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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교회 신조들
최영식 목사(언약나무교회)
1.사도신경 (1~2C),
2.니케아신경(325년),
3.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 (381년)
4. 칼케돈신경 (451년)
5. 아타나시우스 신경(5~6C)
1. 사도신경(Apostolic Creed)
사도신경은 서방교회에 속한 천주교회와 개신교회에서 다 같이 예배 시에 신앙고백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동방교회[1]에서는 사도신경 대신에 니케아 신조를 사용한다. 그것은 사도신경이 역사적인 교회 공의회에서 결정된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서방교회 전통에 속한 교회 가운데서도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침례교회와 같은 교파는 사도신경이 성경에 쓰인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예배에서 고백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신경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 하나님에 대해 가장 간명한 언어로 신앙의 내용을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역사적 신앙의 전승을 중시하는 대부분의 보편적 교회는 이 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사도신경은 그 이름 때문에 사도들에 의해 작성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사실 사도신경의 사도 저작설을 중세 사람들은 거의 의심 없이 받아 들였다. 그러나 중세 말기에 이르러, 학자들은 사도신경의 유래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였고, 종교개혁 이후에는 사도신경을 사도들이 작성했다는 얘기는 한갓 전설로 알고, 그런 문제를 가지고 논의를 벌이는 사람은 없다.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오래된 사도신경의 본문은 로마신경 (Symbolum Romanum)이다. 이 신조에는 2세기 말에 교회가 겪은 교리에 대한 투쟁의 흔적이 보이질 않아 주후 100년 전에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215년 히폴리투스가 쓴 “사도의 전통 (Traditio Apostolica)”에서, 이 신경이 로마교회에서 세례를 베풀 때 사용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대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까?” 수세자가 “믿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머리에 안수하여 물에 담그어 세례를 주었다. 그리고 다시 묻기를
“그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즉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서 고난 받으시고, 죽으셨다가, 사흘 되는 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에 오르사, 아버지의 우편 에 앉아 계시다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수세자가 “믿습니다”고 대답하면, 두 번째로 물에 담궈 세례를 주었다.
“그대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교회와, 몸의 부활을 믿습니까?”라고 집례자가 다시 물을 때, 수세자가 “믿습니다”고 대답하면, 세 번째로 머리를 물에 담궈 세례를 주었다.
세례를 받는 자가 기독교의 핵심적인 신앙내용을 고백하게 한 것은 이 로마신경이 이미 2세기에 로마교회의 신조로서 확실한 위치를 확보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이러한 신경이 로마교회에서만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아마 다른 교회들도 이와 유사한 신앙고백서들을 사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일반적으로 알려진 대로의 사도신경은 8세기 초의 한 문서에서 나타나며, 12세기 이후에는 아래와 같은 표준문이 로마 카톨릭 교회의 세례 집행시에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사도신경
I believe in God the Father almighty, CREATOR OF HEAVENS AND EARTH.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나는 믿으며,
And I believe in Jesus Christ, His only begotten Son, our Lord;
그의 독생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who was CONCEIVED by The Holy Spirit, born of the Virgin Mary;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SUFFERED under The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DECENDED INTO HELL.
본디오 빌라도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시고, 지옥에 내려 가셨다가,
One the third day He arose from the dead;
삼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He ascended into heaven, and sits on the right hand of God the Father ALMIGHTY;
그는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는 데;
from there He will come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거기로부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I BELIEVE in the Holy Spirit;
성령을 나는 믿으며;
the holy CATHOLIC Church, THE COMMUNION OF SAINTS;
거룩한 보편 교회와, 성도들의 교통과;
the forgiveness of sins;
죄의 용서와;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몸이 다시 사는 것과;
THE LIFE EVERLASTING.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
2. 니케아 신경 (Nicene Creed, 325)
아리우스 논쟁
알렉산드리아의 장로(prebyter)였던 아리우스(Arius)는 318년부터 알렉산더 (Alexander) 감독(bishop)의 설교에 반기를 들며,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에 대한 자신의 새로운 주장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그는 그리스도는 ‘무(無)로부터 존재하기 시작했고’, ‘그가 한 때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고 (once He was not)’,‘그가 피조되었고 만들어졌다’고 가르쳤다. 이에 대해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알렉산더는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consubstantial)을 가지시며, 동일한 영원성(coeternal)을 가지신다’고 선언하였다. 아리우스는 321년 장로직에서 파면되었지만, 예루살렘 감독 마카리우스(Marcarius),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 (Eusebius of Nicomedia), 교회역사가인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 등 유력 감독들과 교분을 갖고 있었다.
교회의 분열 위험성이 대두되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25년 니케아로 로마제국내의 감독들을 소집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제1차 공의회인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한 318명의 감독들 중에 단지 28명만이 처음부터 분명히 아리우스파였다. 아리우스는 감독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의회에 참석이 허락되지 않았다.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와 니케아의 테오그니스가 아리우스를 대신하여 회의에 참석했다.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더는 아리우스와 그의 추종자들을 기소하는 일에 주도적인 일을 하였다. 젊은 부제(副祭, deacon) 아타나시우스(Athanasius)가 알렉산더를 수행하며 도왔는데 그는 나중에 알렉산더의 뒤를 이어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 되었다.
두 달간의 논쟁의 결과는 그리스도는 ‘낳아진 것이지 창조된 것이 아니며 (begotten not made)', '아버지와 아들은 동일한 본질(homo-ousios)이다’는 결론으로 일단 알렉산더가 승리하였다. 아리우스와 그를 대변했던 니코메디아와 니케아의 감독은 추방되었다. 이 신학 논쟁의 결과물로 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채택된 첫 번째 니케아 신조는 다음과 같다:
니케아 신경 (Nicene Creed, 325)
전능하사 볼 수 있는 것이나 볼 수 없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한 분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는 믿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나신, 하나님의 아들,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는 믿는데, 그는 [독생자; 곧 아버지의 본질에서 나시고, 하나님에게서 나신 하나님이시며,] 빛에서 나신 빛이시며, 참 하나님에게서 나신 참 하나님으로, 낳으시고, 지은 바 되지 않았으며, 아버지와 한 본질(homoousion)에 속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의 만물이 지어졌으며, 그는 우리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내려오시어, 성육신(成肉身)하셨고, 사람이 되셨으며, 고난을 당하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시고, 하늘에 오르셨는데, 거기로부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나, “그가 계시지 않은 때가 있었다”; “그가 지음을 받기 전에는 계시지 않았다”, “그는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지음을 받았다,” 혹은 “그는 다른 실체 혹은 본질에 속한다,” 혹은 “하나님의 아들은 지음을 받았다” 혹은 “변할 수도” 혹은 “바뀔 수도” 있다고 말하는 자들을 거룩하고 보편적인 사도적 교회는 저주한다.
We believe in one God, the Father Almighty, Maker of all things visible and invisible.
And in one Lord Jesus Christ, the Son of God, begotten of the Father [the only begotten; that is, of the essence of the Father, God of God], Light of Light, very God of very God, begotten, not made, being of one substance(homoousion) with the Father; by whom all things were made [both in heaven and on earth]; who for us men, and for our salvation, came down and was incarnate and was made man; he suffered, and the third day he rose again, ascended into heaven; from thence he shall come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And in the Holy Spirit.
(But those who say “There was a time when he was not;” and “He was not before he was made;” and “He was made out of nothing,” or “He is of another substance,” or “essence,” or “The Son of God is created, or “changeable, “alterable” –they are condemned by the holy catholic and apostolic Church)
그러나 이 두 파의 논쟁과 투쟁은 1차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 이후에도 50년 이상 진행되어 381년 2차 공의회인 콘스탄티노플회의에서 완전히 종결된다
3.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381년, the Nicaeno-Constantinopolitanum)
325년 니케아 공의회는 세 개의 파로 나누어져 있었다.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더, 그리고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 파로 나누어졌다.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가 이끄는 아리우스주의자들과 그 반대편에 서있는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더는 소수였다. 다수파는 교회사가인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가 이끌었는데, 그는 문제가 된 쟁점에 대하여 별로 깊은 이해를 가지지 못하였다. 그래서 니케아 공의회가 끝난 후에도 문제가 된 어휘 '호모우시오스(homoousios, 동일본질)‘에 대한 대대적인 반대가 동방에서 일어났다. 패배한 아리우스주의자들 뿐만 아니라 다수의 중립 파에게도 이것은 그다지 만족할 만한 것이 못되었다. 그들에게는 니케아 신조가 사벨리우스적 요소를 포함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타나시우스
그러는 동안 니케아 신앙의 영웅적인 변호자가 역사의 무대에 입장하였다.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295년 경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하였다. 아리우스 논쟁 초기에 부제(副祭, Deacon)로서 알렉산더 감독을 수행하였다. 328년 알렉산더가 사망하자, 그의 뒤를 이어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 되어 373년 죽을 때까지 47년간 봉직하였다. 그 기간에 다섯 번의 추방으로 총 17년을 유배지에 보내면서도 타협이 없는 불굴의 용기로 진리를 수호하였다.
아타나시우스의 논쟁은 사변적인 철학논쟁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구원론에서 출발하였다. 동방교회의 구원론은 번죄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하는 신화(神化, deification)구원론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며 인간이기 때문에, 다른 인간들도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신화로 나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의 본질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사람들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전의 이레니우스가 영지주의자들을 대항하여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증거하기 위하여 구원개념으로 신화사상을 사용하여 발전시킨 반면,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주의자에 대항하여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의 필요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이 사상을 발전시켰다.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과 "참 사람"이 아니면 구원은 성취될 수 없다.
니케아신조의 서명을 거부하여 면직된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가 감독으로 복직되자 유세비우스 일파는 아타나시우스를 꺽고 아리우스를 복귀시킬 것을 획책하였다. 이들의 설득에 넘어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32년 아리우스를 알렉산드리아의 장로로 복직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가 "호모우시오스(homoousios, 동일본질)"를 확실히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황제의 명령과 위협을 무시해 버렸다. 그 결과 아타나시우스는 로마 제국의 서쪽 지역, 독일의 트리어(Trier)로 추방되었다. 트리어를 오가는 중에 아타나시우스는 서방 교회의 지도자들과 많은 접촉을 가지면서, 니케아 신조에서 확인된 정통 삼위일체교리를 공감하게 한다. 또 아타나시우스는 서방교회에게 이집트 사막지역에 널리 퍼져있던 기독교 은둔 수도사들을 소개했다. 그가 가장 흠모했던 사막의 수도자 의 삶을 그린 "안토니의 생애 (The Life of Anthony)"는 제국 전체에 수도원운동이 일어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337년 콘스탄티누스가 죽자 그의 아들 콘스탄티우스2세(Constantius II)는 아타나시우스의 복귀를 허락하였다. 그러나 콘스탄티우스2세는 교회의 평화를 명목으로 니케아 신조의 "호모우시오스(homoousios, 동일본질)" 를 "호모이우시오스(homoiousios, 유사본질)"로 교체하려고 하였다. 이런 움직임에 대하여 아타나시우스는 극렬히 반대하였는데, 그 이유는 구원은 단순히 "하나님을 닮은" 위대한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 이신" 하나님의 아들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일체의 타협을 거부하자 니코데미아의 감독이었다가 이제는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으로 승진한 유세비우스의 영향력에 의해 온갖 날조된 혐의를 뒤집어 씌고 339년 로마로 추방되었다. 그의 후임으로는 아리우스 일파의 감독인 카파도키아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of Capadocia)가 군대를 동원하여 취임하였다. 후에 유세비우스와 그레고리우스가 죽자 콘스탄티우스2세는 347년 아타나시우스가 알렉산드리아에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재정유용과 권력남용이라는 날조된 혐의가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콘스탄티우스2세의 형제인 서방의 콘스탄스1세(Constans I, 재위337-350)황제가 살해되자 콘스탄티우스 2세는 3년의 전쟁 끝에 반란을 진압하고 동서로마 전체의 유일한 통치자가 되었다. 콘스탄티우스2세는 동서방 로마제국 전체의 통치권을 획득하자 교회의 논쟁을 종식시킬 것을 결심하였다. 이 일에 가장 걸림돌이라고 여겼던 아타나시우스를 제거하기 위해 353년과 355년에 열린 교회회의에서 서방교회가 아타나시우스를 버릴 것과, 동방교회의 강제적인 연합을 강요하였다. 이러한 요구를 거절하였다는 이유로 로마감독 리베리우스(Liberius)와 당대 최고의 지성인 고올 감독 힐라리우스(Hilarius of Potiers)와 노령의 코르도바의 호시우스(Hosius of Cordoba)가 추방되었다. 아타나시우스는 356년 무력에 의해 알렉산드리아에서 세 번째 쫓겨나 이후 6년 동안 대부분 이집트의 수도사들에게서 피난처를 구하였다.
콘스탄티우스2세가 죽고 콘스탄티누스의 조카 줄리안(Julian)이 로마의 새 황제가 되자 362년 유배되었던 아타나시우스가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왔다. 줄리안은 기독교를 몹시 싫어했는데 콘스탄티누스가 죽자 그의 아버지와 친척들이 대량으로 학살되는 틈에 여섯 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겨우 목숨을 건졌다. 쥴리안은 콘스탄티우스2세를 아버지의 살해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을 죽음의 공포에서 떨며 성장했고, 외적인 교회의 규례들을 엄격히 지킬 것을 강요당했던 그는 콘스탄티우스2세가 주장하는 어떤 것이라도 증오하였으며, 옛 헬레니즘의 문학과 생활, 철학을 예찬하였다. 그가 황제가 되자 기독교 성직자들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교회를 혼란케 할 목적으로 이전에 유배형에 처해졌던 모든 감독들을 복권시켰다.
이에 아타나시우스도 유배지에서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왔는데,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온 아타나시우스는 쥴리안의 예상과는 반대로 교회를 결집하였다. 362년 아타나시우스가 소집한 이 알렉산드리아 회의는 에큐메니컬 공의회로 간주되지 않지만, 이 회의가 381년 다가올 2차 에큐메니컬 공의회인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위한 징검다리역할을 하였다. 알렉산드리아 회의에서 아버지와 하나님의 아들과의 관계성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용어는 "호모우시오스(homoousios, 동일본질)"라는 것을 재확인하고 "호모이우시오스 (homoiousios, 유사본질)"를 정죄하였다. 또 그의 친구들인 카파도키아 교부(바실리우스와 두 명의 그레고리우스)들의 도움을 받아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동일 본질(호모우시오스)을 공유한 세 위격(位格, hypostases)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성부, 성자, 성령이 비록 한 본질(호모우시오스)일지라도 같은 동일한 위격(位格)이나 실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서 사벨리우스의 양태론도 분명히 반박하였다.
쥴리안은 아타나시우스가 교회를 결집하는 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에 아타나시우스는 다시 아프리카의 사막으로 도피했다. 363년 쥴리안이 페르시아와의 전투에서 사망하자 알렉산드리아로 네 번째의 망명에서 돌아왔다.
그후 동방을 다스린 발렌스(Valens,재위 364-378)는 콘스탄티노플의 아리우스파로부터 영향을 받아 아타나시우스를 정죄하였다. 아타나시우스는 마지막 다섯 번째의 추방을 당하나, 발렌스의 동정으로 곧 돌아와 7년 간 평화롭고 조용하게 감독직을 수행하다가 373년 사망하였다.
아폴리나리우스(Apollinarius, 310?-390?)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논란은 325년 1차 에큐메니컬 공의회인 니케아 공의회에서 일단락되었으나, 예수님이 완전한 신성(神性)을 가졌다면 그가 가진 인성(人性)은 어떤 것이며, 그 인성은 신성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다.
시리아의 라이디케아[2] 감독이었던 아폴리나리우스는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자랐다. 그가 비록 안디옥 근처에서 살고 있었고 그 도시에서 신학을 가르쳤지만 늘 자신의 뿌리를 의식하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안디옥 학파는 역사적인 예수, 즉 예수님의 인성(人性)에 관심이 많은 반면,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강조하는 편이었다.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었던 아타나시우스와 친구로서 함께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약화시킨 아리우스주의와 싸웠다. 니케아에의 승리로 니케아 신조를 따라 예수님의 신성을 굳게 믿었지만 인성에 대한 문제를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께서 완전한 신성을 가졌으면서도 완전한 사람일 때 그에게 있었을 두 의지의 조화를 설명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마음은 부패하고 육적 욕망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예수의 마음에는 로고스(logos)가 들어오신 것이라 생각했다. 그에게 로고스는 하나님이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이 인간의 육체와 영혼은 가졌지만 인간의 마음(혹은 정신,nous)은 갖지 않았다’고 함으로써 예수님의 완전한 인성을 부인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외모만 인간이었지 내면은 완전히 하나님인 셈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카파도키아 교부인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는 인간의 여러 본성을 갖추지 못한 그리스도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만일 예수가 몸만 인간이고 마음은 신이라면, 어떻게 그런 예수가 나를 도울 수 있을까? 그런 예수는 진정한 인간이 아니다(히4:15).”
카파도키아 교부들
삼위일체의 토대는 아타나시우스가 놓았지만, 성령의 역할이나 삼위의 위격(位格)에 관한 본질과 하나님 안에서 그들의 일치를 포함한 완전한 삼위일체 교리는 카파도키아의 교부들이 완성하였다. 이들의 활동을 통해 4세기 내내 있었던 아리우스주의와 사벨리우스주의 이단들을 둘러싼 삼위일체 논쟁은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막을 내리게 되었다.
카이사랴의 바실리우스(Basil of Caesarea, 330-379)와 그의 절친한 친구인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Gregory of Nazianzus,330-390), 그리고 그의 동생인 니사의 그레고리우스(Gregory of Nyssa,335-395?)는 위대한 카파도키아 교부 (Capadocian Fathers)라 불린다. 카파도키아는 현재 터키의 중부지역이다.
4세기 중반에 콘스탄티노플의 감독 마케도니우스(Macedonius)와 추종자들은 성자의 신성은 인정했지만, 성령은 단지 봉사하는 영, 하나님의 해석자, 천사 중의 왕으로 보았다. 말하자면 이위일체(二位一體, binity)로서 아버지와 아들을 예배하는 반면 성령을 하나님으로 예배하기를 거부하였다. 이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바실리우스는 성령은 "진실로 하나님"이시며, 성부 및 성자와 동등한 하나님으로서 삼위 가운데 세 번째 위격(位格) 혹은 본체 (hypostasis)임을 주장했다.
그들은 사람은 누구나 개인적인 인격 (individual person)이 있지만 보편적인 인간성(humanity)을 공유한다는 플라톤의 주장을 빌어서 사용했다. 바실리우스는 "하나님은 한 본질 (ousia)이지만 그 안에서 개별적 아버지, 아들, 성령의 세 위격(hypostasis)이 구별 된다"고 했다. "한 본질(ousia)과 세 위격(hypostases)"은 카파도키아 교부들의 특징적인 공식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381년에 데오도시우스(Theodosius) 황제의 소집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에서 2차 에큐메니칼 공의회가 열렸다. 이 회의에 모인 150명의 감독들은 아타나시우스와 카파도키아의 교부들의 가르침을 정통으로 확정하였다. 모든 형태의 아리우스적인 종속론과 사벨리우스적인 양태론을, 그리고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한 아폴리나리우스 주의를 정죄하였다. 1차 니케아 신조를 개정하여 성령과 교회에 대한 "제3항"을 포함하여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가 탄생하였다. 이 신조는 451년 칼케돈에서 열린 4차 에큐메니컬 공의회에서 재차 확인되며, 동방정교회, 로마 카톨릭 교회, 그리고 프로테스탄트교회들에서 발표된 모든 신조와 신앙고백서들의 모태가 되었다. 이 신조는 명실상부한 최초의 보편적인 신앙고백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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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년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 (the Nicaeno-Constantinopolitanum)
전능하시어, 하늘과 땅과, 볼 수 있는 것이나, 볼 수 없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한 분 하나님 아버지를 나는 믿습니다.
온 세상이 있기 전에 아버지에게서 나신, 하나님의 외 아들,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하나님에게서 나신 하나님이시요, 빛에서 나신 빛이시며, 참 하나님에게서 나신 참 하나님이시고, 나시고, 지음을 받지 않으셨으며, 아버지와 한 본질에 속하시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어졌음을 믿습니다. 그는 우리 사람들과 우리들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시고,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육하시고, 사람이 되시고, 또한 본디오 빌라도 아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셨음을 믿습니다; 그는 고난을 받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사흘 만에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사, 하늘에 오르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데, 거기로부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것이며,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임을 믿습니다.
주(主)요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나는 믿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시고,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경배를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시며,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을 믿습니다.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교회를 나는 믿습니다. 나는 죄 없이 함을 위한 하나의 세례를 인정하고, 죽은 자들의 부활과 내세의 생명을 바라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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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lieve in one God, the Father Almighty, Maker of heaven and earth, and of all things visible and invisible.
And in one Lord Jesus Christ, the only begotten Son of God, begotten of the Father before all worlds; God of God, Light of Light, very God of very God; begotten, not made, being of one substance with the Father; by whom all things were made;
who, for us men and for our salvation, came down from heaven, and was incarnate by the Holy Spirit of the virgin Mary, and was made men; and was crucified also for us under Pontius Pilate; He suffered and was buried; and the third day He rose again, according to the Scriptures; and ascended into heaven, and sitteth on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and He shall come again, with glory,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whose kingdom shall have no end.
And I believe in the Holy Spirit, the Lord and Giver of life; who proceeds from the Father and the Son; who with the Father and the Son together is worshipped and glorified; who spoke by the Prophets.
And [I believe] in one holy catholic and apostolic Church. I acknowledge one baptism for the remission of sins; and I look for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and the life of the world to come. Amen.
4. 칼케돈 신경 (451년)
네스토리우스 와 키릴로스의 논쟁 -제3차 에베소 공의회(431)
381년 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통해 삼위일체 교리를 확정하고,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한 아폴리나리우스를 정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예수님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에 대한 신학적 논쟁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이 논쟁에는 안디옥과 알렉산드리아간의 신앙을 빙자한 추악한 정치싸움이 끼어있었다.
알렉산드리아 교회는 아폴리나리우스의 주장에 비교적 동정적일 만큼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고 싶어 했다. 만약 신성과 인성이 합치면 신성만 남을 것이 아닌가?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결혼하면 가난한 사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연합할 때 당연히 인성은 신성에 가려지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대표 성품이 신성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성모 마리아에게 데오토코스(Theotokos, the Mother of God)라는 칭호를 주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안디옥에 있다가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이 된 네스토리우스(Nestorius, 386-451)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이 구분되어야 하며, 둘이 섞이는 것으로 이해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성모 마리아는 인간 예수의 어머니 곧 크리스토코스(Christokos, the Mothe of the Man, Christ Jesus)는 될지언정 신성(神性)의 어머니인 데오토코스는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Kyrillos, 376-444)는 신성과 인성사이에 서로 속성의 교류(communicatio idiomatum)가 일어나기 때문에 예수님의 한 인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을 분리해서는 안 되며, 그러기에 성모는 하나님을 잉태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네스토리우스가 예수를 두 개의 분리된 인격으로 나누었다고 비판했다.
다시 한 번 교회는 분열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431년 동방황제는 제3차 에큐메니컬 공의회를 에베소에서 소집했다. 이때 키릴로스는 해로를 통해서 많은 인원과 금은보화를 가지고 나타났다. 그러나 네스토리우스를 지지하는 안디옥의 감독 요한은 육로로 여행을 하였기에 무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예정일이 보름이 지나 급한 전갈이 왔는데 곧 도착한다는 것이었다. 키릴로스는 요한이 도착하기 전에 자기파들만 가지고 회의를 시작하였다. 안디옥 파들이 도착하기 4일 전에 회의는 끝났다. 그들은 네스토리우스가 예수는 두 개의 분리된 인격(2 Persons)을 가졌다고 가르쳤다(네스토리우스는 명백히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지만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을 이렇게 곡해했다)고 정죄하였다.
한 편 나중에 도착한 안디옥 파들은 키릴로스의 회의에 불참하고 기다리던 감독들과 별도의 회의를 열었다. 여기서 반대로 키릴로스의 감독직을 파면시키고 그의 가르침을 정죄하였다. 그런데 이들이 이 작업을 마치기도 전에 서방측 감독들과 로마 감독 사절들이 로마로부터 도착하여 키릴로스와 그들 중심의 공의회를 인정하고 곧바로 네스토리우스를 정죄하고 파면시켰던 이전의 결정들을 승인해 버렸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는 매우 혼란을 가중하였고 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황제에게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황제는 분열을 싫어하여 모든 당파들에게 중재안을 내고 타협하라고 강력하게 압박했다. 그러면서 공의회가 결정한 네스토리우스의 파면은 지지했다. 네스토리우스는 그를 지지했던 안디옥의 감독 요한의 뒤를 이어 추방당했다. 그리고 황제는 키릴로스에게 두 본성 교리를 정통 기독론으로 받아들이라고 압박했다. 키릴로스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두 본성이 나누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한 그 교리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는 “본성들의 구분(distinction)은 필요하지만 분리(division)는 비난 받아야 한다. 두 본성들(duo physeis)을 말하는 것은 구분을 하자는 것이지 그 자체를 분리하자는 말은 아니다”고 말했다. 키릴로스는 분명히 ‘두 본성이 연합한 이후에는 하나의 본성’만 있다는 교리를 주장해 왔었는데, 종전 입장을 선회하고 안디옥 측의 인성과 신성을 함께 주장하는 교리를 받아들였다. 이것을 보고 그의 동료들과 추종자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결국 교회를 분열시켰던 것은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네스토리우스를 향한 키릴로스의 미움이었음이 분명해졌다. 네스토리우스는 신앙적으로 승리하고도 현실적으로는 유배를 당했다.
네스토리우스는 감독직에서 파면되어 고향의 수도원으로, 후에 이집트의 테베 사막으로 추방되었지만, 시리아와 페르시아에 많은 추종자를 가졌다. 그들은 네스토리안 교회를 세웠는데 그 교회는 빠르게 성장하여 처음에는 페르시아에서 그 다음에 아르메니아(Armenia)에서 교세를 확장했다. 네스토리안 선교사들은 계속 동쪽으로 교세를 넓혀 635년 대진국(大秦國:로마) 사람 아라본(阿羅本,Alopen) 일행이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 당나라의 수도 장안(長安)에 까지 당도했다. 지금도 네스토리안 교회는 무슬림의 엄청난 핍박 가운데서 메소포타미아와 아르메니아에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유티케스
유티케스(Euthches)는 콘스탄티노플의 연로한 수도사로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신학을 강력히 지지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키릴로스의 기독적인 원리, 즉 ‘속성의 교류’를 일방적으로 극단화시켰다. 그는 아폴리나리우스의 이단적인 가르침을 되풀이하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인성을 ‘그의 신성이라는 바다에 떨어진 한 방울의 포도주’처럼 간주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하고 참다운 인성을 부인했다. 유티케스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인간의 인격을 소유하지도 않았고 개별적인 인간 존재도 아니며 우리와 같은 인간적인 본성을 전혀 갖지 않았다.
강도회의 (Robber Synod)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었던 키릴로스가 444년 죽자 그의 후계자로 디오스코루스(Dioscorus)라는 정치꾼이 등장했다. 키릴로스가 죽을 당시 그는 안디옥과 로마,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의 감독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고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보기엔 평온한 것처럼 보였다. 키릴로스가 교회의 평화를 위하여 자신의 입장을 강요하거나 드러내 놓고 살기를 원치 않았던 것 같다. 안디옥의 감독 요한도 그러하였으며, 로마는 야만족의 침략으로 신학 논쟁을 할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디오스코루스가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으로 등장하면서 사태는 급변하게 변하였다. 그의 관심과 동기는 진리를 발견하고 옹호하는 것보다는 콘스탄티노플로부터 안디옥 학파의 세력들을 단번에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는 키릴로스가 이전에 주장했던 ‘연합 이후의 한 본성’ 교리를 주장했다. 디오스코루스의 상대자는 안디옥의 신학자 데오도레투스(Theodoret of Cyrus)였다. 그는 안디옥 학파의 위대한 신학자로써 콘스탄티노플의 차기 감독이 될 만한 후보자였다. 그는 ‘연합 이후 한 본성’ 교리를 반대하고 ‘그리스도의 두 본성’ 교리를 정통으로 간주했다. 디오스코루스와 테오도레투스 간의 일촉측발의 상황에 불꽃을 튀긴 이가 유티케스였다.
디오스코루스는 448년 유티케스의 가르침을 심판하기 위한 콘스탄티노플 노회에서 겉으로는 유티케스를 정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유티케스를 일단 알렉산드리아로 피신시킨 다음,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유티케스로 하여금 안디옥 학파와 콘스탄티노플 감독과 대결하도록 추진하기 위해서였다. 유티케스는 이 노회에서 정죄되었다.
449년 열린 4차 에베소 에큐메니컬 공의회(강도 회의)에서 디오스코루스는 중무장한 깡패 수도사들과 함께 참석하여 재빨리 회의 전체를 장악해 버렸다. 그리하여 유티케스의 교리인 ‘연합 이전에는 두 본성, 연합 이후에는 하나의 본성’을 정통교리로 인준했다. 그리고 안디옥의 테오도레투스와 네스토리우스주의자들을 정죄하였고 그 직위를 박탈해 버렸다. 알렉산드리아의 일부 감독들과 많은 수도사들은 그들을 화형에 처해야 한다고 까지 주장했다. 그 때 콘스탄티노플의 감독 플라비안(Flavian)은 로마의 감독 레오 1세가 보낸 서신 한 통을 들고 회의에 도착했다. 이 서신에는 유티케스를 반대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이 서신은 ‘레오의 토메 (Leo's Tome)'로 알려져 있는데 후에 칼케돈 공의회에서 교리적 갈등을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플라비안은 로마의 레오가 보낸 장문의 교리서신을 낭독하려 했다. 그러나 디오스코루스가 동원한 깡패 수도사들이 그에게 폭력을 행사하여 플라비안은 얼마 후에 죽고 말았다.
강도회의가 끝난 직후, 이 회의에서 패배했던 피해자들은 황제와 로마의 감독에게 호소하기 시작했다. 로마감독 레오는 즉시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황제에게 서한을 보내 회의결과를 번복할 것을 요구했다. 레오는 유티케스는 정죄되어야 하며, 테오도레투스는 안디옥의 지도자로 복권되어야 하고, 플라비안의 죽음에 항의하면서 그를 죽인 살인자들을 체포하도록 요구하였으며, 강도회의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공의회를 열도록 요청하였다. 450년에 황제 데오도시우스2세는 레오의 요구를 모두 거절하였다.
황제의 지지를 받을 수 없자 레오는 서방에서 에큐메니컬 공의회를 소집하는 절차를 밟았다. 로마의 감독은 황제의 동의절차 없이도 에큐메니컬 공의회를 개최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황제는 이단을 정통으로 인준했던 ‘강도회의’ 의 결과들을 변호하였다. 4세기 중엽의 교회가 아리우스 주의를 거의 정통으로 간주했던 것처럼, 5세기 중엽의 교회도 가현설(Docetism)을 거의 정통으로 삼았다. 그런데 데오도시우스 황제2세가 갑자기 말에서 낙마하여 죽었다. 권력은 황제의 누이 풀케리아(Pulcheria)와 그녀의 배우자 마르키안(Marcian)에게 넘어갔다.
풀케리아와 마르키안은 449년의 강도회의의 결정들을 무효화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에베소에 묻혀있던 플라비안의 시신을 콘스탄티노플로 옮겨 소피아 대성당에서 영예롭게 장례를 치렀다. 강도회의를 대체할 4회 에큐메니컬 공의회가 콘스탄티노플 근처 칼케돈(chalcedon)에서 소집되었다.
칼케돈 공의회
451년 제4차 에큐메니컬 공의회가 5백명의감독들이 참석한 가운데 칼케돈에서 개막되었다. 레오의 추종자들과 안디옥 학파 사람들이 한 쪽에, 디오스코루스와 알렉산드리아 학파들이 다른 쪽에 자리하였다. 강도회의에 의해 면직되고 하마터면 화형에 처해질 뻔했던 테오도레투스도 입장하였다. 에베소에서 열렸던 강도회의의 결정들이 큰 소리로 낭독되고 토론되었다. 점차 디오스코루스의 지지자들은 디오스코루스와 강도회의의 결정들을 포기하였고, 플라비안의 죽음과 테오도레투스의 박해에 가담한 것을 후회한다고 표현했다. 디오스코루스는 알렉산드리아 감독직에서 파면이 결정되었고 그는 사막으로 쫓겨났다.
칼케돈 회의는 이미 죽은 네스토리우스와 유티케스를 정죄하였다. 칼케돈은 안디옥 학파의 온건한 신학을 받아들여 예수 그리스도의 실질적인 인성과 그의 두 본성을 분명히 주장하였다. 그러나 두 본성(two natures)은 분리나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점과 각 본성은 온전한 상태로 하나의 위격(one Person) 안에 함께 거한다고 주장하였다.
네스토리우스가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의 연합과 통전성을 부인했던 것을 정죄하였다. 그런 한편 칼케돈은 극단적인 알렉산드리아의 기독론도 반대하여, 그리스도의 두 본성은 반드시 혼합(섞이거나 합쳐지는 것)되어서는 안 되며 로고스 안에서 그들의 친밀한 본질적인 결합을 통하여 변질된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는 점을 분명이 주장하였다.
칼케돈 신조의 핵심은 “한 위격 안에 그리스도의 두 온전하고 완전한 본성-신성과 인성-이 혼합이 없고, 변함이 없고, 분할이 없고, 분리가 없이 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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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케돈 신경 (451년, The Definition of Chalcedon)
우리는 모두 거룩한 교부들을 따라 만장일치로, 한 분이시고 동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가르쳐 고백하게 한다. 그는 신성과 인성에 있어서 동일하게 완전한 분이시며; 참으로 하나님이시고, 합리적 (이성적) 영혼과 몸을 가지신 참으로 사람이시며; 신성(神性)을 따라서는 아버지와 동일 본질이고, 인성(人性)을 따라서는 우리와 동일 본질이며; 모든 것에 있어서 우리와 같으신 데 죄는 없으시며;
신성을 따라서는 모든 세대 전에 아버지에게서 나시고, 인성을 따라서는, 이 마지막 날에 우리들과 우리들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어머니 (Deotokos),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한 분이시요 동일하신 그리스도요, 아들이시며, 주시요, 독생하신 자는, 양성(兩性)에 있어서 혼돈되지 않고, 변하지 않고, 나누어지지 않고, 분리되지 않음을 인정 받으며; 성품의 구별이 연합으로 결코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각 성품의 특성이 보존되고, 하나의 인격과 하나의 실재로 작용하며, 두 인격으로 갈라지거나 나누어지지 않고, 한 분이시고 동일하신 아들이시고, 하나님 말씀이시며, 주 예수 그리스도로, 독생하신 자이신 바, 이는 선지자들이 그에 관하여 처음부터 선언했고, 주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우리들에게 가르치셨으며, 거룩한 교부들이 우리들에게 전하여 준 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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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then, following the holy Fathers, all with one consent, teach men to confess one and the same Son, our Lord Jesus Christ, the same perfect in Godhead and also perfect in manhood; truly God and truly man, of a reasonable [rational] soul and body; consubstantial [coessential] with the Father according to the Manhood; in all things like unto us, without sin; begotten before all ages of the Father according to the Godhead, and in these latter days, for us and for our salvation, born of the Virgin Mary, the Mother of God, according to the Manhood; one and the same Christ, Son, Lord, Only begotten, to be acknowledged in two natures, INCONFUSEDLY, UNCHANGEABLY, INDIVISIBLY, INSEPARABLY; the distinction of natures being by no means taken away by the union, but rather the property of each nature being preserved, and concurring in one Person and on Subsistence, not parted or divided into two persons, but one and the same Son, and only begotten, God the Word, the Lord Jesus Christ, as the prophets from the beginning [have declared] concerning him, and the Lord Jesus Christ himself has taught us, and the Creed of the holy Fathers has handed down to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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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성론(Monopysitism)
그러나 예수님의 일위 양성(一位 兩性, one Person two natures)이라는 칼케돈 공의회 결정을 수용하지 못하는 일부 교회에서 예수님이 신성과 인성, 양성(兩性)을 가지신 것이 아니라 하나의 본성만 가지신다는 단성론(單性論)은 계속 주장하고 자기들만의 교회를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오늘 날의 시리아의 자코바이트(Jacobite) 교회, 이집트의 콥틱(Coptics)교회, 그리고 에디오피아(Abyssinia)교회가 단성론을 신조로 하고 있다. 이들은 다 아폴리나리우스와 키릴로스의 후예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칼케돈 공의회의 교리적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동방교회와 계속 교류하는 이집트 교회을 멜키트(Melkite)교회라 한다.
5. 아타나시우스 신경(435~500년 경)
이 신경은 430~500AD 경에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 나왔는데 라틴어로 작성되었다. 저자는 아타나시우스가 아니지만, 신경의 내용이 그의 신학 내용과 일치하기 때문에 아타나시우스 신경이라 이름한다. 니케아와 콘스탄티노플 및 칼케돈의 삼위일체 신앙과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잘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어거스틴 (345-430)과 빈센티우스(Vincentius, ~450)의 영향을 받아 서방 교회의 신앙적 특색을 띠고 있다. 이 신경은 유럽에서 각광을 받게 되었으며 샤늘마뉴(768~814) 시대에 이르러 ‘보편적 신조 (fides catholica)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 신경은 서방교회에서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에 이어 셋째의 에큐메니컬 신경으로 인정되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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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나시우스 신경 (The Athenasian Creed, Quncunque)
1. Whoever desires to be saved, before all things it is necessary that he holds the catholic faith.
구원을 받기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무엇보다 먼저 보편적 신앙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2. Except anyone keeps it whole and unharmed, he will without any doubt perish everlastingly.
누구든지 이 신앙을 온전하고 순수하게 지키지 않으면, 의심 없이 영원히 멸망을 받을 것이다.
3. The catholic faith, then, is this. That we worship one God in Trinity, and Trinity in Unity.
보편적 신앙이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삼 위로 계시는 한 하나님과, 일체로 계시는 삼위 하나님을 경배하고,
4. Neither confusing the persons nor diving the substance.
삼위를 혼돈하거나, 그 본질을 분리하지 않는다.
5. For there is one person of the Father, another of the Son, and another of the Holy Spirit.
이는 아버지의 한 위가 계시고, 아들의 다른 위가 계시며, 또 성령의 다른 위가 계시기 때문이다.
6. But the God head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and of the Holy Spirit is one and the same, their glory equal, their majesty co-eternal.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신성은 하나이고 동일하며, 그들의 영광이 동일하고, 그들의 존엄이 동일하게 영원하시다.
7. Such as the Father, such is the Son, and such is the Holy Spirit.
아버지께서 계심 같이, 아들이 그렇게 계시고, 성령이 그렇게 계시다.
8. uncreated is the Father, uncreated the son, uncreated the Holy Spirit;
아버지께서 지음을 받지 않으시고, 아들이 지음을 받지 않으셨으며, 성령이 지음을 받지 않으셨으며,
9. Infinite is the Father, infinite the Son, infinite the Holy Spirit;
아버지가 무한하시고, 아들이 무한하시며, 성령이 무한하시다.
10. Eternal is the Father, eternal the Son, eternal the Holy Spirit;
아버지께서 영원하시고, 아들이 영원하시며, 성령이 영원하시다.
11.and yet they are not three eternals, but there is one eternal.
그렇지만 그들은 세 영원하신 분이 아니시고, 한 영원한 분이 계신다.
12. Just as they are not three Uncreated, not three Infinite, but there is one Uncreated and one Infinite.
또한 세 지음을 받지 않으신 분들이나, 세 무한한 분들이 계시지 않고, 한 지음을 받지 않은 분이 계시고, 한 무한 하신 분이 계심 같이,
13. In the same way is the Father almighty, the Son Almighty, the Holy Spirit almighty;
그렇게 아버지께서 전능하시고, 아들이 전능하시며, 성령이 전능하시다.
14. and yet they are not three Almighties, but there is one Almighty.
그렇지만 그들은 세 전능자들이 아니시며 한 전능자가 계신다.
15. Thus the Father is God, the Son is God, and the Holy Spirit is God;
그래서 아버지께서 하나님이시고, 아들이 하나님이시며, 성령이 하나님이시다.
16. and yet they are not three Gods, but there is one God.
그러나 이들은 세 하나님들이 아니고, 한 하나님이 계신다.
17. Thus the Father is Lord, the Son is Lord, and the Holy Spirit is Lord;
이와 같이 또한 아버지께서 주님이시고, 아들이 주님이시며, 성령이 주님이시다.
18. and yet they are not three Lords, but there is one Lord.
그러나 그들은 세 주님들이 아니시고, 한 주님이시다.
19. Because just as we are compelled by the Christian truth to acknowledge each Person singly to be both God and Lord,
이는 우리가 기독교 진리에 의하여 각위(各位)가 하나님이시고 주이심을 따로 따로 인정해야 하는 것처럼;
20. so we are by the catholic religion forbidden to day that there are three Gods and three Lords.
그렇게 우리들이 보편적 신앙에 의하여 세 하나님들이 계신다거나 세 주님들이 계신다고 말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21. The Father is made of none, neither created nor begotten;
아버지는 아무에게서도 만들어지지 않으시고, 창조되지 않았으며, 나시지도 않았다;
22. The Son is from the father alone, not made nor created, but begotten;
아들은 아버지에게서만 나시고, 만들어졌거나, 창조되지 않으셨고, 나셨다.
23. The Holy Spirit is form the Father and the Son, neither made, nor created, nor begotten, but proceeding.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만들어졌거나, 창조되었거나, 나시지 않으시고, 나오신다.
24. so there is one Father, not three Fathers; one Son, not three Sons, one Holy Spirit, not three Holy Spirits.
그래서 세 아버지가 아니고 한 분 아버지가 계시고, 세 아들이 아니고 한 분 아들이 계시며, 세 성령이 아니고 한 분 성령이 계신다.
25. And in this Trinity there is no before or after, no greater or minor.
그러나 삼위일체에 있어서는 어는 한 위가 다른 위에 앞서 있거나 뒤에 있지 않으며, 어느 한 위가 다른 위보다 더 크거나 더 작지 않다.
26. But all there persons are fully co-eternal with each other and co-eternal.
그러나 삼위는 서로 아주 다같이 영원하시고, 다같이 동등하시다.
27. So that in all things, as has already been said, the Trinity in Unity as well as the Unity in Trinity is to be worshipped.
그래서 앞서 말한 대로, 모든 것에 있어서 일체로서의 삼위와, 삼위로서의 일체가 경배를 받으셔야 한다.
28. Therefore, who desires to be saved, he should thus think of the Trinity.
그러므로 구원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삼위에 관하여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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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Furthermore, it is necessary to everlasting salvation that he also should faithfully believe the incarnation of our Lord Jesus Christ.
나아가 영원한 구원을 위해서는 그가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을 올바로 믿는 것이 필요하다.
30. Now, the right faith is that we should believe and acknowledge that our Lord Jesus Christ, the Son of God, is both God and man equally.
이제 올바른 신앙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고 사람이심을 믿고 인정하는 것이다.
31. He is God from the substance of the Father, begotten before all ages, and He is man from the substance of His mother, born in this age.
그는 아버지의 본질로부터 하나님이시고, 만세 전에 나셨으며, 그리고 그는 그의 어머니의 본질로부터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셨으며,
32. Perfect God, and perfect man, of a rational soul and human flesh subsisting;
완전한 하나님이시고, 이성적인 영혼과 인간 육체로 계시는 완전한 사람이시다.
33. equal to the Father as regards His divinity, and inferior to the Father as regards His humanity;
그의 신성에 관하여는 아버지와 동등하시고, 그의 인성에 관하여는 아버지 보다 낮으신데;
34. Who, although He is God and man, yet He is not two, but one Christ.
그는 하나님과 사람일지라도 두 분이 아니시고, 한 분 그리스도이시다.
35. one, however, not by conversion of His divinity into flesh, but by taking up the humanity into God;
그러나 한 분이심은 그의 신성이 육신으로 변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이 인성을 취하심의로서이다.
36. one, definitely not by confusion of substance, but by unity of person;
한 분이심은 분명히 본질의 혼합에 의해서가 아니고 위(位)의 일치에 의해서 이다.
37. For just as the rational soul and flesh are one man, so God and man are one Christ;
왜냐하면 이성적이 영혼과 육체가 한 사람인 것 같이, 하나님과 사람이 한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38. Who has suffered for our salvation, descended into hell, arose from the dead,
그는 우리들의 구원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지옥에 내려 가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나시고;
39. ascended into the heavens is seated at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데,
40. From where He will come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At whose coming all people arise with their bodies and will give an account of their own works;
거기로부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그가 오실 때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육체로 살아날 것이며 그들의 행위를 고하게 될 것이다.
41. And those who have done good will go into everlasting life, but those who have done evil into everlasting fire.
그래서 선을 행한 사람들은 영생에 들어 갈 것이나, 악을 행한 사람들은 영원한 불에 들어갈 것이다.
42. This is the catholic faith, Unless someone has faithfully and firmly believed it, he cannot be saved.
이것이 보편신앙이다. 누구든지 이것을 신실하고 확고하게 믿지 않는 한, 그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