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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전쟁(1775년)이후의 개혁교회(美國改革敎會,Reformed Church in
America)
미국개혁교회는 17세기, 뉴네덜란드(뉴욕)에 정착한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발전시킨
교회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유럽대륙에 배경을 가지고 있는 북아메리카 최초의 교회였으며, 네덜란드 통치기간 중에는
뉴네덜란드지역의 국교였습니다 1628년, 뉴네덜란드에서 시작된 미국개혁교회는 1664년까지 14개 교회로 발전하였으나 네덜란드 본국 총회의
암스테르담 감독회(classis) 산하의 교회로
행정적 관계를 지속하였습니다 1679년, 미국개혁교회는 암스테르담 감독회로 부터 제한된 권한을 가진 감독회 결성을 허가 받았습니다
18세기 초, 뉴네덜란드 이주민의 자기의식, 네덜란드에 대한 관심의 후퇴, 대각성
신앙부흥운동, 장로교회와의 협력과 증대 등 새로운 움직임들이 미국개혁교회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1737년, 프레링하이센(Theodors J. fRELINGHEUSEN)목사의 지도하에 미국노회
조직이 결성되었으나, 목사안수문제는 본국 총회의 행정관할로 두어 내분이 계속되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네덜란드 개혁교회내의 식민지파와 네덜란드파의 갈등은 증폭되어습니다 식민지파는 암스테르담 감독회부터 더 많은 자유,
영어예배의 허용, 목사양성을 위한 현지 신학대학설립, 교회부흥운동의 지원을 요구하였습니다 반면 네덜란드파는 네덜란드에서 목사훈련을 통합하고,
예배중 네덜란드어 사용과 네덜란드의 권위와 영향력 유지를 요구하는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였습니다
1754년, 식민지파의 우세로 독립노선이 우위를 점하기 시작하였고, 1766년,
뉴저지 뉴브런즈윅에 러트거스대학교의 전신인 "퀸스 칼리지"가 설립되었습니다 또한 양분되었던 식민지파와 네덜란드파는 1771년, 네덜란드 본국에
최종적인 권위를 두되 지역적 자율성을 최대한 인정한다는 안에 합의함으로서 단일체제로 통합되었습니다
미국독립전쟁이후 미국개혁교회는 1784~1792년에 기초한 새 헌법을 통과하고
"개혁주의 프로테스탄트 네덜란드 교회"(Reformed Protestant Dutch Church)라는 명칭을 "미국개혁교회"로 바꾸는 등
완전한 독립교단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1857년, 교인들에게 비밀단체 가입을 허용한 것에 반발하여 크리스찬 개혁교회(Christian
Reformed Church)가 분리되었고, 그랜드 래피드지역에 캘빈대학과 신학교를 설립하여 보수적 개혁교회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19세기, 네덜란드 이주민의 급격한 증가로 미국개혁교회 교인수는 상당수
증가하였습니다 미시간과 중서부지역에 정착한 이주민들은 밀접한 연관성을 이루며 뉴욕,쥬저지와 중서부의 2개집단을 형성하였습니다 동부를 중심으로
하는 구교회는 인종적 기원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기 시작하였고,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며 나름대로의 성장을 해 나갔습니다 미국의 개혁교회는
통합을 위한 몇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거머쥐진 못한 채 자신들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