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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西赤問於孔子曰大夫以罪免卒,其葬也,如之何 孔子曰大夫廢其事,終身不仕,死則葬之以士禮。老而致事者,死則從其列。
公西赤이 공자에게 물었다. “대부가 죄를 지어 면직되었다가 죽으면 그 장례는 어떻게 지내야 합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대부가 자신의 직무를 폐기하였거든 종신토록 벼슬하지 못하게 하고, 죽으면 士의 예로 장사 지낸다. 늙어서 벼슬을 그만둔 자라면, 죽어서는 그 班列(반열)에 따라야 한다.”
▶免면할 면
公儀仲子嫡子死,而立其弟。檀弓謂子服伯子曰何居 我未之前聞也。子服伯子曰仲子亦猶行古人之道。昔者文王捨伯邑考而立武王,微子捨其孫腯立其弟衍。子游以問諸孔子。子曰否。周制立孫。
公儀仲子가 자신의 嫡子가 죽자 (嫡孫을 세우지 않고) 그 아우를 喪主로 세웠는데, 檀弓이 子服伯子에게 물었다. “어째서입니까? 제가 전에 듣지 못했던 禮입니다.” 그러자 자복백자가 대답하였다. “공의중자 또한 古人의 道를 행한 듯합니다. 옛날 文王은 (長子인) 伯邑考를 놔두고 武王을 세웠고, 微子는 그의 손자인 腯을 놔두고 그 아우 衍을 세웠습니다.” 자유가 공자에게 이에 대해 묻자, 공자가 대답하였다. “아니다. 周나라 제도는 嫡孫을 세운다.”
▶嫡정실 적, 본처. 檀박달나무 단. 居살 거, 까닭, 理由. 捨버릴 사. 微작을 미. 腯살찔 돌 / 둔. 衍넘칠 연
▶公儀仲子는 魯나라 사람으로, 公儀는 氏이고 仲子는 字이며, 魯나라와 같은 姬姓이다. 檀弓은 魯나라 사람으로, 예에 밝았기 때문에 禮記에 檀弓으로 편명을 붙였다. 子服伯子는 子服景伯으로, 魯나라 大夫 仲孫蔑(중손멸)의 玄孫이다.
▶文王捨伯邑考而立武王: 文王이 武王을 後嗣로 세운 일에 대해, 禮記集說大全 檀弓 上 陳澔의 注에는, 先儒以爲權 或亦以爲遵殷制 皆未可知 否則以德不以長亦如太王傳位季歷之意歟(先儒가 權道이거나, 殷나라 제도를 따른 것이라고 하는데, 모두 알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太王이 (三男인) 季歷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처럼 나이에 상관없이 덕이 있는 사람을 후계자로 세우는 뜻인 듯하다) 라고 하였다.
▶微子: 이름은 啓, 殷나라 帝乙의 장남이며, 殷나라 마지막 왕인 紂의 이복형. 은나라 말기 仁의 덕을 실천한 微子, 箕子, 比干 중의 한 사람이다. 微子가 紂에게 諫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자, 祭器들을 갖고 山西省 微땅으로 갔다. 周武王이 紂를 정벌하고 그를 微國에 봉하고 子爵의 지위를 주어서 微子라고 한다. 뒤에 은나라의 뒤를 이어 宋에 봉해졌다.
孔子之母既喪,將合葬焉。曰古者不祔葬,為不忍先死者之復見也。詩云 死則同穴。 自周公已來,祔葬矣。故衛人之祔也,離之,有以閒焉。魯人之祔也,合之,美夫 吾從魯。
공자의 어머니가 죽자, 장차 그 아버지와 합장을 하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옛날에 祔葬을 하지 않은 것은, 먼저 죽은 이를 차마 파서 다시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詩經에 이르기를, ‘사람이 죽으면 같은 굴에 묻히나니.’ 라고 하였다. 周公 이래로 祔葬한 일이 있었으니, 그 때문에 衛나라 사람은 부장할 때, 간격을, 조금 띄워서 하고, 노나라 사람들은 부장을 할 때에는 합하여 묻었다. 아름답도다! 나는 노나라의 법을 따르리라! ”
▶祔합사할 부, 합장하다. 穴구멍 혈
▶死則同穴: 詩經 國風 王風 大車에서, 大車檻檻、毳衣如菼。豈不爾思、畏子不敢。(큰 수레 덜컹덜컹 가는데 담 풀 같은 털옷 입었구나. 어찌 그대 생각하지 않을까, 그대 두려워 감히 못했다네!) 大車啍啍、毳衣如璊。豈不爾思、畏子不奔。(큰 수레 느릿느릿 가는데 붉은 옥 같은 털옷 입었구나. 어찌 그대 생각하지 않을까, 그대 두려워 달려가지 못하네!) 穀則異室、死則同穴。謂予不信、有如皦日。(살아서는 다른 집이지만 죽어서 함께 묻히리라. 내 말을 믿지 못한다면 밝은 해 같이 보이겠소!)
▶周公: 周文王의 넷째 아들이다. 첫째 형 백읍고, 둘째 형은 武王 희발이다. 이름은 旦(단). 武王을 도와 은나라를 멸하였고, 주나라의 기초를 튼튼히 하였다. 장남 노태공 백금에게 멀리 있는 자신의 영지인 노나라를 물려주었고, 武王 死後 나이 어린 조카 成王의 섭정을 맡았다. 禮樂制度를 정비하였으며, 周禮를 지었다고 알려짐.
遂合葬於防。曰吾聞之,古者墓而不墳。今丘也,東西南北之人,不可以弗識也。吾見封之若堂者矣,又見若坊者矣,又見若覆夏屋者矣,又見若斧形者矣。吾從斧者焉。於是封之崇四尺。孔子先反虞,門人後,雨甚至 墓崩,脩之。
그리고 드디어 防 땅에 합장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듣기로는, 옛날 무덤을 만들고 封墳하지 않았는데, 지금 나(丘)는 東西南北을 떠도는 사람인지라 무덤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봉분을 堂 모양처럼 쌓은 것을 보았고, 또 堤防 모양처럼 쌓은 것을 보았으며, 또 큰 집의 지붕을 덮은 모양처럼 쌓은 것을 보았고, 또 도끼 모양처럼 쌓은 것을 보았는데 나는 도끼 모양처럼 쌓은 것을 따르겠다.” 이에 봉분하니 높이가 4자였다. 공자가 먼저 돌아와 虞祭를 지낼 때, 門人들이 뒤늦게 왔는데, 이때 비가 매우 많이 내려 묘가 무너져서, 修築하였다.
▶識적을 지, 記錄하다, 表示하다, 標識(표지: 표시나 특징으로 다른 것과 구분함)
▶封土에 대해 禮記集說大全 檀弓 上 陳澔 注에서, 堂 모양은 人家의 집처럼 평평하고 방정하면서도 높은 형태이고, 제방 모양은 둑처럼 좁고 긴 형태이고, 큰 집의 지붕을 덮은 모양은 큰 집의 지붕처럼 옆으로 길고 낮은 형태이고, 도끼 모양은 도끼날처럼 위가 좁은 형태이다. 앞의 세 경우는 모두 功力이 많이 들고 쌓기 어렵지만 도끼 모양으로 봉토하는 것은 검소하면서도 쉽게 쌓을 수 있기 때문에 공자가 이것을 따르겠다고 한 것이다.
而孔子問焉,曰爾來何遲 對曰防墓崩。孔子不應。三云,孔子泫然而流涕,曰吾聞之,古不脩墓。及二十五月而祥,五日而彈琴不成聲,十日過禫,而成笙歌。
공자가 물었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늦게 왔느냐?” 문인이 대답하였다. “防 땅의 묘가 무너졌습니다.” 공자가 응답하지 않자 (문인이 공자가 잘못 들으신 것으로 알고) 세 번을 말하였는데, 공자가 줄줄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내가 듣기로 옛날에는 무덤을 修築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장사 지낸 지 25개월이 되면 大祥을 지내고, 大祥을 지낸 뒤 5일 후에 琴을 연주하되 하나의 곡조를 끝까지 연주하지 않으며, 10일이 지나 禫祭를 지낸 뒤에 笙篁을 연주하며 노래하는 것이다.”
▶遲더딜지, 늦다. 崩무너질 붕. 泫빛날 현, 눈물을 흘리는 모양. 涕눈물 체. 祥복 상, 幸福, 兆朕(조짐), 祭祀. 彈탄알 탄. 琴거문고 금. 禫담제 담, 大祥을 치른 후 丁日이나 亥日에 지내는 제사. 笙생황 생
▶禫祭: 대상 후 약 1개월, 상중 제사의 마지막 단계로 상례의 완전한 종료, 이후부터는 평상시 조상 제사(기제사)로 전환됨.
▶二十五月而祥: 王肅은 注에서 25개월째에 大祥을 치르고 26개월째에 담제를 치른다고 주장함. 儀禮 士虞禮에 中月而禫이라는 말이 있는데, 中月에 대해서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 王肅의 설로 中月을 月中의 뜻으로 보아, 大祥을 지내고 나서 그달 중에 다시 禫祭를 지낸다는 것이다. 둘째 儀禮 注를 낸 鄭玄의 설로, 中을 間의 뜻으로 보아, 大祥과 禫祭 사이에 한 달을 띄운다는 主張으로써 상제의 기간을 모두 27개월로 보는 것이다.(通典 권87 喪制)
孔子有母之喪,既練,陽虎弔焉。私於孔子曰今季氏將大饗境內之士,子聞諸 孔子曰丘弗聞也。若聞之,雖在衰絰,亦欲與往。
공자가 어머니의 상을 치르고 練祭를 마쳤는데, 陽虎가 조문을 와서 사사로이 공자에게 말하였다. “지금 계씨가 境內의 선비들을 초청하여 크게 연향을 베풀려고 하는데, 그대는 들었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저는 듣지 못했습니다. 만약 이 소식을 들었다면, 비록 喪中(衰絰을 입음)이더라도, 또한 가보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練누일(잿물에 삶아 희고 부드럽게 하다) 연, 익히다, 訓鍊(訓練)하다, 녹이다, 鍛鍊(단련)하다, 練服(祥禮, 즉 三年喪에 입는 喪制의 옷). 饗잔치할 향. 衰쇠할 쇠 / 상복 최 / 도롱이 사. 絰질(상복을 입을 때 머리에 쓰는 首絰과 허리에 감는 腰絰) 질, 絰皇(무덤으로 통하는 문). 衰絰(최질): 喪中에 입는 삼베옷. 喪服과 首絰 및 腰絰(요질)이 있음.
▶練祭: 사람이 죽은 지 한 돌 만에 지내는 제사인 小祥을 말함. 小祥 후 禫祭 전까지 練絲로 만든 상복인 練服을 입는데 연사는 生絲에 상대되는 말로, 무명과 모시 등의 생사를 잿물에 담갔다가 삶은 뒤, 물에 빨아 말려서 희고 광택이 나게 만든 실을 말한다. 이 때문에 소상을 연제라고도 함. 현재의 사전에서는 練祭를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돌아간 어머니의 소상을 미리 당겨서 열한 달 만에 지내는 제사로 풀이한다.
▶陽虎: 陽貨라고도 칭한다. 魯나라 사람으로, 季氏의 가신이 되어 季平子를 섬기다가 계평자가 죽은 뒤에는 국정을 專橫하였다. ※史記 孔子世家에는 “공자가 어머니의 상중에 季氏가 선비들에게 연향을 베풀자, 공자가 참석하려고 하였는데, 陽虎가 물리치면서 말하기를 ‘계씨가 선비들에게 연향을 베푼 것은 감히 그대를 대접하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자 공자가 물러났다. 이때 공자의 나이 17세였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史記正義에 “양호는 공자가 어리다는 이유로 쫓아냈다.”라고 하였다. ※論語 序說에, 適陳過匡 匡人以爲陽虎而拘之. 旣解 還衛 主蘧伯玉家 見南子(陳나라로 가려고 匡(광) 땅을 지날 적에 광 사람들이 陽虎인 줄로 알고 잡혔다. 誤解라 풀리고 난 뒤, 衛나라로 돌아와 蘧伯玉의 집에 거처하였다. 南子를 만났다)를 보면, 匡 땅에서 공자의 모습이 포악한 陽虎와 닮았다고 하여 오해를 받은 내용이 있다.
陽虎曰子謂不然乎 季氏饗士,不及子也。陽虎出。曾參問曰語之何謂也 孔子曰己則喪服,猶應其言,示所以不非也。
그러자 양호가 말하였다. “그대는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계씨가 선비들을 대접하면서 그대를 초청하지 않았으니!” 양호가 나가자 曾參이 물었다. “그렇게 말한 것은 무슨 뜻입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내가 衰服을 입고 있는 몸으로 오히려 그의 말에 응하여, 그가 예의가 없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曾參(BC505년~BC435년): 魯나라의 儒學者. 字는 子輿. 孔子의 德行과 思想을 祖述(조술)하여 孔子의 孫子인 子思에게 傳하였다. 後世 사람이 높여 曾子라고 일컬었다. 부친 曾點도 공자의 제자였다. ※祖述: 先人이 말한 바를 根本으로 하여 敍述하고 밝힘.
▶練祭에 조문하는 것은 예에 맞지 않은데, 양호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면, 예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의 말에 대답하여 그를 비난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 것이다.
顏回死,魯定公弔焉,使人訪於孔子。孔子對曰凡在封內,皆臣子也。禮 君弔其臣,升自東階,向尸而哭,其恩賜之施,不有笇也。
顔回가 죽자, 노나라 定公이 조문을 한 다음에, 사람을 시켜서 공자를 찾아보게 하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무릇 이 국토 안에 있는 자는, 모두가 신하입니다. 禮에, 그 임금이 신하를 조문할 때는, 동쪽 뜰로 올라와서, 시신을 향하여 곡하는데, 그것은 그 임금으로서 베푼 것에 대하여, 이를 계산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訪찾을 방. 封봉할 봉. 笇셈 산, 計算
原思言於曾子曰夏后氏之送葬也,用明器,示民無知也。殷人用祭器,示民有知也。周人兼而用之,示民疑也。
原思가 曾子에게 말하였다. “하후씨가 장례를 치를 때에, 盟器를 쓴 것은, 백성들에게 죽은 자는 아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으며, 殷나라 사람들이 祭器를 쓴 것은, 백성들에게 죽은 자가 아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고, 周나라 사람들이 盟器와 祭器를 함께 쓴 것은, 백성들에게 죽은 자가 아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盟器: 古代 副葬品의 總稱, 明器 또는 冥器로도 쓰임. ※明器: 食器, 樂器, 武器 따위를 무덤에 함께 묻으려고 實物보다 작게 象徵的으로 만든 그릇.
▶原思(BC515-?): 성은 原, 이름은 憲, 자는 子思. 공자의 손자로서 中庸을 편찬한 子思와는 별개의 인물이다. 공자 제자들 가운데 가장 가난하였다. 睢陽城(휴양성) 안의 작은 골목 안에 살았고, 방도 매우 비좁았다. 초가집이었는데 쑥갓을 엮어 문을 삼았고, 파손된 독으로 창을 만들었다. 지붕에서는 비가 새고 바닥은 습기가 찰 정도였다. 하지만 자신이 가난하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하루 종일 집 안에 단정하게 앉아 금을 켜면서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하였다. 공자가 노나라 司寇(형벌이나 도난 등의 사안을 맡은 벼슬)를 지낼 때 원헌이 그의 家臣이 된 적이 있었는데, 공자가 9백 곡의 봉록을 주었지만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이렇게 원헌은 집안은 가난했지만 절의를 지키고, 안빈낙도의 생활을 추구하였다.
曾子曰 其不然矣。夫以明器、鬼器也;祭器、人器也。古之人胡為而死其親也? 子游問於孔子,曰 之死而致死乎?不仁,不可為也 之死而致生乎?不智,不可為也。凡為明器者,知喪道矣。
증자가 말하였다. “그것은 그렇지 않다. 무릇 盟器란, 귀신의 그릇인 것이며, 祭器는, 살아있는 사람의 그릇인 것이다. 옛사람들이 어찌하여 그 죽은 부모를 죽은 이로 대접하였겠는가?” 자유가 이를 공자께 여쭈었다. (공자가 대답하였다) “죽은 자를 죽었다고 여길 수 있겠는가? 이것은 어질지 못한 것이니,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죽은 자를 살아있다고 여길 수 있겠는가? 이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니,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무릇 맹기를 함께 넣는 것은, 장례의 도를 아는 것이다.
▶胡어찌 호, 語助辭
備物而不可用也。是故竹不成用而瓦不成膝,琴瑟張而不平,笙竽備而不和,有鐘磬而無簨𧇽,其曰明器,神明之也,哀哉!死者而用生者之器,不殆於用殉也?
물건이 아무리 갖추어도, 쓸 수가 없는 것이 있다. 그렇기에 대나무가 있어도 이것을 쓰지 않으며, 깨진 기와로는 무릎을 만들 수 없는 것이며, 琴瑟도 벌여 놓기만 하였을 뿐 이것을 쓸 수는 없는 것이며, 笙簧과 竽箏도 갖추어 놓았을 뿐 이것을 연주하지 않는 것이며, 鐘磬도 가져다 놓을 뿐 이를 달아맬 시렁이 없다. 이를 일러 盟器라고 하는 것이니, 이것은 신명을 위하기 때문이다. 안타깝도다! 죽은 자가 살아있는 자의 그릇을 쓰다니, 아마도 거의 순장용으로 쓰라는 뜻이 아니었겠느냐?”
▶瓦기와 와. 膝무릎 슬. 瑟큰거문고 슬. 笙생황 생. 竽피리 우. 磬경쇠 경. 簨악기 다는 틀 순. 𧇽쇠북 거는 틀 기둥 거. 殆위태할 태. 殉따라 죽을 순. 簧 서(관악기의 발음원이 되는 얇은 진동판) 황, 피리(악기의 하나). 箏쟁(국악 현악기의 하나) 쟁, 風磬(풍경: 처마 끝에 다는 작은 종)
子游問於孔子曰葬者塗車芻靈,自古有之。然今人或有偶,是無益於喪 孔子曰為芻靈者善矣。為偶者不仁,不殆於用人乎
자유가 공자에게 물었다. “장례에 진흙으로 수레를 만들고 풀로 인형을 만드는 일이 예로부터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정교하게 人形을 만들기도 하니 이는 죽은 자에게 아무런 유익함이 없습니다.” 공자가 대답하였다. “풀로 인형을 만드는 것은 좋지만, 정교하게 인형을 만드는 것은 仁하지 못한 것이니, 그러다가 산 사람을 순장하게 되지 않겠는가?”
▶塗진흙 도, 칠하다. 芻꼴 추, 乾草. 偶짝 우, 人形. 殆거의 대, 大槪(대부분), 반드시, 마땅히, 가깝다, 비슷하다
▶孟子 梁惠王 上에서 맹자가, 仲尼曰 始作俑者 其無後乎 爲其象人而用之也(仲尼께서 말씀하시기를 처음으로 허수아비를 만든 자는 아마 후손이 없을 것이다. 하였으니, 이는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장례에 사용하였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는데, 주희의 注에, 옛날에는 풀을 엮어 사람(芻靈)을 만들어서 喪轝(상여)를 호위하게 하였는데, 얼굴과 눈, 機發(기발, 움직임)이 사람과 매우 유사하였으므로, 공자가 不仁함을 미워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顏淵之喪既祥,顏路饋祥肉於孔子,孔子自出而受之。入,彈琴以散情,而後乃食之。
顏淵이 죽어 이미 大祥 때가 되었다. 이때 顏路가 대상에 썼던 고기를 공자께 드렸다. 공자가 친히 나가서 이를 받아서 들어오더니, 거문고를 타서 자신의 슬픈 심정을 흩어 버리고, 그런 뒤에라야 그 고기를 먹었다.
▶饋먹일 궤. ※顏路: 顏回의 아버지
孔子嘗,奉薦而進,其親也愨,其行也趨趨以數。已祭,子貢問曰夫子之言祭也,濟濟漆漆焉。今夫子之祭,無濟濟漆漆,何也
공자가 嘗제사(가을 祭祀)에 제수를 바칠 때, 그 친히 하기를 공손히 하고 그 다니는 것이 잦은걸음으로 여러 번 서둘러 威儀가 없어 보일 정도였다. 제사를 끝내고 나자, 자공이 공자께 여쭈었다. “선생님께서 제사에 대한 것을 말씀하실 때는, 그 威儀가 있고 단정하고 깨끗하게 해야 하신다고 말씀하시더니, 지금 선생님이 제사 지내시는 것을 보니, 濟濟漆漆함이 없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嘗맛볼 상, 體驗(經驗, 試驗)하다, 歆饗하다(흠향: 神明이 제물을 받아서 먹다), 가을의 祭祀, 일찍이. 薦천거(薦擧)할 천, 드리다, 올리다, 祭祀의 이름. 愨성실할 각. 趨재촉할 촉, 督促하다, 빠르다, 줄이다, 짧게 하다, 빨리, 서둘러 / 달릴 추. ※趨趨(촉촉): 促의 뜻. 數자주 삭. 濟건널 제. 漆삼가는 모양 절 / 옻 칠
▶濟濟漆漆: 濟濟는 드나드는 데 있어서 몸가짐이 아름답고(美貌) 엄숙한 것을 말하고, 漆漆(절절)은 용모를 정숙히 하는 것을 말함.
孔子曰濟濟漆漆者,容也,遠也 漆漆者,以自反。容以遠,若容以自反,夫何神明之及交 必如此,則何濟濟漆漆之有
공자가 대답하였다. “제제란 모양을 내고 소원하게 하는 것이며, 절절은 모양을 정숙히 하는 것이다. 만약에 疎遠(소원)함으로써 모양을 내고, 또 모양을 내어 정숙하게 한다면, 무릇 무슨 신명이 여기에 가까이 오겠는가? 무릇 저들이 무엇 때문에 제제절절하겠는가?
▶自反(스스로 돌이켜봄): 스스로 威儀를 엄숙히 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함. 容以遠(용모를 차리느라 소원함): 威儀를 갖추는 데 전력하여 성의가 부족하면, 영혼과 접하기에 멀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친한 이를 친하게 접대함이 아니요, 용모를 차리느라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것은 효자가 어버이를 섬기는 방법이 아님을 말한다. ※反돌이킬 반, 되돌아보다, 反省하다, 바꾸다, 고치다
▶장엄함(濟濟)이 용모를 차리느라 소원함이라 함은, 용모를 차리느라 스스로 소원하게 함을 말한다. 정숙함(漆漆)은 용모를 차리느라 스스로를 돌이켜봄이라 함은 용모를 차리느라 스스로 반복하여 다듬어 단정히 함을 말한다. 용모를 차리느라 소원하게 함과 용모를 차리느라 스스로를 돌이켜본다는 것은, 효자가 용모를 차리느라 소원하게 하고 용모를 차리느라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것, 이것은 빈객의 일임을 말한 것이다. 만약 빈객의 용모를 한다면 어찌 신명과 사귈 수 있겠는가? 신명과 사귈 수 없음을 말함이다. 다듬어 단정히 함(修整)에는 반드시 스스로를 돌이켜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돌이켜봄은 스스로 다듬어 단정히 함’이라는 말과 마찬가지이다. 무릇 친한 이를 친하게 대하는 데는 용모를 일삼지 않고, 또 서로 가까이 붙어야 하는데, 이제 이미 용모를 일삼고 또 서로 소원하게 대하므로 ‘친한 이를 친하게 대접하려 함이 아니다.’라고 했다.
▶夫何神明之及交에서, 及은 與의 뜻이다.
反饋樂成 薦其薦俎 序其禮樂 備其百官 君子致其濟濟漆漆 夫何慌惚之有乎 夫言豈一端而已 夫各有所當也 孝子將祭 慮事不可以不豫 比時具物 不可以不備 虛中以治之
반궤하여 음악이 이루어지고 천조를 올리며, 예악을 순서 있게 하고 백관을 갖추어, 군자가 그 제제칠칠함을 이루는 것이다. 무릇 무슨 황홀함이 있겠는가? 무릇 말이란 어찌 한 끝뿐이겠는가. 무릇 각각 마땅한 곳이 있는 것이다.” 효자가 장차 제사를 지내려고 하면, 일을 미리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때에 이르러서 물건을 구비하여 갖추지 않은 것이 없어야 한다. 허중하여 이를 다스린다.
▶饋먹일 궤. 俎도마 조, 炙臺(적대: 제사 때 산적을 담는 그릇). 慌어렴풋할 황. 惚황홀(恍惚)할 홀. 炙고기 구울 적 / 자
▶反饋樂成: 천자나 제후가 제사를 지낼 때 처음에는 室에 있다가 뒤에는 나와서 堂에 있고, 다시 들어가서 饋奠을 하고서 演奏(연주)한다. 이미 이것이 이루어 지면 주인은 그 饋食의 豆俎를 올린다. 이때 예악의 次序를 차리고 백관을 갖추게 된다. 그렇기에 제사를 돕는 군자는 모두 제제절절한다는 것이다. 饋奠: 殮襲(염습) 때부터 葬事 때까지 아침저녁으로 神位 앞에 올리는 제물을 갖추어 제사함.
▶夫何慌惚之有乎: 황홀해서 신령과 사귈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의미.
▶虛中: 마음속에 다른 생각이 섞이지 않아서 정밀하게 생각을 모아 신명을 대하는 것을 말함.
子路為季氏宰。季氏祭,逮昏而奠,終日不足,繼以燭。雖有強力之容,肅敬之心,皆倦怠矣。有司跛倚以臨事,其為不敬也大矣。他日祭,子路與焉。室事交于戶,堂事當于階,質明而始行事,晏朝而徹。孔子聞之,曰以此觀之,孰為由也而不知禮
자로가 季氏의 家臣으로 있었는데, 계씨가 제사 지내게 되어 어둑할 때 奠禮를 행하였는데, 하루 종일도 부족하여 횃불을 밝히고 계속 이어졌다. 건장한 모습과 공경한 마음이 있는 자라도 모두 피로해져 게을러졌다. 有司가 비스듬히 서거나 기대서서 제사에 임하니, 매우 不敬하였다. 뒷날 제사를 지낼 때 자로가 참여하였는데, 室內의 일은 戶에서 주고받고, 堂上의 일은 계단 앞에서 주고받아, 동틀 때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여 저물녘에 마쳤다. 공자가 이 일을 듣고 말하였다. “누가 由(子路)가 예를 모른다고 하겠는가?”
▶宰재상 재. 逮미칠 체, 이르다. 昏어두울 혼. 奠제사 지낼 전. 奠禮: 神位 앞에 간단한 음식을 차려 놓고 애도의 뜻을 표하는 禮. 肅엄숙할 숙. 倦게으를 권. 怠게으를 태. 跛절뚝발이 파. 倚의지할 의. 晏늦을 안, 저물다. 徹통할 철, 다스리다, 다하다, 끝나다, 치우다, 거두다. ※質明: 어둑새벽 날이 밝으려 할 때.
▶禮記集說大全 禮器 陳澔의 注에 의하면, 室內의 일은 正祭를 지낼 때 실내에서 시동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 이때 外人이 제수를 가지고 戶에 이르면 內人이 호에서 받아서 시동 앞에 차린다.
▶禮記集說大全 禮器 陳澔의 注에 의하면, 堂上의 일이란, 正祭를 지낼 때 당상에서 시동을 인도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堂下의 사람이 제수를 보내 계단 앞에 이르면 당상의 사람이 계단에서 받는다.
▶儀禮 士冠禮에, 質明行事(동틀 무렵에 일을 행한다) 라고 하였는데, 鄭玄의 注에, 質 正也(質은 바르다는 뜻이다) 라고 하였다.
▶晏朝而徹: 日晏而畢(저물녘에 마치다)
衛莊公之反國,改舊制,變宗廟,易朝市。高子皋問於孔子曰周禮繹祭於祊,祊在廟門之西,前朝而後市。今衛君欲其事事一更之,如之何 孔子曰繹之於庫門內,祊之於東市,朝於西方,失之矣。
衛나라 莊公이 귀국하여, 옛날의 모든 제도를 고치고, 종묘를 변경하였으며, 朝市까지 바꾸어 버리자, 高子皐가 공자에게 여쭈었다. “周나라 禮에 繹祭는 祊에서 지내는 것인데, 팽은 사당 문 서쪽에 있으며, 그 자리는 조정을 앞으로 두고, 시장을 뒤로한다고 하였는데, 지금 衛君은 일이면 일마다 하나씩 바꾸고자 하니, 이와 같은 일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원래 繹이란 종묘의 문 안에서 지내는 것으로, 祊은 시장을 동쪽으로 하고, 조정은 서쪽으로 한다고 하는 것은, 이것은 모두 예에 어긋나는 것이다.”
▶皋언덕 고, 못(넓고 오목하게 팬 땅에 물이 괴어 있는 곳), 늪. 繹풀어낼 역. 祊제사 팽, 邑의 이름
朝市: 朝庭과 一般 市井
▶高子皋: 본명 高柴, 자는 子羔 또는 子高, 子皐, 季皐며, 孔門 72賢 중 한 사람이다. 孔子보다 30살 연하다. 愚直(우직)하고 효성이 지극했으며, 獄官이 되어 옥사를 공정히 처리했다고 함.
▶繹祭: 天地 社稷 山川 五祀 등에 큰 제사를 지내고 그 이튿날 다시 계속하여 지내는 작은 제사를 가리킴. 書經集傳 卷五 商書 高宗, 肜日 越有雊雉之異(제사 다음날(肜日)에 이상하게 꿩이 울었다)에서, 祭之明日又祭 殷曰肜 周曰繹(융은 제사 지낸 다음 날 다시 제사 지내는 것이니, 殷에서는 肜이라 하고, 周에서는 繹이라 하였다.)
※七祀와 五祀에 대하여
•七祀의 대상: 천자가 지내는 제사로,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司命, 출입을 관장하는 戶와 國門, 음식을 주관하는 竈(조), 도로에 통행하는 것을 주관하는 國行, 후사가 없는 천자의 귀신으로서 사형과 형벌을 관장하는 泰厲, 거처하는 건물을 주관하는 中霤(중류). ※族厲: 후손이 없어 제사를 받지 못하는 옛 大夫의 귀신을 뜻함. 泰厲는 옛 帝王 중 후손이 없는 귀신. 公厲는 옛 諸侯 중 후손이 없는 귀신. 族厲는 옛 大夫 중 후손이 없는 귀신. 七祀란 봄에 司命과 戶, 여름에 조, 가을에 門과 厲, 겨울에 行, 季夏(늦여름)와 土旺에 중류(中霤)에 지내던 祭祀. 土旺은 五行에서, 땅의 기운이 旺盛하다는 節氣. 一年에 네 번으로, 立春ㆍ立夏ㆍ立秋ㆍ立冬 전 각 18일 동안임.
•五祀의 대상: 제후는 오사를 지내는데, 사명과 국문, 국행, 중류, 그리고 후사가 없는 제후의 귀신인 공려가 그 대상이었다. 五祀는 五行의 신이다. 春秋傳에 따르면, 蔡墨(채묵)이 말하기를, 오행의 관리들은 上公으로 봉해지고, 貴神으로 제사 지내며, 社稷과 오사를 존중하고 받든다. 木正은 句芒(구망)이라 하고, 重이 그 신이며, 火正은 祝融(축융)이라 하고, 黎(여)가 그 신이며, 金正은 蓐收(육수)라 하고, 該(해)가 그 신이며, 水正은 玄冥(현명)이라 하고, 修와 熙가 그 신이며, 土正은 后土(후토)라 하고, 句龍(구룡)이 그 신이다. 祭法에서는 계층을 나누어, 왕은 七祀를 세우고, 제후는 五祀, 대부는 三祀, 適士는 二祀, 서인은 一祀를 세운다. 라고 하였다.
季桓子將祭,齊三日,而二日鐘鼓之音不絕。冉有問於孔子。子曰孝子之祭也,散齋七日,慎思其事,三日致齋而一用之,猶恐其不敬也,而二日伐鼓何居焉
계환자가 제사를 지내려고 할 때는, 사흘 동안 재계하고, 그리고 이틀 동안 鐘鼓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冉有가 공자에게 여쭙자, 공자가 말하였다. “효자는 제사를 지낼 때, 7일 동안 밖에서 재계하는 것은, 제사에 삼가기 때문이고, 3일 동안 집 안에서 재계하는 것은 그 정성을 한결같이 하고자 함이다. 그렇게 하고서도 오히려 그 공경하는 마음이 부족할까 두려워하는 것인데, 2일 동안이나 북을 울려 댔다면, 어디에 정성을 두고 있는 것이겠느냐?”
▶齊가지런할 제. 冉나아갈 염. 慎삼갈 신. 伐칠 벌
▶冉有: 노나라 사람으로 자는 子有인데 공자보다 29세 연하이다. 政事에 밝았으며 兵賦를 다스리는 일에 뛰어났다. 노나라가 제나라에게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가 季氏의 家臣이 되었을 때 財政의 확충을 위해 세금을 가혹하게 거둬들여 공자의 노여움을 사기도 하였다.
公父文伯之母,季康子之從祖母。康子往焉,側門而與之言,內皆不踰閥。文伯祭其祖悼子,康子與焉,進俎而不受,徹俎而不與燕。宗老不具則不繹 繹不盡飫則退。孔子聞之,曰男女之別,禮之大經。公父氏之婦,動中德趣,度於禮矣。
公父文伯의 어머니는, 季康子의 從祖母이다. 계강자가 찾아갔더니, 문 곁에 서서 이야기하고, 안으로 문지방을 넘어서지 않았다. 또 문백이 자기의 조부인 悼子에게 제사를 지낼 때도, 계강자도 참석하였는데, 그 제물을 차릴 때 강자에게 친히 주지 않았고, 상을 뒤로 물린 뒤에도 한자리에서 음복하지 않았다. 일가 집 가신들이 모두 모이지 않으면 繹祭(肜祭, 융제)를 지내지 않았으며, 또 역제를 지내고 나서도 배부르게 먹지 않은 채 그대로 물러가는 것이었다. 공자가 이를 듣고서, 이렇게 말하였다. “남녀의 구별이란, 禮에서 큰 벼리이다. 그런데 公父氏의 부인은, 행동이 모두 德과 취향에 맞았으며, 태도도 모두 禮에 맞았다.”
▶從祖母: 祖父의 兄弟 아내. 側곁 측. 踰넘을 유. 閥문벌(門閥) 벌, 家門, 지체(사회적 신분이나 지위), 功勳, 대문의 왼쪽에 세우는 기둥. 悼슬퍼할 도. 燕잔치 연, 제비. 飫물릴 어
季康子朝服以縞,曾子問於孔子曰禮乎 孔子曰諸侯皮弁以告朔,然後服之以視朝,若此禮者也。
계강자가 朝服을 흰 비단으로 만들어 입자, 曾子가 공자께 여쭈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禮입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諸侯는 皮弁의 차림으로 告朔의 예를 행한다. 그런 뒤에라야 朝服을 입고서 조회하는 것이니, 만일 그와 같다고 한다면 禮에 맞는 것이다.”
▶縞명주(明紬: 명주실로 무늬 없이 짠 피륙) 호, 고운 빛깔, 흰빛. 弁고깔 변. 朔초하루 삭
▶皮弁: 임금이 平常時 朝會 때 쓰던 冠. 사슴 가죽으로 만들고 金梁(금량)을 달았다. 冠禮를 올리거나 벼슬아치가 朝廷에 나아갈 때 쓰던 冠. 사슴 가죽으로 둥글게 삐죽하게 만들고, 끝에 꼭지를 달았다.
▶告朔: 주나라의 왕, 즉 천자께서 매달 새달의 시작 날짜를 정하면, 그 날짜를 적은 문서를 太史라는 사신이 각 제후국에 가져다주는 의식. 제후국은 이 문서를 받아서 자신들의 종묘에 고하고 백성들에게 알려, 전국이 통일된 날짜 체계를 따르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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