립과 다툼이 끊어진 생활을 영위하였던 것이다. 다툼이 없는 무쟁행(無諍行)은 바로 맑고 향기로운 행이요, 무아의 빛이 외면으로 비추어진 행이다.
그래서 그는 무쟁도(無諍道)의 제일인자로서도 거론된다. 그런데 그 무쟁행에 관련된 그의 이야기는 앞에서 말한 그의 신비한 탄생설과는 사뭇 다르다. 한번 소개해 보겠다.
그는 총명하였지만 성질이 포악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주변의 사람이며 짐승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이 못살게 굴었다. 그 도가 지나치자 부모와 친구들도 그를 외면해 산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산으로 들어가서도 마주치는 짐승이나 나뭇가지에 해를 끼치게 되는데 산신의 도움으로 부처님을 뵈어 교화를 받고 출가, 이윽고 무쟁도를 깨닫고 무쟁제일자가 되었다. 출가 전의 난폭한 인물이 부처님의 교단에 출가한 이후 새로운 인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수보리 존자는 조용한 곳에서 무쟁의 삼매를 닦아 모든 법의 공적을 관찰하여 은둔제일, 무쟁제일, 해공제일의 인물로 떠올라 마침내 공양을 받을 만한 모든 성문, 아라한 가운데서 으뜸이신 분, 즉 소공양 제일(小供養第一)로 찬탄받는다.
이러한 수보리에게 하늘마저 감복했던 모양이다. 수보리가 우연히 왕사성에 갔을 때의 일이다.
빔비사라 왕이 그를 존경하여 작은 집을 지어 머무르게 했는데, 그만 지붕 이는 것을 잊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수보리의 덕력을 찬탄한 하늘이 그가 물에 젖을까봐 비를 내리지 않자 백성들이 곤경에 처했다.
이때 존자가 우러르며 말했다. "나의 작은 집은 잘 이어져 바람도 들지 않아 기분이 좋다.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라. 나의 마음은 잘 정주하여 해탈을 얻어 기분좋게 머무노니, 하늘이여, 비를 내려라." 그제서야 하늘이 비를 내리니 왕은 자신의 과실을 알고 다시 지붕을 이어 주었다는 이야기다.
증일아함에서는 이런 얘기도 전한다. 부처님이 왕사성 기사굴산에 계실 때 수보리 존자는 병에 거려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고통이 어떻게 생겨나고 사라지는가를 명상하고 있을 때, 제석천이 파차순(波遮旬)을 데리고 와서 문병하며 병환이 어떠한가를 묻는 광경이다.
착하다, 제석이여. 모든 법은 스스로 생기며 스스로 멸한다. 또한 스스로 움직이며 스스로 쉬는 것이다. 마치 독약이 있으면 다시 그 독을 해독시키는 약이 있는 것처럼 법과 법은 서로를 어지럽히고 서로를 고요하게 하니 법은 능히 법을 일어나게 한다. 흑법은 백법으로써 다스려야하고 백법은 흑법으로써 다스려야 한다. 이처럼 탐욕의 병은 자비심으로 다스리며, 어리석음의 병은 지혜로 다스린다.
이와 같이 일체의 소유는 공(空)으로 돌아가 나도 없고 남도 없으며 수명도 없고 형상도 없다. 바람이 큰 나무를 쓰러뜨려 가지와 잎사귀를 마르게 하고 우박과 눈이 내려 꽃과 열매를 망치게도 한다. 또한 비가 오면 시든 초목도 스스로 생기를 얻는 것처럼 법과 법은 서로 어지럽히다가도 다시 서로를 안정시킨다. 나의 아픔과 고통도 지금은 다 사라져 심신이 평안하다.
이렇게 사물의 본성을 명확히 꿰뚫는 그의 탁월한 식견은 대승불교에 와서 확연하게 부각된다. 초기 반야계 경전의 정수이자 우리 나라 조계종의 소의 경전(所依經典)인 『금강경(金剛經)』에서 수보리 존자는 부처님의 상대역으로 등장한다. 스승과 제자는 서로 공의 모습에 대하여 묻고 대답하는 하모니를 이루어 결국 깨달음이라는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