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가. 근본(엔 아르케)은 각자의 내면에 있는 것으로서 몸 밖의 예수 그리스도는 과정 안에 있는 것이다.
나. 내가 변하지 않고 숫처녀의 가슴으로 몸 밖의 예수에게 기대하는 것은 처절한 실망만 가져올 뿐이다.
2, 본론
가. 근본(엔 아르케)은 각자의 내면에 있는 것으로서 몸 밖의 예수 그리스도는 과정 안에 있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들여다보고 파악할 수 있다면 만났던 그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벗어나 단독 자가 되어야 한다. 육체로 온 예수는 피차일반이다. 베레쉬트(근본)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몸 밖의 예수 그리스도는 대상이 아니므로 필요치 않다.
종교인들은 처음 숫처녀의 가슴으로 만나 존경하고 사랑하는 자를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그 수많은 어려운 과정을 견디면서까지 대부분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도 주여! 주여! 한다. 죽어서라도 천국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죽어서 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열심인 예수의 열두 제자들로 모두 그러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절망스럽게 죽는 것을 보고 열성을 다해 따랐던 베드로도 두려워하고 절망하였다. 그가 기대하고 따랐던 그 모든 것이 무너졌다.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다시 고기잡이(종교생활)를 하게 된 것이다. 예수에게 거는 기대가 그만큼 컸던 탓이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소원을 들어줄 유일한 분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따랐었다. 로마의 권세 아래서 이젠 어떠한 희망도 없었을 것이며, 삶의 의미 또한 무너졌을 것이다. 살아도 호흡하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떤 희망도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십자가 위에 달리는 체험이다. 모든 소망이 끝나는 체험을 해야만 깨닫게 된다. 이 체험을 통하지 않고는 음부(간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기분이 좋다 하여 되는 것도 아니며, 생각했던 일이 잘 된다고, 자신을 따르는 자들이 많고, 생활이 안정되었다고 해서 내면의 근본이 회복 되는 것이 아니다.
나. 내가 변하지 않고 숫처녀의 가슴으로 몸 밖의 예수에게 기대하는 것은 처절한 실망만 가져올 뿐이다.
숫처녀의 가슴으로 기대했던 그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절한 실망만이 깨달음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그래야 그 예수 그리스도에게 소망했던 그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했던 그 베드로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 된다. 베드로 안에서 부활했던 그리스도 예수는 원래부터 베드로 안에 있었다. 이처럼 우리 안에 감추어져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깨어남)해야 하는 것이 성경의 핵심이다.
몸 밖의 예수가 부활한 것을 이야기하는 내용이 아니다. 내(무덤) 안에서 원래부터 있었던 보석 곧 그리스도 예수가 나타나는 것이다. 나의 에고가 이렇게 죽어야 근본을 회복하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내면에서 그리스도 예수로 근본을 회복하는 것은 속사람의 이치에 도달해야만 한다.
종교인들(겉 사람)에게는 부활이 없다. 그 예수를 숫처녀의 가슴으로 사랑해봐야 한다는 조건에 불과한 과정일 뿐이다. 그리고 그 대상에게 처절하게 실망해봐야 한다. 그 후에 자신 안에서 새로운 세상 곧 깨어남의 지혜가 드러나게 된다.
그러면 그 예수와 내가 하나가 된다. 이를 형제로 비유한 것이다. 그 예수도 하나님이고 내 안에서 근본을 회복한 나(예수 차원)도 하나님이다. 이 둘이 하나가 되어 한 생명 안에서 근본 하나님의 나라는 한 사람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내면에서 근본을 회복한 그리스도 예수는 대상이 아니라 내가 회복해야 할 표준이다.
그 생명의 그 빛(근본)!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