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목공파? 한림공파
● 저는 경주이씨 40세손인 이◇형 입니다.
윗대로는 ‘상’자 ‘우’자 ‘종’ 자 항렬이시고 아래는 ‘재’자 돌림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충무공파라고 있습니다만 자료가 없어서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중시조이후 무슨 파이며 아래로 무슨 파인지 또한 파조는 누구신지 자세히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댓글)
△ 상◇
종친께서 계림부원군(鷄林府院君)의 충무공 이수일 장군의 후예가 틀림없다고 하면
종친의 대파(大派)는 국당공파(菊堂公派)이고 중파(中派)는 정순공파(靖順公派)이며
소파(小派)가 충무공파(忠武公)입니다.
그리고 중시조 할아버지로부터 40세(39대)손이 되며...
△ ◇형
알아보니 충무공파가 아니고 충목공파 입니다.
답변) 이이록
먼저 말씀드릴 것은 '형' 항렬은 중조 '40세'이지 '40세손'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40세를 40세손으로 즉 '40세=40세손'과 같이 같은 뜻으로 말씀하셨는데
'세와 세손'은 그 의미와 쓰임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같은 뜻으로 읽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40세인 후손(자손)'으로 표기하던가 '중시조님의 39세손(39대손)'으로 말을 해야 바르지
'40세손'으로 말하는 것은 바르지 못한 표현입니다.
그리고 경주이씨 대종보(87년도 간행. 정묘보. 중앙 표준보)에는
올리신 '충무공파'나 '충목공파'의 파명은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충목공'은 중조 25세 오재공(梧齋公. 휘 탕)의 차자인
중조 26세 사류재공 휘 정암(廷馣) 조상님의 시호가 '충목'인데
이 시호를 따서 충목공파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정식 파명은 '사류재공파' 입니다.
시호 충목을 따서 충목공파로 한 것이 아니고 호 사류재를 따서 소파로 사류재공파로 한 것입니다.
대파 - 국당공파. 중파 - 문정공파. 소파 - 사류재공파인데
이를 연이어 호칭할 때는 "국당공후 문정공후 사류재공파"라고 보통 일반적으로 칭합니다.
국당공파(파조 중조 17세 菊堂 휘 천)에 [팔정(八廷)집]이 있습니다.
'팔정 집'은 국당공후(휘 천) 문정공파(휘 경중) 계대의
중조 25세 오재공(휘 탕) 조상님께서 8명의 아들을 두셨는데
후손들이 ‘팔정집’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아래와 같이 분파하였습니다. (87년 간행 대종보 참조)
장자- 퇴재공(退齋公) 정함(廷香+含)
차자- 사류재공(四留齋公) 정암(廷馣)- 사류재공파(충목공)
3자- 지퇴당공(知退堂公) 정형(廷馨) - 지퇴당공파
4자- 선무랑공(宣務郞公) 정담(廷香+覃)
5자- 세마공(洗馬公) 정분(廷香+分)
6자- 좌랑공(佐郞公) 정온(廷馧)
7자- 석천공(石泉公) 정험(廷香+傔-人변없음 )- 석천공파
8자- 계공랑공(啓功郞公) 정봉(廷䭰)
*대파 국당공파. 중파 문정공파 아래에
‘8정’중 사류재공파. 지퇴당공파. 석천공파 등 3개 소파만 분파되었습니다.(대종보 참조)
▲사류재공(四留齋公- 정암廷馣)
1541(중종 36)~1600(선조 33). 조선 중기의 문신
자는 중훈(仲薰), 호는 사류재(四留齋)· 퇴우당(退憂堂)· 월당(月塘)이고 서울 출신이다.
사직서령 탕(宕)의 아들이고 이조참판 정형(廷馨)의 형이다
정유재란이 끝나자 풍덕에 은퇴하여 시문(詩文)으로 소일하며 지내다가 세상을 떠났다.
1604년 연안수비의 공으로 선무공신 2등에 책록되고
월천부원군(月川府院君)에 추봉되었으며 좌의정에 추서되었다.
성혼(成渾)· 이제신(李濟臣) 등과 교유하였으며 연안 현충사에 제향 되었다.
저서로는 ≪상례초(喪禮抄)≫ · ≪독역고(讀易攷)≫ · ≪왜변록(倭變錄)≫ ·
≪서정일록(西征日錄)≫ · ≪사류재집(四留齋集)≫ 등이 있다.
시호는 충목(忠穆)이다.
*시호가 '충목'이기 때문에 집안에서 볓도로 '충목공파'라고 한 것으로 보이나
공식 파명은 '사류재공파' 입니다.
▲계대는 아래와 같습니다.
17세 - → 18세 → 19세 → 20세 - → 21세 - →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국당공....문정공..참판공..청백리공..진사공...좌랑공...헌납공..이판공..오재공..사류재공
천..........경중.....육........정보.......타.........계손......거........달존.....탕........정암
국당공파..문정공파..............................................................................사류재공파
● 익재공후 한림공파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요?
꼬리 글에는 익재공후→ 운와공후→ 한림공파라고 하였는데
계통도를 봐도 운와공이나 한림공을 찾을 수가 없네요.
그리고 저는 시조나 중시조로부터 몇 세손이 맞나요?
할아버지는 종○, 아버지는 ◇우, 저는 상□, 아들은 △형입니다
댓글)
△ 상▽
중조 17세손 익재공(휘 제현)은
장남 시랑공(휘 서종)/ 차남 운와공(휘 달존)/ 삼남 밀직공(휘 창로)을 두셨고,
차남 운와공은 군사공(휘 덕림)/ 한림공(휘 수림)/ 소부윤(휘 학림) 三子를 두셨으며,
한림공도 숭의/ 숭도/ 인도 三子를 두어 익재공후 운와공후 한림공파의 계대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종'자 항렬은 중조37세손(시조72세손)이고, '우'자는 중조 38세손, '상'자는 중조 39세손,
'형'또는 '희'자는 중조 40세손이 됩니다.
답변) 이이록
2008년에 간행된 익재공파 파보(세보)나
87년도 간행 대종보(정묘보)의 익재공파편을 구하여 찾아보면 찾을 수 있습니다.
아래와 같이 계대를 세수대로 찾아보는 것이 이해가 빠를 것 같습니다.
17세 - → 18세 - → 19세 - → 20세 → -------- → 37세 - → 38세 - → 39세 - → 40세
익재공....운와공.....한림공....숭의.사복공.사인공..종(鍾).....우(雨)......상(相)......형(炯)
제현.......차자달존..차자수림..숭의.숭도.인도.......종○.......◇우........상□........△형
익재공파(대파).......한림공파(중파).................
파명은 대파는 익재공파이고 중파는 한림공파입니다.
이를 ‘익재공후 한림공파’라고 호칭합니다.
‘운와공파’라고 했는데 대종보(87년도 간행)에는 '운와공파'로 분파한 파명 기록이 없습니다.
*경주이씨에 관한 모든 자료는 종친님들의 혼란을 막기 위하여
1987년도 간행 정묘보이며 중앙표준보인 경주이씨 대종보를 근간 자료로 합니다.
▲ 몇 세손입니까?
1세 - → 2세 - → 3세→---→17세 → 18세 → 19세 -→ 20세→---→37세 → 38세 → 39세
중시조...아들.....손자.........익재공..운와공...한림공..사인공........종(종)...우(우)..상(상)
(기준)....1세손....2세손.......16세손...17세손..18세손...19세손.......36세손..37세손..39세손
.....................................(기준)....1세손....2세손....3세손.........20세손..21세손..22세손
...........................................................(기준)....1세손.........18세손..19세손..20세손
*우리 경주이씨 조상님들은 족보. 비문. 문헌의 기록에
[세=대. 세손=대손. 세조=대조]로 등호(=) 좌우의 용어를 같은 뜻으로 읽고 기록하였습니다.
1세(=1대). 17세(=17대). 39세(=39대)로 말하고
19세손(=19대손). 39세손(=39대손)으로 읽고 말합니다.
세손(=대손)을 읽는 방법은 ‘누구의 몇 세손?’ . ‘기준의 몇 세손?’ 으로 묻고 답할 때
윗대조상님 기준으로 아랫대 후손을 헤아려 읽을 때 쓰이는 용어입니다.
댓글을 올려주신 상▽ 종친님의 글에서 잘못된 표기에 대하여
△[중조 17세손 익재공(휘 제현)...]
- 익재공은 중조 17세이지 17세손이 아닙니다.
17세=17세손 즉 세=세손으로 같은 뜻으로 읽는 이유가 무엇인가?
분명히 世와 世孫은 그 말뜻과 쓰임이 다른데 같은 뜻으로 읽고 쓰고 있으니 의아합니다.
‘중조 17세 익재공(휘 제현)’이 바른 표기이지 ‘중조 17세손’이 바른 표기가 아닙니다.
익재공은 ‘중조 17세’이고 ‘중시조님의 16세손’으로 읽거나 말을 해야 바릅니다.
△['종'자 항렬은 중조37세손(시조72세손)이고, '우'자는 중조 38세손,
'상'자는 중조 39세손, '형'또는 '희'자는 중조 40세손이...]
아래의 표와 같이 세손(=대손)을 헤아려 읽어야 합니다.
1세→---→37세 → 38세 → 39세 → 40세
중시조......종(鍾)...우(雨)...상(相)....희(熙).형(炯)
(기준).......36세손..37세손..38세손...39세손 - - - ‘동의’ 논지
1세손.......37세손..38세손...39세손...40세손 - - - 상▽ 종친님 표기
중조 37세를 37세손. 중조 38세를 38세손. 중조 39세를 39세손.
중조 40세를 40세손으로 읽어나 말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세=세손’은 같은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시조 72세손)
- 우리 경주이씨는 ‘중시조세수’로 말을 하지 ‘시조세수’로는 말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시조님 아랫대(아들)부터 소판공(중시조)의 아버지 대까지
약 900년간의 계대는 실전되어 전연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라말 소판공 이후로 한번도 발견되거나 기록에 없던
‘35대 실전 상계’가 1932년 분적종 합천이씨 임신대보에 처음으로 게재되어
이것이 널리 알려졌으나 이 계대의 사실 유무를 면밀히 조사 분석한 결과
여러 가지 이유로 이는 사실적인 계대가 아님을 중앙화수회에서 논문으로 밝혀
1987년도 간행 대종보(정묘보. 중앙표준보- 수많은 종친님들의
이런 저런 설에 혼란이 많기 때문에 이 대종보에 게재된 자료를
우리 경주이씨에 관한한 근간자료로 하고 있습니다.)
에 ‘실전세계의 고찰’이란 제목으로 게재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시조 세수'로는 헤아려 말하지 않고 정확한 '중시조 세수'로만 말하여야 합니다.
물론 '시조 세수'는 읽으면 안 되지만
‘시조 72세손’은 정확히 말하여도 ‘시조 72세’가 바른 표기입니다.
'손'자를 붙여 '72세손'으로 읽으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35대 실전 상계 계대 35세와 ‘종’ 항렬의 세수 중조 37세를 더하여
35 + 37 = 72(세)로 읽은 것입니다.
시조 72세를 ‘시조 72세손’으로 읽고 기록하는 것은
한 때 몇 십년간 ‘세=세손’으로 읽는 ‘이의’ 논지의 교육이 성행하여
우리 사회에 관습화되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