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史記 7회]
☆周나라 제2대 武王☆
周나라 文王이 商나라 紂王을 정벌하지 못하고 죽은 후 그의 아들 무왕이 태공망과 그의 동생 주공(周公)의 도움을 받아 패륜의 상징인 紂王을 죽이고 商나라를 멸망시키니, 周나라가 종주국(宗主國)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천하는 周나라 무왕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는데,
이 때가 기원전 1046년입니다.
周나라가 천자의 나라가 된 것은 주공(周公)이라고 하는 동생(이름은 旦)과 軍師태공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무왕은 이 쌍두마차를 거느리고 천하를 호령하는 大君主가 되었습니다.
武王이 商나라를 치는 과정에서 태공망은 전군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으로 선봉에 서고 동생 주공은 무왕 가까이에서 전선에서 필요로 하는 군수물자를 조달하는 참모 역할을 하였습니다.
무왕 지신은 중군(중앙군)에서 부월(斧鉞 : 생사여탈권이 주어진 지휘권의 상징으로 금도끼를 말함)을 왼손에 들고 오른 손에는 쇠꼬리로 만든 채찍을 높이 들고 商니라 수도인 상교(商郊)를 향해 진군을 명하니, 기마대의 말발굽 소리와 병사들의 함성이 천지를 뒤흔들었습니다.
이 싸움에는 商나라 紂王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던 모든 제후국들의 군사가 참전하는 연합군 체제였습니다.
이 싸움에서 신기한 것이 발견 되었는데, 商나라 군대가 70만이었고 연힙군은 4만 5천이었는데 병력이 열세한 연합군이 이긴 것입니다. 연합군이 승리한 원인은 商나라 군대는 거의 80%가 노예였으며 장군들이 紂王에게 불만이 많아 초전부터 연합군에 투항히는 사태가 속출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비슷한 상황이 지금 북괴군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 북괴군은 배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부대별로 직접 영농을 하며 병사들에게 양식을 구해오도록 휴가를 보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뿐만 아니라 압록강과 두만강 지역의 북괴군 막사는 움막집으로 되어 있어 우리나라 50~60연대 산중의 토담집보다 못한 수준입니다.
병사들의 피복도 전투복 한벌입니다. 그러면서 근무 연한이 10년이나 되니 불만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군의 경우와는 전혀 비교할 수 없이 형편없는 수준입니다.
여하간 주무왕은 어렵지 않게 商나라를 정벌하고 많은 제후국의 맹주(盟主 : 종주국 패왕)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