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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수번호: 035
성명: 하헌태
완주번호: 5074
지금부터 10년 전 내가 정년퇴임하던 2005년 봄, 42년 전 헤어질 때 논산가야곡초등학교 1
학년이었던 제자들이 수소문 끝에 나를 찾아주어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던 제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이후 재경 제자들과 종종 등산도 다니고, 자녀 혼사에 주례도 보면서 행복에 겨워 지내다보니 이제는 육십 대 초반의 띠 동갑인 제자들과 일흔넷의 선생은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올해 초, 그 제자들로부터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서 서울둘레길을 완주하기로 했다며 함께 걷자는 것이었다.
2015년 1월 17일 오전 10시, 싸늘한 냉기가 감도는 도봉산역 옆의 창포원에 군포, 광명, 일산, 하남, 서울 등지에서 모인 제자들을 따라 157km의 서울둘레길의 완주를 향해 첫발을 내디뎠던 우리는 9월까지 매월 셋째 주 토요일에 만나 아홉 차례에 걸쳐서 여덟 개의 전 코스를 완주했다.
나는 이미 서울둘레길 중에서 수락산·불암산의 1코스와 북한산·도봉산의 8코스, 그리고 망우산·용마산·아차산의 2코스는 몇 차례 걸었었고, 봉산·앵봉산의 7코스는 한 번 걸어 보았다. 그리고 둘레길은 아니지만 4·5코스를 품고 있는 대모산, 구룡산, 우면산, 관악산, 삼성산은 이미 산행한 경험은 있었으나 둘레길로 걷기는 처음이었다.
서울둘레길의 산자락 숲속 길을 걸을 때는 숲의 싱그러움으로 찌든 마음을 씻었고, 능선에 올라서서는 눈앞에 펼쳐지는 시가지와 산들의 능선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서울의 경치에 매료됐었다. 햇빛에 반짝이며 굽이쳐 흐르는 한강과 저 멀리 서울의 중앙에 남산타워를 놓고 키들을 재고 있는 하얀 아파트와 빌딩들, 서울을 안고 우뚝 서있는 북쪽의 우람한 북한산과 도봉산 그리고 수락산과 불암산, 동·남·서쪽으로 멀리멀리 펼쳐지는 아스라한 산들의 능선은 한 폭의 장대한 파노라마 그림으로 아름다운 서울의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서울의 모습은 북쪽 1·8코스의 수락산과 북한산, 동쪽2코스의 아차산, 남쪽 4코스의 대모산, 그리고 서쪽 7코스의 봉산의 둘레길 전망대에서 각기 다른 구도의 그림으로 우리들을 감탄케 했었다.
또, 서울둘레길에는 역사가 숨 쉬고 있었다. 우리의 수도 서울이 신석기시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도시였음을 유적과 사적을 통해 알 수있었다. 암사동의 선사주거지, 아차산의 보루, 망우산의 유명인사 묘지, 대모산·앵봉산·도봉산 자락의 왕릉, 북한산 자락의 애국지사들의 묘, 민주열사의 혼이 잠들어있는 4·19국립묘지에서 긴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둘레길 완주의 첫발을 내디디던 지난 1월, 수락산 둘레길을 걷고 당고개역 근처에서 뜨끈한 손칼국수로 언 몸을 녹였었고, 꽃샘추위가 감도는 3월의 일자산 둘레길에선 양지바른 곳에 신문지를 깔고 김밥을 먹으며 소풍기분도 냈었다. 후텁지근했던 6월엔 애타게 기다리던 단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 속에서 벚나무 가로수로 잘 가꿔진 길게 뻗은 안양천 둘레길을 걸었다.
광명에 사는 제자의 안내로 점심을 먹기 위해 광명시장으로 잠시 발길을 돌릴 즈음 갑자기 잔뜩 찌푸렸던 하늘에 먹구름이 퍼지면서 세찬 빗줄기를 퍼붓기 시작할 때 서둘러 재래시장 안의 할머니들이 꾸려가는 좁다란 공주집을 찾아가 한 쟁반 수북하게 담아주는 갈치구이로 모처럼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시원스럽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나머지 안양천 코스를 걸었던 추억들이 즐거움으로 남아있다.
서울둘레길 걷기 마지막 날인 9월 19일, 우리는 우이동 솔밭공원에서 만나 남겨두었던 8코스의 절반을 걸어 드디어 종착점인 도봉산 지원센터 옆에 마련된 빨강색 둘레길 스탬프 게시대에서 마지막 스탬프를 찍었다.
내 생애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157km의 서울둘레길을 완주한 감격스런 순간이었다. ‘나처럼 행복하게 서울둘레길을 완주한 사람도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함께 할 수 있도록 해준 제자들에게 감사하며 도봉산역에서 아쉬움을 안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