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불갑사로 1... (고창을 지나며)
'꽃과 잎은 서로 만나지 못하지만 서로 끝없이 생각한다.(花葉不相見)'는 상사화(相思花)... 옛날에 금술이 좋은 부부 사이에 늦둥이 딸이 있었다. 아버지가 병환 중 돌아가시자 극락왕생을 위하여 백일동안 탑돌이를 시작하였다. 큰 스님의 수발승이 이 여인에게 연모(戀慕)의 정을 품었으나 스님의 신분으로 이를 표현하지 못하였다. 여인이 불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자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거두었단다. 이듬해 스님의 묘 옆에 잎이 지고 꽃이 피어나니 세속(世俗)의 여인을 사랑하였던 스님의 모습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수발승은 중들의 잔심부름을 하는 사미승(沙彌僧), 즉 어린 남자 중을 이르는데 어린 여자 중은 사미니승(沙彌尼僧)이라 한다. 이는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남자 승려인 비구승(比丘僧), 여자 승려인 비구니승(比丘尼僧)과 같은 맥락이다. 한편 아내를 두고 있으면 대처승(帶妻僧)이라 부르며 이는 比丘僧과 대치된다. 고승(高僧)을 뜻하는 큰 스님... 여러 제자를 두고 있는데 그 중에서 고승의 대(代)를 이을 중을 상좌(上座)라 한다. ‘상좌가 많으면 가마솥을 깨뜨린다.’는 속담도 있다.
이는 상좌가 많아서 저마다 명령을 하면 무쇠 가마조차도 깨뜨리고 만다는 뜻으로, 뚜렷한 책임자 없이 여러 사람이 저마다 간섭을 하면 도리어 일을 그르침을 이르는 말이다. 상사화의 잎은 봄에 뭉쳐나고 7월에 잎이 마르기 시작하여 다 떨어지고 나면 9월에 꽃이 피기 시작한다. 사찰에 가면 相思花가 많이 피는데 이는 탱화를 그릴 때 상사화 꽃을 말려 물감을 만들고, 뿌리는 즙을 내어 칠을 하면, 좀이 슬지 않고 색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스님들이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애절함과 관련되어서인지 사찰에 가면 상사화를 많이 심었다고 생각한다.
이 상사화가 많이 피어 축제가 열리는 곳이 있으니 고창 선운사, 함평 용천사, 영광의 불갑사다. 9월 17일 한화관광을 따라 불갑사로 떠났다. 호남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정읍IC로 나와 국도 22번을 따라 고창군으로... 선운사IC로 진입하여 영광IC로 나가야 한다. 동백나무 숲이 병풍처럼 감싸 안은 천 년 고찰 선운사(禪雲寺)는 백제 위덕왕 때 검단선사가 창건하였다. 禪雲이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다. 대웅전 뒤에 있는 수령 500년 된 동백나무, 도솔암으로 가는 길에 장사송, 입구의 송악이 천연기념물이다.
영광 불갑사로 2... (고창을 지나며)
선운산은 도립공원으로 형형색색의 단풍이 손짓하고, 붉디붉은 동백꽃과 상사화가 수많은 사연을 피워내고 있다. 이곳의 풍천 장어...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서 나오는 장어는 깊은 맛을 지닌 최상의 음식이다. 다른 지방의 장어보다 지방질이 적으며 맛이 담백하고 구수하여 고혈압, 시력보호 등에 뛰어나다. 신덕식당이(562-1533)이 유명하다. 또 하나의 먹을거리가 있으니 복분자(覆盆子)다. 선운산 깊은 산중의 맑은 물과 서해안 해풍 속에 자란 이곳 복분자는 향긋한 맛이 미식가를 유혹한다.
覆盆子의 색깔은 아침에 핀 해당화처럼 맑고 붉은데 약효로는 항암작용, 노화억제에 효과가 있다. 고창의 토질은 배수(配水)와 통풍(通風)이 잘 되고 일교차가 심하여 수박 재배에 좋은 곳이다. 가는 길에 고인돌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태고의 신비로움이 묻어나는 고인돌 유적이 근처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넓게 고인돌 군집(群集)을 이루고 있는 고창의 고인돌은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매산리 산기슭부터 1.5㎞에 이르는 447기(基)의 고인돌은 탁자 모양, 바둑판 모양 등 다양한 형태로 산재(散在)되어 있다.
전 세계 고인돌의 70% 이상이 한반도에 모여 있어 우리나라가 가진 세계적인 유산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고인돌이란? 고릴라가 인간을 돌멩이 취급하던 시대란다.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상사화 피는 굴비의 고향 영광IC로 나갔다. 조기를 소금에 절여 말린 굴비... 참조기로 만든 영광굴비가 유명하다. 그 유래는? 고려 인종 때, 난을 일으킨 이자겸(李資謙)이 이곳 법성포(法聖浦)로 귀양을 왔다가 해풍에 말린 조기를 먹어보고 그 맛이 뛰어나 임금에게 진상(進上)하였다 한다.
그는 말린 조기를 보내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屈) 않겠다(非)'는 의미의 ‘굴비'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때부터 영광굴비는 수라상에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인생을 소신 있게 산다는 것이야 말로 성공한 것이 아닐까? ‘여름밤에 불속으로 날아드는 날벌레를 어리석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감에 남보다 잘난 체하고 앞장서서 덤벙거린다면 불 속으로 날아드는 날벌레와 무엇이 다르랴! 지혜로운 사람은 뜻을 높이 지니되 행동은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채근담(菜根譚)의 명언이 생각난다. 명나라 말기에 환초도인(還初道人) 홍자성(洪自誠)의 어록(語錄)인 菜根譚의 내용은?
영광 불갑사로 3... (영광을 지나며)
두 권으로 전집(前集) 222조는 벼슬에 오른 후에 사람들과 사귀고 직무를 처리하며 임기응변하는 사관보신(仕官保身)의 길을 저술하였다. 후집(後集) 134조는 주로 은퇴 후에 산림에 한거(閑居)하는 즐거움을 말하였다. 閑居하니 조선 선조 때 시인이자 명기(名妓)인 이매창(李梅窓)의 시(詩)가 생각난다. 돌밭 초가집 사립문 닫아거니(石田茅屋掩柴扉), 꽃 지고 피는 계절 알 수 없구나(花落花開辨四時), 인적 없는 산골은 한낮이 길기만 하고(峽裡無人晴盡永), 구름 낀 산 반짝이는 강 저 멀리 돛배가 돌아가네(雲山炯水遠帆歸)...
황진이, 허난설헌과 더불어 조선의 3대 여류시인인 이매창은? 기방(妓房) 생활을 청산하고 산골에서 살면서 지은 작품이다. 산 속에 칩거하였으니 찾는 사람도 없어 한낮이 길게만 느껴질 것이다. 최근 정치인의 은거(隱居)? 선거에 패배하고 정계를 은퇴한다면서 산 속에 칩거(蟄居)하거나 외국에 유학가면서 다음 선거를 노리는 정치인들... 그래서 정치인은 믿을 사람이 못 된다는 이유다. 은퇴한다면 깨끗이 떠나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몇 명일까? 영광IC를 나간 여행길은 국도 23번을 타고 영광읍으로...
산수가 아름답고 어렴자초(魚鹽紫草)가 풍부한 영광(靈光)... 쌀, 소금, 목화, 눈이 많아 4백(白)의 고장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심 좋고 살기 졸은 고장이라 옥당(玉堂)고을이라 한다. 玉堂이란 화려(華麗)한 집 또는 궁전(宮殿)을 아름답게 일컫는다. 읍내에 천주교인 순교지가 있다. 신유박해(1791년) 때 이화백 등 많은 천주교인이 순교한 곳이다. 또한 영광은 천주교 순교지 이외에 4대 종교 유적지가 있다. 즉 백제 불교가 처음 도입된 법성포의 백제 불교 도래지...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 대종사가 탄생한 원불교 영산 성지인 백수읍...
염산면에는 6.25당시 북한군에 항거하여 194명의 신자가 순교한 기독교인 순교지가 그 곳이다. 영광 소방서 근처에서 국도 22번으로 갈아타면서 불갑사 방향으로... 가는 길이 교통이 정체된다. 모악리 보건소 주변에서 더 이상 버스가 갈 수가 없어 3㎞이상을 걸어가야 한다. 18일부터 불갑사 상사화 축제가 열리니 어쩔 수 없는 일... 밀리고 밀리면서 불갑사로 가는 길... 양편에 상사화가 만개하였다. 중간쯤 지나는데 교차로가 나온다. 주차장이 만차(滿車)가 되고 도로가 좁으면 고창 청보리 밭 축제 때처럼 교차로를 중심으로 일방통행을 만들어 진입로와 출구를 나누면 될 것을...
영광 불갑사로 4... (영광을 지나며)
관광객에게 편의를 생각해야 하는데 아쉬움이다. 먹거리 존에서 비빔밥으로 점심을 해결하였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양푼에 계란 프라이, 고사리, 무생채, 콩나물 등의 나물과 고추장에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려서 슥슥 비벼 먹는 비빔밥... 그 유래는 농번기에 들에서 새참을 먹을 때, 시제를 지낸 후에 음복을 할 때 그릇이 부족하여 반찬을 섞어서 비벼 먹은 데서 유래하였단다. 그릇 하나에 몸에 필요한 여러 가지 영양소를 섞으니 좋은 음식이다. 더 오르니 호랑이 등 여러 가지 장식물이 설치되어 있는 일주문이다.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가운데 첫 번째 문인 일주문(一柱門)...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하였다. 이는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한편 일주문 현판에는 사찰의 이름이 씌어 있는데 그 앞에 산 이름을 붙이고 있다. 계룡산 동학사, 오대산 월정사, 가야산 해인사, 설악산 백담사처럼 이는 주소를 확실히 한다는 뜻도 있다. 또 부르기 좋게 한다는 의미도 있으며, 산처럼 웅장하게 하려는 뜻도 담겨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왼편으로 상사화 꽃길로 이어진다. 그 첫 번째 입구에 사랑의 열쇠... 잠긴 문을 여는 열쇠... 어떤 문제를 풀 해결의 실마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통 열쇠를 쥐고 있다고 하는 것처럼 열쇠는 해결사로 생각하는 것이다. 곳곳에 상사화 군락지에 많은 시(詩)가 걸려 있다. 그 중의 하나... ‘연년이 섰던 이 자리/ 비켜가는 임이지만/ 행여 돌아설까/ 다시 또 섰습니다./ 못 오실 줄 알면서도/ 기다리는 이 마음/ 한사날 피로 젖다/ 제풀에 죽습니다...’ 사랑은 아낌없이 주는 것인지... 그리움만 남는다는 뜻일까?
많은 사진작가들이 꽃을 찍는데 여념이 없다. 좁은 길에 많은 사람이 오가니 복잡하다. 가까스로 빠져나와 불갑사(佛甲寺)에 도착한다. 백제 침류왕 원년에 법성포(法聖浦)에 도착한 마라난타가 창건하였다. 그래서 제일 처음 지은 불법도량이라는 점을 반영하여 佛甲寺라 하였다. 일설(一說)에는 문주왕 때 행은이 창건하였다고도 한다. 영광굴비의 브랜드인 法聖浦... 法은 불교를, 聖은 성인 마라난타를 의미한다. 금강문과 천왕문, 대웅전 등 경내(境內)를 한 바퀴 돌고 버스로 왔다. 이곳의 모시 송편... 삶은 모시 잎과 불린 쌀을 가루로 만들어 만들었단다. 대전으로 오면서 여행을 마친다. 고맙습니다.
불감사 일주문
위는 불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