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1,288m. 태백산맥의 오대산에서 남서쪽으로 갈라진 차령산맥의 줄기로 영서 지방의 명산이며 원주의 진산이다. 남북으로 웅장한 치악산맥과 산군(山群)을 형성하고 있다.
주봉인 비로봉(飛蘆峰)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향로봉(香爐峰, 1,043m)·남대봉(南臺峰, 1,182m)과 북쪽으로 매화산(梅花山, 1,084m)·삼봉(三峰, 1,073m) 등 여러 봉우리를 연결하며 그 사이에 깊은 계곡들을 끼고 있다. 남북으로 뻗은 주능선을 경계로 하여 대체로 서쪽이 급경사를 이루며 동쪽이 완경사를 이룬다.
특히 비로봉에서 구룡사(龜龍寺)를 향하여 뻗은 북쪽의 능선과 계곡은 매우 가파른 것으로 유명하다. 한편 고둔치 동쪽인 부곡리의 신막골 일대는 비교적 넓은 평탄지대를 이루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서쪽으로 흐르는 계류들은 섬강(蟾江)으로 흐르고, 동쪽으로 흐르는 계류들은 주천천(酒泉川)으로 흘러든다.
조선 시대에는 오악신앙의 하나로 동악단을 쌓고 원주·횡성·영월·평창·정선 등 인근 5개 고을 수령들이 매년 봄·가을에 제를 올렸다. 또 많은 승려와 선비들의 수련장으로 사찰과 사적이 많다. 공원 면적은 182.09㎢이고, 산세가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많은 문화유적이 있어 1973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84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큰골·영원골·입석골·범골·사다리골·상원골·신막골·산성골 등 기암괴석과 층암절벽의 아름다운 골짜기가 있으며, 비로봉·남대봉·매화산·안봉·천지봉·투구봉·토끼봉·향로봉 등의 산봉과 입석대·세존대·신선대·아들바위·구룡폭포·세렴폭포·영원폭포 등의 명소가 산재하여 있다. 치악산에는 한때 76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사찰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구룡사·상원사(上院寺)·석경사(石逕寺)·국향사(國享寺)·보문사(普文寺)·입석사(立石寺)가 남아 찬란했던 불교 문화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이 창건한 고찰로 거북바위[龜巖]와 구룡소(九龍沼) 등의 경승지가 있으며 대웅전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었다.
남대봉 아래의 상원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절이며 용마바위와 계수나무 고목이 위엄을 자랑하고 있는데 이곳은 꿩의 보은설화로 더욱 유명하다. 또한 고려 말의 충신 원천석(元天錫)의 은거지였기에 그의 묘소, 사적을 기록한 묘갈(墓碣), 재실(齋室)이 있는 석경사, 태종이 찾아와 스승을 기다리던 태종대(太宗臺), 할미소[老姑沼], 수레너미재, 대왕재 등 태종과 원천석에 얽힌 지명과 명소가 많이 널려 있다.
남대봉 서쪽 기슭에는 험준한 산세와 지리적 여건을 이용하여 축조한 세 곳의 옛 산성 터가 남아 있다. 합단(哈丹)의 침입과 임진왜란의 격전지였던 영원산성(鴒原山城), 해미산성지(海美山城址), 금두산성이 그것이며, 이것은 예로부터 군사적 요충인 원주를 지키는 천연의 요새로서 치악산의 몫을 입증하는 사적들이다. 남대봉 동남쪽인 상원골 입구 성남리의 성황림(城隍林)은 천연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되어 있었다.
이곳은 전나무·들참나무·층층나무·피나무·가래나무·들매나무·귀등나무·느릅나무·소나무 등 20종의 수목이 울창하였으나 보호에 소홀하여 고유 임상이 크게 손상되었다. 이곳과 구룡사 사찰림에는 파랑새·호반새·오색딱다구리·청딱다구리·꾀꼬리 등 희귀한 조류도 서식하고 있다. 등산로는 종주코스와 횡단코스 등 다양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특산물은 송이, 산채, 닥종이[韓紙] 등이며 매년 9월에는 예총(藝總) 원주 지부에서 주관하는 치악예술제가 열린다.
<출처>네이버
▼ 부산에서 4시간을 달려 황골주차장에 하차를 했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마친후
치가 떨리고 악이 받친다는 산행을 시작한다(10:45)
▼ 큰 입석사 표지석이 먼저 반긴다.
▼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소형 주차장을 도착했다. 따뜻한 날씨에 바람막이 점퍼를 벗고 부근에 걸린 저울에 배낭을 달아보니 12kg쯤 된다.
▼ 며칠전에 내린눈으로 계곡엔 눈이 그대로 있다.
▼ 계속된 오르막길을 따라 입석사에 도착했다(11:22)
▼ 뒤따르는 동행들이 오르고있다.
▼ 대웅전 왼쪽으로 입석대에 오른다.
▼ 입석대
▼ 마애여래좌상
▼ 입석대에서 내려다본 지나온 임도길
▼ 석탑
▼ 내려다 본 입석사
▼ 아이젠을 착용하고 대웅전 오른쪽 오름길로 향한다.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표고차 280m를 치고 오른다.
▼ 급경사를 치고올라서 후미와 간격 조정하고 능선길에 있는 삼거리로 향한다. 삼거리에서 바로 비로봉이 보인다.
▼ 쥐너미재 전망대에선 원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 해발 1050m 헬기장에서 점심을 먹고 간다(12:52)
▼ 점심시간을 마무리하고 출발한다. 계곡 갈림길을 지나 정상을 공략한다(13:37)
▼ 정상을 올라 지나온 능선길을 돌아본다.
▼ 내린 눈들로 지계곡과 능선들을 도드라지게 보인다
▼ 정상에서 등산 기념 사진도 찍고
▼ 후미에 있는 일행들을 기다린다. 정상엔 작고한<용창중>씨가 세운 치악산을 상징하는 돌탑이 3개 있다. 남쪽의 탑은 <용왕탑>, 중앙의 탑은 <산신탑>, 그리고 북쪽의 탑을 <칠성탑>이라고 한다.
▼ 밥을 먹던 헬기장이 보인다.
사다리병창에서 "병창"이란 절벽을 뜻하는 강원도 방언이다. 안내표지판엔 "거대한 암벽군이 사다리꼴 모양으로 되어 있고 암벽 사이에 자란 나무와 어우러져 독특한 풍광이 병풍처럼 펼쳐진 곳"이란 뜻이 담겨져 있단다.
현재는 능선의 예리함은 데크와 계단으로 가려져 옛 명성을 찾을수는 없어서 아쉽다.
산악인들은 우리나라 3대 악산이니 5대 악산이니 부르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지정된 것은 없다. 그렇지만 치악산은 설악산, 월악산과 함께 빠짐없이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
▼ 사다리병창길을 따라 구룡사 방향으로 향한다. 급경사길이라 핸드레일에 의지하여 내려간다(14:03)
▼ 곧추선 계단길을 내려와 잠시 평평한길을 만났다
▼ 다시 이어진 내리막 계단길
▼ 끝없는 계단
▼ 소나무 위로 뾰족한 비로봉이 보인다.
▼ <말등전망대>에서 협곡 아래로 <사다리골>길이 보인다. 그길을 따르는 등산객들도 간간히 보인다. お元氣ですか~~
▼ 건너편 진달래능선
▼ 계곡길 건너 무명능선
▼ 마지막까지 치열한 내리막을 내려와서 <큰골>을 건넌다(15:09)
▼ <세렴폭포>인데 동행한 분이 실망한 어조로 "새피할 세(細)자를 쓰는 갑다"라는 말에 빵~터짐ㅎㅎㅎ
* 구룡사 이름 속 숨어있는 전설 * 의상과 아홉용에 얽힌 전설이 전해온다. 원래 대웅전 자리에는 연못이 있었다. 그 곳에는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의상은 치악산을 향해 가던 중 사방을 살펴보니 동쪽으로는 주봉인 비로봉이 솟아 있고, 다시 천지봉의 낙맥이 앞을 가로질은 데다가 계곡의 경치 또한 아름다워 이곳은 절을 세울만한 곳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연못을 메워 절을 지으려고 용들과 도술시합을 했다. 용들이 먼저 솟구쳐 올랐다. 그러자 뇌성벽력이 치고 산들이 모두 물에 잠겨버렸다. 용들이 흐뭇해하며 주변을 살피니, 의상은 비로봉과 천지봉에 줄을 걸어 배를 매놓고 그 안에서 자고 있었다. 다음은 의상이 움직였다. 부적을 한 장 그려 연못에 넣었다. 그러자 연못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고 용들이 뜨거워 날뛰었다. 그때 놀란 용 여덟 마리가 절 앞산을 여덟조각 내면서 동해로 도망치고, 한 마리는 눈이 멀어 함께 도망가지 못하고 못에 머물렀다. 그래서 절 이름도 구룡사(九龍寺)라 했고 한다. 세월이 흘러 절이 퇴락하게 되었고, 어느 날 한 노인이 나타나 절 입구의 거북바위 때문에 절의 기가 약해졌으니 그 혈을 끊으라 했다. 그대로 했더니 절이 더 힘들어졌고 폐사가 되려 했다. 이번에는 한 도승이 나타나 훈수를 했다. 거북의 혈맥을 끊어서 절이 쇠락해졌으니 다시 그 혈맥을 이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절 이름을 구룡사(龜龍寺)로 바꾸었다고 한다.
<출처>네이버
▼ 임도길을 따라 구룡사에 도착했다. 조용한 산사 지붕에 잔설이 녹아 물이되어 내려온다(15:38)
▼ 절을 찾는 신도를 위해 운영중인 무료다방(茶房). 안쪽을 보니 가지런히 다기 셋트가 놓여져 있다.