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첫째, 둘째, 셋째 기별의 역사적인 관련성(Involvement)
먼저 주 재림운동의 19세기 대 각성에 대한 역사적 배경으로서, 어떤 배경이 되는 사건들을 이해함이 요긴하다. 이렇게 함으로서만 우리는 그 참된 의미를 알 수 있다. 과거는 곧 일어나려하는 큰 마지막 운동에 대한 필수적인 서막(서언)인 것이다. 우리가 전술한바 기초적인 사건들의 일관성과 그리고 과거로부터의 연속성을 인식하지 않고서는 그 때 당시와 그 미래의 발전을 옳게 이해할 수 없다.
1. 삼중(三重) 배경과 줄거리
무엇보다 먼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구대륙(유럽)은 일천년 이상 -구대륙에나 신대륙에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1798년에 끝나는 교황권의 큰 배도의 포악한 압제 하에 있었다. 이때쯤(1798년) 개신교 국가들과 교회들을 일반적으로 처음의 전도열성을 잃었다. 저들은 계속되고 있는 박해하는 배도자에 대한 저들의 적으로 항쟁을 중지했고 지금은 당시 성행했던 여러가지 근본적인 오류의 사상들을 저들 자신도 보유하고 있었다.
둘째로 (신세계는) 계 13:11~18의 예언적 상징으로 인정되고 -인류에게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개혁의 기별의 선구자인 영원한 복음이 땅 끝까지 미칠- 에 기초된 계 14장의 마지막 삼중기별이 선포되는 센터가 된 미국은 개신교의 냉담 가톨릭의 배도와 호전적인 불신의 침해, 무신론과 최근에 나타난 위트비(whitby)의 매혹적 후천년 설은 물론 불란서 혁명의 자연신론 등으로 아직도 심히 고통하고 있었다.
세째, 여러 세기 동안 국가적, 민족적 장벽으로 문이 닫혀있던 여러 해 동안 이어온 적개심이 상승하고 교통과 통신이 크게 발전된 전 세계는 아직 세계 선교계획을 위한 부담이나 관심이 거의 없었다. 복음 선교의 실제적 성취를 위한 시설이나 조직 기구들도 없었다. 더구나 선교회나 성서공회, 소책자회 등은 없었다. 겨우 기독교 세계의 언어로 된 소수의 성경번역들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주일학교들도 없었다. 더욱이 교회에는 세계적 선교계획에 대한 관심이나 적당한 훈련기관들도 없었다.
2. 어떤 예비적인 기회들이 시급함
그러므로 예비적인 기회들과 운동들이 긴급히 필요 되었다. 기초가 되는 일방적 예비적인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큰 개괄적인 예언들의 절정으로서 재림을 강조하는 특수한 삼중의 부흥과 개혁의 기별을 위하여 길이 닦아져야만 되었다. 마지막 시대의 강조와 관련된 ‘영원한 복음’ 선포를 완수하기 위한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중지상태에 있던 16세기 종교개혁도 완성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와 같은 것들이 하나님께서 19세기 미명에 비젼(vision)을 가지고 헌신한 사람들을 시켜서 일하기 시작하셨던 배경이었다.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으로 다원화되고 강화된 예비적 세력들이 19세기 초 수십 년간에 함께 일어난 것을 먼저 주목하라. 1800년은 현대교회 역사의 예정에서 주요한 분기점이었다.
Ⅲ. 예비적 세력들과 사실들이 재림기별을 위하여 필수적이었다
1260년 기간의 끝인 1798년에 시작되는 ‘마지막 때’라고 부르는 시기 동안에 서론적인, 일반적인, 예비적인 세력들과 사건들이 형성되고 힘을 모으는 것 등이 연속적으로 축적되는 것을 발견한다.
3. 정치적, 종교적, 학문적 자유의 팽창
한 새로운 자유가 모든 발전의 기초를 놓는다. 그 당시 상태를 둘러 싼 것 같은 가장 흔하게 사용하던 두개의 낱말은 운동(agitation)과 개혁(reform)이었다. 몬로주의(Monroe Doctrine = 1823년에 미국 제 5대 대통령 Monroe가 서명한 외교방침)와 더불어 미국은 독립하였다. 북미 합중국은 이제 막 그 기초 -세계적인 세력과 주인공과 주추로서 싹트고 있는- 가 이제 막 건설되고 있었다. 다음의 현저한 발전을 주목하라.
① 정치적 자유와 발전-정치적 자유는 미국과 캐나다뿐만 아니라 영국과 그 속국들, 남미, 서인도와 유럽 대륙으로 발전되고 있었다. 유대인의 권리가 점차 인정되었다. 스스로 결정하는 원칙이 퍼지고 있었다. 반노예운동이 있었다. 예컨대 노예 반대 신문인 ‘The Emancipator(해방자)’라는 신문이 1820년에 출판되고 흑인신문인 ‘자유의 신문’이 1827년에 출판되었다. 1830년의 흑인 협의회와 1839년 노예 반대 정당이 뒤따라 생겼다.
② 예배의 종교자유와 도덕적 개혁의 확대- 다른 대륙들에서도 종전의 종교적 장벽이 점점 무너졌는데 이것은 해외 복음 전파를 위한 길을 예비하는 데에 필수적인 필요조건이 되었다.
③ 언론과 출판 자유의 편만- 종교적인 시대가 확립되기 시작했다. 1808년에 ‘복음적 자유의 선구자’, 1813년에 ‘종교적인 유물’, 1816년에 ‘기록자’, 1823년에 ‘관찰자’, 1830년에 ‘전도자’ 등이 출판되었다. 큰 신문들이 출간되었다. 1841년에 ‘뉴욕 민우신보’, 1833년에 ‘뉴욕의 태양’, 1835년에 ‘뉴욕 선구자’등이 출간되었다. 교육적 혹은 기타 신문들도 출간되었다. 이것은 명확한 특징이었다.
④ 대량 교육의 대중화- 19세기 전반기에 중등학교들, 대학들, 세미나들, 대학교들이 증가되었다. 1875년에 미국 교육위원회가 발족되었다. 1837년에 ‘감독자 호레이스만’이 선두에 나타났다. 또한 1837년경에 여자들을 위한 Mount Holyoke 대학이 설립되었다. 1846년에 Mount Union대학(Ohio)이 인가를 받았다. 1801년에는 전 미국내에 25개 대학밖에 없었으나 1850년에는 위대한 서부의 발전과 더불어 120개의 대학이 있었다.
영국과 외국 학교 협회가 영국에 뿌리박고(Lancastria주에) 그 후에 북미와 특히 남미에 학교의 감독기구 -중립적 원조기관- 가 그 계획의 일부로서 성경의 분배와 다수를 위한 자유교육 기구들이 생겼다.
⑤ 통신과 교통의 발달- 1800년에서 1844년 사이에 놀라운 물질문명의 발달과 혁명적인 변화가 있었다. 운하의 관문에서 철도로의 전환이 생겼다. 1807년에 증기 기선이 나왔다. 1828년에 철로가, 1837년에 전보가 수십가지 다른 혁명적인 발달이 신속히 뒤따랐는데 이 모두 19세기 초기에 되었다. 그리고 놀라운 일들이 19세기에 계속되었다.
⑥ 예언 해석의 부흥- 구대륙과 신대륙에서 서로 개별적으로 연구했으나 같은 시대에 예언 해석의 조수가 있었는데 대 재림 운동과 기별을 이룩한 비슷한 의미와 놀라운 같은 결론들을 내렸다.
4. 큰 영적 부흥이 1798년경에 시작되다
‘마지막 때’는 북미에 있는 기독교회에 새 시대를 열어 재림운동 -인류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마지막 기별을 준비하는 운동으로 계속되었다. 예를 들면 뉴잉글랜드주 여러 도시에서 일어난 신앙부흥의 간략한 진술을 쓴 ‘영광스런 소식’이란 책이 있다(philalelphia, 1799). 또 다른 책은 ‘1800년의 부흥’이 있다. 그리고 이 때에 시작된 다른 의미심장한 각성들을 상술한 비슷한 기록들이 있다.
‘새롭게 하는 시대’는 1800년경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큰 부흥은 약 30년간 계속되었는데 먼저는 동부주 등에서 시작되어 중서부와 남부변경으로 퍼지고 캐나다 동부까지 퍼졌다. 그리고 불란서 혁명의 무신론과 불신, Hume, Volteure와 Rousseau의 사악한 철학에 대항하는 대등한 반항도 있었다.
실제로 1800년과 1830년 사이에 110만명이 회중교회, 장로교, 침례교와 감리교회에 가담했다. 1826년과 1830년 사이에 20만명이 불어났고 이 중에 6만명의 청년 남자들이 포함되었으며 이 중에 대부분은 목사나 선교사를 지원했다. 능력 있는 부흥사들과 전도자들이 나타났다. 1831년의 5개월 내에 1500도읍들이 깊이 감동되었고 지도적인 대학들과 세미나리(대학원)들을 흔들어 놓았다. 수천명이 기독교 사역자가 되기로 결심했다(Robert Baird wj, “기독교 기록자와 회고”-19세기 전반기의-1851. pp.218 참고-P.L.Leonard 저. “Baston, Oberlin의 이야기” pp.56).
그리고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1800년의 미국전역의 인구는 약 530만 명밖에 안되었는데 한편 1840년에는 약 1700만 명이었다. 19세기 초의 뉴욕의 인구는 약 37만이었다. 미국 censas(인구조사) 기록에 의하면 그것은 미래의 모습의 물결을 지시해 준다.
5. 대등한 개혁 운동들이 터져 나온다
1260년 교황권 시기가 끝난 1798년에 불란서에서는 불신과 이상주의적 철학이 수반되었으나 기독교 내에서는 새로운 시대가 밝아왔다. 단지 잃어버렸던 교리적, 예언적 진리들을 회복한 것뿐만 아니라 모든 예비적, 보조적 세력들이 포함된 것들과 함께 온 세계에 선포할 최후의 특별한 천국복음을 위한 준비로서 우리가 곧 알게 될 일반적인 외방선교 운동이 태동하고 완성된 것이다. 영원한 복음은 한 새로운 힘을 가지고 회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열거한 것에는 아직 1800년에는 세계 선교의 어떤 vision도 개신교회 지도 중에서는 일반적으로 갖지 않았었다. 다만 이곳 저곳에 있는 소수의 개인들만이 그런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외국 선교기관들, 성경 합회, 소책자회, 일요일 학교합회나 선교사를 위한 훈련 센터 등이 없었다.
세계는 아직도 혼미케 하는 교황의 세력과 타협적인 개신교 사상들이 유럽에 있었고 비기독교 세계는 아직도 대부분 닫혀 있고 적대상태에 있는 한편 불란서에서는 불신과 무신론적 원칙들이 있었다. 이 때 한 운동이 일어났다.
6. 하나님께서 역사의 사건들을 주관하신다
바로 이 때 분명하고 확실한 재림운동 혹은 세 천사의 기별을 위한 길을 열기 위하여 유럽과 특히 미국에서 기독교계에 잔재한 이 제한된 조건들을 대항해서 한 반란(폭동)이 일어났다. 조만간 그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영적으로 새롭게 하는 때’를 보이시기 시작하셨다. 그리하여 필적할 만한 개혁운동들이 1260년 교황권 시기 바로 끝 때에 미국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는 개신교 체계에 절실히 요구되는 영적부흥과 개혁운동을 일으키기 시작하셨다. 그분은 세계 선교적 열성을 일으키기 시작하시고 -이교와 가톨릭 체계 등에 편만한 낡은 제한된 장벽들을 헐어버리고 이 거대한 사업을 정화하기 위하여 기관들과 기계시설과 경제적 자원을 준비케 하셨다.
이 기초적인 예비적 사상들과 세력들과 시설들이 없이는 온 세상에 분명한 삼중기별을 전파할 그 거대한 사업을 완전히 불가능 했을 것이다. 자 우리 매혹적으로 전개되는 사건들을 관찰하자. 그러나 우리는 다시 돌아가서 다른 면을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