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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군은 강력한 25명 분대가 가장 작은 전술 단위였고, 상급 부대의 사격 명령에 의해서만 일제히 사격을 실시했다. 반면에 아프리카 사냥꾼들인 보어군은 개별적으로 사격을 했고 모두가 훌륭한 저격수로서 자신의 상당한 기술을 발휘할 수 있었다. 보어군 게릴라 지휘관인 리츠(D. Reitz)는 그의 병사들이 1200m 이상의 장거리에서도 영국군 주력 부대와 훌륭하게 교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피온 콥 고지 전투에서 포위된 영국군들은 머리를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보어군 저격수들의 사격을 받고 큰 피해를 당했다. 진지에 몸을 숨긴 채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는 그림자 같은 저격수들, 그들은 모두 노련한 싸움꾼들이며 순간적으로 노출되는 적의 팔다리를 명중할 만큼 보어군의 저격 솜씨는 영국군들이 과거 어느 전쟁에서도 겪어보지 못했던 놀라운 기술이었다.
마페킹(Mafeking)의 포위 전투 때 영국군은 보어군에게 포위돼 계속 위협적인 사격을 받아 피해가 속출했는데, 주변에 있는 높은 수목 때문에 보어군의 사격 위치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영국군 로데시안 연대와 남아프리카 보안대 중에서 가장 사격을 잘하는 저격수들이 보복전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러한 부분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당시 영국군의 사격 수준이 보어군에 비해 초라하다는 것은 확실했다. 전장의 곳곳에서는 보어인들의 날카로운 저격술이 끈질기게 영국군들을 괴롭혔다. 영국군은 최초 1만 명을 투입했으나 2년 후에는 30만 명이라는 대군을 투입하지 않으면 안 됐다. 결국 영국은 보어군을 제압하기 위해 대규모 증원군을 파견함으로써 대영제국의 체면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목표물은 점점 작아져 조준이 힘들어졌고, 특히 화려한 색깔의 군대 유니폼이 카키색이나 짙은 회색, 황녹색 등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저격은 더욱 어렵게 됐다. 따라서 소총의 정확성이 크게 높아진 만큼 고난도의 사격술도 필요하게 됐다. 영국군은 이러한 뼈아픈 교훈을 거울삼아, 10여 년 후 1914년 세계대전에 참전할 즈음에는 우수한 소총 사격술을 보유하게 됐다.
출처 : 양대규 전사연구가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