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지정학적 요인, 자원의 질, 교육에 달려 있다. 천재지변이 일어나거나, 전쟁을 하게 되거나, 외교적 합종연횡이 국가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이 역시 지정학에 포함된다. 북한이 중국, 소련에 붙은 것은 국경이 붙었기 때문이다. 지정학과 자원의 질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크고 남은 카드는 교육뿐이다. 교육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선진국은 68혁명 후 교육이 무너져서 줄초상이 났다. 후발주자가 선행주자의 시행착오를 답습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 답습하고 있다. 일본, 한국, 중국도 줄줄이 무너지고 있다. 민주주의니, 자유주의니, 자본주의니 하며 인간들이 말을 안 듣는다. 개인전에 매몰되어 단체전을 진다. 학생과 교사와 학부모의 권력이 대립하는데 돈을 번 학부모 권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올바른 교육철학이 필요하다. 지식의 주입은 교육이 아니다. 사람을 사람 만드는게 교육이다. 사람을 만든다는 것은 낯선 사람과 대화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 원시 부족민은 낯선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죽인다.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한 이유다. 인간은 누구나 짐승으로 태어나지만, 교육을 받아 인간이 되는 것이다. 배경이 다른 사람과 협력하는 훈련이 되어야 인간이다.
몇 년 전에도 독일 관광객이 폴리네시아 어느 섬에서 식인된 일이 있다. 마을 입구에 해골탑을 쌓아놨는데 그중에 몇은 피가 묻어있는게 신문기자 눈에 띄었다. 그런 자들을 사람으로 대접해야겠는가? 생물학적 분류로는 사람 종에 속하지만 인간의 간間은 사이다. 사회인을 사람이라고 부른다. 교육받지 않은 자는 사람이 아니다. 의리를 배워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지식은 공유된다. 사유하려는 자와는 지식을 공유할 이유가 없다. 구조론은 공짜로 알려준다. 사유하려는 자는 구조론을 배울 자격이 없다. 지식은 칼이다. 어린이 손에 칼을 쥐어 줄 수 없다. 배울 자격이 있는 자에게 배움을 허락하는 것이며 그것은 의리를 배워 타인과 공존하는 훈련이 된 사람이다. 이득은 취하고 손해는 안보겠다는 자와는 지식을 공유하지 않는다.
지식인은 집단을 대표하여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의사결정을 못 하므로 공부해서 의사결정 매뉴얼을 익힌다. 왜 의사결정을 못 하는가? 동물의 본능 때문이다. 인간은 생태계의 일원이다. 생태계는 진화하지만, 진화의 속도는 조절된다. 너무 빠르게 치고 나가서 균형을 깨는 자는 제거된다. 자연의 진화법칙으로 보면 인간 족속은 맨 먼저 제거되어야 할 암이다.
인간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계속한다면 그게 인간에게는 이롭겠지만 생태계의 관점에서는 크게 균형이 무너진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의사결정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아니라 균형적인 의사결정이며, 균형적인 결정은 옳은 결정이 아니라 진보의 속도를 조절하는 결정이며, 인간에게 이득이 아니라 생태계에 이득이며, 그것은 인간의 자기제거다.
인간에게는 자기제거 프로그램이 있다. 윤석열과 트럼프와 네타냐후가 스스로를 제거하고 있다. 자신을 제거하여 인류를 이롭게 하고 생태계의 균형을 가져오며 다윈상을 받는다. 자연스러운 결정은 자신에게 이득 되는 결정이 아닌 것이다. 본능을 따르면 스스로 식인을 저질러 인간을 제거하는게 맞다. 지구 생태계에 적당한 인간 숫자는 2억 명 이하이기 때문이다.
문명법칙은 자연법칙과 어긋난다. 문명이라는 화살은 이미 발사되었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우리는 이 길을 가야 한다. 내가 가지 않아도 누군가는 갈 것이기 때문이다. 문명의 폭주라는 대재앙을 막을 방법은 원리적으로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핸들을 잡고 할 수 있는 대응을 해보는게 맞다. 결과가 파국이라도 원래 파멸될 수밖에 없는 설계라면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교육은 지식을 타인과 공유하는 원칙을 배우게 한다. 가르침은 둘이다. 첫째, 개소리하지 마라. 둘째,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개소리는 세 가지가 있다. 극기복례 - 흥분하지 마라. 괴력난신 – 대본을 따르지 말라. 술이부작 – 관념으로 도피하지 말라. 극기복례는 호르몬에 취해 허튼소리를 하는 것을 경고한다. 괴력난신은 집단에서 역할을 얻으려다가 망한다는 말이다.
술이부작은 먹히는 거짓말을 지어내는 행동을 경고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개소리가 아닌 것은 말이 되는 소리다. 말이 되는 소리는 앞뒤가 연결되는 소리다. 쭉 연결해 보고 연결이 안 되면 거짓이다. 자충되기 때문이다. 한 방향으로 쭉 이어지면 바른말이다. 화살표가 >>>>>로 계속 가면 참이고 >>><<<로 중간에 내부에서 충돌하면 거짓말이다.
온고지신은 근거 있는 말을 하라는 이야기다. 근거 있는 것은 널리 공유되는 것이다. 공유되는 것은 보편원리다. 보편은 막힘없이 두루 통한다는 말이다. 즉 공유된다는 말이다. 온고지신은 공유에 사유를 연결하라는 말이다. 신, 식, 병은 공유가 사유에 앞서는 예다. 신이 가장 널리 공유되고, 식은 공유되는 정도가 낮으며, 병은 공유되지 않는다. 병은 전투에서 일회용이다.
민신, 족식, 족병 순서는 공유에서 사유로 가는 예를 든 것이며 바둑으로 말하면 초반 포석이 민신, 중간 전투가 족식, 막판 끝내기가 족병이다. 초반 포석은 공유된다. 화점에 둔 바둑알은 왼쪽과 오른쪽이 공유한다. 어느 쪽으로든 전개할 수 있다. 다음은 바둑알이 많으면 유리하다. 족식은 살림이 넉넉하면 유리하다. 현대전은 거의 돈 전쟁이다. 돈이 많으면 이긴다.
교육은 창의교육다. 한국은 옛날부터 창의성을 부르짖어 왔지만, 한 번도 창의에 성공한 적 없다. 입으로만 창의를 떠들고 실제로는 반대로 간 것이다. 창의는 번역에서 나온다. 번역한다는 것은 적용한다는 말이다. 구조론을 어느 분야든 적용하면 그게 창의다. 그러려면 맨땅에 헤딩하는 첫 번째 주자가 되어야 한다. 르네상스의 창의는 고전 그리스 사상을 재해석이다.
아랍어로 번역된 그리스인의 기록을 라틴어로 다시 쓰면 곧 창의가 되었다. 쉽잖아. 대개 남이 해놓은 것을 뒤에 와서 살을 보태려고 하므로 망하는 것이다. 구조론은 마이너스다. 이미 좁아져 있다. 공자의 말을 더 좁게 해석하는 자가 말싸움은 이긴다. 진리의 탐구는 잊어버리고 오로지 상대방을 타격하는 흉기로만 사용하므로 망하는 것이다. 결 단계에 서기 때문이다.
신대륙에 처음 온 사람이라면 땅이 넓으니까 집을 지어도 스케일이 크게 가져간다. 그래야 한다. 일본은 도로도 좁게, 철도도 협궤, 자동차도 소형차로 뭐든 작게 시작해 버렸으므로 갈수록 좁아져서 자동 쇄국이 되었다. 갈라파고스 경제가 된 이유다. 좁게 해놓으면 넓은 자들이 못 들어온다. 일본시장을 빼앗길 일은 없다. 경쟁을 회피하니 멸망하는 것은 정해져 있다.
모든 망하는 집구석은 공통적으로 경쟁회피 전술이 숨어 있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가는데 기 단계에 서면 경쟁이 치열하다. 경쟁을 회피하려면 다 된 밥에 숟가락을 들이밀어야 한다. 한국인이 의대를 지망하는 것은 경쟁을 회피하려는 것이다. 사업을 하면 죽을 때까지 경쟁해야 하는데 의대 가면 입학할 때 한번 경쟁하고 끝이다. 학생이 부모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경쟁이 붙으면 부모가 간섭할 수 없는데 의사는 병원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으므로 부모가 자식을 팔아 열쇠 다섯 개 거래한다. 잘 키워 팔아먹는 범죄다. 부모가 자식의 미래를 제한하므로 망하는 것은 정해져 있다. 일본의 몰락법칙과 같은 자명한 운명이다. 뒤에 온 결정은 무조건 선행주자보다 좁히는 결정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2층을 1층보다 넓게 못 짓는 이치다.
먼저 가서 말뚝 박는 첫 번째 주자가 되어야 하는데 최종주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 창의성 교육의 실패 원인이다. 남이 98퍼센트 해놓으면 부족한 2퍼센트를 채워주고 날로 먹으려는게 안철수다. 2를 투자하여 100을 얻으니 얼마나 짭짤한가? 이런 식의 비열한 잔대가리를 굴리므로 심상정의당 되는 것이다. 98퍼센트 먹으려면 만들어진 시스템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날로 먹으려는 사람은 창의하면 안 되므로 창의하지 않는 것이다. 창의하는 사람은 첫 번째 주자가 되어 바톤을 남에게 넘겨주는 사람이다. 나는 발견만 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발명한 다른 사람이 돈을 벌어가도 상관없다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 남이 발견한 것으로 발명해서 돈을 벌거나 혹은 남이 발명한 것을 훔쳐 짝퉁을 팔아서 돈을 벌 생각을 하므로 망하는 것이다.
첫 번째 주자가 되려면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교육이다. 15살이면 가출본능이 작동한다. 질풍노도의 시기가 있어야 한다. 한국인은 열다섯이 되어도 질풍노도는커녕 얌전하기만 하다. 제임스 딘은 폭주하다가 죽었는데 한국인은 폭주는커녕 면허도 없다. 부모의 권력이 자식 권력을 억압한 결과다. 가출이 교육이고 섹스가 교육이다.
왜 학교에 보내는가? 집이라는 감옥에서 빼내서 자유를 주려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감옥으로 갈아탈 뿐이다. 학원이라는 감옥 말이다. 자식을 학원에 보내는 자는 아동학대죄로 처벌해야 한다. 돌대가리를 명문대 보낸 결과가 윤석열, 한동훈 삽질이다. 지나친 노력은 집단의 시스템을 파괴하는 이기적인 범죄행동이다. 노력은 남의 기회를 가로채는 범죄행동이다.
교사가 부모에게 끌려다니면 안 된다. 과거에는 교사의 폭력이 문제였지만, 지금은 부모의 민원이 문제다. 주호민 같은 자는 공공의 적이다. 부모의 권력욕이 교사의 권력과 학생의 권력을 이겨먹으려 하면 곤란하다. 인간의 본능을 따라야 한다. 교사는 학생의 사냥꾼 우두머리가 되어야 한다. 인간은 원래 15세에 가출하여 무리 짓게 되어 있고 두목이 필요한 것이다.
화랑도는 가출소년 무리 낭도와 우두머리 화랑으로 이루어진 자연발생적인 조직이다. 그것을 국가에서 공인한 것이다. 무리 중에 누가 성공할 것인지는 확률적으로 정해진다. 불확실하다. 확실하기를 원한다. 모든 선수가 마지막 골인지점 발내밀기 우승만 노리므로 성인경기가 중등부 기록보다 떨어지는 참사가 일어난다. 기승전결에서 앞단계로 갈수록 불확실하다.
다들 성과가 확실한 뒷단계로 가려 하므로 눈치 보다가 다 같이 망하는 참사가 벌어진다. 스스로 시장을 개척하지 않고 남이 개척한 시장에 삽 들고 뛰어들겠다는 얌체다. 결국 공유냐, 사유냐다. 네거리는 흥하고 막다른 골목은 망한다. 지정학은 연결된 정도가 높은 지점에 알박기를 해야 이득 본다는 말이다. 바둑에서 좋은 자리는 주변과 연결되는 정도가 높은 자리다.
연결되는 것은 길이다. 길은 공유한다. 내 길 네 길 없다. 길이 많은 나라가 흥한다. 로마가 열심히 길을 만든 이유다. 지식도 공유된다. 지식은 길이다. 사건은 기승전결로 간다. 기의 지식은 흥하고 결의 지식은 망한다. 한국인은 결의 지식만 탐한다. 컴퓨터 시대에 주산 배우는 삽질이다. 주산학원 전성기는 80년대 하고도 후반이다. 그때 주산 배운 사람은 다 바보 되었다.
인공지능이 뜨자, 갑자기 코딩 배운다고 난리가 났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똑같은 삽질을 반복하고 있다. 결에 서서 남이 지어놓은 농사에 열매만 따먹으려고 하므로 망한다. 기에 서려면 내가 뿌린 씨앗의 열매를 남이 가져가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나 역시 부모 세대가 파종한 곡식의 열매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광주와 촛불에 빚지고 있다.
자신은 남의 파종한 밭에서 이득 보면서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보겠다고 하니 망하는건 자동이다. 신인류가 등장해야 한다. 다르마를 따르는 인류라야 한다. 의무를 먼저 하고 권력을 나중 챙겨야 한다. 천하인이 되어야 한다. 모세처럼 길을 열어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건의 기승전결에서 기를 담당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대중에게 아부하는 자는 자격이 없다.
1. 지식은 연결한다.
2. 연결망은 공유된다.
3. 연결되면 참이고 단절되면 거짓이다.
4. 사건의 기승전결은 연결의 공유에서 단절의 사유로 간다.
5. 연결은 공유되므로 타인이 이득을 보지만 사건이 점점 커진다.
6. 연결된 것을 단절하여 나의 이득만 취하려고 하므로 망한다.
7. 연결하고 공유하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 진짜 교육이다.
8. 한국은 자유주의, 자본주의로 사유만 강조해서 망한다.
9. 한국은 선진국의 시행착오를 답습하므로 망한다.
10. 돈을 벌어서 힘이 세진 부모가 자식의 독립권력과 교사의 보스권력을 제한하는 것이 망하는 원인이다.
11. 교실붕괴는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이 집단을 파멸로 이끄는 내시균형의 전형적인 예다.
12.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집단이 흥하는 길로 가려면 믿음이 필요하다. 공자가 민신을 강조한 이유다.
13. 개인의 단기적 이익과 집단의 장기적 번영이 충돌하므로 정치라는 이름의 조절장치가 있는 것이다.
큰 솥에 많은 밥을 지어 다 같이 먹으면 되는데 교통정리가 쉽지 않다. 딴짓하다가 막판에 밥숟가락 들이미는 얌체를 조져야 한다. 밥이 아직 익지 않았는데 함부로 솥뚜껑 여는 자도 잡도리해야 한다.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하는 이유다. 무작정 큰 솥에 많은 밥을 지어도 약한 고리를 추궁당하는 리스크가 따른다. 이념 뒤에 숨지 말고 적극적, 능동적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