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고 창피했다.
“휴일 새벽 05:32 카똑 깜짝 놀랐다.
뭔 큰일이 난나......?”
순간 정말 내가 05:32분에 카톡을 보냈는지 얼른 확인해 보았다. 분명 내가 보낸 답글 옆엔 작지만 또렷한 숫자가 확인되었다. 비로소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운 마음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문제는 내 관종 끼 때문이다. 공연히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애써 나서서 글을 올리고 반응을 살피는 오지랖 넓은 짓이 탈을 일으켰다.
서울에 사는 초등학교 친구가 있다. 시를 쓰는 친구로 가끔 카카오톡으로 수도권에서 사는 친구들의 안부도 전해주는 허물없는 사이다. 쉽게 만날 수는 없지만 내가 글쓰기 공부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요즈음 더욱 가까워졌다. 직접 쓴 작품도 서로 주고받던 터에 한 번은 그냥 재미 삼아 읽으라며 sms에 떠도는 한문(漢文) 투의 전래 소설을 연재물로 보내주었다. 한시에 관심이 있는 나를 위해서였다. 읽어 보니 재미도 있었고 공부도 되었다. 한데 그걸 혼자 보고 즐겼으면 될걸, 공연히 다른 데에 옮기고 싶어졌다.
전부터 활동하는 동아리 모임의 단체 톡 방에 별생각 없이 공유하기 시작했다. 하나 막상 글을 올리다 보니 걱정도 생겼다. 대상이 다수인 데다 소설 내용이 갈수록 통속적이라 개인적 호불호가 분명 있을 것이고, 또 연재물의 회차가 빠질 수도 있어 조심스러웠다. 자연히 댓글에 신경이 쓰인다. 공연한 일거리를 스스로 만든 꼴이 되어버렸다. 뒤늦게 허튼짓을 했구나 하고 후회하기도 했다.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편이다. 새벽에 운동을 나가던 버릇이 있어 요즈음에도 대개 5시가 되면 잠에서 깬다. 꽤 이른 시간이다. 계절에 따라 한여름엔 동이 트기도 하지만 입추가 지나면 사람들 대부분이 꿀잠을 자는 시간이다. 일어나 정해진 스트레칭을 끝내고 책을 읽거나 오늘 해야 할 일을 챙긴다. 나머지 시간엔 뉴스도 듣고 휴대 폰을 열어 간밤에 온 sms 검색창을 훑어보기도 한다.
휴대 폰은 편리하기는 하지만 부작용도 많다. 사회활동이 줄다 보니 급하게 처리할 일도 없다. 자연스레 전화통화는 줄고 문자로 소통하는 것이 오히려 편해졌다. 그리고 자주 걸려오는 피싱이나 스미싱 문자들이 몹시 귀찮아졌다. 생각 끝에 컬러링을 진동으로 바꾸고는 필요한 때만 열어보고 낯선 번호는 아예 받질 않는다.
문제의 그날 아침이었다. 간밤에 유난히 카톡, 카톡 하며 휴대 폰 음이 울리던 것이 생각났다. 하필 진동 모드가 자연스레 해제되었던 것 같다. 더구나 어제 올린 소설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열어보니 역시 댓글이 달려있었다. 반응이 좋았고 답글이 필요했다. 고무된 생각에 우쭐했다. 아무 생각 없이 곧바로 자판을 두드린 것이 화근이 될 줄은 몰랐다. 바로 그 시간이 05:32분이었나 보다.
휴일 새벽은 느긋한 마음에 누구나 늦잠 자고 싶어진다. 새벽녘 꿀잠은 엄마가 깨워도 아이는 투정을 한다. 얼마나 짜증이 났을까. 아마도 당장 전화를 걸어 화풀이라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세 시간 반 동안을 기다려 아홉 시 정각이 되자마자 항의성 글을 올린 걸 보면 단단히 벼른 모양새다.
“뭔 큰일이 난나?”
대목에서 심히 자책감이 들었다. 별 대수롭잖은 소설 하나로 다수가 이용하는 대화방에서 새벽부터 요란을 떤 나 자신이 딱해진다. 좀 더 생각하니 이분 말고도 또 다른 회원들이 새벽잠을 설치고 짜증 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남들에 피해 끼치지 않고 점잖게 살고 싶은 마음이다. 나잇값을 하고 싶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렵다. 왜 좀 더 신중하지 못했을까. 사려 깊지 못한 잠깐의 행동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끝)
한국 에너지공단 정년 퇴직
글숲 문학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